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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스승, 성철]
“큰스님은 여전히 큰바위얼굴 같은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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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철주  /  2015 년 11 월 [통권 제31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5,308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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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거사림회 윤우석(영암) 회장

 

 


 

 

훈련이 어렵고 고될수록 군기도 세다. 혹시나 일어날지 모르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교관’들은 일부러 강한 얼차려를 시킨다. 그러나 사정을 잘 모르는 ‘어린양’들은 투덜대기 바쁘다. 숨을 헉헉거리다 “내가 왜 여기까지 와서 생고생이냐?”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어린양’들은 훈련이 다 끝나고 나서야 교관들의 진심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다. 모든 것들이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벌써 몇 년 전이다. 아비라기도를 처음 취재하기 위해 백련암을 찾았다. 불교 사정을 잘 모르던 때여서 낯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고심원에 성철 스님이 계셨다는 것. 거사님들의 기도를 취재하려는데 입승(立繩) 거사님이 상당히 차가웠다. 처음 기도를 하러 온 사람들에게는 냉정하기까지 했다. ‘여지’를 두지 않는 모습에 심상치 않음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아비라기도가 다 끝나고 그 입승 거사님을 다시 만났다. 

“아비라기도는 육체적으로 엄청 힘든 기도입니다. 삼천 번 이상의 절을 하고 또 장궤합장을 한 채로 진언을 외워야 합니다. 보통의 결기로는 견디기 어려워요. 기도를 하기 전에 다들 일과(日課)를 하면서 준비를 하지만 그래도 힘든 것이 바로 아비라기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기도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냉정하게 조언을 합니다. 서운해도 어쩔 수 없어요.” 

 


고심원에서 진행 중인 아비라기도 모습. 

 

나중에 다시 아비라기도에 가도 이런 풍경은 변하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이렇게 엄하게(?) 대중들은 이끄는 사람은 바로 윤우석(영암, 靈巖) 백련거사림회 회장이었다. 거사님은 2009년부터 회장으로서 백련거사림회를 이끌고 있다.  

 

지난 8월 하안거 해제에 즈음한 아비라기도 촬영을 위해 다시 백련암에 갔다. 400여 대중은 어김없이 기도에 열심이었다. 고심원에서 영암 거사님을 다시 만났다. 거사님의 얼굴은 갈수록 ‘백련암 스타일’이 되어 가고 있었다. 아니 오래전부터 백련암 얼굴이었다. 깨끗하고 맑은 모습이 영락없는 백련암 식구다.  

 

사람 좋던 거사님의 모습도 기도가 시작되자 ‘돌변’했다. 격려도 곁들였지만 쓴소리가 더 많았다. 

거사님은 본격적으로 기도가 시작되기 전 초심자들에게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했다. 절과 장궤합장 하는 법부터 마음가짐에 이르기까지 진지한 설명이 이어졌다. 

 

“불교에서의 모든 의식은 항상 합장반배로 시작해서 합장반배로 끝남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합장한 두 손을 가슴에 바짝 붙이도록 하고 허리와 가슴은 90도로 꺾어 주세요. 

 

이때 등이 굽으면 안 되니 일직선으로 하는 습관을 가지도록 하시고요. 가끔 보살님들 중에 어떤 분들은 합장한 두 손을 경망스럽게 아래위로 흔들면서 절을 하는데 주의하셔야 합니다. 두 손을 가슴에 바짝 붙이고 절을 해야만 합니다. 가끔 한쪽 손을 바닥에 먼저 대고 그다음에 나머지 한쪽 손을 바닥에 대면서 절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지양하도록 하세요. 스님들은 가사 장삼을 입고 절을 하기에 옷이 자꾸 흘러내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는 것이지 그걸 올바른 절하는 방법인 줄로 착각하면 안 됩니다. 다만, 평상시에 사람을 만나 가볍게 인사 등을 할 경우에는 90도로 꺾어 주면 보기에 좀 그러니 이럴 때엔 45도 정도로만 굽혀도 됩니다.”  

 


기도 중 공양을 위해 공양게를 하고 있는 거사님들. 

 

아비라기도에 대한 설명도 빼놓지 않는다.

“3개월 일과수행 뒤 성철 큰스님께 그간의 정진을 점검받고자 대중기도로 아비라기도를 했습니다. 지금은 큰스님이 계시지 않지만, 대중들의 정진은 전과 같습니다. 아비라기도는 입문을 잘못하면 30년이 지나도 똑같습니다. 부처님 곁에 서기 위해, 부처님으로 살기 위해 몸과 마음의 프레임을 새로 짜는 것이 아비라기도입니다. 오늘부터 며칠간은 여기서 기도를 하지만 가정과 직장 등 자신이 있는 곳이 도량이라는 생각으로 수행하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잔뜩 긴장한 모습의 초심자들의 눈빛이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영암 거사님은 기도할 때는 진지하게, 쉬는 시간에는 편안하게 대중들을 이끌었다.  

 


고심원 아비라기도 풍경. 

 

 

4일간의 기도가 끝나고 대중들은 백련암 곳곳을 정리했다. ‘아비라기도 백련거사림’이라고 적힌 큰 좌복도 가야산의 빛과 바람에 몸을 맡겼다. 기도 전과 후가 같은 것은 백련암이나 대중들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기도를 마치고 한참 시간이 지나 다시 거사님을 만났다.  

 

“도를 위해 망설이지 마라”

 

이번에는 산이 아닌 바닷가였다. 거사님은 남쪽의 바닷가에 살고 있다. 도시에서 살아오다 수행처를 찾아 바닷가로 왔다. 

법복이 아닌 사복(?)을 입은 모습이 낯설었다. ‘일반인’ 느낌이다. 그런데 인터뷰를 시작하자 다시 백련암 불자로 돌아왔다. 무엇을 입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수행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런 저런 수행법을 섭렵하고 다녔습니다. 20대 후반에는 어머니를 따라 해인사에 가끔 왔습니다. 어머니는 신심 깊은 불자셨거든요. 당시 방장(方丈)이시던 성철 큰스님을 멀리서나마 몇 번 뵈었습니다.

 


기도 중 휴식시간에 거사님들과 여담을 나누고 있다. 

 

어머니가 여러 번 말씀을 하셔서인지 저는 그저 큰스님을 도인(道人)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한 번은 큰스님 법문을 듣고 경내에 앉아 있는데 제 앞으로 큰스님이 오셨습니다. 주변에 몇 분의 스님과 보살님들이 계셨어요.  

 

큰스님을 보는 순간 법복이 아닌 흰옷을 입고 저에게 오는 신선처럼 보였어요. 큰바위얼굴 같은 느낌도 강했습니다. 제가 잠시 정신 줄을 놓고 있는데 큰스님께서 ‘니 여기서 머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신을 차려 인사를 드렸습니다. 잠시 후에 한 보살님이 큰스님께 ‘저 애를 잘 가르쳐 주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사님이 느끼기에 성철 스님은 거사님을 측은하게 바라봤다. 뭔가 안타까운(?) 눈빛이었다고 한다. 얼마 후 거사님은 백련암으로 가서 다시 성철 스님을 친견했다. 

 

“큰스님께 도(道)에 대해 여쭈었습니다. 그 당시 저의 최대 관심사였으니까요. 큰스님께서는 ‘도를 위해 망설이지 마라. 하고 싶은 것을 해라. 그런데 좀 어려울 거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저에게 ‘영암(靈巖)’이라는 법명(法名)과 화두를 주셨습니다.”  

 

거사님은 성철 스님에게 법명을 받은 순간부터 출가를 했다고 생각했다. 머리를 깎지 않았지만 수행하는 마음으로 줄곧 살아왔다. 말 그대로 비승비속(非僧非俗)이다.

 


기도를 마치며 자리를 같이 한 백련암 거사님들. 

 

“당시 같이 공부하던 도반들 중 출가를 한 사람도 많습니다. 지금도 그 스님들을 가끔 만납니다. 저만 이렇게 거사로 남아 있네요. 큰스님을 뵈었을 때 공부 인연을 확실히 만들었어야 했는데 젊은 시절 제 잘난 맛에 그러지 못했어요.

그래도 대적광전에서 하시던 법문을 녹음해 계속 들으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큰스님 법문을 외워서 도반들에게 들려주면 도반들이 큰스님 목소리하고 똑같다고도 했습니다. 하하.” 

 

할수록 빠져드는 아비라기도

 

거사님은 성철 스님이 내려 준 화두를 들면서 정진했다. 그러다 1980년대 초부터는 백련암에서 열리는 아비라기도에도 빠지지 않고 참여하기 시작했다. 10년여가 흘러 성철 스님이 열반에 들었다. 거사님은 하산을 결심했다. 스승이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철 스님의 사리탑을 조성하는 불사가 시작됐다. 그래서 다시 돌아섰다. 거사님은 다른 불자들과 함께 기도했다. 5주기가 지나고 거사님은 도반 10여명과 함께 새로운 계획을 마련했다. 바로 ‘5대 적멸보궁 순례 아비라기도’다.  

 

“큰스님 5주기를 마치고 백련거사림회를 창립했습니다. 초기 멤버 10여명이 두 대의 차에 나눠 타고 순례를 시작했습니다. 적멸보궁 한 곳에서 1품의 아비라기도를 했습니다. 오분향례, 108참회, 장궤합장 법신진언, 능엄주 독송, 회향게, 발원문 등의 순서로 정성껏 기도를 했어요. 

 

다른 보궁은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설악산 봉정암은 조금 달랐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우리 일행은 그냥 우리 기도를 했어요. 아비라기도가 지금처럼 많이 알려지지 않은 때라 사람들이 저희를 이상하게 봤어요. 기도 1품을 하고나서는 그 자리에서 삼천배까지 했습니다.

 


영암 거사님이 기도에 여념이 없다. 

 

이 소식이 봉정암 사중에 전해졌는지 다음 날 아침 공양을 하고 나니 주지스님이 일행을 찾는다는 전갈이 왔어요. ‘혼나는 것은 아닌가’하고 갔는데 주지스님께서 ‘젊은 시절에 해인사에서 성철 큰스님께 법문도 많이 들었다’며 반겨주셨습니다. 적멸보궁 순례를 잘 마무리 하고 기분 좋게 산을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하하.”  

 

적멸보궁 순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거사님의 아비라기도 사랑은 지극하다. 그렇기 때문에 30년 넘게 아비라기도를 지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도를 마치고 좌복을 정리하는 거사님들 모습.

 

“큰스님 5주기 때까지는 백련암 신도가 아닌 사람들도 많이 왔어요. 그 중에는 아비라기도가 어떤 기도인지 알려고 온 사람도 많았습니다. ‘체험’에 목적을 둔 사람들은 나중에 오지 않더라고요. 

 

아비라기도에는 모든 것이 다 들어있습니다. 이 기도만 하면 모든 것이 다 되는 것이죠. 바른 절로 몸을 만들고 장궤합장 자세를 정확하게 습득해야 합니다. 또 진언도 잘해야 합니다. 진언을 할 때는 진언에만 집중합니다. 자기 소리보다 대중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대중의 소리에 집중을 하게 되면 공명은 안 돼도 그 소리에 동조까지 할 수 있습니다. 동조에 만 이르러도 좋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아비라기도에 빠지지 않고 꾸준하게 한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맛을 봅니다. 기도할 때의 고통도 나중에는 저절로 없어집니다. 3박 4일간 대충 시간 때우겠다는 마음으로 하면 수십 년을 해도 허사입니다. ‘이 자리에서 바로 성불하겠다’는 마음으로 임하면 더 좋을 것입니다.” 

 

거사님은 아비라기도를 성철 스님의 등가원리(E=mc2) 법문과 같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무도 불교와 과학을 함께 말하지 않을 때 성철 스님이 등가원리를 설명했던 것처럼 아비라기도 역시 ‘기도 중의 기도’라는 것이다.  

 

“고심원에서 100명이 함께 하면 1만 명이 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거두는 것이 바로 아비라기도입니다. 등가원리, 양자역학의 실재가 바로 아비라기도인 셈입니다. 대중기도의 가피가 있기 때문에 기도를 해보면 엄청난 에너지를 받는 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백련암은 돈오돈수 문중의 큰집”

 

거사님은 아비라기도에 대한 설명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또 백련암 가풍에 대한 기대와 바람도 숨기지 않았다. 특히나 돈오돈수(頓悟頓修) 가풍의 확산을 강조했다.

 

“백련암은 큰스님의 돈오돈수 가풍을 이어가는 큰집입니다. 큰스님의 가르침이 더 확산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 공부인들이 꼭 봐야할 성철 스님의 법어와 경전 몇 권을 추천했다. 

“얼마 전 원택 스님의 원력으로 『명추회요』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큰스님의 당부와 원택 스님의 의지가 온전히 녹아있는 책입니다. 저는 『종경록』 100권을 압축한 것이 『명추회요』이고 또 다시 여기서 핵심만 뽑은 것이 『선문정로』라고 생각합니다. 수행자라면 얼마나 『선문정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출재가를 막론하고 『선문정로』는 모두가 필독해야 할 우리 선문(禪門)의 지침서입니다. 

 

또 『육조단경』도 반드시 봐야 합니다. 성철 큰스님께서도 항상 육조 스님의 말씀을 전하고 계십니다. 저는 큰스님이 육조 스님의 후신(後身)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육조 스님과 큰스님의 가르침은 다르지 않습니다. 

 

 

산청 겁외사에서 열린 방생법회에 참석한 영암 거사님과 대중들이 원택 스님의 법문을 듣고 있는 모습.

 

 

덧붙여 재가자라면 『유마경』도 철저히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대중화 됐지만 백련암은 이미 오래전에 재가자들한테 법복을 입도록 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재가자도 공부하면 깨달을 수 있다고 가르치셨어요. 그런 점에서 『유마경』도 꼭 봐야 합니다. 위 세 가지 경전만 열심히 본다면 큰스님 종지에 어긋나지 않을 것입니다.” 

 

영암 거사님은 성철 스님이 핵심적으로 강조했던 것은 중도(中道)였다고 말했다. 거사님은 중도에 입각해 공부하면서 중도를 생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거사님은 백련거사림회 회원들과 함께 12월초에 인도불교성지 순례에 나설 예정이다. 부처님의 숨결이 살아 있는 성지에서도 거사님은 아비라기도를 정성스레 올린다. “제 모든 것을 받아주신 롤모델이자 큰바위얼굴 같은 성철 큰스님의 당부”에 어긋나지 않는 삶을 살려는 거사님에게는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일이다. 언제나 한결같은 영암 거사님의 원력(願力)과 정진에는 그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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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철주
백련불교문화재단 부장. 현대불교신문 기자,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월간 <불광> 기자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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