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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톺아보는 불상의 미학]
말법시대 참회법과 석경장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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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련  /  2024 년 4 월 [통권 제132호]  /     /  작성일24-04-05 10:45  /   조회93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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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대성불경』에서 말하길, 미래세에 이르러 수행자가 미륵에게 귀의하고자 한다면 먼저 과거칠불에게 예배하고 공양하여 과거업장이 소멸되고 수계를 받아야 한다. 신라시대부터 일반 대중은 연등회와 팔관회에 참여하여 참회의식을 행하였다. 필자는 이러한 참회의식이 불법의 실천수행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말법시기의 실천수행이라고 생각한다. 

『대방등대집경』 「월장분月藏分 염부제품」 경전에 의하면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다.

 

“부처님께서 월장보살에게 말하였다. 첫째 내가 멸한 후 5백 년 동안은 모든 비구가 모두 나의 법 가운데서 해탈하고 신심이 견고할 것이고, 둘째 다음 5백 년 동안은 나의 정법이 선정삼매에서 견고할 것이고, 셋째 다음 5백 년은 정법을 수지 독송하매 견고할 것이며, 넷째 다음 5백 년은 나의 정법은 조탑사원造塔寺院으로 견고할 것이며, 다섯째 마지막 5백 년 동안은 나의 정법이 투쟁견고鬪諍堅固·백법은몰百法隱沒의 법난法難을 겪을 것이라고 하였다. 최후의 5백 년은 비법이 치성하고 파계 위주의 승가가 정법을 은몰할 것이다.”(주1)

 

사진 1. 윈강 11굴 동벽.

 

그렇다면 수행자들은 참회의식 외에 말법시대를 대비하여 무엇을 하였을까?(사진 1) 이번 호에서는 말법시대 중생을 교화하고 제도하는 방편을 제시한 삼계교와 점찰법회를 살펴보고자 한다.

 

삼계교와 점찰법회

 

화랑에게 세속오계의 가르침을 준 원광(542∼640) 법사는 수(581∼619)에 유학하고 삼계교(보법종)의 신행(540∼594)이 활동했던 시기에 중국에 머물렀다. 신행은 589년 수문제(재위 581∼604)의 부름을 받고 장안으로 와서 진적사眞寂寺(화도사) 삼계원三階院에 머무르며 저술과 포교활동을 하였다.

 

『속고승전』에 의하면 신행은 당시 불법의 가르침을 장약파병將藥破病이라 하였다. 석가모니가 열반에 드신 지 오래되었고 중생의 근기가 이전과 같지 않으므로 때에 따라 옛날에 해석된 이치를 그와 다르게 번역하고 대조하였다. 즉 환자의 병세에 따라 적절한 약을 처방해야 하는 것처럼 수행자들이 아직 성문 단계에 이르지 못하였지만 보살도를 실천하며 드높였다.

 

신행은 모든 수행자들을 공양하며 직접 노역에 종사하였다. 그의 명성을 들은 자들은 그를 따랐으며, 다른 사원들도 신행이 행한 6시예참六時禮懺과 걸식을 업으로 삼았다. 육시예참은 『불설관보현보살행법경』에 의하면 하루를 오전, 정오, 오후, 저녁, 한밤, 새벽으로 나눠 하루 여섯 번 시방의 부처님께 예배하고 대승경전을 독송하고 선정수행을 하면 백만억아승지겁의 죄가 제거되는 수행을 말한다.

 

또한 신행은 무진장행을 중시하여 보시 활동을 강조하였다. 그는 『화엄경』의 무진장법과 무진장행을 적절하게 실생활에서 실천하였다. 이는 악업을 제거하고 선업의 공덕으로 성불할 수 있는 실천수행이며 현재의 사회구제사업과 그 뜻을 같이한다.

 

신라승 원광법사는 600년 신라로 귀국하여 가서갑에 점찰보를 두고 점찰법회를 처음 개최하였다. 『점찰선악업보경』을 보면 부처님이 기사굴산에 있을 때 견정신보살이 묻는다. 부처님이 열반에 들고 상법시대를 지나 말법시대가 오면 중생들을 어찌 불법으로 이끌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이 지장보살에게 설법하라고 하자, “말세에 장애障碍를 없애려고 하는 자는 목륜상법木輪相法으로 지난 세상의 선악업과 현세의 고락苦樂·길흉吉凶을 점찰하여야 한다.”(주2)라고 하였다.

 

점찰법의 소의경전 『점찰선악업보경』은 중국에서 대략 580년에 유포되기 시작하여 593년까지 유행하였다. 이 경전은 상하 두 권으로 구성되어, 상권은 점찰하는 방법을 기록하였고 하권은 대승을 구하는 방편으로 여래장사상을 중심교리로 삼고 있다. 원광은 『여래장경사기』 3권과 『대방등여래장경소』 1권을 저술하였다. 여래장사상은 중생이 본래 여래가 될 수 있는 불성佛性을 갖추고 있다는 대승사상이다.

 

따라서 원광법사는 중국의 점찰법회를 인지하고 귀국하여 신라에서 실천하였고, 가난한 중생을 구제하고 보살도를 중시하는 삼계교 사상을 접목시켰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그는 점찰법회에서 과거의 선악업과 길흉을 점치고 중생의 죄업을 소멸하고자 하였다. 점찰법회를 베푸는 데 필요한 비용은 점찰보를 설치하여 마련하였다. 이는 진평왕 때 활동한 비구니 지혜智惠가 선도산仙桃山 안흥사 점찰법회에서 삼계교의 53불과 산신의 예배를 강조하며 불전을 수리한 행적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점찰법회와 삼계교는 말법시대의 제3계 중생을 대상으로 삼은 실천종교였으며 대중들의 호응도가 높았지만 중국에서 점찰법회는 593년, 삼계교는 600년에 금지되었다.

하지만 통일신라 경덕왕 때 진표는 대구 동화사에서 미륵보살로부터 간자簡子를 받아 점찰법회에서 사용하였다. 이는 신라의 점찰법회가 지장보살신앙뿐만 아니라 미륵신앙과 연관되며 수행자들이 계법을 실천하여 참회불교를 확립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말법사상과 석경

 

그렇다면, 남악혜사(514∼577) 이전의 말법사상은 어떻게 인지되었을까? 혜사는 말법이 434년에 시작했으며, 북위 태무제(재위 423∼452) 시기라고 여기고 있다. 태무제는 439년 화북지역을 통일한 군주이며 446년에 폐불을 단행하였다.

윈강 11굴 동벽 상층에 있는 태화 7년(483) 명문을 보자(사진 2). 비문은 가로 78cm 높이 37cm이고, 24행 342자이다. 비문 상단에 대세지보살, 관음보살, 문수보살이 자리한다. 비문 좌우에 합장하고 서 있는 신도와 부녀자는 총 54인이다. 

 

사진 2. 윈강 11굴 동벽 상층 태화 7년(483) 명문.

 

이들은 선비족 두건과 왼쪽여밈 복식을 하고 있다. 비문에 의하면 현재 그들은 말법[生在末代] 시대에 있다고 하였다. 북위 수도 핑청(平城, 현재 다퉁大同) 신도들이 95구의 석불을 조성하여 북위가 흥하고 기원하는 모든 이들이 다스리는 자가 되고 영원히 고통과 이별하기를 원한다. 중생들은 선지식을 배우고 행하여 영생을 누리길 원한다.

 

이와 같은 태화 7년(483) 명문은 남악대사 혜사가 말한 말법시대 434년부터 약 50년이 지난 후이며, 당시 폐불을 경험한 북위 상류층이 이를 참회하기 위하여 95구의 석불을 조성하고 있다.

 

그로부터 100년 후 수(581∼618) 승려 정완(?∼639)은 말법을 대비하여 방산석경을 제작하였다. 현재 중국 북경에서 남서쪽으로 7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석경산과 운거사에서 그가 남긴 석경을 볼 수 있다. 그는 석경산에 있는 9기의 석굴 중 7기를 개착하였고, 그의 석경 사업은 수양제(재위 605∼617)의 황후 소蕭씨 후원을 받았다. 그가 『대방광불화엄경』 석경을 제작하고 남긴 제기(사진 3)를 보면, 첫째, 미래세의 중생을 위해 제작하였다. 둘째, 불교가 소멸할 것을 걱정하고 중생을 제도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 안타까워 석경을 제작하였다. 셋째, 석경은 영원히 보존되어 중생의 등불이 되고, 미래세에 불법이 재난을 당할 때 다시 부흥시킬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다. 넷째, 불경이 존재하는 한 이 석경동굴이 개방 되지 않기를 바란다.

 

사진 3. 정관 2년 정완제기.

 

정완은 정관 13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석경사업은 요·원·명대까지 계속 되었다. 특히 원나라 말기 고려 승려 혜월惠月이 석경산에 경의를 표하러 갔다가 뇌음동雷音洞의 석경을 경험한 일화가 있다. 과연 혜월은 말법시대를 인지하였을까? 방산석경은 정완부터 1093년까지 거의 5000점의 석경이 완성되었고, 1957년 발굴 당시 모두 10,082장 석판이 발견되고있다.(사진 4) 

이는 현재까지 중국 석경사를 관찰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석경산 9기 석굴중 제 5동 뇌음동을 보자.(사진 5) 사다리꼴 모양의 내부 벽면은 『화엄경』을 포함한 19불경 석경(주3)으로 장식되었고, 네 벽은 각각 10.07m, 7.66m, 11.82m, 8.3m이다. 내부를 지탱하는 네 개 팔각기둥에는 이불좌상이 기둥면에 새겨져 있다. 사진 5를 보면 네 개의 기둥 가운데 불단이 설치되어 있으나 개착 당시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완은 수 대업 12년(616년)에 뇌음동 중앙에 홈을 파고 불사리 3과를 안치하고 영겁 동안 보존되기를 기원하였다.(隋大業十二年 歲次丙子四月丁已朔八日甲子於此函內安置 佛舍利三粒願住持永劫.)

그렇다면 정완이 뇌음동 벽면을 석경판으로 장식한 이유는 무엇일까? 『점찰선악업보경』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사진 4. 방산석경판.

 

“선남자여, 참회의 법을 닦고자 하는 사람은 마땅히 고요한 곳에 머물러 힘의 능력에 따라 방 하나를 장엄하게 꾸미고 그 안에 부처님을 모시고 경전을 놓아두고 비단으로 만든 번기와 일산을 걸어 두며 향과 꽃을 구하고 모아서 공양해야 한다.”(주4)

 

필자는 『점찰경』에서 언급한 “일실一室을 경전으로 장엄한 곳[莊嚴一室]”인 뇌음동에서 수행자들이 참회의 법을 닦고자 했을 것이라 추측한다. 

 

사진 5. 석경산 뇌음동 실내.

 

우리나라의 석경

 

다음은 우리나라 석경을 살펴보자. 경주 칠불암에서 발견된 금강석경과 경주 창림사지의 법화석경 그리고 화엄사 장륙전(각황전)의 불감벽면을 장식한 화엄석경(사진 6)이 있다. 최근에 영국사지에서 법화석경이 발견되었다.

경주 남산 서북쪽의 창림사지 법화석경은 사지 주변에서 1966년부터 발견되었다. 석경은 8∼9세기 제작으로 30자×42행을 새겨 약 1,260자이다. 150cm×100cm 크기이며 약 20판의 석경편이 수습되었다.

 

사진 6. 화엄사 석경편.

 

화엄사 석경은 8세기에 제작했으며 현재 14,000여 석경편이 수습되어 남아 있다. 석판은 가로 65cm×세로 52cm 크기이다. 석판 1매에 28자×32행을 새겨 890자를 서각했다. 현재의 각황전은 창건 당시 장륙전이었으며, 1702년 숙종 28년에 다시 짓고 각황전 현판을 내린 것이다. 「봉성지鳳城誌」에 화엄사 화엄석경이 언급되었고 장륙전 내부에 화엄석경을 두른 불감형식의 공간이 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이와 같은 우리나라 석경편들은 석경산 뇌음동 석경판보다 약 100년 후에 제작된 것이지만, 동아시아 불교문화의 법보신앙이 공유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각주> 

(주1) T13/397/363a25-b8.

(주2) T17/839/902/b16.

(주3) 뇌음동 내부 벽면은 우측벽부터 19종의 경전을 새긴 석판으로 장식되었다.

 1. 鳩摩羅什 譯, 『妙法蓮華經』(T262/9/1a-62a).

 2. 菩提流支 譯, 『無量壽經』 「優婆提舍願生偈」(T1524/26/230c-231b).

 3. 曇無讖 譯, 『菩薩地持經』 「菩薩地持戒品受菩薩誡法」(T1581/30/912b-913a).

 4. 失譯, 『現在賢劫千佛名經』(T447/14/376a-383a).

 5. 鳩摩羅什 譯, 『大智度論』 「八戒齋法」(T1509/25/159b-160a).

 6. 鳩摩羅什 譯, 『十住毗婆沙論』 「十方佛」(T1521/26/41b).

 7. 竺法護 譯, 『決定毗尼經』 「三十五佛名並懺悔」(T325/12/38c).

 8. 鳩摩羅什 譯, 『佛臨涅槃略說敎誡經』(T389/12/1110c-1112b).

 9. 『大王觀世音經』.

 10. 曇摩伽陀耶舍 譯, 『無量義經』 「無量義經偈」(T276/9/384c).

 11. 曇無讖 譯, 『大般涅槃經』 「大般涅槃經偈」(T375/12/409a).

 12. 曇摩伽陀耶舍 譯, 『無量義經』(T276/9/384a-389b).

 13. 沮渠京聲 譯, 『觀彌勒菩薩上生兜率陀天經』(T452/14/418b-420b).

 14. 安世高 譯, 『佛說溫室洗浴衆僧經』(T701/16/802c803c).

 15. 菩提流支 譯, 『金剛般若波羅密經』(T236/8/752c-757a).

 16. 僵良耶舍 譯, 『佛說觀藥王藥上二菩薩經』 「五十三佛名」(T1161/20/663c).

 17. 求那跋陀羅 譯, 『勝鬘師子孔一乘大方便方廣經』(T353/12/217a-223b).

 18. 鳩摩羅什 譯, 『維摩詰所說經』(T475/14/537a-557b).

 19. 佛馱跋陀羅 譯, 『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菩薩百四十願」(T278/9/ 430c-432c).

(주4) T17/839/903c16: 善男子!欲修懺悔法者,當住靜處,隨力所能,莊嚴一室.內置佛事及安經法,懸繒幡蓋,求集香華,以修供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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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혜련
Prof. Heyryun Koh.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학교박물관에서 발굴한 도자기 등 유물을 분류하고 사진작업을 하다가 독일유학을 갔다. 독일에서 장학금을 받고 석사논문 자료수집을 하며 항주대학(현 절강대학) 대학원과정을 수료하였다. 함부르크대학에서 예술사학 석사학위를 받고,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예술사학과 중국학 복수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후 뮌헨대학(LMU) 중국학과에서 조교수로 재직하였으며, 2007년 한국에 귀국하였다. 2017년 5월 하이델베르크대학 연구년으로 나가기 전까지 부산대와 단국대학교에 재직하였다. 현재 뷔르츠부르크대학 동아시아학과 한국학 교수(국제교류재단 파견교수)로 재직 중이다.
herionko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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