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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탁소리]
『임제록』은 어록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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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16 년 10 월 [통권 제42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237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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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에서는 임제 스님과 임제종에 대한 성철 큰스님의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성철 큰스님의 말씀에는 임제 가풍이 살아 숨 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다 들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조동종과 임제종의 상황이 어떠했느냐를 살펴보아야겠습니다. 선종사를 아는 사람은 상식적으로 다 아는 것입니다만 다른 종파는 얼마 안가서 끊어져 버리고 조동종은 있다고 해도 미미하고 임제종 하나만이 융성해서 송나라,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까지 내려왔습니다. 어째서 그런지 살펴보면 임제 스님의 종풍(宗風)이 누구든지, 어느 종이든지 따라갈 수 없는 독특한 종풍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독특한 종풍을 가지고 있어서 천하제일등의 대종사들이 계계승승 출세해 내려와서 임제의 선법(禪法)을 이어왔으니 임제종이 대를 이어 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냥 어떻게 하다가 임제종이 성한 것이 아니라 그 종풍이 실지로 천하를 지배하고 불교생명을 이어 나갈 만한 특징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임제 스님의 사리가 모셔진 임제사 청탑 

 

이것은 나만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선종 천하가 다 공인하는 것입니다. 『임제록』이라 하면 “어록의 왕”이라고 일컬어지며, 임제종의 종조(宗祖)인 임제 스님의 어록(語錄)입니다. 이 『임제록』이라는 어록은 우리불교에서만 권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학자나 어느 철학자나 어느 종교가가 보든지간에 세계적으로 권위가 높은 어록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우리들 선가(禪家)에 있는 사람이라면 임제종이든지 조동종이든지 무슨 종이든지간에 『임제록』은 꼭 읽고 알아야 합니다. 말할 것 없이 정진만 잘하면 그만이지만, 상식적으로도 알아야할 어록인데, 요사이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임제록』의 보급이 잘 안 돼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내가 『임제록』을 좀 평설해 볼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럼 어째서 선(禪)이나 교(敎)나 불법은 똑같은데 무종 폐불 사태에 선과 교가 근본적으로 타격을 만났는데 교종은 다시 재기를 하지 못하고 선종만이 그전보다도 더 융성한 상황을 이루었느냐에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앞에서 학자들의 정치, 경제, 사회적 결론을 잠깐 소개했습니다만 그 원인을 캐보면 저 부처님 당시까지 올라가야 된다고 봅니다. 쉽게 말하면 선시불심 교시불어(禪是佛心 敎是不語), 즉 선은 부처님의 마음을 전하고 교는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이 말입니다.

 

선이라는 것은 가슴속에 든 마음을 전하는 것으로 깊고 알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부처님 말씀을 기록으로 전하는 것은 밥 얘기를 하는 것이고, 마음으로 전하는 것은 직접 밥을 먹는 것과 같다고 말씀했습니다. 선을 교 밖으로 따로 전했다(敎外別傳)고 함은 부처님 당시에도 그런 사실이 있었나 하고 살펴보면 부처님 돌아가시고 난 다음 이것이 완연히 드러났습니다.

 

부처님 돌아가시고 난 후 상수제자인 가섭 존자가 대중을 모아서 “부처님께서 돌아가셨으니 우리가 서로서로 기억을 더듬어 부처님 말씀을 완전히 기억해서 법문을 수집해서 후대로 전해야 한다.”고 소위 제1차 결집을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그 대중 가운데 나중에 부처님 10대 제자 중에 ‘다문제일’이라는 아난 존자가 부처님 법문을 가장 많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부처님 시자를 25년 동안 했고, 부처님 법회에 참석하지 않은 일이 없었고, 또한 아난 존자가 출가하기 전 법회에는 참석은 못했지만 다른 스님들에게 들어서 다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난 존자를 빼고서는 부처님 법문을 결집할 수 없는 그런 현실이라고 대중 스님들은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가섭 존자가 “500아라한이 모여 부처님 법문을 수집하는 중요한 모임을 가지게 되었다. 여기는 사자굴로서 사자만 모여 있는데 여우가 한 마리 섞여 있다. 그 여우새끼는 사자굴에 들어올 수 없으니 쫓아내라.”고 하였습니다.

 

대중들이 어리둥절해 있으니, 가섭 존자가 노발대발하면서 아난 존자를 가리키면서 “바짝 마르고 옴오른 여우 새끼야, 사자굴에 어른거리지 말고 두말 말고 어서 나가라.”고 하면서 문 밖으로 쫓아내고 문을 확 닫아 버렸습니다. 할 수 없이 아난 존자가 결집에 참석을 하지 못하고 쫓겨나 비야리성으로 가서 용맹정진을 했습니다. 거기에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는데 상세한 것은 말할 필요가 없고 마침내 아난이 확철히 깨쳤습니다. 그래서 다시 가섭존자를 찾아가니 인가를 하면서 “아난이 이만하면 부처님 법을 바로 깨쳤으니 법문 결집하는 데 대변할 수 있는 자격을 구비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대중에게 좋은 소식을 전함과 동시에 아난을 중심으로 해서 부처님 법문을 수집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1차 결집이 이루어진 상황입니다. 교외별전인 선은 부처님의 근본 마음을 전하는 것이고, 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방편에 불과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달을 봐야지 달 가리키는 손가락만을 보면 바보다.”라고 하였습니다. 달 가리키는 손가락(指月之指)이니 달을 봐야지 손가락만 천날 만 날 봐봤자 달은 못 본다 말입니다. 아난이 부처님 생전에도 부처님 말씀을 소상하게 다 기억하고 있었지만 실지로 달은 보지 못하고 손가락만 본 사람이 되어서 처음 결집장에서 쫓겨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난 존자는 부처님 제자 중 다문제일이지만 법을 전함에 있어서는 가섭 존자의 뒤를 이은 제2조로 부처님 법제자가 되지 못하고 가섭 존자의 법제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불교의 근본생명은 자성을 깨치고 자기 마음을 바로 봐야 되는 것이지, 글자만 익히고 글자에 얽매이는 사람은 부처님이 손가락을 가지고 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안보고 손가락만 보는, 불법의 근본 뜻을 완전히 망각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과 교의 근본적인 차이입니다.

 

그래서 교 밖에 따로 전하여 가섭 존자로부터 시작하여 저 달마 스님까지 28대로 전해 내려오고, 다시 육조혜능 스님한테까지 내려와서 그 이후에 많은 큰 스님들이 법을 전해 내려와 무종 회창 폐불 사태이후 교종은 힘이 없어지고 선종 5가가 천하에 퍼져서 불교를 지배하는 동시에 불교의 생명선이 그대로 이어져 내려왔던 것입니다.

 

그중에서 앞에서도 말했듯이 오직 임제종 하나만이 더 융성한 것은 임제 스님의 그 법문이 실
제에 있어서 사람을 가르치고 사람을 다그치는 데 있어서 다른 사람보다 독특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융성하여 선이라고 하면 임제가 대표를 하게 된 것이고, 선종이라 하면 전부 임제종 일색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좋은 법문을 기록해 놓은 어록이 『임제록』입니다.

 

어록 가운데 제일 으뜸가는 참 유명한 법문인 『임제록을,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참 좋은 법문을 소개한다는 것은 너무나 외람된 일이지만, 어쩌다 보니 해인총림 방장의 직책을 맡아서 알든지 모르든지 안할 수 없어서 하지만 나는‘거짓말’ 외에는 더 할 수 없다 말입니다.

 

임제 스님의 거짓말을 좀 들어야겠다고 기어이 법상에 앉히니 내가 거기 따라 거짓말을 해도 나를 원망하지 마시고 내가 거짓말을 한다는 전제하에 내 이제 생각대로 『임제록』을 평설해볼까 생각합니다. 그러면 우선 선과 교의 관계, 『임제록』에 대한 관계는 이 정도면 대강 알 수 있으리라 짐작합니다.

 

우리가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은 어떤 큰스님이 법문 하시든지 그 법문을 듣고 말을 따라가면 결국은 다 죽고 마는 것이니 마치 참으로 살려면 절대로 그 말을 따라가지 않고 말 밖에 있는 그 근본 뜻을 알아야 합니다. 조사스님들의 법문은 격외현지(格外玄旨)라 하는데, 격 밖에 참으로 깊은 뜻이 있는데, 그것은 말 밖에 있지 말속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예전 큰스님들이 법문하시는 근본 목표가 어디에 있는가 하면 자기 말 따라오지 말고 그 말 밖에 있는 깊은 뜻을 이해하는 사람을 위해서 법문하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내가 『임제록』을 조금씩 얘기를 하는데 임제 스님 말씀한 이것이 실법인 줄 알고 임제 스님 말만 따라가고 내 입만 따라오는 사람은 자기도 남도 다 죽이는 비상을 삼키는 사람이니 절대로 임제 스님 말도 따라가지 말고 내 입도 따라오지 말아야 합니다. 임제 스님 말씀하는 그 뜻이 어느 곳에 있는지, 내가 지금 얘기하는 뜻이 어느 곳에 있는지, 저 삼천리 밖에 서서 말 밖의 뜻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내 말을 따라오지 않는 사람을 바라고 말을 하지, 말 따라 와가지고 말 밑에 죽는 사람은 절대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면 참으로 말 따라오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이 다만 한 명이라도 있게 될지, 아니면 전체가 다 살게 될지 그건 나중에 두고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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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본지 발행인
196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백련암에서 성철스님과 첫 만남을 갖고, 1972년 출가했다.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도서출판 장경각 대표, 부산 고심정사 주지로 있다. 1998년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 1999년 제10회 대한민국 환경문화상 환경조형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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