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림별어]
버섯 때문에 깨달음을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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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철스님 / 2015 년 9 월 [통권 제29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4,508회 / 댓글0건본문
추석날 아침에 송이버섯국을 먹다
해인사 부엌을 담당하는 원주스님은 명절이거나 뭔가 기념해야 할 만 한 일이 생기면 반드시 송잇국을 내놓는다. 향기에 민감하지 못한 이에게는 가격대비 만족도(요샛말로 가성비)가 높은 음식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대중들은‘송이버섯국’이라는 귀한 이름만으로도 나름 위로를 받는다. 아침공양을 마친 후 방 앞의 마당에서 서성거리며 송이버섯에 대한 이런저런 기억을 더듬어 객담삼아 삼아 한 마디씩 보탰다.
소나무가 많은 가야산을 하루 종일 헤매다가 겨우 몇 개를 손에 쥐고 돌아와‘송이라면’을 끓여먹었다거나, 버섯이 많다는 소문을 듣고 인근 거창지역의 미녀봉까지 샅샅이 뒤졌는데 결국 빈손으로 왔다거나, 오랫동안 열심히 온 산을 찾았건만 아직 한 번도 내 손으로 송이를 캐 본적이 없다는 실패담까지 몇 가지 일화가 쏟아졌다. 앞사람은 그냥 지나갔는데 뒤따르던 사람이 발견했다는 사실에서 보듯 버섯도 인연이 닿아야 만날 수 있다는 말에 공감했다. 시리즈는 꼬리를 물었다. 땅 속에서 난다는 송로버섯은 세계 3대 요리 식재료로 대접받는데, 사람 눈으로는 도저히 찾아낼 수가 없기 때문에 후각이 발달한 개나 돼지를 앞세워 채취한다는 박학다식한(?)영역의 얘기까지 나왔다.
어쨌거나 송이버섯도 이제 수입산으로 인하여 흔한 버섯이 되었다. 그리고 사하촌 식당가에 가면 일년 내내 보관할 수 있는 냉장기술 덕분에 언제든지‘자연산’송잇국을 맛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이름 값 덕분에 여전히 귀한 음식으로 대접받고 있다. 올 추석날 아침에도 어김없이 송잇국이 나올 것이다.
본래 버섯은 누구나 볼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1000여명의 식솔을 거느린 고대 인도의 엄청난 부자인 정덕(淨德) 장자는 매우 넓고 또 아름다운 정원을 소유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정원 안의 제일 잘 생긴 나뭇가지에서 버섯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식구들의 2000여개 눈에는 그 버섯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직 장자의 두 눈에만 보일 뿐이었다. 게다가 1인분의 분량만 나오는지라 요리를 하더라도 오직 혼자만 먹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도대체 무슨 인연으로 이렇게 맛있는 버섯을 나 혼자만 먹을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얼마 후 둘째아들의 눈에도 그 버섯이 보이기 시작했다. 젊은 까닭에 식성이 좋은지라 그 버섯을 몽땅 따서 한꺼번에 먹어 치웠다. 이내 버섯의 약효가 나타났다. 몸은 가뿐해지고 경솔함과 함께 난폭한 성격이 없어졌으며,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마음의 안락까지 얻게 되었다. 칠순의 부친은 맛만 음미했지만 젊은 아들은 몸과 마음까지 치유된 것이다.
1000명 가운데 두 사람만 볼 수 있었던 이유
이 기이한 현상을 궁금하게 여기던 아버지와 아들에게 어느 날 제바(提婆) 존자가 찾아왔다. 그는 인도 전역에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대 선지식이었다. 아울러 전생까지 볼 수 있는 숙명통(宿命通)까지 갖추었다. 저간의 사정을 설명한 후 그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오래 전에 장자의 집에 항상 탁발을 다니는 스님이 있었다. 올 때마다 반갑게 맞이했고 정성스럽게 밥상을 차렸다. 둘째아들은 탁발승이 자기 집의 대문을 나설 때까지 곁에서 잘 보살폈다. 매일같이 오니 나머지 1000여명 식구들은 그냥 데면데면하거나 본체만체했다. 그런 과정이 30년 동안 반복되었다. 그 스님은 입적했고, 결국 그 동안의 얻어먹은 빚을 갚기 위해 이 나무의 버섯으로 태어났다고 설명해 주었다. 장자의 나이를 물으니 79세라 했다. 81세가 되면 더 이상 버섯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까지 덤으로 알려 주었다.
30년 밥값이 3년의 버섯 값에 해당되는 것이니 그 때도 버섯 가격은 한끼 가격의 열 배였던 모양이다. 이런 인연으로 둘째아들은 수행자의 길을 향해 출가를 결행했다. 이가 뒷날 선종 제16조가 된 라훌라다 존자이다.
버섯국을 먹다가 깨친 놈이 등장하다
부처님께서는 오래 전에 이 사건에 대한 예언을 『보림전』 권3에 남기셨다.
“내가 열반한지 5백여 년 후에 어떤 큰 인물은 버섯으로 인해 깨달음을 얻으리라
(五滅度後 二五百年中 有大菩薩 因耳而寤. *耳:버섯 이)”
조선시대 서산 대사는 낮닭 우는 소리에, 일제 강점기 시절 용성 선사는 다리 위를 지나며 흐르는 물을 보다가, 해방 무렵 범어사 동산 스님은 대나무 잎 위로 바람이 쓸고 가는 소리에 깨쳤다고 한다.
이제‘발칙하게’한 마디 더 보태야겠다.
“내가 열반한지 2500년 후 추석 무렵에는 송잇국을 먹다가 깨달음을 얻는 놈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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