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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주인공의 삶]
눈과 코와 불의 수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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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  2015 년 12 월 [통권 제32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4,396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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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엄경』 알바에 파묻혀 지낸 지 거의 일 년이 되었다. 다른 책을 읽을 시간도 없고 딴 생각을 할 여유도 없는 터라, <고경> 원고 마감이 다가오면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다. 이전에 써본 글이라곤 학교 다닐 때 국군장병 아저씨께 보낸 위문편지가 고작이어서 글을 쓰는 게 익숙하지가 않다. 왜 쓰는지, 무얼 쓸 것이지 모르는 채로 삼십여 차례, 오늘은 또 χ값을 어디 가서 구하나, 수학문제를 받아든 수포자의 심정이 된다. 이걸 혼이 비정상인 상태라고 해야 할지 스스로 딱하다. 간절히 글감을 구하면 우주가 나서서 도와주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하다가 실패,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동영상을 보며 두 시간 날리고도 실패, 할 수 없이 부처님을 팔기로 하고 『능엄경』에서 요즘 읽는 부분을 추려 보았다. 

 

부처님이 성문과 보살들에게 묻는다. 너희가 내 법에서 공부하여 더 이상 배울 것 없는 성자가 되었는데, 처음에 어디서 발심을 하고 십팔계 중에 어디로부터 어떤 방편을 통해 삼마지에 들어갔느냐. 부처님이 묻고 제자들이 각각 나서서 대답하는 곡절 속에 그들의 과거사와 수행이력이 드러난다. 그중에는 부처님의 피붙이 동생들도 등장하는데 부처님 사랑이 너무 지나친 건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있다.

 

아나율의 눈

 

아나율은 부처님의 작은 아버지 감로반왕의 아들이며, 부처님에게는 사촌 동생이 된다. 부처님의 강권에 못 이겨 울며 겨자 먹기로 출가했는지, 그는 수행에 재미를 붙이지 못한 모양이었다. 처음 출가했을 때부터 항상 잠을 좋아했다.

하루는 급고독원에서 부처님이 설법하시는 중에 잠이 들어, 그렇게 자다가는 축생이 될 거라는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 

 

『증일아함경』에 전하기로, 꾸지람은 이랬다. “쯧쯧쯧. 어째서 잠만 자느냐. 소라, 고동, 조개 같구나. 한 번 잠들면 천년을 자다가 부처님 이름조차 듣지 못할 것이다.” 이 말에 눈물로 자책하며 이레를 뜬 눈으로 새다가 그만 두 눈이 멀었다. 부처님이 요견조명금강삼매(樂見照明金剛三昧)를 보여주시자 그때부터 아나율은 ‘본다는 게 뭐지?’하고 깊게 판다.

 

그 삼매에 들어 색진(色塵)을 잊고 견(見)을 돌이켜 자성을 보았다. 육안을 잃고 심안을 얻은 것이다. 무너지지 않는 금강의 눈을 얻어 손바닥의 과일을 보듯 시방세계를 보니 아라한이 되었다고 부처님이 인가하셨다.

 

손타라난타의 코

 

손타라난타는 정반왕의 둘째 아들로, 부처님의 배다른 동생이다. 난타가 그의 이름이고 아내 이름이 손타라이다. 얼마나 미모로 명성이 자자했으면 남편 이름에 그녀의 이름이 따라다녔겠는가. 심하게 예쁜 아내 때문에 그는 원래 출가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는데 부처님의 작전으로 그만 희생양이 되었다. 

 

하루는 부처님이 일부러 난타 집에 탁발을 나갔다. 손타라가 나와서 맞으며 밥을 담아드리려고 발우를 가지고 들어간 사이 부처님이 처소로 돌아와 버렸다. 손타라가 나와 보니 안 계시기에 남편 손에 음식 담은 발우를 들려 보냈는데 부처님이 보자마자 출가하라고 하여, 억지 춘향으로 출가자가 되었다. 

 

출가를 했어도 아내가 그리워 만날 기회만 엿보다가 부처님과 대중이 공양 청을 받고 나간 날 핑계를 대고 따라가지 않고는 대신에 자기 집에 가서 아내를 만나곤 했다. 경에서 난타는 이 상황을 “제가 부처님을 따라 입도(入道)하여 구족계를 받았지만 삼마지에 들 때는 마음이 항상 산란하게 요동했습니다.”라고 고백한다. 

 

마음을 잡지 못하는 그에게 부처님이 코끝의 흰 부분을 관하라고 명하시어 코끝을 보면서 숨을 관찰했다. 콧구멍 속의 공기가 연기 같이 드나드는 것을 관찰한 지 삼칠일 만에 몸과 마음이 안으로 밝아지면서 바깥 세계까지 훤히 뚫려 유리같이 투명해졌다. 연기 같은 상(相)이 점점 사라지고 숨이 흰색이 되면서 마음이 열리고 번뇌가 다하여 들숨 날숨이 빛으로 변했다. 그 빛이 시방세계를 비추니 부처님이 당래에 성불할 것이라고 수기를 주었다.

 

오추슬마의 불

 

오추슬마는 화두(火頭)라고 번역한다. 불, 불덩이, 불을 맡은 소임 등을 뜻한다. 그가 부처님께 과거사를 고백한다.

“제가 기억해보니, 오랜 겁 전에 음욕이 많았습니다. 그때 공왕(空王)이라는 부처님이 세상에 나와 ‘음욕이 많은 사람은 맹렬한 불덩이가 된다’ 하시며, 저에게 백골(白骨)과 사지(四肢)의 더운 기운을 다 관하라 하셨습니다.” 시키는 대로 몸뚱이를 돌아다니는 화대(火大)를 관찰했더니 신광(神光)이 안으로 엉기며 음욕의 불덩이가 지혜의 불덩이로 변했다. 화광삼매의 힘으로 아라한을 이루자 부처님들이 불덩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그때부터 제불이 도를 이룰 때마다 금강신이 되어 큰 힘으로 마군을 꺾어 누르고 불법을 보호하겠다고 원을 세웠다. 그는 금강역사가 되었다. 절에 가서 탱화를 보면 머리에 활활 타는 불을 이고 있는 화두금강(火頭金剛)이 바로 오추슬마이다.

 

이들 셋은 수면욕, 애욕, 음욕이 센 사람들로, 가장 기본적인 욕구가 수행을 장애한 경우다. 이들은 자기에게 없는 것을 가지고 공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장애를 재료 삼아 눈과 코, 그리고 몸에 돌아다니는 따듯한 기운을 가지고 닦아 나아갔다. 진감 선사는 『정맥소』에서 이것을 두고 “잘못을 저지른 김에 그것으로 묘관을 성취했다(將錯就錯 可成妙觀).”고 평했다. 장착취착은 일종의 속담인데 자신의 잘못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 기왕 버린 몸, 이걸로 승부를 보아 성공한다는 뜻이다. 비를 맞았을 때 아예 개울로 뛰어들어 목욕하는 식이다. 장애를 탓하기 전에, 저 높은 곳에서 없는 것을 찾지 말고, 몸에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시작하라는 가르침이다. 

 

이 경은 볼수록 재미가 있고 마음에 무언가를 불러일으킨다. 알바해서 돈을 벌 목적으로 보는 건데도 그렇다. 하물며 도를 닦는 것이 목표인 수행자에게는 훌륭한 자기계발서나 실용서가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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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불교학을 전공하였고, 봉선사 월운 스님에게 경전을 배웠다. <선림고경총서>편집위원을 역임했고 『승만경』, 『금강경오가해설의』, 『송고백칙』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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