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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진여’ 중심의 불교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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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란  /  2022 년 4 월 [통권 제108호]  /     /  작성일22-04-04 09:35  /   조회3,072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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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중국의 불교학자들 16 | 장병린의 근대적 자유·평등관 ③

 

과거에는 장태염의 불교사상을 부정적으로 보고 의식적으로 배척하는 입장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1907년 아나키즘 사상의 영향을 받은 이래 장태염의 적극적인 사회실천 사상이 소극적인 은둔사상으로 변화하고, 1908년 이래 노장사상으로 허무주의 사상이 농후해졌다고 보는 등의 견해가 제기되면서 더욱 그러하였다. 그러나 이는 매우 피상적인 파악이다. 장태염의 불교사상은 실제로 ‘진여’를 중심 개념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장태염은 『장자』를 유식불교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을 통해 철학적인 의미에서 참된 나인 ‘진아眞我’의 존재를 입증하려고 하였다. 현장, 규기 계열의 유상유식과 다른 진제의 무상유식에 가까운 유식불교를 주장하였던 것이다. 

 

사진 1. 1900년 전후 일본에서 공부했던 중국 유학생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노신, 곽말약, 장병린, 추근.  

 

『장자』에 “지식을 가지고 그 마음[心]을 알고, 그 마음을 가지고 항상된 마음[常心]을 안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장태염은 이 장자의 ‘마음’을 유식불교의 아뢰야식으로, ‘항상된 마음’을 제9 아마라식으로 해석하였다. 일반적으로 유식불교에서는 인간의 마음을 8개의 의식으로 나누고 세계의 근원을 제8식인 아뢰야식으로 보고 근본식이라고 부른다. 이 아뢰야식은 선한 종자와 악한 종자들이 함께 있는 ‘진망화합식’이다. 그런데 이렇게 보는 것은 현장, 규기 계열의 유식불교이고, 그와 다른 계열의 진제의 유식불교에서는 인간의 근본 의식이 참됨과 거짓, 선함과 악함이 뒤섞여 있다고 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중국 전통철학에서는 인간을 근본적으로 선한 존재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8 아뢰야식 위에 오직 선하기만 한 의식을 하나 더 상정하였다. 그것이 바로 제9 아마라식이다.

 

마음의 참된 임금, 제9 아마라식

 

그런데 장태염은 ‘항상된 마음’을 참된 임금, 즉 ‘진군眞君’이라고 불렀다. ‘마음’과 ‘항상된 마음’은 서로 구별되지만 위대한 임금을 폐기할 수 없다고 하며, 이 제9 아마라식의 불변성을 비유하였다. 장태염은 장자가 말하는 ‘마음[心]’과 ‘항상된 마음[常心]’을 구분하여 각각 유식불교의 아뢰야식과 아마라식에 대응시키고 있다.

 

장태염은 진망화합식으로서의 제8식 위에 오직 진식眞識인 제9아마라식을 상정하고, 그것을 ‘참된 임금[眞君]’으로 불렀다. 그리고 이 참된 임금은 무상無常을 대신하는 개념이 된다. 장태염의 이러한 해석은 유식불교 중 현장 계열의 유상유식이 아닌 진제 계열의 무상유식과 관련된 내용임이 분명하다. 아라야식을 진망화합식으로 파악한 그 위에, 더러움이 없고 깨끗한 진식인 제9 아마라식을 새롭게 상정하는 것은 오직 진제 계열의 무상유식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사진 2. 장태염의 저서 『국고논형國故論衡』.  

 

아마라식을 상정하면 깨달음과 해탈의 근거를 제기함과 동시에 현상계의 오염된 모습이 어떻게 생기하게 되는가에 대한 설명이 가능해진다. 현상계의 더럽고 오염된 모습은 제8 아뢰야식 중 더럽고 악한 종자들[妄識]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 더럽고 오염된 식을 그 위의 깨끗하고 선한 의식[眞識]인 제9 아마라식에 의거해서 소멸시킴으로서 깨달음과 해탈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장태염이 아마라식에 대하여 “위대한 임금을 폐기시킬 수 없다.”고 한 말은 바로 아마라식의 불변함과 항상됨을 나타내는 표현인 것이다. 

 

장태염은 “오직 아마라식을 증득하면 ‘참된 임금’이 된다. 이것은 무아無我이면서 동시에 아我를 드러내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아마라식을 증득한다는 것은 바로 진여를 증득한다는 것이고, 이는 현상세계의 진실성을 그대로 인정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경지를 장자의 말을 빌어 ‘참된 임금’이 되는 것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이 ‘참된 임금’을 여래장 속의 진여상이라고 하고, 이 진여상이 형체를 가지게 되고, 그 형체와 함께 하는 것을 여래장 속의 수연상, 즉 생멸상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인식은 『대승기신론』의 “한 마음에는 두 개의 문이 있다.”는 ‘일심개이문一心開二門’ 사상과 바로 연결된 것이다. 『대승기신론』에서는 사람의 마음에는 진여문과 생멸문이라는 두 가지 문이 있고, 이 두 가지 문은 모두 각각 모든 존재들을 총괄하고 있으며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고 본다. 그는 아마라식을 제시한 뒤, 바로 『대승기신론』의 일심개이문 사상으로 ‘참된 임금’의 비유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장자』의 말은 다음과 같다. “남곽자기南郭子綦는 이 곳에서 ‘참된 임금’을 말하였다. 이것은 불전에서 모두 무아無我를 말하지만, 『열반경』에서 유독 유아有我를 말한 것과 같다. 두 나를 쌍으로 다 없애면 자성청정이 비로소 나타나게 된다. 이는 단절되어 아무 것도 없는 것과 다르다.” 장태염은 나를 잃는다는 것(상아喪我)과 참된 임금 사이의 긴장, 즉 무아와 진아 사이의 모순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불교의 무아와 『열반경』의 유아와 연결시켜 설명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열반경』에 나오는 유아有我는 일반적으로 열반의 네 가지 덕(열반사덕涅槃四德)이라고 불리는 ‘상락아정常樂我淨’ 개념과 관련된 개념이다. 열반의 경지는 영원불변하기 때문에 항상되고(常), 괴로움이 없으므로 즐겁고(樂), 자유자재하여 조금도 구속이 없으므로 아(我)이고, 번뇌의 오염이 없으므로 깨끗하다(淨). 이 때의 아我는 사실은 참된 나, 진아眞我를 의미한다. 이때의 나는 환상의 나[幻我]가 아닌 참된 나로서, 무아와 대치되는 개념이 아니며 오히려 무아의 체득을 통해 획득되는 진아이다. 즉 현상계의 모든 대상들의 자성청정을 의미한다. 그것이 바로 동아시아불교의 특징인 진여연기론인 것이다. 

 

장자 ‘성심成心’의 유식불교적 해석

 

장자의 ‘성심成心’ 개념에 대해 다른 사상가들과 달리 장태염은 대단히 독창적인 해석을 하였다. “성심成心은 종자이다. 종자는 마음에 나타난 장애의 모습이다. 모든 장애가 바로 궁극의 깨달음이므로, 이 성심을 그대로 따라가면 혼란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태염은 이처럼 성심을 아라야식에 저장되어 있는 종자로 파악하고 있다.

 

유식불교에서 모든 과거의 경험은 그냥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인격 속에 침투되어 자취를 남기며, 잠재적인 힘의 형태로 머물러 있다가 현재와 미래의 경험에 작용력을 발휘한다. 유식불교에서는 이러한 경험 축적과 재생의 구조를 아뢰야식이라는 바탕 위에서 설명한다.

 

그런데 이 인식의 구조에 관한 해명에서 현장 계열의 유상유식과 진제 계열의 무상유식은 다르다. 진제의 무상유식은 깨달음, 또는 불성을 인간 본래의 상태라고 보고, 사고의 중심을 본성의 회복이라는 점에 둔다. 대상적으로 인식하는 인식구조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반면에 현장의 유상유식에서는 현상적인 마음인 식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현상을 논리적으로 분석해 나감으로써 진실에 도달하고자 한다.

 

장태염은 나아가 “아뢰야식의 종자는 원형 관념이다.”라고 지극히 근대적인 해석을 하였다. 대·소승 불교에서는 색법, 무위법 외 24종의 불상응행법을 세웠고 서양 근세의 칸트는 12범주를 세웠지만, 그는 이것들이 모두 번쇄하다고 비판하였다. 성심, 즉 아뢰야식 종자로 인식론을 설명하는 것이 대·소승불교나 서양 칸트의 12범주라는 복잡한 인식론보다 훨씬 요점이 있다고 자신하였다.

 

장태염 불교사상의 영향: 진여연기론의 수용

 

유식불교에서는 인간의 무명無明이라는 측면을 중시하고 외부의 절대적인 진리인 불성佛性에 의지하여 훈습과 수행을 통해 끊임없이 수행해 나아갈 것을 강조하는 반면에, 천태·화엄·선불교 등 중국불교에서는 인간 내면의 각성의 힘을 중시하여 번뇌가 바로 보리이고 생사가 바로 열반이라고 하면서 ‘깨달음’ 자체를 강조한다. 그리하여 유식불교는 자신 속에 존재하는 더러운 것(染)을 모두 깨끗한 것(淨)으로 바꾸어 가야 하기 때문에 ‘혁신革新’이라고 할 수 있고, 중국불교는 이미 자신 속에 존재하고 있는 불성, 즉 마음의 근원을 되돌아보고 심성을 되돌아봄으로써 깨달을 수 있으므로 ‘근본으로 돌아감(반본返本)’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진 3. 장태염 기념우표. 
 

진제 유식불교 - 『대승기신론』 - 중국불교로 이어지는 흐름이 인도의 유식불교, 즉 현장의 유상유식과 달리 진여연기론으로 나타난 것은 사상적으로 유학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진제 유식 - 『대승기신론』 - 중국불교와 유학 사이에는 그 흐르는 정신에 동일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장태염의 유식불교적 입장이 현장 유식이 아니라 진제 유식, 『대승기신론』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은 장태염의 불교사상이 유학의 성선론적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장태염의 유식불교 사상은 진제 유식 - 『대승기신론』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이후 현대 신유학에서 중국불교를 긍정하고 진여연기관을 수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장태염의 불교사상이 끼친 영향이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예컨대 웅십력은 장태염이 『건립종교론』에서 유식불교에 기반한 본체론의 건립이 자신의 철학 목표라고 한 내용을 보고, 『신유식론』을 썼다고 한다. 결국 장태염의 불교 사상은 현장 유식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지는 않을지라도 전반적으로 진제 유식의 진여연기론을 수용하였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현대 신유학이 진여연기론을 수용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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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란
철학박사. 현재 고려대학교 강의교수. 고려대학교 철학과 석·박사 졸업. 같은 대학 철학과에서 강의, 동국대 불교학술원 HK연구초빙교수를 지냈다. 지곡서당 한문연수과정 수료. 조계종 불학연구소 전문연구원 역임. 『웅십력 철학사상 연구』, 『신유식론』, 『원효의 대승기신론 소·별기』 등 다수의 저서 및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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