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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의 장인을 찾아서]
한옥 짓는 건축가 대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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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리  /  2024 년 4 월 [통권 제132호]  /     /  작성일24-04-05 11:00  /   조회232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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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61호 대목장 목은 김영성

 

언젠가 나무와 관련된 사전집을 보다가 나무에 관련된 모르는 용어가 너무나 많은 데 놀랐고, 정감 있고 아름다운 용어가 많아서 또 한 번 놀랐다. ‘늘결’은 세로로 켠 나무의 면에 나타나는 무늬를 뜻하고, ‘빗꾀임’은 나무가 자랄 때나 제재하고 난 다음에 비뚤어지는 것을 말한다. ‘곧은재’는 직선으로 곧게 자란 나무를, ‘도끼벌’은 도끼로 다듬은 나무를 이른다. 

 

우리 정서에 깃든 나무로 지은 한옥

 

낯설지만 또 익숙한 느낌의 예쁜 우리말이다. 예전에는 사용해 왔던 말들이지만 이제는 잊혀지고 있는 말이고, 쓰임이 없다 보면 언젠가는 사라지는 말이 될 것이다. 나무를 다듬을 때 도끼보다 전기톱 사용이 대중화되었기에 AI세대들은 도끼의 형태나 쓰임을 이해하기도, 직접 만져 볼 기회는 더더욱 없을 것이다. 나무용어도 투박하게 나무를 다듬던 전통 공구도 하나둘 사라지는 모습이 아쉬울 뿐이다.

 

사진 1. 완주 화암사.

 

새로운 종류의 효율적이고 단단한 기자재가 넘쳐나는 시대에 나무를 사용하는 일은 상당히 느리고 비효율적인 일이다. 나무를 구하고 건조하고 다듬고 오랜 시간에 걸쳐 유지 관리하는 일에 대해 누군가는 시간적, 금전적으로 손해라고 해석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나무로 만든 기물에서 건축물까지 정서적 교감을 불러일으키는 그 따듯한 정서를 동경한다.

 

사진 2. 김영성 대목장의 아담한 한옥연구실.

 

편리하고 화려한 콘크리트 건물은 빠르게 지어질 수는 있겠지만 신종 공해를 유발하고 건물 수명도 백년 이내로 그리 길지 않다. 새로 지은 건축물의 건축자재에서 나오는 유해물질로 발생하는 신종 공해병인 ‘새집증후근’은 주로 사용되는 시멘트와 광택제, 접착제, 페인트, 석면 등이 인간을 해롭게 한다. 반면 나무와 돌, 흙을 기반으로 짓는 목조 건축물은 그 원자재가 자연에 가장 가까운 형태로 존재하기에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삶을 건강하게 하며 치유의 기능을 가진다. 

 

건축 기법에 있어서도 현대건축과 전통 목조건축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한옥을 지을 때 연결은 나무에 홈을 파고 틈을 만들어 서로 껴 맞춘다. 건축부재를 연결할 때 볼트와 너트를 사용하지 않고 못을 쓰지 않는다. 기둥과 보, 도리 등 수많은 목구조물들이 일정한 질서에 따라 단단하게 맞물리는 데서 오는 일체성의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사진 3. 목기연자리 톱 질하는 모습, 강진월남사지.

 

물론 이런 구조의 건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치밀한 수치 계산과 적확한 재단은 기본이다. 사용할수록 견고해지는 우리 한옥은 수백년에서 천년 이상의 수명을 유지할 수 있다. 우리가 사찰에서 머무는 시간을 편안해하고 궁궐을 산책하고 싶어 하고, 한옥 처마 아래서 쉬어 가는 것이 좋은 이유는 우리 정서 깊은 곳에 나무로 지은 한옥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건축을 지휘하는 총괄자, 대목장

 

건물을 새로 짓거나 수리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목수木手 또는 목공木工이라고 한다. 목공일은 건물의 주된 골조공사(기둥, 보, 도리, 공포, 창방 등)를 맡는 대목大木과 수장공사(창호, 난간, 가구, 조각 등)를 맡는 소목小木으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대목일을 하는 목공 분야의 기술 총책임자를 대목장大木匠이라고 한다.

 

사진 4. 목은이라는 법명을 받은 수계첩.

 

궁궐이나 사찰 등 한옥 목조 건축물을 지을 때는 초석을 까는 석수, 기둥을 세우는 목수, 기와를 씌우는 와장, 벽체를 바르는 미장 등 다양한 기술자들 간에 협조가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대목장은 이들 사이에서 공사 전체를 책임지고 감리까지 담당하며 건축의 중심적인 역할을 맡게 된다.

 

대목장은 한옥 건축의 시작에서 마무리까지 건물 짓는 일뿐 아니라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이 함께 합을 맞추어 무탈하게 일이 잘 진행되게 하는 총괄자이다. 대목장은 주변 환경과 건축물 전체의 특징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큰 안목을 지녀야 한다. 규모와 입지, 용도에 걸맞게 디자인하는 기술적 능력과 목재를 선정한 후 이음과 맞춤을 결구할 수 있는 모든 과정의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수하 목수들과 각 공정의 편수들에 대한 관리 감독까지 전체 공정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특별히 역량과 리더십이 요구되는 장인이다.

 

사진 5. 스승인 고택영 선생과 함께했던 작업자료.

 

한옥의 따듯한 시선을 읽는 대목장 김영성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에 자리 잡고 있는 김영성 대목장의 공방. 자그마한 한옥에 목은당木恩堂이라는 현판이 반갑게 맞이한다. 방안 한편에는 목은이라는 법명을 받은 수계첩이 고졸하게 붙어 있다. 익숙한 글씨체인가 싶더니 서울 길상사 공사를 하면서 인연이 닿은 법정스님께서 써주신 수계첩이라고 한다. “맑은 정신을 지니겠습니다.”라는 수계첩의 맺음말과 아담 소박한 목은당의 공간은 어쩐지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책과 상장, 감사패들이 가득한 사이로 근엄한 흑백 초상이 눈에 뜨인다. 김영성 선생의 스승인 해강海崗 고택영高澤永(1914-2004, 국가무형문화재 제74호) 대목장이다. 돌아가신 선생님의 초상을 곁에 두고 그리워하는 마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곡성에서 태어나고 자란 김영성 장인은 만 스무 살이 되던 1977년에 고택영 선생의 제자로 들어가 전남 순천 송광사 침계루 보수공사에 참여하며 전통 건축을 배우기 시작했다. 국가무형문화재인 고택영 대목장에게서 집을 짓는 기술뿐 아니라 집을 짓는 성품과 철학을 배웠노라는 그의 회상이 진지하다.

 

사진 6. 대들보를 조립하기 위해 목메로 보머리를 내려치는 모습.

 

“스승님께서는 여든이 넘은 연세에도 늘 정정하셨어요. 추녀목을 찾으러 전국을 다니셨고, 돋보기 없이 도면을 보시고 무병장수 하셨답니다. 근면한 생활습관과 소식이 일상이셨어요. 곧은 성품으로 업계 종사자들의 존경을 받으셨어요. 제자들에게 항상 당부하시는 말씀은 양심적으로 생활해야 한다, 항상 부지런해라, 일 욕심은 부려도 돈 욕심은 부리지 마라, 상량문에 이름 석자 남기는 것을 명예롭게 생각하라고 하셨죠.”

 

일생의 귀한 스승님을 이제는 직접 만날 수는 없지만 사진을 통해 그리고 함께했던 건축물을 통해 그 자취와 가르침의 뒤를 잇고 있는 김영성 대목장이다. 그는 곡성 관음사, 완주 화암사, 문수사 대웅전, 전주 객사, 연기 보림사, 용인 법륜사, 강진 월남사지, 곡성 두가헌 등 많은 곳에서 전통 건축물 보수와 신축 활동을 해오고 있다.

 

사진 7. 대들보와 충량이 결구된 모습, 강진 월남사지 주불전, 고려 중기의 건물 재현작품.

 

물론 전통양식의 기법을 후배 세대들에게 전수하는 일에도 전념을 다하고 있어 전남도립대학교에 이어 현재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서 후학들을 양성하고 있다. 무엇보다 기본기를 충실히 다잡고 현장에서 쓰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나무 한 조각도 허투루 사용되지 않는다. 나무가 크고 좋다고 해서 건축 배열에서 아무 곳이나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무의 성질에 따라 각기 맡게 되는 배치도 다르게 된다고 한다.

 

“나무의 성질에는 굽이와 등, 배가 있는데 나무가 자란 모양 그대로 살려 쓰는 것이 모양도 좋고 오랜 세월이 지나도 뒤틀림이 적어집니다. 직재는 나이테가 원목 중심에 있지만 곡재는 나이테가 한쪽 방향으로 몰려 있지요. 나이테가 좁은 쪽을 아래로 향하게 등이 위로 올라가게 쓰는 부재는 창방, 도리, 대들보, 종량, 하방, 중방, 사방이고요, 등이 아래로 향하게 쓰는 부재는 공포, 추녀, 사래, 장연 서까래, 평교대, 부연 등입니다. 나이테가 좁은 쪽을 위로 두는 기법으로 나무의 제 생긴 굽이에 따라 사용해야 한답니다. 나무의 특성을 거스르지 않고 어디에 변화가 생긴 것인지를 미리 파악하여 목재를 사용해야 세월이 흐르면서 아름답고 오래가는 건축물이 되는 것이죠.”

 

사진 8. 한옥 건축을 설명하는 목은 김영성.

 

김대목장이 한옥 건축에 있어 중요하게 생각하는 몇 가지 점은 우선 집을 지을 때 자연을 많이 훼손하지 말고 순리에 따라 건축하는 것이다. 이는 스승인 고택영 대목장이 강조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건축주 기준의 단편적인 가람배치보다는 차후에 건물이 증축될 것을 예측하여 기자재 및 배치를 충분히 고려하여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사진 9. 대목장의 공구.

 

또한 요즘들어 친환경, 힐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옥에서 살기를 원하고 한옥 짓기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한옥 내부에 편의성을 더하면서 생기는 단점도 생각해야 한다고 한다. 한옥 내부에는 원래 하수도 시설이 없었다. 마당의 우물과 외부 해우소를 사용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욕실과 화장실은 건물 내부에 있어야 생활이 편하다. 그러니 한옥을 지을 때도 편리성을 위해 양옥을 기준으로 집을 짓게 된다.

 

한옥 소재는 물에 약하다. 습기가 많아지면 곰팡이가 번식하기 좋고, 단열이 과할수록 자연통풍과는 멀어진다. 목조건물에 치명적이라는 흰개미들은 보이지 않는 목재 내부를 더 열심히 갉아 먹을지도 모른다. 또한 단열을 많이 하면 자연 소재의 맛이 떨어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인공 화학 성분을 포함하는 기자재의 비율이 높아지면 한옥 본연의 친자연적인 장점과는 멀어지게 된다. 한옥과 양옥의 완벽한 장점을 가지고 지은 집, 두 마리 토끼가 탐나겠지만 어느 정도의 비율로 자신의 취향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을 뿐이다.

 

사진 10. 용인 법륜사.

 

한옥은 분명 인간에게 건강한 생활을 영위하도록 도움을 준다. 인간과 자연이 상생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생활을 쾌적하게 유지하는 것은 기본이고 요즘 크게 이슈가 되고 있는 친환경이라는 주제에도 주목해 볼 만하다. 한옥은 친환경적인 흙, 돌, 나무에서 건축 재료를 구하여 쓰고 살다가 그 생명력이 다하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게 된다. 지구의 자연환경을 생각하자니 다시 한번 우리의 전통 건축 양식의 소중함을 일깨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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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리
중현中玄 김세리金世理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초빙교수. 한국차문화산업연구소 소장, 다산숲 자문위원. 성균예절차문화연구소, 중국 복건성 안계차 전문학교 고문. 대한민국 각 분야의 전통문화에 대한 애정 어린 연구 중. 저서로 『동아시아차문화연대기-차의 시간을 걷다』, 『영화,차를 말하다 』『길 위의 우리 철학』, 『공감생활예절』 등이 있다.
sinbi-101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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