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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의 장인을 찾아서]
손끝에서 피어나는 지화장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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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리  /  2023 년 11 월 [통권 제127호]  /     /  작성일23-11-04 20:44  /   조회67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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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지화 명장 정명스님 

 

지금은 사시사철 꽃시장에서 다양하고 싱싱한 꽃을 구하기 쉽지만, 예전에는 계절에 맞지 않고 기온이 떨어지면 꽃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꽃을 구하더라도 며칠 지나면 금세 시들어지기 마련이니 필요한 꽃을 원하는 시기만큼 놓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래도록 시들지 않을 장엄의 꽃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이 꼭 필요한 의례나 행사가 생겼으므로 사람들은 살아 있는 꽃을 대신할 만한 대체제를 마련하게 된다. 종이에 곱게 물을 들이고, 정성껏 손으로 생화와 같은 꽃을 만들었다. 지화紙花를 만들어 필요할 때면 언제라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시들 걱정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사진 1. 연꽃지화를 만드는 정명스님(좌). 사진 2. 생화만큼 정교한 백련지화(우).

 

우리 사찰 안에서도 지화를 쉽게 만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초파일에 다는 연꽃 연등이다. 연꽃으로 도량이 가득 차고 밤이 되어 꽃불이 수를 놓으면, 불자들의 마음에도 어느새 환희심이 가득해진다. 지화 장엄은 경외심을 담아 부처님께 올리는 정성스러운 공양물이다. 더욱이 불교에서의 지화는 한 송이 꽃도 살아 있는 생명이라 여겼기에 쉽사리 꺾지 않았던 불살생 정신이 담긴 전통 불교문화이다.

 

불가에서 꽃을 사용한 기록은 육법공양물의 꽃 공양이나 단을 장엄한 감로탱화를 통해 확인된다. 육법공양에서는 향香, 등燈, 화花, 과果, 차茶, 미米의 여섯 가지 공양물을 올린다. 모든 공양물을 정성을 다해 마련하겠지만, 진리를 향한 마음을 의미하는 꽃 공양의 경우 4가지 종류의 꽃에 견주어 부처님께 공양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모란牧丹·작약芍藥·홍련紅蓮·황국黃菊 등을 지화紙花로 만들어 공양해 온 전통이 있다. 감로탱화에는 지화로 보이는 꽃으로 장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쌍계사 감로왕도(1728년), 수락산 흥국사 감로왕도(1868), 봉은사 감로왕도(1892), 대흥사 감로왕도(1901), 수국사 감로왕도(1907) 등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사진 3. 어산상.

 

화사하고도 우아한 장엄미를 갖추어야 하는 지화는 의식절차儀式節次에서도 그 자태를 드러낸다. 의식무용인 나비춤을 출 때 손에 지화를 든다. 의식무용儀式舞踊을 행하는 것을 몸으로 법法을 작作한다고 하여 신업공양身業供養이라고 한다. 바라춤, 나비춤, 법고춤 등이 있으며, 이 중 나비춤은 불법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춤으로 공양을 올릴 때와 찬불을 할 때에 추게 된다. 지화 3송이의 묶음을 쥐고 춤을 추게 되는데, 왼손에는 모란을 오른손에는 작약을 잡고 법무를 한다. 이때 춤을 추는 지화는 마치 생화가 된 듯 생동감이 더해진다. 

 

부처님 전에 지화가 아름답게 피어나던 시절을 지나, 근대 이후 지화는 더 이상 피어나기 어려운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서양문화의 유입으로 제지공장이 세워지면서 양지가 대량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싸고 편리하게 사용되는 양지는 수요도 공급도 빠르게 늘어났다. 반면 수공으로 시간이 오래 걸리는 한지는 쇠퇴의 길을 맞게 된다. 양지는 펄프를 주재료로 삼아 만드는 과정에서 화학약품 처리가 되므로 공기 중에 노출되면 산성화로 인해 쉽게 변질된다. 내구성이 약한 단점을 가진다. 

 

사진 4. 재단 작약(좌). 사진 5. 재단 국화(중). 사진 6. 재단 연화(우).

 

지화를 제작하는 종이도 한지 대신 습자지, 색화지, 미농지 등이 대신하게 된다. 종이에 색을 들이는 염색도 자연 소재의 천연염료에서 쉽고 편한 화학염료를 이용하게 된다. 자연스러움을 추구했던 지화는 인공적인 느낌으로 바뀌었고, 게다가 생화의 이용이 늘어나게 되면서 전통지화의 맥은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다시 전통지화를 꽃피우다

 

경기도 청평 연화세계(한국지화연구소). 정명스님의 마당에는 작은 야생화들이 곳곳에 피어 있다. 이 꽃들은 지화를 만들 때 사용하는 천연염료의 재료가 된다. 애기똥풀이라는 이름의 백굴채白掘採는 노란 꽃을 피운다. 줄기를 꺾으면 신기하게도 샛노란 즙이 나온다. 꽃색소에 플라본이라는 성분이 있는데, 천연 항생제로도 사용된다고 한다. 살갗이 헐어서 생기는 각종 부스럼과 악성 종양 치료를 위해 사용되는데, 독성이 있어 식품으로는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같은 노란색 일지라도 치자는 선명하고 화사한 노란색을, 양파 껍질은 은근하면서 따듯한 노란색을 낸다. 애기똥풀의 노란색은 깊고 온화한 느낌을 주니 천연에서 얻어지는 염료는 소재에 따라 각기 다른 색감으로 발색한다. 천연염료의 매력은 색감의 다채로움, 그것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 내구성에 있으니 지화의 생명력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사진 7. 천연염료의 재료 애기똥풀(좌). 사진 8. 천연염료의 재료 자주달개비(우).

 

사찰 연화세계 주지로 있는 정명스님은 한국 최고의 지화의 장인 승화장僧花匠이다. 스님은 40년 동안 연꽃등 만드는 한길을 걸어가고 있다. 청정, 신성, 순결을 상징하는 연꽃은 부처의 자비와 지혜, 진리를 상징한다. 정명스님은 매년 열리는 연등행렬과 연등회에 쓰이는 연꽃등을 만들어 왔고, 큰스님들의 열반의식 등 불교계 주요 행사에서도 꽃 장엄을 해왔다. 손에서 하루도 연꽃을 놓는 날이 없었다. 연등회 행사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이 되면서 스님의 역할은 더 중요해졌다. 스님의 연꽃 만들기의 시작은 부처님께 어여쁜 연꽃 한 송이를 올리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연꽃등을 처음 만들기 시작한 40년 전에는 주로 비닐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등을 사용하고 있었어요. 설령 종이로 만들었다 해도 연꽃잎을 하나하나 만들어 붙인 게 아니라 종이 한 장을 뼈대에 붙인 아주 단순한 것이었어요. 그때 연꽃이랑 똑같이 생긴 등을 만들어서 부처님께 올리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연꽃등 재현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우선 염색을 천연염색으로 바꾸었어요. 노란색은 치자를 사용했고, 분홍색은 홍화꽃을, 붉은색은 소목蘇木을 사용했어요. 염색물이 강해서 지문이 다 닳았지만 색이 잘 나오면 참 좋았어요.”

 

사진 9. 정명스님과 지화.

 

지화 만드는 한지의 종류도 다양한데 전통한지와 개량한지의 차이는 상당히 크다고 한다. 전통한지는 닥나무의 인피 섬유를 사용하는데 닥나무 섬유 길이는 보통 20~30㎜이상으로 개량한지에서 사용하는 목재펄프보다 10배 이상 길다. 섬유 길이는 섬유 결합에 영향에 미쳐 보다 질긴 종이를 만들 수 있게 하는 요인이 된다.

 

또 전통한지는 닥나무를 삶을 때 화학약품을 사용하지 않고 콩대, 메밀대 등을 태운 잿물을 이용한다. 잿물은 섬유의 내구성을 강하게 유지하게 하니, 전통지화가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이유이다. 물론 그만큼 손이 많이 가고 힘이 드는 부분이 있다. 지화 제작에 미농지, 노루지, 화선지 등의 개량한지를 사용한다면 전통한지보다 더 얇고 반질하여 접기가 한결 수월할 것이다. 그러나 전통한지의 자연스러운 질감과 장기적인 보관, 선조들의 방식을 지키고 보존하는 노력을 생각한다면 힘들더라도 전통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 정명스님의 생각이다.

 

사진10. 조선시대 감로탱화속의 지화를 재현한 작품.

 

정명스님은 서울 법성사로 출가해 태경스님을 은사로 1970년 수계했다. 은사스님에게 지화, 연등, 고임새, 팔모등, 초롱등 일체를 전수받았고, 1985년에는 청룡사 진우스님에게 연등회 관불단 장엄을 사사했다. 또 전북지역에서 수륙재 등 각종 불교의례와 부처님오신날 지화 장엄 등으로 명성을 높였던 보운스님 밑에서 수학하며 지화 제작에 사용되는 각종 도구까지 이어받아 전통지화의 맥을 잇게 됐다.

 

2011년에는 불교무형문화유산인 불교 지화장엄을 계승·발전시키고, 이에 대한 연구와 전승자 양성을 목적으로 불교지화장엄전승회를 조직했다. 전승회를 중심으로 한지에 천연염료로 물들인 전통지화를 복원했으며, 이 전통지화를 바탕으로 지화문화 발전과 대중화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정명스님의 평생의 노력들을 인정받아 지난 8월에 조계종 첫 지화 명장으로 지정되었다.

 

사진 11. 지화에 대해 설명하는 정명스님.

 

스님의 전통지화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지화를 널리 알리기 위한 노력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사람들과 함께 지화를 만들 수 없게 되자 2021년 4월부터 줌(Zoom)을 이용한 온라인 강좌를 개설해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온라인 강좌의 장점은 전국 어디에서나 시공간의 구애 없이 함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전국의 스님들과 일반인들의 참여도가 높다고 한다. 매주 일요일 밤 8시부터 10시까지 한 달에 한 송이 지화를 만들어야 제대로 평가를 받을 수 있으며, 초급 1년, 중급 1년, 고급 1년 3년을 거쳐야만 ‘지화장패’가 주어진다. 지금까지 25명의 지화장이 탄생되었고 앞으로도 많은 지화장들의 손끝에서 각양각색의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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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리
중현中玄 김세리金世理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초빙교수. 한국차문화산업연구소 소장, 다산숲 자문위원. 성균예절차문화연구소, 중국 복건성 안계차 전문학교 고문. 대한민국 각 분야의 전통문화에 대한 애정 어린 연구 중. 저서로 『동아시아차문화연대기-차의 시간을 걷다』, 『영화,차를 말하다 』『길 위의 우리 철학』, 『공감생활예절』 등이 있다.
sinbi-101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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