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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 스님의 화두 참선 이야기]
중도와 팔정도 그리고 정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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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승  /  2014 년 6 월 [통권 제14호]  /     /  작성일20-05-29 14:30  /   조회5,197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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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는 팔정도다

 

부처님이 깨달아 생로병사를 해탈한 중도란 무엇일까요? 초기경전인 『율장』과 『초전법륜경』, 『중아함경』등 여러 경전에서 부처님은 당신이 중도를 깨달았고, 그 중도는 곧 팔정도라고 일관되게 말씀하십니다.

 

특히, 초기 팔리어 경전인 「법의 상속자 경」에서 부처님의 제자 사리불은 중도를 이렇게 말합니다.

 

“도반이여, 여기 탐욕도 나쁘고, 성냄도 나쁩니다. 탐욕도 버리고 성냄도 버리기 위해 중도(中道)가 있습니다. 그것은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열반으로 인도합니다. 도반들이여, 그럼 무엇이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열반으로 인도하는 중도입니까?

그것은 바로 이 성스러운 팔정도(八正道)이니, 즉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입니다. 도반들이여, 이것이 중도이니, 그것은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열반으로 인도합니다.”

-『맛지마니까야』, 초기불전연구원, 200~201쪽

 

중도는 탐욕과 화를 버리고 지혜로운 안목을 만듭니다. 최상의 지혜로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중도(中道)란 무엇일까요? 부처님 제자 중 지혜제일 사리불 존자는 경전에서 부처님과 똑같이 중도가 곧 팔정도라 합니다.

 

팔정도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중도인 팔정도(八正道)란 무엇일까요? 팔정도는 말 그대로 ‘여덟 가지 바른 길’입니다.

 

팔정도는 먼저 정견(正見)으로 시작합니다. 정견이란, 바른 견해, 바른 안목입니다. 즉, 바른 세계관과 가치관입니다. 불교의 바른 세계관은 우주 만물이 모두 서로 서로 의지하여 존재한다는 연기법을 말하며, 바른 가치관은 중도의 눈으로 쾌락과 고행의 양변을 떠나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 지혜(智慧)를 말합니다. 곧 중도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정견이고 지혜입니다. 팔정도가 다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맨 앞에 나오는 정견입니다. 정견이서야 뒤에 일곱 가지가 됩니다. 정견이 서지 않으면 나머지가 모두 되지 않아 어리석음과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어떤 불교 수행을 하더라도 특히, 화두 참선을 바르게 하려면 이 정견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은 나중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정견이 서면, 바른 사유〔正思惟〕를 하게 됩니다. 바른 사유는 양변을 떠난 지혜의 사유를 말합니다. 욕망과 어리석음, 화를 떠나 비움과 지혜, 평상심의 사유이지요. 정견이 서고 바른 사유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바른 말〔正言〕이 나옵니다. 바른 말은 욕심과 화를 떠난 지혜의 말입니다. 정견과 바른 사유를 하면 또 바른 행위〔正業〕가 됩니다. 나를 위한 이기적인 행위가 아니라 나와 남이 모두 이익되는 행동을 하지요. 도덕과 윤리에 맞는 행위가 바른 행위입니다. 바른 생활〔正命〕은 욕심으로 분수에 맞지 않는 생활을 하거나 어리석음과 게으른 생활을 떠나 도리에 맞는 생활을 말하지요. 바른 정진〔正精進〕은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벗어나 영원한 자유를 위해 노력하는 것을 말합니다. 나만을 위한 것을 떠나 남을 도와 모두 행복하게 하는 노력입니다. 바른 생각〔正念〕은 양변을 떠나 중도로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집착과 어리석음을 떠나 늘 지혜롭고 밝으며 깨어 있는 생각이지요.

 

팔정도의 마지막인 바른 선정〔正定, sam-ma-samadhi〕은 정신집중 상태인 삼매를 말합니다. 이 바른 선정은 ‘독서삼매’와 같이 단순한 정신 집중이 아니라 일체의 집착을 떠난 자리에서 지혜가 나오는 삼매입니다. 흔히 우리는 삼매(三昧)라고 하면, 마음을 한 곳에 모은 고요한 경지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을 하나로 모으되 번뇌망념이 일어나지 않는 경지를 적적삼매(寂寂三昧)라 하는데, 이 적적삼매에만 머물러 있으면 이것은 외도삼매(外道三昧)입니다. 불교 삼매는 성성적적(惺惺寂寂) 또는 적적성성(寂寂惺惺) 삼매입니다. 마음에 번뇌망념이 없어 고요하면서도 정신이 또렷하여 깨어있어야 합니다. 화두 참선을 할 때 화두의심이 또렷또렷하게 지속되는 것이 성성(惺惺)이고, 그렇게 화두 의심이 일념이 되어 지속되면 번뇌망념이 저절로 일어나지 않아 적적(寂寂)이 되지요. 이러한 경지가 성성적적 삼매입니다. 그래서 이 성성적적 삼매가 지속되는 것이 바른 선정입니다.

 

중도 정견을 갖춰야 바른 수행을 한다

 

이렇게 팔정도는 정견에서 시작하여 바른 선정으로 이어지는 여덟 가지 바른 길입니다.

 

그런데 이 팔정도에 대하여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하나는 팔정도를 깨달음으로 가는 방법론(方法論)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깨달음 그 자체인 목적론(目的論)·구경론(究竟論)으로 봐야 하는가입니다. 팔정도를 목적론이나 구경론으로 본다 함은 팔정도를 깨달아야 성취할 수 있다는 입장이고, 방법론으로 보는 것은 팔정도가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이라는 입장이지요. 이 문제에 대하여 성철 스님은 『백일법문』에서 “부처님은 확실히 중도를 바르게 깨달았다고 하셨지 중도를 닦아서 바르게 깨달았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라고 하면서 중도, 곧 팔정도는 목적론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하셨지요. 그렇게 말하고는 뒤에 ‘근본과 지말이 뒤섞인 여기에서는 올바른 삶의 지침이기도 하니 방법론적으로 적용하는 것도 일리는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팔정도 즉 중도는 부처님처럼 깨치면 100% 완성되는 구경(究竟)으로 보되, 깨달음으로 가는 방편으로 활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저는 이 중도를 바르게 이해하여 정견(正見)이 서는 것을 지견(知見)으로 봅니다. 지견은 중도를 깨닫지는 못했지만, 지식으로 이해한 안목입니다. 선문(禪門)에서는 이 ‘이해(理解)’를 ‘알음알이’라 하여 매우 경계합니다. 화두 참선을 할 때는 알음알이를 버려야 하지만, 바른 안목의 정견을 세우는 데에는 이해도 필요합니다. 부처님이 깨달은 중도에 대한 바른 안목, 즉 정견을 갖추고 참선을 해야 합니다. 다른 어떤 수행을 하더라도 불교에 대한 바른 안목을 갖추고 해야 바르게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불교도 훨씬 바르게 알고 참선도 잘됩니다.

 

불교를 바로 알려고 한다면 누구나 중도를 바르게 이해해서 정견을 세워야 합니다. 정견을 세워 세상과 법을 바로 보지 못하면 바른 사유와 바른 말, 바른 깨달음이 어렵습니다. 때문에 불교 공부의 첫 걸음은 중도 정견을 세우는 것입니다. 제 체험에 의하면 중도 정견이 서면 신심과 발심은 저절로 됩니다.

 

자,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을 간단히 정리해 보면, 싯다르타가 출가해서 명상을 통해 깨달아 부처가 되었지요. 부처님은 첫 설법에서 중도를 깨달아 생로병사를 해탈하고 영원한 자유와 행복을 성취하였지요. 그래서 이것을 중도대선언이라 합니다. 곧 이어 부처님은 중도는 곧 팔정도라고 하셨습니다. 팔정도 중에 맨 앞에 나오는 정견, 이 정견이 불교 공부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정견에 대하여 바로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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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승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에서 20여 년간 종무원 생활을 하다가 고우 스님을 만나 성철스님 『백일법문』을 통독하고 불교의 핵심인 중도에 눈을 뜬 뒤 화두를 체험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불교인재원에서 생활참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유튜브 생활참선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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