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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림별어]
수구초심, 고향을 그리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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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철스님  /  2015 년 8 월 [통권 제28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4,43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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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영정으로 이어지다

 

가전 김호석(可田 金鎬䄷, 1957~ ) 화백은 1994년 성철(1912 ~1993) 스님 영정제작을 맡으면서 해인사와 인연을 맺었다. 화가를 원택 스님에게 소개한 이는 원로 사진작가 주명덕(1940~ ) 선생이다. 주 선생은 성철 스님 사진 작업을 위해 1980년대 후반부터 적지 않는 세월동안 해인사를 드나들었다. 그 결과물이 『포영집(泡影集)』이다. 해인총림 전성기시절의 성철, 혜암(1920~2001), 법전(1926~2014), 일타 스님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명첩(名帖)으로 남았다. 이후 사진을 그림으로 이어가는 일은 후학들에게 알게 모르게 계승되었다. 향적 스님 역시 김 화백에게 의뢰하여 스승인 일타(日陀,1929~1999) 스님 영정을 지족암에 모시기에 이르렀다.

 

지관 스님의 영정을 뵙다

 

얼마 전 교계신문(현대불교 2015.7.16.)에서 지관(智冠, 1932~2012) 스님의 영정을 뵙게 되었다. 물론 김호석 화백의 작품이다. 작가의 글이 함께 실려 있다. 4점을 그렸다고 했다. 물론 마지막 작품 1점을 제자들이 모셔갔다고 한다. 그런데 퇴짜 맞은 3점은 당신이 소장하고 있었다. 글의 뉘앙스를 보아하니 모르긴 해도 그 가운데 가장 당신 마음에 드는 역작이 포함되어 있는 모양이다. 작가의 안목과 의뢰자의 기대감이 일치할 수 없는 것이 중생세계인 까닭이다. 후일 전람회장에서 볼 수 있는 날을 기다려야겠다. 

 

영정작업을 위해 생전에 4번 친견기회를 가졌다고 했다. 조계사 총무원장 집무실, 오래 머물렀던 서울 정릉의 경국사, 그리고 당신의 원력이 서려 있는 서울 명륜동 가산불교 문화연구원 그리고 함께 식사한 소공동의 어느 식당이었다. 모두 그림을 위한 자리였다. 스케치와 스냅사진을 찍으며 작가는 스님의 인상에 대하여 메모를 남겼다.

 

“첫 느낌은 건장함과 단단함이었다. 골격은 크고 굵었으며 움직임에 여유를 더하여 기품이 있었다. 얼굴은 수려했고 얼굴빛은 맑았다. 만면에 미소를 머금었고 몸으로 체득한 온화함이 있었다. 그러면서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동공의 뽓뽓함 속에서 고집과 집념 그리고 의지와 근기 등이 내밀하게 감추어져 있음을 직감으로 알았다. 얼굴은 이목구비가 또렷했고 콧날과 귀가 컸다.”

 

생가터에 보은탑을 세우다

 

지관 스님 생가터에서 탄신다례가 열린다(2015.6.26.)는 전갈을 받았다. 동대구역에서 포항행 KTX에 올랐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가산불교문화연구원 식구들과 합류했다. 청하면 유계리 목적지에 도착하니 경주 이씨 문중어른들도 자리를 함께 하고 있었다. 스님은 출가 후 속가의 친인척 인연을 멀리했으며, 고향도 60년 만인 2010년 처음 찾았다고 한다.

그 소회를 이렇게 남겼다.

 

 


지관 스님이 세운 고향 방문 기념비 

 

 

“유계리 이 자리는 이 몸 받아 태어난 곳/나기 전에 뉘였으며 난 후에는 누구인가……. 60년 지난 후에 고향 땅을 밟아보니/고향마을 유계리는 물속으로 잠기었고/태어난 집터에는 벼 뿌리만 총총하네.”

 

이후 600여 평의 터에 3,200여 자의 ‘고향방문 기념비’를 세웠고, 그 주변을 공원으로 조성한 후 ‘보은원(報恩苑)’이라고 명명했다. 조부모님과 부모님 4기의 묘를 화장한 유골을 모시고 그 위에 보은탑을 건립한 까닭이다. 정자에는 남양주 광릉 봉선사 주지 정수 스님의 글씨인 ‘보은원’ 현판이 걸려 있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고 했던가. 비문 마지막에 ‘경주 이씨 37대손’임을 당신 스스로 기록했다. 이 불사를 마친 뒤 1년 후에 스님께서도 세연을 다하셨다. 

 

육조혜능 선사는 생가에 절을 세우다

 

혜능(慧能, 638~713) 선사는 임종하기 1년 전에 고향 생가에 국은사(國恩寺, 현재 광동성 신흥)를 창건한다. 여기에 머물면서 부모님 은혜를 기리기 위해 보은탑을 건립했다. 부모님을 함께 모신 돌로 만든 묘도 현재까지 경내에 남아 있다. 하지만 『보림전』에는 선사께서 생가를 절로 만들었다는 국은사 기록은 찾을 수가 없다. 안타깝게도 스님의 전기가 실려 있을 9권과 10권이 유실되어 현재 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은사 경내에 있는 육조 스님 부모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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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철스님
원철 스님은 해인사, 은해사, 실상사, 법주사, 동국대 등에서 경전과 선어록을 연구하고 강의했다. 그리고 일간지와 교계지 등 여러 매체에 전문성과 대중성을 갖춘 글로써 주변과 소통해왔다. 『할로 죽이고 방으로 살리고』『절집을 물고 물고기 떠있네』등 몇 권의 산문집을 출간했다. 번역서에는『선림승보전』상·하가 있으며, 초역을 마친『보림전』의 교열 및 윤문작업 중이다. 조계종 불학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해인사승가대학 학장(강주) 소임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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