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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주인공의 삶]
『능엄경강화』와 함께 보낸 ‘지옥에서의 한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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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  2015 년 9 월 [통권 제29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4,202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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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매미소리에 찌다가도 어둠 속에서 울리는 귀뚜라미 소리에 절기의 은혜를 느낀다. 해마다 여름이면 더운 것이 당연하지만 올해는 문자 그대로 더위 먹는다는 말을 실감했다.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었지만 그래도 정신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운허 스님의 『능엄경강화』에 폭 빠진 덕분이었다.

 

스님은 평북 정주의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독립운동에 투신했다가 금강산에서 출가하셨다. 도올 선생님의 ‘독립운동사’에 의하면, 정주는 조선시대 과거시험에서 장원급제를 가장 많이 배출한 동네라고 한다. 게다가 동갑나기 육촌이 이광수인 걸 보면 문기(文氣)는 타고나신 듯하다.

 

스님은 평생 『능엄경』을 읽고 번역하고 강의하셨다. 『능엄경』과의 평생 인연은 젊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나고 얼마 뒤에 제방의 강사들이 모여서 각자 경을 하나씩 맡아서 전공을 삼자고 결의한 바, 스님이 『능엄경』을 맡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능엄 전담반으로 일생을 사셨다. 강의는 1950년대 범어사에서 시작했는데 스님이 『능엄경』을 강의하는 시간에는 선방의 수좌들도 많이 와서 들었다고 한다. 선을 닦는 데 기초가 되는 이론과 수행법을 설한 것이기 때문에 수좌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 같다. 이 경은 예부터 지금까지 강원의 교재로 쓰일 만큼 히트상품이자 스테디셀러이다.

 

‘능엄기신 동첩백십(楞嚴起信 動輒百十)’이라는 말이 내려온다. 『능엄경』과 『기신론』은 꺼내들기만 하면 주석서가 열 가지, 백 가지라는 뜻으로, 이 경의 위상을 짐작케 한다. 실로 대단한 분들의 주석이 많아서 공부를 시작하기도 전에 질리게 만든다. 원나라 때 천여유칙 선사가 당송 대에 나온 주석 중에 아홉 분의 작품을 가려 뽑아서 회편하고 자신의 의견을 붙여 『회해會解』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일종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다. 잘 알려진 계환의 『요해要解』, 장수의 『의해義海』 등이 담겨 있다. 여러 입장의 해석을 비교해 볼 수 있기 때문에 텍스트로 많이 유통되었던 듯하다.

 

그 뒤 명나라 때 진감 선사가 이것을 자세히 검토한 후 20년이나 걸려서, 중간에 더위를 먹었는지 기절했다 깨어나기도 하면서 『정맥소』라는 주석을 썼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을 존경하는 척 하면서 ‘모두까기’한 작품이다. “이런 저런 종파의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경의 맥락에 의지했다”고 하는, 경안에 대한 자신감이 보이는 또 하나의 종결자이다.

 

운허 스님은 이 소를 좋아하셨다. 『강화』 곳곳에 소개하면서 “내가 이러니 정맥소에 반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할 정도로 빠져 계신 걸 확인할 수 있다. 누구에겐가, 무엇엔가 반해서 평생을 지낼 수 있다면 복 받은 인생이다. 스님은 범어사에서 강의하던 때부터 번역에 착수하여 역경원장을 지낼 때 번역본을 냈고, 그 뒤에도 손에서 놓지 않고 계속 고치셨다. 잘못된 곳을 발견하고 하나씩 고칠 때마다 매우 기뻐하셨다고 한다.

 

스님을 직접 뵌 적은 없고 봉선사를 드나들면서 얻어들은 이야기로 어떤 분인지 대강은 알고 있었지만 몇 달째 『강화』를 보면서 직접 만난 착각이 든다. 녹음테이프를 풀어 만든 책이라서 그런지 육성을 듣는 느낌이다. 번역도 어찌나 깔끔하게 하셨는지 모른다. 전문용어는 한자 그대로 두고 서술어는 과감하게 풀어주어, 고전의 맛이 살아있으면서도 고루하지가 않다. 필요한 곳마다 계환소와 정맥소의 차이를 구분하면서 소가(疏家)의 해석을 경문에 맞추어 보도록 설명을 해놓았다. 가끔 번역에 대한 의견을 피력해 놓은 곳도 있다.

 

“글자 하나라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되며, 분명하게 뜻을 알고 남이 물으면 대답할 만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번역을 할 게 아닙니까? 그냥 볼 때는 모르고 지나가도 되지만, 번역할 때는 모르고 지나가서는 안 됩니다. 본뜻대로 번역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경에 대한 존경심은 물론, 한 땀 한 땀 심량(心量)을 다하는 장인정신을 볼 수 있다. 논리가 복잡해서 접근하기 쉽지 않은 경이지만 스님의 친절한 강화를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알아듣는 대목도 생긴다. 전달이 되도록 설명하려고 얼마나 애쓰셨는지 느껴진다. 부처님이 까맣게 어린 동생 아난을 쥐 잡듯이 잡는 대목에서는 그 장면이 중계방송을 보듯 전해지니, 경가(經家)로서 스님의 면목이 십분 발휘된 책이라 할 만하다.

 

이 분의 제자로 역시 평생을 역경사업에 바치신 분이 지금의 봉선사 조실 월운 큰스님이다. 번역에 관해 늘 하시는 말씀이 있으니 “알고 하면 전달이 되고, 모르고 하면 전달이 안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해 보면 이 말을 실감할 수 있다. 뜻을 이해하면 글자 한두 개 생략하거나 도치해도 전달이 되고, 소화 안 된 채 번역하면 원문 그대로 옮겨놓아 봤자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훌륭한 스승 밑에서 평생을 연마하신 분의 간단한 한마디가 번역하는 사람에게 최고의 지침이 된다.

 

얼마 전 봉선사에 갔을 때 조실스님 계신 다경실 입구에 ‘楞嚴道場’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것을 보고 감회가 일었다. 계속 거기 걸려있었을 것이나 이제야 눈에 들어온 것을 보면, 이것이 운허 스님의 도력인가 보다.

 

조실스님이 무얼 하고 지내느냐고 물으시기에 『능엄경강화』를 읽는다고 근황을 말씀드렸다. 눈 없는 해파리가 새우에 의지해서 먹이를 얻듯이 운허 스님의 강화가 제게는 그렇다고 경의 말씀을 인용해서 읽은 티를 팍팍 냈더니, 깔깔 웃으며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내친김에 장래희망도 살짝 공개했다. “스님, 제가 불경서당을 차릴까 합니다.” ‘네까짓 게?’하는 표정으로 힐끗 쳐다보시더니 늘어지게 하품을 하신다. “어떤 골빈 놈이 요즘 세상에 그런 걸 하고 있어? 그 서당, ‘골빈나존자 불경서당’이라고 해야겠구먼.”이라고 이름까지 지어주셨다.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서당을 차리면 이 이름을 쓸 참이다. ‘골빈나’가 ‘골빛나’가 될 때까지 연마하여 스승의 은혜를 갚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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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불교학을 전공하였고, 봉선사 월운 스님에게 경전을 배웠다. <선림고경총서>편집위원을 역임했고 『승만경』, 『금강경오가해설의』, 『송고백칙』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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