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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주인공의 삶]
여래를 헐값에 파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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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  2014 년 12 월 [통권 제20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4,476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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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공부하는 친구들은 육바라밀(六波羅…蜜)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대부분 신심이나 환희심이 일었다는데 내게는 그것이 너무 까마득한 저 언덕이었다. 안 될 일은 얼른 포기하는 것이 상책이라, 그것을 높으신 스님들의 몫으로 미뤄두고 나는 그냥 죄짓고 살기로 하였다.

 

그러다가 동네 친구들의 삶 속에서 육바라밀을 발견하고 ‘아!’(바보도 깨닫는 소리)한 적이 있다. 그들의 이름은 공교롭게도 혜숙이, 미숙이, 복숙이다. 그래서 ‘삼숙아 밥 먹자’라고 단체문자를 보낸다. 하나는 조그만 회사에 다니고, 하나는 마트에서 물건 정리를 하고, 또 하나는 캐샤와 텔레마케터로 일하다가 집에서 살림하는 중이다.

 

그들의 하루는 가족을 보살피는 일, 즉 보시로 시작된다. 매일같이 자기를 절제하고 규칙을 잘 지킨 결과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지 않고 평범한 생활을 누린다. 그들이 매일같이 당하는 일을 참지 못한다면 일자리를 잃거나 가정이 해체될 것이다. 또한 노력하지 않으면 밥이 입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맡은 업무를 해내려면 집중력은 기본이다. 분별력이 없으면 자잘한 일상은 물론, 향후 인생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육바라밀은 이렇게 친구들의 삶속에 녹아 있었다. 모두 교회 다니는 친구들이라 육바라밀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도 없는데 그것을 부분적으로 체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육바라밀은 불교 수행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보통사람들의 생존 조건이기도 하다.

 

이 중에서 오늘은 지계(持戒)바라밀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한다. 을 중에서도 을인 내 친구들이 수행한다는 생각도 없이 바라밀을 닦는 동안에 종도를 이끄는 위치에 있는 스님들이 파계(破戒)를 너무 가볍게 한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교계 소식에 어두운 나만 최근에 듣고 충격을 받았을 뿐, 벌써 많은 불교인들이 알고 있는 터라 그 내용을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겠다.

 

부처님께서 계를 설하신 이유는 그것이 자기를 악으로부터 보호하고 남을 해치지 않는 방책이기 때문이다.『능엄경』에서는 “계를 지킬수록 자유로워진다.”고 하였다. 탐욕을 비롯한 모든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뜻이다. 자유를 위해서 스스로에게 금기조항을 설정하는 것은 불교만이 아니다. 쾌락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쾌락주의자들도 그렇게 막 살지는 않는다. 쾌락을 지속적으로 누리기 위해 어느 정도 욕구를 참고 쾌락의 양을 조절하고 누리는 시간을 지연시킴으로써 자기절제를 보여준다.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길을 불교에서는 세 가지로 이야기하는데 그 중에 첫 번째가 계(戒)이다. 도를 닦아 깨끗한 마음을 일으키면 계체(戒體)가 생겨나서 그것이 수행자가 악을 짓지 못하게 보호한다고 한다. 계체가 생기면 결계가 쳐진 셈이라 몸과 입으로 짓는 업이 자연히 방지된다. 청정한 몸을 유지하는 가운데 선정과 지혜를 닦아서 얻은 정력과 혜력으로 모든 번뇌를 없애간다. 결국은 완전한 자유에 이르게 되어 있다.

 

‘조계종 16나한의 화엄법회’에 이어 얼마 전 종회의원 선거 소식을 듣고 나니 서산 스님이 들려준 법문이 생각난다. 스님은『선가귀감』에서 “어떤 사람을 도적이라 하는가? 나의 옷을 빌려 입고 여래를 헐값에 팔아먹으면서 온갖 악업을 짓는 이들이다.”라고 하신 부처님의 말씀을 인용하고 나서 이렇게 설명한다.

 

말법의 비구에게 여러 가지 이름이 있는데, ‘박쥐중〔鳥鼠僧〕’ ‘벙어리 염소 중〔啞羊僧〕’‘까까머리 거사〔禿居士〕’ ‘지옥 찌꺼기〔地獄????〕’ ‘가사 입은 도적〔被袈裟賊〕’등이다. … 중노릇도 꺼리고 속인으로 사는 것도 꺼리는 이를 ‘박쥐중’이라 하고, 혀를 놀려 설법하지 못하는 것을 ‘벙어리 염소 중’이라 하고, 차림새는 중이면서 속마음은 속인인 사람을 ‘머리 깎은 거사’라고 하며, 죄악이 하도 무거워서 움직일 수 없는 이를 ‘지옥 찌꺼기’라 하고, 부처님을 팔아서 살아가는 이를 ‘가사 입은 도적’이라고 부른다. ‘여래를 팔아 먹는다’는 말은 인과를 믿지 않고, 죄와 복도 없다고 여겨서 몸과 입으로 짓는 업이 물끓어 오르는 듯하고, 애증을 쉴 새 없이 일으킨다는 뜻이니, 참으로 딱한 일이다. - (『선가귀감』61장)

 

신랄한 말투에 담긴 서산 스님의 통절한 심정이 전해진다. 그분이 지금의 불교계에 오셨다면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형용할 말이 없어서 애초에 입을 다무셨을지도 모른다. 놀라서 ‘이런 경험 처음이야’라고 하셨을지도….

 

충격적인 뉴스는 불자(佛子)로서의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껏 공부하는 것이 본분이라 여겨서 불교계 소식을 모르고 지내는 것이 잘하는 짓인 줄만 알고 살았다.

 

불교계는 불자들이 몸담고 사는 생태계이다. 그 세계가 무너지는데도 소식조차 몰랐고 알고 난 뒤에도 무엇부터 해야 할지 당장 떠오르는 게 없다. 부처님 어깨에 얹혀살면서 게으르고 무책임했다.

 

불자의 아들 자(子)는, 아비의 재산을 상속받을 자격이 있는 아들처럼, 부처님의 재산을 물려받을 자격이 있는 자라야 한다. 불법을 망치는 사람은 불법을 상속받을 자격이 없다. 불자도 아닌 이들이 어째서 종도를 이끄는 자리에 앉아 있나. 참으로 여래를 헐값에 팔아먹는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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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불교학을 전공하였고, 봉선사 월운 스님에게 경전을 배웠다. <선림고경총서>편집위원을 역임했고 『승만경』, 『금강경오가해설의』, 『송고백칙』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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