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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기도]
괜찮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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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 필자  /  1996 년 6 월 [통권 제2호]  /     /  작성일20-05-06 08:32  /   조회6,689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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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반야행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 내 나이 40대 중반에 중병에 걸려 생사의 갈림길에서 허둥지둥하고 있을 때, 성전암으로 성철 큰스님을 친견하러 간다는 말을 듣고 귀가 번쩍 뜨였다. 고인이 되신 친정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6․25사변 직후 성철 큰스님께서 마산 성주사(聖住寺)에 와 계셨는데, 도를 통하신 큰스님이 와 계신다고 소문이 나서 큰스님을 친견하기 위해 진주 신도들이 많이 다녔다. 그때 친정 어머니께서도 그 분들과 동행을 했는데, 신심 깊은 어머니께서 삼천 배를 처음 하고 오셔서는 입술이 다 불어터지고도 어찌나 자랑스러워하셨는지 모른다. 그래서 큰스님 친견도 하고 건강도 회복하리라는 믿음으로 큰스님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났다. 그때 거기서 ‘대혜심(大慧心)‘ 보살을 만나게 되었다. 큰스님께 삼배를 올려야 된다는 충고를 해주셨고, 그때부터 오늘까지 스님네들에게는 부처님과 똑같이 삼배를 올리고 존경해야 된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세월이 갈수록 큰스님 생각이 간절하기만 하다. 그때 “삼천냥을 내어놓겠느냐”는 큰스님의 첫마디에 어리둥절해서 대답을 못하고 있으니 웃으시면서 절을 삼천배 해야 된다고 하셨다. “예, 하겠습니다” 했는데, 같이 간 한 보살이 별나게 뚱뚱하여 이 보살 때문에 할 수 없이 이천배를 하라고 하셨다. 그래도 죽을 힘을 다해 절을 마치고 나서 앉지도 서지도 못했던 추억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화두를 받았는데, ‘삼세근’의 화두는 사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결을 못하고 있으니 큰스님께 죄송할 뿐이다. 이제 남은 짧은 여생이나마 열심히 해보자 다짐하고 노력하건만 여전히 답답할 뿐이다.

 

그런데 그때 성전암에서 기도 중에 어떤 보살이 큰스님 말씀대로 안하고 미련하게 말대꾸를 하다가 쫓겨났다. 그렇게 노발대발하시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쫓겨나서 마당에 보따리를 옆에 놓고 빌었으나 스님의 화는 풀어지지 않고 그 보살은 절을 떠났다. 한 보살이 나를 보고 당신이 그 보살과 친하니 데리고 와서 스님께 참회를 시키라고 해서 가파른 산길을 뛰어 내려가 그 보살을 찾아 사정을 하였다. 기도하는 대중들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그냥 가면 어떻게 하느냐, 스님께 참회하고 스님의 화를 풀고 가야 한다고 사정을 하였다. 그 보살을 데리고 절로 올라오니 대중들은 그때까지도 마당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스님의 눈에서는 불이 번쩍 일었고 눈은 얼마나 더 커 보이던지……. 그 보살이 “중생이 잘 몰라서 저지른 일이니 용서해 주십시오” 하니 스님께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래” 하시면서 방으로 들어가셨다.

하루는 아무도 없는 방에 홀로 계시면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알고 보니 산비둘기가 스님 공양 드시는 데 날아와서 스님 어깨와 무릎에 앉아서 같이 놀며 스님이 “구구야 콩 먹어라” 하니 비둘기는 신나게 콩을 주워 먹고 있었던 것이다.

 

또 어느 보살이 딸을 데리고 왔는데, 목에 값 비싼 비취 목걸이를 걸고 있었다. 스님께서는 그 목걸이를 좀 보자 하시더니 목걸이를 받아 보시고는 방바닥에 내려놓으셨다. 마침 비둘기가 그 목걸이를 물고 날아가 버렸다. 그 날 늦도록 목걸이를 찾아 온산을 헤매었으나 결국 찾지 못하고 말았다.

 

어느 날 폐결핵에 걸려 다 죽게 된 어느 스님이 마지막으로 큰스님을 한 번 보고 죽으려고 왔다고 하니, 큰스님께서는 “죽기는 왜 죽어. 이왕 죽으려면 삼천배나 하고 죽어라”고 하셨다. 그 스님은 결국 삼천배를 다 하고 갔는데, 그 후 완쾌되어 절 생활을 잘하고 계신다고 한다.

 

스님께서는 기도하는 중간에는 쉬는 시간이라도 전혀 잡담을 못 하도록 하셨고, 항상 기도하는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어느 날 기도대중이 피곤해 하는 것을 보시고는 이야기를 하나 해주셨다.

“6․25사변 때 고성 문수암에서 청담스님과 함께 지내고 있는데, 하루는 어떤 보살이 더운 날씨에 땀을 흘리며 절에 올라왔어. 그 보살이 하는 말이, 자기는 진주 묵실에 사는 사람인데, 큰스님을 만나면 소원을 성취시켜 준다기에 나를 만나러 왔다는 것이야. 그 보살에게는 외동아들이 있는데, 이번 사변에 붙잡혀 나가 3개월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고, 들리는 말에 의하면 아들이 나가 싸우는 곳에 같이 있던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고 한대.

 

그 보살은 제발 스님께서 내 아들 좀 살려달라고 하면서 방바닥에 엎드려 대성통곡을 해. 그래 내 어찌 전쟁에 나간 당신 아들을 살려낼 수 있겠느냐고 하니 주머니에서 돈 이십만원을 꺼내 놓고는, ‘논밭을 전부 팔아 모은 돈입니다. 이 돈으로 기도를 해서 내 아들 좀 살려 주십시오’ 하고는 울며불며 사정을 하거든. 그래 당신 아들이 이십만원짜리냐고 묻고는, 그 보살이 너무 딱해 보이길래, 내가 시키는 대로 어떤 일이든지 하겠냐고 물으니 자기 아들만 살아온다면 무슨 짓이든 하겠다고 해. 그럼 이 돈을 가지고 끼니가 없어 굶주리는 저 산 밑 마을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에게 돈을 고루 나누어주고 집으로 돌아가서는 정성껏 쌀 몇 되를 사서 아홉 번 찧고 손질하여 절대로 땅바닥에 놓지 말고 가져와서 부처님께 올려야 한다고 했지.

 

그로부터 며칠 후, 그 보살이 산 밑에서 기진맥진해서 올라오거든. 절에서 일 보는 영감이 그 보살이 측은하다고 여겼던지 절 대문을 들어서는데 보따리를 들어 주려고 해. 그래서 이놈이 남의 기도 망친다고 막대기로 후려갈기니까 ‘아이고, 제가 미처 몰랐습니다’ 하고는 도망치더군. 그 보살에게 가져온 쌀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법당과 절 마당을 깨끗이 청소한 후 목욕하고 그 쌀로 공양을 지어 부처님께 올리고 절을 삼천배하라고 했지. 내가 시키는 대로 절을 하던 보살이 새벽 3시경에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스님 스님’ 하고 부르길래 나가보니 땅바닥에 다리를 쭉 뻗고 앉아서는 ‘이천배까지는 했는데 이제 죽으면 죽었지 더 이상은 못하겠습니다’ 하거든. ‘그럼, 할 수 없이 아들은 살지 못하겠네. 만약 산길을 가다가 호랑이를 만났는데, 호랑이 바로 뒤에 잃어버린 아들이 있어. 호랑이가 보살에게 네 다리를 하나 주겠느냐, 아니면 뒤에 있는 네 아들을 주겠느냐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 하고 물으니 ‘제 다리를 내놓아야지요. 스님, 계속 절을 하겠습니다’ 하고는 다시 법당으로 가. 기다시피하여 절을 다 끝내고 와서는 ‘스님, 절을 다 마쳤습니다’ 하길래 죽을 끓여 놓았으니 먹고 뒷방에 가서 푹 자라고 했지.

 

한나절 쯤 되었나 그 보살이 와서는 내려가겠다고 하길래 ‘더 쉬지 않고 왜 벌써 내려가는냐’ 물으니, 꿈에 아들이 집에 왔다는 게야. 그러고 절을 내려간 지 십여 일이 지나서 그 보살이 아들을 앞세우고 나를 찾아왔어. 절에서 내려와 집에 도착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꿈에 본 아들이 집에 와 있더라는 거야. 그 아들 말이 백마고지에서 싸움을 하다가 몰살을 당해 산더미 같은 송장 밑에 깔려 죽어가고 있는데, 어디서 누군가가 자꾸 자기 이름을 부르길래 무의식중에 없는 힘을 다해 몸부림을 쳤더니 하늘이 보이고 숨을 쉴 수가 있게 되었대. 정신을 가다듬고 피투성이가 된 채로 산을 내려오니 강물이 흐르고 있어. 그 강을 건너가니 어떤 영감이 마치 기다리고 있기나 한 것처럼 자기를 맞아서는 오두막으로 데리고 가서 몸을 깨끗이 씻기고 군복을 벗기고 자기 옷을 주어서 무사히 살아 돌아왔다고 해.”

우리 기도 대중은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는 다리 아픔도 잊고 힘을 내어 삼천배를 무사히 마쳤다. 그러고는 더욱 큰 신심을 갖게 되었다.

 

어느 해 백련암으로 기도를 가기 위해 일행이 대구역에 내려 버스를 타려고 했다. 그런데 좀 젊은 보살들이 노보살님들을 편하게 모신다고 택시를 불러 태워줬다. 나는 운전석 옆자리에 앉아서 능엄주를 열심히 외우고 있었는데, 어째 해인사 가는 길이 이상해서 기사에게 물으니 길을 잘못 들어 두 시간이나 헤맸다고 했다. 다시 해인사 가는 길을 찾아 가는데, 해인사 다 와서 마지막 왼쪽에 높은 언덕이 있는 길에 오니 길 한복판에 큰 돌이 놓여 있어 갈 수가 없다고 했다. 기사가 돌을 치우려고 내려서자마자 차가 저절로 움직이면서 높은 언덕 밑으로 미끄러지다가 어딘가에 걸려 덜덜덜 엔진소리만 내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 차에서 빠져나와 보니 차가 언덕으로 떨어지다가 나무에 걸렸던 것이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무사히 백련암에 올라오니 큰스님께서 웬일인지 문 앞에 나와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계시다가 “괜찮나?” 묻고는 우리 일행을 둘러보시고는 방으로 들어가셨다. 아마도 큰스님은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셨던 모양이다.

 

이제 스님은 가셨으나, 스님께서 베푸신 무언유언의 가르침은 큰 강물이 되어 한없는 중생을 제도하고 계신다. 우리 큰스님께서 비춰주시는 엄격하면서도 올올이 스며있는 자비광명을 세세생생 받들며 따르리라. 행복합니다.

옴 아비라 훔캄 스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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