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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禪, 禪과 시]
인간은 울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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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택  /  2024 년 5 월 [통권 제133호]  /     /  작성일24-05-04 21:59  /   조회1,25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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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고도 교토에는 수많은 정원이 있습니다. 대부분은 료안지龍安寺나 다이토쿠지大德寺처럼 사찰의 방장 정원이거나, 가쓰라리큐桂離宮, 슈가쿠인리큐修學院離宮처럼 황실 정원입니다. 정원에 가더라도 거기 있는 모래, 돌, 이끼, 물, 나무와 마음을 터놓고 만나지 않으면 마음에 오래 남지 않습니다. 

 

사진 1. 문학의 향기 가득한 시센도.

 

니코스 카잔자키스(1883~1957)는 일본 정원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은 세상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도달한 지혜와 감수성의 최고봉이라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만일 나의 마음을 정원 모양으로 만들 수 있다면, 나는 교토의 료안지에 있는 돌의 정원이 되고 싶다.”(주1)고까지 말했습니다. 나야 뭐 그 정도는 아니지만, 교토, 특히 다이토쿠지의 방장 정원을 좋아합니다. 

 

문학의 향기, 시센도詩仙堂

 

교토 북동부에 있는 작은 절 시센도詩仙堂는 한낱 문인이 만든 정원이지만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일본의 초기 문인 중 한 명으로 이시카와 조잔(石川丈山, 1583~1672)이 있습니다. 실패한 무장이었던 그는 은퇴하여 교토에 아직도 남아 있는 시센도라는 은거지를 짓고 살았습니다. 조잔은 시센도 안에서 홀로 노니는 일 외에는 세상만사에 흥미가 없었습니다.

 

사진 2. 3월 중순, 철쭉이 피기 전 시센도 정원.

 

조잔은 쓸데없이 돌아다니지도 않았고 권력자에게 아부하지도 않았습니다. 퇴위한 고미즈노오 상황(後水尾上皇, 1596~1680)이 불렀을 때도 그는 나가지 않았습니다. 실권자인 상황의 부름을 거절한 조잔도 대단하지만 이를 대범하게 수용하고 넘어간 고미즈노오 상황도 대단하지 않나요? 두 사람은 84세, 89세까지 살았으니 당시로서는 대단히 오래 살았습니다. 문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조잔의 삶이야말로 하나의 꿈과 같은 삶입니다.

 

시센도는 집주인 사후 시센도 조잔지詩仙堂丈山寺라는 이름의 절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건물과 정원이 아름다워 세상 사람들이 동경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1986년에는 멀리 영국에서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비妃가 시센도를 찾아왔습니다. 

 

사진 3. 시센도의 아름다운 건물.

 

조잔은 1641년 히에이산 기슭에 시센도를 건립한 다음, 이곳에서 30년 동안 학문과 시작에 몰두하며 청빈한 삶을 살았습니다. 외진 산기슭에서 육물명六勿銘이라는 엄격한 생활 규칙을 만들어 놓고 살았습니다. 나무판에 새긴 육물명이 지금은 시센도에 걸려 있습니다만, 원래는 부엌에 걸려 있었습니다. 조잔은 항상 그것을 바라보면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여섯 가지 생활지침은 다름 아닌 불조심, 도둑 조심, 늦잠 금지, 편식 금지, 근검절약, 청소 철저입니다.(주2) 190cm 장신의 전직 사무라이가 아내도 없이 홀로 살아가면서 규칙적으로 생활하려고 자신을 엄격하게 다잡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문학의 향기 가득한 시센도에는 유명한 정원이 있습니다. 그 정원 앞에 앉으면 홀가분한 마음이 되어 세상을 잊고 자신마저 잊게 됩니다. 이런 아름다움은 분명 지적이고 심미적인 존재의 정신에서 나온 아름다움입니다. 시센도에서 우리는 정원을 바라보는 하나의 눈으로서 현존합니다.

 

하찮은 철학은 하찮은 행동으로 귀결되고, 고결한 철학은 고결한 행동으로 귀결됩니다. 조잔의 철학은 이런 것이었다고 합니다.

“때로 정원의 꽃을 따고 때로 거위 울음소리를 듣는다. 때로는 낙엽을 쓸고 때로는 국화를 심는다. 동쪽 언덕에 올라 달에게 노래한다. 북쪽 창에서 책을 읽고 시를 암송한다.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주3)

 

사진 4. 찰스 왕세자 부부도 걸었던 시센도 하단의 정원.

 

시센도는 퇴출된 사무라이가 스스로 모색한 문학적 삶의 방식이 응축된 곳입니다. 거기에는 기존의 사무라이 생활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발상으로 속세를 벗어난 삶의 형태를 보여줍니다. 이시카와 조잔의 꿈의 유적지 시센도에서 나는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잊고 순간에 침잠하는 경험입니다. 8세기에 지어진 선시 한 편이 생각납니다. 

 

한순간 고요히 앉아 있으면

항하사만큼의 칠보탑을 만드는 것보다 낫다

보배탑은 결국 먼지로 돌아가지만

한순간 깨끗한 마음은 깨달음을 이룬다(주4)

 

인간은 울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시센도에서 버스를 타고 긴가쿠지마치에서 내려서 긴가쿠지銀閣寺로 가기 위해 길을 건너면 바로 ‘철학의 길’이 나타납니다. 비와코에서 교토로 깔린 인공수로 변의 벚나무 길입니다. 긴가쿠지 다리에서 와카오지교(에이칸도 앞 400m)까지 약 1.6km입니다. 

 

사진 5. 긴카쿠지 입구에서 시작되는 ‘철학의 길’.

 

교토대학의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1870~1945)가 이 길을 사색하며 걸었다고 하여 ‘철학의 길’로 명명되었습니다. 길은 넓지 않지만, 벚나무 등 나무가 많아 산책하기 좋은 길입니다. 니시다 기타로는 늘 이 길을 전통복 차림에 구두를 신고 걸었습니다. 그는 교토대학에서 강의할 때도 같은 차림이었습니다.

 

니시다 기타로를 생각할 때 나는 언제나 그의 친구 스즈키 다이세쓰(1870~1966)를 떠올립니다. 두 사람은 1870년 가나자와에서 태어나 제4고등학교에서 동문수학했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두 사람은 제4고를 중퇴하고 도쿄제국대학 선과에 입학했습니다. 선과란 일종의 청강생과 같은 것으로 본과생과 비교할 때 차별 대우를 받았기에 줄곧 큰 굴욕감과 좌절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런 차별은 졸업 후에도 계속되었지만 결국 두 사람은 모두 세계적인 학자가 되었습니다.

니시다 기타로가 남긴 말 가운데 특히 다음의 말은 우리나라에도 『탄이초』를 뺀 채 널리 알려졌습니다.

 

사진 6. 어떤 삶이 최선의 삶인지를 생각하며 걷는 길.

 

“일본의 모든 것이 불타도 『임제록』과 『탄이초』만은 남았으면 좋겠다.”(주5)

두 사람의 사상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기 때문에 비슷한 데가 많습니다. 스즈키 다이세쓰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말은 시대마다 다르지만 행위적인 모순, 즉 비극은 영원히 상속된다. 인간은 울기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좋다. 또 이것을 인간의 업이라고 한다.”(주6)

 

비슷한 내용을 니시다 기타로는 철학적으로 말했습니다.

“철학의 동기는 ‘놀라움’이 아니라 삶의 깊은 비애여야 한다.”(주7)

나는 물론 니시다 기타로보다는 스즈키 다이세쓰를 좋아합니다. 다이세쓰의 책을 몇 권 더 읽기도 했지만, 그의 평이한 언어를 더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슬픔을 안다는 것은 곧 이 세상의 참된 모습을 안다는 것이 아닐까요? 8세기에 지어진 만세이滿誓의 유명한 와카는 인생의 무상함을 노래한 불후의 절창입니다.

 

이 세상을 무엇에 비유하랴, 어스름한 새벽녘

저어가는 배 뒤에 남는 하얀 물결(주8)

 

인생이 고통스럽고 슬픈 것이라는 사실은 만고의 진리입니다. 삶 그 자체는 고뇌이고 때로는 참담하고 슬픈 것이지만, 그것을 순수하게 직관하거나 예술에 의해 재현하면 고통이 줄어들면서 인생은 하나의 의미심장한 스펙터클이 됩니다.

 

빈 배에 가득 달빛만 싣고 돌아오누나

 

니시다 기타로는 41세 때 출간한 『선善의 연구』(1911)로 유명합니다. 이 책은 니시다가 가나자와 제4고등학교 교직에 있을 때 쓴 책입니다.

니시다는 인간이 ‘선한 것 혹은 올바른 것을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스스로 생각을 거듭한 끝에, 주관과 객관의 구별이 없는 경험, 즉 순수경험이라는 개념을 창출합니다. 니시다는 인간에게 있어 ‘순수경험’을 얻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선 善’이라고 주장합니다.

 

“진정한 종교는 자기의 변환, 생명의 혁신을 요구하는 것이다. … 한 점이라도 아직 자기를 믿는 마음이 있는 동안은 아직 진정한 종교심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주9)

순수경험은 자기의 얕은 지식은 모두 버리고 사실에 따라 아는 것입니다. 니시다는 또 포이에시스(Poiesis : 예술적 제작)의 세계야말로 참다운 순수경험의 세계라고 말했습니다. 대부분의 선시는 니시다 식으로 말하자면 ‘순수경험’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선시의 절창으로 사랑받는 화정덕성(8~9세기)의 게송입니다. 

 

긴 낚싯줄 아래로 드리우니

한 물결 살짝 흔들리자 만 물결이 뒤따르네

밤이 깊어 물은 찬데 고기는 물지 않으니

빈 배에 가득 달빛만 싣고 돌아오누나(주10)

 

사진 7. 벚꽃이 피기 직전 꽃봉오리가 부푸는 ‘철학의 길’.

 

덕성은 실제로 뱃사공 노릇을 하기도 했지만, 이 시는 어디까지나 마음의 정경을 노래한 것입니다. 한 물결이 살짝 흔들리자 만 물결이 뒤따른다는 일파만파一波萬波는 인간의 자기중심적 생각이 끊임없음을 비유한 것입니다. 이 시에서 낚시는 상징적 은유로서 깨달음을 의미합니다. 빈 배를 달빛 가득한 세계로 묘사한 마지막 구절은 무념無念이 곧 온전한 마음[全心]이라는 『금강경』의 깨달음을 눈부시게 표현했습니다. 시를 다 읽고 나면 알지 못할 깨달음의 경계에 읽는 사람의 마음에서 자아는 사라지고 담백하고 그윽한 풍경만 영화처럼 펼쳐집니다.

이 시는 야보도천(12세기)이 『금강경야보송』에 인용함으로써 천하가 애송하는 게송이 되었습니다.

 

내가 교토에 갔을 때는 3월 중순이라 벚꽃도 없고 단풍도 없지만 그야말로 터질 듯 부푸는 꽃봉오리의 계절입니다. 어느 시기, 어느 곳에 살더라도 사람들은 모두 꽃봉오리를 품고 살아갑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순수경험은 여전히 내 손이 닿지 않은 곳에 있다고 느낍니다. 내가 니시다 기타로의 『선의 연구』를 다 읽어낸 것은 아마도 건성으로 읽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각주>

(주1) 니코스 카잔차키스, 『일본 중국기행』, 열린책들(2008).

(주2) 六勿銘 : 勿妾丙王, 勿忘棍族, 勿斁晨興, 勿嫌糲食, 勿變儉勤, 勿媠拂拭. 

(주3) 알렉스 커, 『사라진 일본』, 글항아리(2004).

(주4) 寶誌禪師, 『通行錄』, 『가려 뽑은 송나라 선종 3부록』 2권(장경각, 2019).

(주5) 名和達宣, 「西田幾多郞と『敎行信証』」より」, 『니시다 기타로와 가르침의 증언』.

(주6) 스즈키 다이세쓰, 『선의 사상』 : 오가와 다카시, 『선사상사 강의』(예문서원, 2018)에서 재인용.

(주7) 니시다 기타로, 「場所の自己限定としての意識作用」(『西田幾多郞全集』第6卷 岩波書店).

(주8) 『万葉集』 : 世の中を 何にたとへむ 朝びらき 漕ぎいにし船の 跡なきごとし.

(주9) 니시다 기타로, 『善의 연구』(1911).

(주10) 『五燈會元』 卷五 : 千尺絲綸直下垂 一波才(纔)動萬波隨 夜靜水寒魚不食 滿船空載月明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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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택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1976년 시). 전 대구시인협회 회장. 대구대학교 사범대 겸임교수, 전 영신중학교 교장.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저서로 『보물찾기』(시와시학사, 2000), 『납작바위』(시와반시사, 2012), 『글쓰기 노트』(집현전, 2018) 등이 있다.
jtsuh@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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