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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추회요, 그 숲을 걷다]
연수 선사와 유식학(唯識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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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석  /  2016 년 12 월 [통권 제44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4,285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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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추회요』의 바탕이 되는 연수 선사의 『종경록』 100권은 제45권부터 유식학에 대한 논의가 대거 등장한다. 그래서 『명추회요』 역시 45권을 촬요한 부분 이후로는 유식학의 내용이 심심치 않게 보이고, 인명에 대한 설명 역시 한차례(395쪽) 나타난다. 이들 내용을 보면, 개념이 전문적이고 논의가 복잡해서 외면해버리기가 쉽지만, 중국불교사 전체에서 본다면 『종경록』의 유식학 관련 내용은 명·청 시기 불교계에 상당한 기여를 했으므로,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종경록』과 『명추회요』에 나타난 유식학과 인명학의 위상을 전반적으로 소개해보고자 한다.

 

불교의 전통 내에서는 세계를 보는 철학적 관점이 크게 전환되는 시기가 몇 차례 보이는데, 그것의 대표적인 사례로 유식학의 등장을 들 수 있다. 유식학은 식(識)을 중심으로 일체만법을 설명하기 때문에,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처럼 식과 분리된 외계실재를 말하는 불교학파와는 견해의 차이를 크게 보인다. 한편 인도에서는 불교를 포함한 종교철학자들이 토론할 때 논리학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인도에서 논리학을 발전시키는 데 큰 공헌을 했던 학파로 정리학파(正理學派), 곧 니야야학파를 들 수 있지만, 그것의 발전에 지대한 공로를 했던 인물로는 불교의 진나(陳那) 보살을 빼놓을 수 없다. 6세기경에 활동했던 진나 보살의 관점에 따라 기존의 인도논리학이 새롭게 재편되었으므로, 그를 인도 신인명(新因明)의 시작이라고 본다.

 

연수 선사가 유식학을 많이 소개하는 이유

 

연수 선사의 『종경록』 100권에는 선·화엄·천태뿐 아니라 유식학의 내용 역시 상당 부분 등장한다. 선사는 대략 『종경록』의 5분의 2 분량을 『성유식론』의 논의를 중심으로 기술했기 때문에, 그 분량만 보더라도 그가 유식학을 중시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선사로서는 이례적으로 교학을 많이 인용하므로, 이에 대한 반론이 『종경록』 내에서 여러 차례 등장한다. 그렇다면 연수 선사는 왜 유식학을 이렇게나 많이 인용하는 것일까?

 

우선 연수 선사가 일관되게 강조했던 ‘문자의 방편으로 학인들의 심성을 깨우쳐 주려는 태도’에서 그 이유를 발견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는 선사가 처했던 시대적 상황이 보다 밀접한 관련을 지니는 것으로 보인다. 선사가 살았던 시대는 중국 역사 가운데서도 전란으로 인한 혼란이 극심한 때였다. 5대 10국이라는 명칭에서도 보이듯, 당이 멸망한 907년부터 송이 건립된 960년까지 60년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중국에는 크고 작은 10여 개의 나라들이 흥망을 거듭하였다.

 

전란의 시기와 맞물려 중국의 불교 역시 수많은 스님들이 환속당하고 많은 사찰과 불교전적들이 소실되었지만, 유독 연수 선사가 활동했던 오월국(吳越國)은 튼튼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민생을 안정시키고 불교를 장려하는 정책을 폈다. 이런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 전역의 스님들이 남쪽의 오월국으로 몰려들었고, 그와 동시에 많은 불전 역시 함께 전해지게 되었다. 부처님의 말씀을 담은 수많은 경전들이 사라질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연수 선사는 그 말씀들을 보존하는 데 진력을 다했던 것 같다. 선사의 이런 노력으로 인해 오늘날 전혀 전해지지 않는 책들의 내용이 『종경록』 속에 많이 나오고 있고, 이는 많은 학자들의 주의를 끌고 있다.

 

그러면 유식학의 내용은 어떤 측면에서 강조되었는가? 이를 알 수 있는 문구가 『명추회요』의 365쪽에 나온다.

만약 먼저 진찰하여 병의 원인을 알아보지 않는다면 어떻게 처방전에 따라 묘약을 줄 수 있겠는가.

유식학은 법상종(法相宗)이라고도 불리는데, 일체 만법의 생성과 소멸의 현상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는 점에서 특징을 지닌다. 반면 선종(禪宗)은 만법의 근원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법성종(法性宗)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근원적인 것만 중시하다 보면, 그 근원에서 펼쳐지는 세세한 현상들에 대해 자칫 소홀히 하는 경향이 생길 수 있다. 가령 우리는 ‘마음’이라는 말을 늘 사용하지만, 그 마음이 지니는 기능에 대해 누군가 상세히 물어본다면, 그에 대해 자세히 답해주기가 쉽지 않음을 금방 느끼게 될 것이다.

 

연수 선사의 시대에도 이런 상황들이 발생했던 것 같다. 선사는 아마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와 같은 포괄적인 내용뿐 아니라 마음의 세세한 내용과 기능을 설명해주는 유식학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사람들이 갖고 있는 다양한 병의 원인을 보다 확실히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후대의 영향

 

중국의 명·청 시기 불교계에는 유식학과 인명학이 유행처럼 번져갔다. 그런데 문제는 당의 현장 법사와 규기 법사에 의해 이루어졌던 유식학의 전통이 중국 불교 내에서 전승이 끊어진 지가 꽤 오래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오랜 전란으로 인해 유식학의 중요한 전적들이 대량으로 소실된 점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상세한 해설을 담은 책들이 사라짐으로 인해 정밀한 개념 분석을 필요로 하는 유식학과 인명학 역시 퇴조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시기에 중국의 고승들이 참조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책이 바로 연수 선사의 『종경록』이었다.

 

다만 연수 선사가 지닌 유식학에 대한 견해는 현장, 규기 스님과는 달라지는 부분이 있다. 정통 유식학에서는 보다 엄격한 학문적 태도에 입각하여 우리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한계를 먼저 정한 뒤 논의를 전개하므로, 주로 생멸하는 현상의 모습을 기술하는 데 집중한 반면, 연수 선사는 생멸하지 않는 지점, 곧 불생불멸의 심성을 근저에 두고 유식학의 논의를 수용하는 것이다. 연수 선사의 이런 견해는 명·청 시기 중국 고승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고, 1800년대 들어 중국의 학자들이 직접 일본에 가서 유식학의 주석서를 구해오기 전까지 중국 불교의 주류적인 견해를 형성하였다.

 


석전 박한영 스님

 

한편 한국근대불교를 대표하는 강백인 석전(石顚, 1870-1948) 스님은 한국불교의 전통적 강원교육을 재편하는 중앙학림을 세우는 데 노력한 분이다. 스님께서 세운 교과과정을 보면, 그 가운데 유식학과 인명학이 기본으로 들어가 있다. 이는 당시 동아시아 불교계 전반에 유행했던 흐름이다. 이와 더불어 또 하나 주목되는 부분이 바로 『종경록』이 교과 과목의 하나로 들어가 있는 점이다. 이는 아마 『종경록』이 당시 불교계에 필요했던 내용과 관점을 많이 담고 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런 관점 가운데 하나가 인명학과 관련된 문답(395쪽)에 잘 나타난다.

 

【물음】 지금 종지를 이야기하고 자성(自性)을 드러내는데, 무엇 때문에 3지비량(三支比量)의 문장을 자세히 인용하는가?

 

【답함】 모든 부처님들은 법을 설할 때 오히려 속제(俗諦)에 의지하였는데, 하물며 3지비량은 그 이치가 5명(五明)을 관통하여 유(有)를 부수고 공(空)을 세우는 것을 종(宗)으로 삼고, 언어를 일으키고 지혜로 요달하는 것을 체로 삼아 범부와 소승의 잘못된 집착을 꺾고, 불법(佛法)의 강종(綱宗)을 정립하였으니, 어찌 의지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가르침은 지혜가 없으면 원만하지 못하고, 재목(材木)은 먹줄이 아니면 곧아지지 못한다.

 

부처님께서 깨달은 자내증(自內證)의 진리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이어서 말로는 전해질 수 없지만, 또한 말이 아니고서는 그것을 가리킬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말을 통해 법을 설하게 된 것이다. 기왕 말을 가지고 법을 설하고 토론을 벌인다면 그 말은 이치에 맞아야 하는 법이다. 이치에 맞는 한마디 말이 사람의 지혜를 열리게 한다는 점에서 보면, 선사의 말씀은 매우 귀담아 들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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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석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영명연수 『종경록』의 일심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의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불교전서>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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