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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암 거사와 배우는 유식]
유식은 왜 어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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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암  /  2018 년 9 월 [통권 제65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4,346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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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과 사찰의 교양대학에서 오래 동안 ‘유식’을 가르쳐 왔습니다. 일반독자를 위해 알기 쉽게 설명한 유식 관련 저서·역서도 적지 않게 펴냈습니다. 최대한 알기 쉽게 설명한다고 했는데 “너무 어렵다, 좀 더 쉽게 설명해 줄 수 없나”라는 말들이 돌아올 때 마다 저는 엄청난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지금도 강의를 마치고 ‘내용을 알아듣겠습니까?’ 라고 질문하면, ‘잘 모르겠다’는 똑같은 대답이 돌아옵니다. 9월 초 어느 사찰 불교대학에서 유식 강의를 하려고 합니다만, 아마도 비슷한 대답이 돌아올 것으로 생각됩니다.

 

유식唯識 3년, 구사俱舍 8년 

 

사실 불교 전공학자들도 유식을 어려워합니다. 독자들께서 유식을 어려워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유식이 이렇게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유식이 어려운 이유를 설명 드리고자 합니다. 

 


스리랑카 마틸레 알루비히리 사원의 불상. 사진: 이인환 불자 제공

 

선종만 살아남은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에는 지금도 종파불교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유식 종파인 일본 법상종에는 ‘유식 3년 구사 8년’(주1)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유식’이라는 말은 다음에 설명하기로 하고, 우선 ‘구사’란 어디서 온 말인지 설명 드리겠습니다. ‘구사’란 유식불교를 완성시킨 세친 보살(400∼480)의 저작인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이하 『구사론』약칭)이라는 아비달마[부파불교, 소승불교]를 대표하는 문헌에서 따온 말입니다. 현재 한국불교계는 『구사론』을 ‘소승불교’ 문헌이라고 하여 폄하하는 분이 많습니다만, 『구사론』은 전통적으로 불교를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읽어야 할 아주 중요한 문헌입니다. 

 

첨언하자면 아비달마abhidharma란 ‘~의 방향으로, ~까지, ~를 위하여, ~에 대해서’라는 의미의 접두어 아비abhi와 가르침 · 법칙 · 규칙 · 진리 등을 의미하는 다르마[dharma:한역에서는 법法]가 합쳐진 말입니다. ‘아비달마’라고 하면, 동북아시아 불교 권에서는 부파불교나 소승불교를 떠올립니다 만, 이것은 대단히 편협된 견해입니다. 왜냐하면 초기불교 경전에는 아비달마적인 요소가 이미 상당히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현재 남아있는 초기경전도 역사적으로 부처님이 생존하고 계실 때에 기록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말로 부처님 시대부터 아비달마적인 요소가 있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비달마적인 시도는 꽤 초기 단계부터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리고 아비달마=소승불교=부파불교를 동일시하는 관점은 적어도 학문의 세계에서는 성립할 수가 없습니다. 현재 서구의 불교학계에서는 부파불교를 불교의 주류로 보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주류는 이전부터 부파불교이고, 대승불교가 흥기하였어도 그것은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견해를 따르면 부파불교나 아비달마를 ‘소승’으로서 작고 열등한 것으로 보려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대승불교가 유행한 동아시아적인 편견인 것입니다. 

 

유식학파 자신들도 대승의 아비달마라는 것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대승아비달마경』이나 『대승아비달마집론』이라는 문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승아비달마경』이라는 경전은 현존하지 않지만, 무착보살의 저작인 『섭대승론』 등 유식학파의 중요한 문헌에 인용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대승아비달마’라는 제목에서 보면 유식학파가 강하게 아비달마를 의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비달마=부파불교, 아비달마=소승이라는 고정관념이 아니라, 아비달마를 보다 폭넓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독자들께 ‘소승’이라는 차별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대신에 ‘남방불교’나 서양학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테라바다’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보통 ‘유식 3년 구사 8년’이라고 하면, 『구사론』을 8년 공부하면 유식 공부는 3년으로 끝낼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물론 이런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숫자, 즉 3년이나 8년이라는 ‘시간’이 아닙니다. 유식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먼저’ 『구사론』을 공부한 후에 유식을 공부해야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그것을 정밀화한 아비달마불교[구사론]의 가르침에 의지하면 의외로 유식을 명확하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구사론』을 근거로 삼지 않으면 유식을 바르게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커다란 오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는 뜻입니다.

 

사실 『구사론』을 이해하는 것은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국불교에서는 출가자든 재가자든 『구사론』 공부를 무시(?)하고 바로 유식, 화엄, 선, 천태 등을 공부합니다. 『구사론』에 대한 이해 없이 유식을 공부하면, 유식은 어렵고 번쇄한 것으로 치부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으며, 그 내용을 이해하기도 어렵습니다. 『구사론』에 대해 설명할 수 없으므로 유식을 자세하게 알고 싶은 분은 우선 『구사론』에 관한 간단한 개론서를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주2)

 

유식 용어는 너무 어려워!

 

유식에 접근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유식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너무 어렵다는 것입니다. 유식에서 사용하는 독특한 용어들은 해당 부분에서 자세하게 설명하겠습니다만, 우선은 세친 보살이 유식사상을 30개의 게송으로 간단하게 저술한 『유식삼십송』에 등장하는 독특한 용어 몇 개를 언급해 보겠습니다. 독자 분께서는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용어가 몇 개 등장하는지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식識, 식전변識轉變, 이숙異熟, 사량思量, 요별경식了別境識, 아뢰야식, 일체종자식, 훈습, 습기, 종자, 종자생현행, 현행훈종자, 집수執受, 작의作意, 무부무기, 말나식, 아치, 아견, 아만, 아애, 유부무기, 전오식, 심소, 변행, 별경, 수번뇌, 부정, 촉, 작의, 수, 상, 사, 욕, 승해, 념, 정, 혜, 신, 참, 괴, 경안, 탐, 진, 치, 만, 의, 한, 혼침, 방일, 산란, 변계소집성, 의타기성, 원성실성, 유식성 등등 ….”

 

여러분 어떻습니까? 몇 개 정도 이해하고서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시는 분도 있을 것이고 …. 1개 정도 설명할 수 있는 분, 많아봐야 2∼3개 정도. 그렇다고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하나하나 꼼꼼하게, 여러분께 설명하고자 합니다. 독자들께서 준비하실 것은 단지 눈과 적당한 호기심만 가지고 읽어 주시면 됩니다. 

 

여러분의 이해를 돕고자 위에서 열거한 유식의 용어 중에서 ‘훈습薰習’이라는 말을 우선 설명해보겠습니다. 훈습이란 ‘보존하다, 두다, 머무르다’라는 뜻의 동사 √vas(바스)로부터 파생된 명사 ‘바사나vāsanā’의 번역어입니다. 한자 의미를 설명하자면, 훈薰이란 ‘향기’, ‘(연기가) 스며들다’라는 뜻인데, 훈제고기를 만들 때를 상상해 보세요. 훈제고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밀폐된 공간에서 고기에 연기를 천천히 스며들게 합니다. 연기 냄새가 고기에 배어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습習이란 깃 우羽+일 백百 자가 합친 글자로 ‘새끼 새가 어미 새의 나는 모습을 보고 자기도 날기 위해 백 번百 날개 짓羽을 했다’는 의미입니다. 새끼 새가 날개 짓을 백번만 했겠습니까? 백번이라는 것은 상징적인 표현으로 아마도 수천 번을 반복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익힐 습習, 즉 반복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훈습이란 반복해서 한 행위의 결과[종자]가 점차 쌓이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행한 행위의 결과[종자]가 점차 훈습되는 장소는 아뢰야식입니다. 그리고 저장되는 것은 인간 행위의 결과물인 종자입니다. 

 

마찬가지로 긴 시간 사찰에 머물면 향香냄새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옷에 스며듭니다. 또는 코트를 입고 새벽에 안개 속을 걸으면 코트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촉촉하게 젖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처럼 훈습이란 언제부터인지 알 수도 없고 또 명확하게 알아차릴 수 도 없지만, 확실하게 우리들의 인격 속에 침투하고 우리들의 인격과 세계를 형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우리의 인격 근저[아뢰야식]에 새로운 경험이 쌓이는 것에 의하여 인격이 새롭게 되며 또한 자기를 생기시키는 원동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습習과 관련된 제 할머니 일화를 소개하겠습니다. 돌아가신 할머니는 99년 6개월을 사신 분인데, 한 번도 며느리나 자식, 손자에게 화를 낸 적인 없는 아주 온화한 분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제가 하는 일이 잘못되어 울거나 심하게 짜증내면 할머니께서는 경상도 사투리로 늘 ‘니 습인데 우짜겠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저는 ‘습’이 무슨 의미인지 전혀 몰랐는데, 불교[유식]를 배우면서, 정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손자에게 ‘전생이든 현생이든 자신이 한 반복된 행위로 이런 결과가 왔다. 그러니 지금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는 의미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유식에서 사용하고 있는 ‘훈습’과 그 의미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의식은 못하지만, 생활 속에서 무심결에 유식 용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훈습을 설명하는 중에 벌써 의미를 모르는 단어가 2개(아뢰야식, 종자)나 등장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해도 포기하지 마시고 체크해 두십시오. 차례로 자세하게 설명하겠습니다. 동시에, 참선 · 명상meditation할 때 반드시 나타나는 다양한 ‘마음작용[심소]’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설명할 생각입니다. 수행의 원동력인 선한 마음작용(믿음 · 부끄러움 · 수치심 · 노력), 깨달음을 얻고자 하면 언제나 나타나 방해하는 번뇌(욕망 · 분노 · 미움), 수행 중인 수행자나 재가신자에게 반드시 나타나는 수번뇌隨煩惱(산란 · 질투 · 원한 ·게으름) 등을 꼼꼼하게 기술해 수행 · 신행 생활에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주)

1) 이 말은 ‘도율삼년桃栗三年 시팔년柿八年’에서 유래한 말로 ‘봉숭아[桃]와 밤[栗]은 3년에 수확하고, 감나무[柿]는 수확하는데 8년 걸린다’는 뜻입니다. 즉 결과는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2) 아비달마에 대한 좋은 개론서로, 도서출판 민족사에서 출간된 권오민의 『아비달마불교』나 사쿠라베 하지메의 『아비달마 철학』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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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암
불교학자. 유식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유식삼십송과 유식불교』·『마음공부 첫걸음』·『왕초보 반야심경 박사되다』·『범어로 반야심경을 해설하다』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마음의 비밀』·『유식불교, 유식이십론을 읽다』·『유식으로 읽는 반야심경』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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