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이사理事를 겸비한 현대 한국불교의 대표 학승
페이지 정보
김용태 / 2023 년 10 월 [통권 제126호] / / 작성일23-10-05 09:36 / 조회2,181회 / 댓글0건본문
근대한국의 불교학자들 34 | 가산지관
가산伽山 이지관李智冠(1932~2012)은 해인사 출신으로 현대 한국불교의 대표적 학승이다. 동국대 선학과의 교수를 지냈고 동국대 총장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역임했다. 그는 사전을 비롯한 한국불교학의 기본 자료를 집성하고 번역하는 등 연구의 토대를 만드는 데 많은 공력을 기울였다. 한국에 유통되어 온 경전 및 불서에 관한 연구, 역대 고승의 비문 역주, 조선시대 승려 비문 집성, 불교대사전의 편찬 등 그가 쌓아 올린 평생의 업적은 연구자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학승의 삶과 이판사판의 통섭
이지관은 1932년 경상도 포항의 청하면에 있는 경주 이씨 집성촌에서 태어났다. 5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10세 이후 이름 모를 병에 걸렸는데 관음진언을 외우자 완쾌되었다. 이와 함께 해인사 탁발승의 법문을 듣고 출가의 뜻을 내게 되었다고 한다. 16세 때인 1947년 합천 해인사에서 당시 최고의 율사로 꼽히던 자운慈雲스님에게 출가했으며 법호는 가산, 법명은 지관을 썼다. 이 해에 청담순호와 퇴옹성철 등이 주도한 봉암사 결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울릉도 성인봉 아래 주사굴에 들어가서 수행했고, 한국전쟁 때는 고향 근처인 포항 보경사 서운암의 용화선원에서 정진을 이어갔다.
1957년 해인사 강원을 수료한 뒤 강사의 길을 걸었는데, 1959년 표충사를 시작으로 동화사 등에서 가르쳤고, 1960년 해인사에서 29세로 최연소 강주를 맡아 강학 전통을 이어갔다. 이 시기에 이력과정 불서에 대해 강의 주석을 단 사기私記를 지었다. 사미과의 『초발심자경문사기』와 『치문경훈사기』에 이어 사집과의 『대혜서장사기』와 『법집별행록절요사기』, 『선원제전집도서사기』와 『고봉화상선요사기』를 모아 『사집사기』(1968)로 펴냈다. 사교과 관련은 『능엄경약해』, 『기신론해동소강의』, 대교과에 대해서는 『화엄현담강의』 등 여러 강의록을 남겼다.
한편 이지관은 마산대에 편입하여 종교학과에서 공부했고 1963년에 졸업했다. 1970년에는 해인사의 주지로 취임했는데 30대 후반의 나이에 최연소 본사 주지가 된 것이었다. 1975년에는 동국대 선학과의 교수가 되었고, 이듬해에 동국대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6년부터 1990년까지 동국대 총장을 지냈고, 1991년에는 사단법인 가산불교문화연구원을 설립하여 한국불교 교육과 연구, 출판사업에 공력을 기울였다. 연구원 안에는 삼학원三學院을 두어 경전과 다양한 전적을 강의했다.
이뿐 아니라 1980년대 초부터 발원한 불교사전 《가산불교대사림》 편찬을 착수하여 1998년부터 2011년까지 1차로 12권을 발간했으며, 총 22권 완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티베트어 어휘까지 반영하고 기존의 불교사전에 비해 한국불교 관련 항목을 대거 추가하여 15만 항목의 방대한 분량으로 기획되었다. 대사림 간행사에서는 2,600년의 불교 역사와 1,700년 한국불교사의 의미를 강조하고 불교 및 한국학 연구의 토대가 되는 대백과사전 편찬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큰 의미를 부여했다.
“불교 교리는 방대한 체계로 이루어졌고 그 안에는 긴 역사만큼이나 오래되고 다양한 술어와 현상의 참된 모습이 담겨 있어, 이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어휘 채록과 연구작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근대의 작업으로는 일본의 『망월불교대사전』이 가장 방대한 사전으로 평가되고, 우리말 사전은 1961년에 간략한 내용으로 간행된 운허의 『불교사전』이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삼학을 연찬하는 승가의 후학들과 한국학 및 불교학 연구자들에게 불교 술어를 정리하는 일이 더없이 필요한 일이라 생각했다. 불교대사전 편찬이 불교 연구와 그 문화의 저변을 확대하는 불교중흥의 근간임을 자각하고 사전 편찬의 원력을 다졌다.”
이지관은 1993년부터 1996년까지 해인사 주지를 다시 맡았다. 2005년에는 조계종의 총무원장으로 선출되어 2009년까지 재임했는데, 종조인 도의선사를 선양하고 대중결계와 포살을 시행하는 등 수행 종풍을 진작시키고자 했다. 또 이명박 정부의 종교 편향 정책에 반발하여 불교 자주권 수호를 위한 범불교대회를 열기도 했다. 이후 2012년 1월 2일 서울 경국사에서 세수 80세를 넘기고 입적했다.
그는 한국불교 연구의 기반 구축에 필요한 기초 저작을 남겼는데, 『한국불교 소의경전 연구』(1969), 『교감역주 역대 고승 비문』, 『가야산 해인사지』 등을 먼저 손꼽을 수 있다. 이뿐 아니라 『선종약사』(1964), 선과 교의 두 흐름을 정리한 『불교 교단 발달사』(1977), 한국 조계종의 역사를 기술한 『조계종사』(1979), 한국불교의 계율을 다룬 『한국불교 계율전통』도 있다. 이들 저술은 한국불교의 역사적 특질을 찾고 그 정체성을 모색하는 데 필요한 연구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국불교학의 기반 조성: 비문 집성과 역주, 교학 및 계율 연구
이지관은 『한국불교 소의경전 연구』(1969)의 서문에서 한국불교의 법맥 계승은 격외의 선종이지만 조선 후기 전통 강원에서 배웠던 사미과, 사집과, 사교과, 대교과의 이력과정이 중요하며 따라서 그 교재에 대해 고찰해야 함을 강조했다. 여기에 선종과 계율, 정토 관련 책들을 더하여 펴냈다고 밝히고 있다. 총 21개 장으로 구성되었는데 한국불교에서 중시된 경전과 불서에 대한 구체적 해설서로서 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간행 판본 등을 다루고 있다. 서책별 기술 형식은 해제에서 개요를 적은 뒤 내용, 판본과 유통 및 주석서 등을 기록하고 있다. 경전의 경우에는 한역본의 종류, 과문, 중국과 일본 등의 주석서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
계율과 관련한 저술로는 『남북전 6부 율장 비교연구』(1976), 『비구니계율 연구』(1977), 『한국불교 계율전통』(2006) 등이 있다. 이 중 『한국불교 계율전통』은 경전과 율장의 계율상의 특징, 대승보살계와 선종의 청규, 사서 및 고승전에 나오는 계맥, 한국 근대 16개 계단의 호계 첩문 등 다양한 내용이 실려 있다.
그는 다중적이고 자주적인 계법 전승을 한국불교 계율의 결론으로 보았고, 사분율과 대승계가 동시에 계승되어 출가자는 물론 재가자에게도 열려 있는 점을 특징으로 들었다. 《법보신문》(2011.5)과의 인터뷰에서는 “한국불교는 선과 교의 전승과 계율전통에서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독특하고 힘 있는 역사와 전통을 이어왔습니다. 율장과 청규 등 불교 교단의 역사를 살펴보면 승가의 대중 공화 전통은 독특하고 자랑할 만한 유산이며 한국불교는 그것을 가장 잘 보전·전승해 왔습니다.”라고 하여 한국의 계율 전통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돌이나 쇠에 새긴 금석문은 당대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생생한 자료이다. 이지관은 이러한 금석문의 가치에 일찍부터 주목하여 역대 고승들의 비문에 역주를 붙여 엮은 『교감역주 한국역대 고승비문』을 펴냈다. 1992년부터 1999년까지 신라 편 1권, 고려 편 4권, 조선 편 1권의 총 6권이 간행되었다. 그는 인물의 행적과 사상, 시대 배경이 담긴 비문이 대개 문장이 난해하여 고승들의 고고하면서도 찬연한 교화의 자취에 쉽게 접근하기 어려우므로 이를 한글로 풀어냈다고 밝히고 있다. 이어 조선 시대 고승 비문과 근현대 자료의 원문을 모아 수록한 『한국고승비문총집: 조선조·근현대편』(2000)을 출간했다. 여기에는 모두 330여 편의 고승 비문이 수록되었는데, 그중 1910년 이전에 입적한 고승의 비문은 약 2/3에 해당하는 207편이다.
이뿐 아니라 사찰의 역사를 담은 종합 자료집인 사지에도 관심을 기울였는데 『가야산 해인사지』(1992)는 28편, 1,25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해인사의 연혁, 전각, 대장경판, 인경 발문, 사간장寺刊藏 경판 목록, 조선왕조실록 관계 기록, 해인사 고기록, 암자, 석불 석탑 부도 석등 비석, 불화와 영정, 기행문과 유적, 해인사의 고승과 주지, 해인사 본말사법, 강원 자료, 보물과 유물, 토지와 재산목록, 편액과 주련 등 다채롭게 구성되어 있다.
이지관은 전통 강학과 근대적 학문을 동시에 체득한 이였고 한문 원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근대 불교학의 연구방법론을 적용하여 많은 성과를 냈다. 한국불교 연구자로서 그는 승가 교육과 교학, 선과 정토 등에 대한 논문을 주로 썼다. 교육 관련은 「승가 교육의 오늘과 내일」(1973), 「한국불교 승가교육의 사적 고찰」(1980), 교학에 대해서는 「금강경 주해 및 사기에 대한 고찰」(1974), 「연담 및 인악의 사기와 그의 선교관」(1975), 「의상의 화엄일승법계도」(1979)가 있다. 또 「지눌의 정혜결사와 그 계승」(1984), 「저서를 통해 본 조선조의 정토사상」(1985) 등을 발표했다. 이 중 「연담 및 인악의 사기와 그의 선교관」은 18세기 호남과 영남 강학의 대표자인 연담유일과 인악의첨이 이력과정 교재에 대해 쓴 사기를 검토하여 당시 선과 교의 이해 경향을 살펴본 선구적 연구로 의미가 있다.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많이 본 뉴스
-
‘옛거울古鏡’, 본래면목 그대로
유난히 더웠던 여름도 지나가고 불면석佛面石 옆 단풍나무 잎새도 어느새 불그스레 물이 들어가는 계절입니다. 선선해진 바람을 맞으며 포행을 마치고 들어오니 책상 위에 2024년 10월호 『고경』(통권 …
원택스님 /
-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물병 속에 있다네
어렸을 때는 밤에 화장실 가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그 시절에 화장실은 집 안에서 가장 구석진 곳에 있었거든요. 무덤 옆으로 지나갈 때는 대낮이라도 무서웠습니다. 산속에 있는 무덤 옆으로야 좀체 지나…
서종택 /
-
한마음이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없다
둘은 하나로 말미암아 있음이니 하나마저도 지키지 말라.二由一有 一亦莫守 흔히들 둘은 버리고 하나를 취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두 가지 변견은 하나 때문에 나며 둘은 하나를 전…
성철스님 /
-
구루 린뽀체를 따라서 삼예사원으로
공땅라모를 넘어 설역고원雪域高原 강짼으로 현재 네팔과 티베트 땅을 가르는 고개 중에 ‘공땅라모(Gongtang Lamo, 孔唐拉姆)’라는 아주 높은 고개가 있다. ‘공땅’은 지명이니 ‘공땅…
김규현 /
-
법등을 활용하여 자등을 밝힌다
1. 『대승기신론』의 네 가지 믿음 [질문]스님, 제가 얼마 전 어느 스님의 법문을 녹취한 글을 읽다가 궁금한 점이 생겨 이렇게 여쭙니다. 그 스님께서 법문하신 내용 중에 일심一心, 이문二…
일행스님 /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