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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추회요, 그 숲을 걷다]
선재 동자와 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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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석  /  2016 년 8 월 [통권 제40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4,184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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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다룰 주제는 『명추회요』 255쪽에 나오는 ‘선재 동자와 일심’으로, 『종경록』 34권에 속한 내용이다. 선재 동자는 『화엄경』 「입법계품」의 주인공으로, 그가 보살행(菩薩行)을 배우고 실천하기 위해 53명의 선지식을 두루 만나러 구법 여행을 다닌 것은 무척이나 유명한 얘기이다. 동자라는 용어에서도 볼 수 있듯, 선재는 순수한 동심을 지닌 젊은 구도자였다. 스스로도 이롭게 하고 남도 이롭게 하는 보살행에 대해 그는 큰 감동을 받았고, 자신도 그렇게 하고자 발원하였다. 

 

보살행을 알아서 행하고자 했던 선재는 보살행을 가장 훌륭하게 성취한 보현 보살을 만나 그것의 궁극적인 경지에 대해 물어보고자 하였다. 그러나 선재는 여래의 법회 가운데서 보현 보살을 볼 수가 없었고, 다만 문수 보살을 만나 여러 선지식을 찾아 남쪽으로 떠나라는 지시를 받게 된다. 그리하여 보현 보살을 만나기 위한 선재 동자의 남쪽 순례의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이런 뜻에서 선재 동자를 남순동자(南巡童子)라 부르기도 한다.

 


문수 보살이 선재 동자의 머리를 쓰다듬는 장면 

 

필자는 지난 봄 학기에 한 대학의 철학과에서 불교철학 강의를 진행했는데, 과제 가운데 하나로 『화엄경』에서 선재 동자가 만난 53명의 선지식 가운데 한 명을 고르고, 그 이유와 소감을 적어내도록 한 적이 있다. 30명 정도의 학생들이 대부분 다른 선지식을 선택해서 그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적어냈는데, 많은 학생들이 비슷하게 반응한 지점이 있었다. 이는 선재가 찾아다닌 선지식들의 직업이 너무도 다양하고 평범하다는 점이었다. 

 

선지식이라는 용어가 주는 일종의 선입견 때문에 이들을 고상한 성직자나 학자로 먼저 떠올릴 수도 있을 테지만, 『화엄경』에서는 출가자뿐 아니라 뱃사공, 의사, 바라문, 동자, 동녀 등의 매우 평범하고 다양한 캐릭터들이 선지식으로 등장한다. 평범한 일상을 떠나 지고한 진리를 따로 발견할 수 없음을 묘사한 『화엄경』의 기술에 젊은 학생들이 크게 공감한 것으로 보인다.

 

마음의 확장으로서의 선지식

 

『화엄경』은 1500년 전쯤 중국에서 세 차례 번역되었다. 이후 많은 불교학자들이 「입법계품」에 나오는 선지식들에 대해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해왔는데, 영명연수 스님 역시 이에 대해 자신의 고유한 감상과 평을 붙여놓으셨다. 그것은 위에서 말한 ‘선재 동자와 일심’이라는 제목에 잘 나타난다. 연수 스님은 선재 동자가 53인의 선지식을 만나면서 변화했던 내용을 단적으로 말해 ‘자기 마음의 확장’이라고 보았다. 이는 선재 동자가 그토록 만나싶어 했던 보현 보살을 만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선재는 맨 처음 문수 보살의 지시를 받고 남쪽으로 끊임없이 여행하여 수많은 선지식들을 만나 그들로부터 보살행의 여러 모습을 배운다. 그런 긴 여정의 거의 마지막에 이르러 선재는 문수 보살을 다시 만나게 되고, 그를 통해 최후의 선지식인 보현 보살을 만나는 계기를 접하게 된다. 『화엄경』의 서술을 보면, 보통 먼저 만난 선지식이 다음에 만날 선지식의 위치를 말해주면서 찾아가보라고 지시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문수 보살은 보현 보살이 있는 곳을 따로 알려 주지 않았다. 

 

보현 보살이 있는 곳을 따로 알려 주지 않았으므로, 선재는 오직 보현 보살을 만나고자 간절히 염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간절한 염원에 따라 선재는 마침내 보현 보살을 볼 수 있게 되었는데, 그 장소는 다름 아니라 자신이 최초로 머물렀다 떠났던 여래의 법회였다. 보현 보살은 선재가 참여했던 여래의 회중(會中)의 보련화사자좌(寶蓮華師子座)에 앉아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연수 스님은 이 대목에서 매우 깊은 감명을 받으셨던 것 같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지셨던 것 같다. 맨 처음 선재가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보아도 보이지 않았던 보현 보살이 마지막에는 왜 그렇게 분명하게 보였을까? 뭐가 달라진 것일까? 이에 대해 연수 스님은, 처음 여행을 떠날 때의 선재의 마음은 눈앞에 엄연히 진리가 드러나 있어도 보지 못하는 상태였음에 반해 오랜 구도 여행을 거친 뒤 선재의 마음은 세상의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을 만큼 크게 열렸던 것이라고 파악하였다. 더 나아가 선재가 만났던 53인의 선지식들은 선재의 외부에 있는 어떤 대상들이 아니라, 선재의 마음에 담겨 있던 여러 가지 훌륭한 품성들이 최대한 발현되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보았다. 이러한 연수 스님의 생각은 『명추회요』 256쪽에 잘 나와 있다.

 

보현보살은, 바로 자기 마음이 증득하는 대상이 법계(法界)의 다함없는 오묘한 수행이므로, 선재가 비록 법계를 두루 다니며 모든 선우(善友)를 참방했지만 보현 보살을 만나려 할 때는 별다른 지시를 빌리지 않았고, 곧바로 처음의 법회가 이루어진 곳의 여래좌(如來座) 앞에서 보려는 생각을 일으켰다. 생각을 하자마자 곧바로 보았으니, 보현 보살은 여래 앞에 있으면서 처음부터 움직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음을 관조하면 드물고 뛰어난 모습을 곧바로 보아서 보고 듣고 증득해 깨닫는다는 사실을 바로 드러냈으니, 눈앞에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바로 마음을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불대참회문에 따라 108배를 하면, 마지막에 ‘나무 대행 보현보살’을 세 번 부른 다음 마치게 되는데, 보현 보살은 많은 불보살들 가운데서도 ‘큰 수행과 발원’을 상징하는 분이다. 연수 스님이 보기에 보현 보살은 저 바깥에 계시는 훌륭한 보살이 아니라, 수행자들이 자기의 마음에서 증득해야 할 ‘법계의 다함없는 오묘한 수행’을 가리킨다. 이러한 광대한 규모의 수행을 가장 잘 구현한 분이 바로 보현 보살이므로, 우리가 진정 보현 보살을 친견하고자 한다면 그분과 같은 마음의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을 관조하기

 

『종경록』 100권과 그것을 십분의 일로 축약한 『명추회요』는 늘 ‘마음’이라는 근원을 중심에 두고 논의가 전개된다. 위에서 나온 선재 동자와 보현 보살의 얘기만 하더라도, 연수 스님은 이들이 마음 바깥의 얘기가 아니므로 자신의 마음과 접목시켜 관조해보라고 주문한다. 스님의 설명 방식을 보면, 불교의 모든 수행 체계는 다 마음을 근본으로 펼쳐지는 것이다. 

 

다양한 수행 체계들 가운데는 우리가 일과로 행하는 108배, 능엄주 등이 있고, 1년에 네 번 행하는 아비라 기도가 있다. 필자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겨울 백련암에서 4박 5일간 아비라 기도에 동참한 적이 있었는데, 이때가 바로 필자가 백련암과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은 시기였다. 당시 원통전 뒷방에서 장궤합장 하고서 법신진언을 불렀는데, 몸은 꼼짝도 할 수 없는데다 마음은 전혀 집중이 안 되어 애꿎은 벽지무늬만 열심히 세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 후 10여 년이 지나 아비라 기도에 몇 번 더 동참했을 때는 벽지 무늬나 무릎의 통증보다는 진언 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던 것 같다. 다만 30분간 집중하다가도 ‘탁’하는 죽비 소리 한 번에 마음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기 일쑤였다. 

 

가만 생각해 보면, 백련암에서는 절하거나 능엄주를 독송하거나 아비라 기도를 할 때, 그것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주지 않았던 것 같다. 설명이 친절하다고 해서 실제의 기도가 더 잘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수없이 반복해서 부르는 부처님의 명호와 진언이 이 세계의 실상과 맞닿아 있는 어떤 신호라고 본다면, 우리는 그것에 보다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연수 스님이 줄곧 제시해온 만법과 근원의 관계는 우리가 거듭 곱씹어 볼 만한 소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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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석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영명연수 『종경록』의 일심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의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불교전서>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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