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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월 거사의 백련암 소식]
불성에 자양분 대는 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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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퇴월  /  2018 년 9 월 [통권 제65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4,633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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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퇴월 / 불교 언론인

 

현역 기자 시절에 낯선 곳에로의 취재는 늘 흥미진진하면서 긴장감이 더했다. 이번 백련암 취재는 그때보다 더 흥분되는 순간이었다. 현대한국불교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성철 큰스님은 나에겐 ‘레전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7대 종정으로 재임하던 중 1993년 11월4일 열반하시자 해인사는 날마다 인산인해를 이뤘다. 불교신문 기자였던 난 종단장宗團葬으로 치러진 영결식 1주일 내내 해인사에 머물며 빈소의 동정을 낱낱이 기록했다. 스님은 상상 이상의 메가톤급 인물이었다. 방송과 신문 등 언론은 다비식 날까지 연일 스님의 행장과 이력, 사상 등을 조명하는 기사를 다뤘고 조문현장의 세세한 모습까지 스케치해 보도했다. 한국불교계의 ‘살아있는 부처’로 거저 추앙받은 게 아니었다. 국민은 큰스님의 가심을 슬퍼했다. 진정으로 스님은 국민의 정신적 지주였고 의지였던 것이다.

 


25년 동안 산중대중공양을 해온 백련암. 신도들이 공양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난 이렇듯 큰스님이 주석하셨던 백련암을 가보지 못했다. 전국 사찰을 제법 헤매고 다녔다는 이력에서도 백련암은 제외였다. 그러니 불교신문 기자했다는 게 허당이고 허풍으로 남는 수밖에. 이런 처지에 늦게나마 백련암을 참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니 행운이며 감지덕지다. 더욱이 하안거 결제 중에 해인총림 전 대중을 상대로 백련암이 대중공양을 마련하는 자리라고 하니 그 전경이 미리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

 

7월23일 합천 낮 기온은 39도까지 치솟았고 기상정보에 따르면 이날 첫 열대야가 나타났다. 푹푹 찌는 여름 무더위에도 향긋한 솔내음과 당우를 호위하는 병풍바위가 오히려 시원함을 안겨준다는 백련암, 그러나 백련암도 가마솥더위에서 벗어나진 못했다. 야속하게도 일점 바람마저 아쉬운 판에 작열하는 태양은 오랫동안 가야산 하늘을 벌겋게 태우고 있었다.

 

백련암 아래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경내에 들어선 시간은 이날 오후 2시30분. 대적광전에 들러 참배를 마치자 그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됐다. 종무실에 들러 잠시 땀을 식힌 후 해우소를 찾았다. 해우소는 정념당 아래 공양간을 거쳐야 했다. 공양간에선 다음날 있을 산중대중공양을 준비하는 우바이들로 붐볐다. 각자의 자리에서 음식을 썰고 다듬고 나누는 손길이 바빴다. 무더위가 무색하리만치 기름불통에선 밀가루 옷을 입힌 인삼과 버섯이 뜨겁게 달구어지며 튀김요리로 재탄생하고 있었다. 본래 잔치집 부엌에 가면 시끌벅적하다. 수다와 바쁜 손놀림이 어지러운 시장판을 연상케 한다. 그런데 200~300명의 음식을 마련하는 백련암 공양간은 분주하면서도 질서정연하다. 시끄러운 듯하나 정적靜的이다. 대중공양 봉사를 위해 움직이는 50여 명의 우바이와 3명의 우바새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매우 잘 알고 있는 듯 익숙하게 곳곳에서 제 역할들을 해낸다.

 

특히 우바새들은 정예군처럼 높은 천장의 먼지와 거미줄을 제거하고 무거운 짐을 운반하는 등 자신들의 존재성을 은연중 과시한다. 세련된 하모니를 연출하듯 이렇게 신도들의 움직임은 자연스럽기 이를 데 없다. 수천 마리의 새가 일시에 하늘을 비상해도 서로 부딪히는 일이 없는 것처럼, 행렬과 무리 속에 있어도 부지런히 움직이는 개미들처럼 신도들은 익숙하게 대중공양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들의 움직임을 휴대폰 카메라로 담아내면서 어느덧 나 자신도 차분한 관찰자로 변해갔다. 그러다보니 경내 당우와 주변의 자연물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도량 마당을 떡 차지하고 있는 바위는 예사롭지 않다. 거북이 형상 바위 위에 부처님 옆모습을 닮은 바위, 불면석佛面石이라고 불린단다.

 

백련암을 둘러싼 산세山勢도 범상치 않다. 전해들은 말에 의하면 백련암은 용과 호랑이가 싸우는 형국이라 긴장감이 있고 우레를 칠 듯한 기상이 맴돈다고 했다. 과연 성철 스님이 왜 ‘가야산의 호랑이’로 불렸는지 알만하다. 물론 선객들과 신도들을 대하는 매서운 스님의 성품을 빗댄 별명이기도 하지만 당신이 주석했던 지리적 환경에서도 충분히 상징될 별칭이었으리라 짐작된다.

 

이날 신도들이 준비한 공양물은 총 12종류에 걸친 24개의 가짓수. 일일이 열거하면 이렇다. 메밀, 유부초밥 · 영양밥 · 김밥, 찐만두, 버섯 탕수이, 더덕구이 · 연근강정, 인삼튀김, 무초말이, 치즈김말이, 갓김치 · 배추김치, 장아찌(새송이 · 매실 · 우메보시), 과일(체리 · 용과 · 골드키위 · 수박), 떡(망개떡 · 흑미떡), 차(보리차 · 매실차), 물 등이다.

 


백련암 신도들이 대중공양허러 온 스님들에게 차를 대접하고 있다.

 

이들 음식은 오신채(五辛菜:불교에서 금하는 다섯 가지 음식물. 마늘, 파, 달래, 부추, 흥거)가 들어가지 않는다. 오로지 절집 전통양식의 재료만 사용한다. 특히 공양물은 각 파트를 나누어 팀장을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차려진다. 여기엔 그 공양물에 맞는 음식전문가가 투입된다. 공양물 제조를 맡은 한 팀장은 사찰음식 명장 1호 선재 스님에게 배운 신도들이 적지 않다고 귀띔한다. 재능기부자가 많으니 사소한 일로 다툴 일이란 거의 없다. 신도들이 좁은 공간에서 북적거려도 시끄러운 소리 내지 않고 공양물을 준비하는 광경이 그제야 이해가 된다. 또 신도들 사이에선 서로가 존중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있다. 18년째 대중공양 봉사에 참석하고 있다는 정덕심 우바이(부산 남천동, 고심정사 신도)는 “성철 큰스님 살아계실 때 지도받았던 노신도님들이 예닐곱 분 계시다.”면서 “이 분들의 묵묵한 헌신과 후배신도들이 잘 따라주는 게 차분하고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본래 백련암의 산중대중공양은 성철 스님의 열반으로 인해 처음 시작됐다. 큰스님의 입적 후 한 달도 안 돼 500여 명의 비구 비구니가 음력 10월 보름 동안거에 들어갔다. 49재는 동안거 결제 기간에 봉행됐다. 백련암은 수행대중들을 위해 음력 10월30일 또 11월1일 반산림을 맞아 산중공양을 베풀었다. 온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치러진 큰스님의 다비식 때 산중 대중들이 모두 애써 준 데 대한 답례였고 보답 차원이었다. 그것으로 대중공양이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해 해인총림을 찾아 하안거에 든 대중들이 “우리도 큰스님 다비식 때 있었다.”면서 “동안거만 하지 말고 하안거 때도 했으면 좋겠다.”는 청을 넣었다. 그렇게 해서 하안거 대중공양도 이루어졌다.

 


정갈하게 준비된 공양상

 

이후 몇 년 동안 동안거 대중공양은 대구 정혜사 신도들이, 하안거 대중공양은 부산 고심정사 신도들이 중심이 돼 봉행됐다. 지금은 하안거 대중공양이 죽 이어져 오고 있고 동안거 대중공양은 10년 전부터 중단된 상황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대구 부산 신도들이 더욱 합심해 팀워크를 다지며 수준 높은 대중공양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하안거 대중공양 날짜는 순전히 신도들이 의논해 결정한다. 음력 4월15일 아비라 기도가 있는 전날 신도들이 모여 날자를 잡는다. 이후 진행과정은 법호윤 신도회장을 주축으로 각 준비파트에 따라 팀이 만들어지고 팀장이 추대된다.

 

올해로 산중대중공양을 실시해온 지 25년째다. 24일 당일 아침 여전히 햇살이 뜨거웠다. 신도들이 각 당우마다 배치돼 분주한 모습이다. 모든 당우가 공양소로서 준비에 한창인 가운데 각 당우마다 차를 마실 다대茶臺도 따로이 설치됐다. 대중이 워낙 많은 이유다. 먼저 정념당 다각실엔 원로의장 세민 스님, 종진 스님, 무관 스님, 해인사 주지 향적 스님이 공양할 자리가 마련됐다. 정념당과 원통전엔 선방 대중들로서 비구 스님들이, 장경각은 비구니 스님들이 자리해 공양한다. 맨 왼쪽 대적광전 아래 관음전은 해인사를 비롯한 산내 암자 대중 스님들과 종무소 직원들의 공양 처소다.

 

부산 영도에서 왔다는 연지행 우바새. 올해로 차 대중공양을 맡아 봉사활동을 한 게 5년 째다. 그녀는 원통전 담당 차봉사자. 차를 선보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홍화’ ‘매화’ ‘연꽃’ 등 이런저런 종류로 진열해놓은 다대가 프로에 가깝다. 실제로 그녀는 부산지역에서도 다 전문가로 이름이 높다고 한다. 시원한 말차를 나에게 맛보라며 권한다. 맛이 가히 일품이다.

 

오전 9시30분 정도가 되자 대중공양을 위한 모든 세팅이 완료됐다. 일부 신도들은 백련암 현판 아래 입구에 내려가 대중공양을 위해 올라오는 스님들 마중에 일찍이 나섰다. 대중공양은 오전 11시 부처님께 올리는 사시공양, 즉 마지가 끝난 직후 시작된다.

 

10시를 넘으면서 백련암 입구가 바빠졌다. 삼삼오오 도반들과 담소를 나누며 올라오는 스님들은 마치 소풍 나온 학생들처럼 발걸음이 가볍다. 봉고차를 이용해 단체로 오기도 하지만 무리를 지어 걸어 올라오는 스님들이 대부분이다. 시간에 맞춰 산중 어른이신 원로회의의장 세민 스님과 종진 · 무관 · 향적 스님이 백련암에 함께 도착했다. 원택 스님이 일행을 맞이했다. 성철 스님 등상等像이 봉안된 고심원古心院에 들러 참배하고 내려온 일행은 바로 공양장소인 다각실로 이동했다. 이들 원로 중진 스님들에겐 여러 반찬과 함께 밥, 된장찌개, 자연송이국이 제공됐다. 동시에 다른 당우에서도 대중공양이 본격 이뤄졌다. 12종류 24찬이 뷔페식으로 차려진 가운데 이중 메밀은 시원한 육수와 함께 개인적으로 배급됐다. 메밀은 찰지고 고소할 뿐 아니라 시원하게 먹을 수 있어 가장 인기를 누렸다. 그냥 만든 게 아니라 전문가의 손으로 뽑은 메밀이라고 했다.

 

이날 준비된 공양물은 거의 다 비워졌다. 200명을 넘는 예상보다 많은 대중이 오기도 했지만 저마다 독특한 맛을 지니고 있어 모처럼 과식을 즐긴 탓도 있다. 백련암 대중공양이 봉행되는 날은 해인사 큰절과 암자들이 텅텅 비는 날이기도 하다. 큰 절 3직 이하 선원 율원 강원 대중이 모두 올라온다. 다시 말해 가야산 축제로서 대중 스님들이 백련암으로 소풍가는 날이다. 한 끼 맛있는 공양도 대접받고 성철 스님께 무언無言의 화두 점검도 받는다.

 

대중공양을 올리는 신도들도 기쁘긴 마찬가지다. 스님들에겐 일 년에 단 한 번 한 끼의 식사에 불과하지만 신도들로선 수 십 수 백 명이 몇 달을 준비해 이날 하루 전심을 다한다. 개개의 불성에 자양滋養을 대는 것 이상의 보람이 또 어디 있는가? 모든 것이 정성이고 낱낱이 불심이다.

 

대중공양이 끝나고 설거지까지 모두 마친 후 장경각에서 열린 팀장 평가회의에서 원택 스님은 고생한 신도들에게 위로와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리곤 내년 보수공사가 한창인 장경각이 완공되면 이를 기념하는 대중공양을 성대히 개최하자고 했다. 신도들은 보람을 안겨주는 대중공양 전통이 먼 훗날까지 계승될 수 있도록 자연스런 세대교체 등을 거론하며 이날 평가회의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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