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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선 이야기] 『육조단경』의 선사상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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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무  /  2022 년 1 월 [통권 제105호]  /     /  작성일22-01-05 10:49  /   조회1,339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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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선 이야기 13 | 육조혜능六祖慧能 638-713 ④

 

『단경』의 핵심적인 사상인 ‘불성’과 ‘돈오’, 그리고 ‘정혜등학’과 ‘무념·무상·무주’ 등은 사실상 결코 분리 시켜서 논할 수 없는 서로 연관된 개념들이다. 『단경』에서 제시한 이러한 개념들은  이전의  선사상禪思想이나 교학敎學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것이다. 물론 그 가운데 운용되는 논리는 삼론三論·천태天台·화엄華嚴 등 대표적인 중국 종파들의 사상을 흡수한 것도 사실이고, 또한 도신道信-홍인弘忍의 선사상을 바탕에 둔 것이다. 그렇지만 『단경』은 명확하게 동산 법문의 선사상을 ‘향상向上’하고 있다. 

 

나아가 앞에서 논한 ‘무념·무상·무주’에 입각한다면, 기존의 불교나 선사상에서 논한 ‘수修’와 그로 부터 얻어지는 ‘증證’은 본질적으로 수정되어야 자체모순이 발생하지 않는다. ‘돈오’에 입각한다면, 기존의 ‘수’와 ‘증’은 모두 진리의 세계나 세속적 욕망을 추구하는 “두 가지 상의 모든 번뇌에 치달림[二相諸塵勞]”으로 전락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수’는 또한 부정될 수 없는 입장이고, ‘수’를 인정한다면 또한 ‘증’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무념·무상·무주’가 ‘무념지념無念之念·무상지상無相之相·무주지주無住之住’로 해석되는 바와 같이 ‘수’를 ‘무수지수無修之修’, ‘증’을 ‘무증지증無證之證’으로 개념을 바꾸어야 논리가 맞게 되고, 그에 따라 ‘무수무증無修無證’이 성립하게 된다. 이렇게 ‘수증’의 개념이 바뀌고, ‘정혜’가 ‘정혜등학’으로 달라진다면, 마땅히 삼학 가운데 하나인 ‘계戒’도 새롭게 변모하여야 할 것이다. 

 

 

사진 1. 돈황본 『육조단경』 필사본. 

 

돈황본 『단경』에서는 편자編者를 “겸수 무상계 홍법제자 법해 집기兼受無相戒弘法弟子法海集記”(주1)라고 소개하고 있다. 혜능의 제자인 법해가 ‘겸수 무상계’라는 문구로부터 이미 구족계를 받은 상황에서 다시 ‘무상계’를 받았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이에 이어지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혜능대사가 대범사 강당의 높은 법좌에 올라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설하며, 무상계無相戒를 수여하였다. 그때 법좌 아래에 승니僧尼, 도속道俗 등 1만여 명이 있었으며, 소주韶州 자사刺史 위거韋璩와 여러 관료 30여 명과 유가의 선비 등이 함께 대사에게 마하반야바라밀 법을 설해 주기를 청하였다. 자사는 문인 법해法海로 하여금 설법 내용을 모아 기록하게 하였으며, 후대에 도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 들을 위하여 남겨 전하고, 법회에서 설해진 종지宗旨를 계승하여 대대로 서로 전수하고자 하였으니, 이렇게 하여 이 『단경』이 이루어졌다.(주2)

 

이는 바로 돈황본 『단경』이 시작되는 부분이다. 이에 따르면 혜능대사가 법회를 개최한 목적이 ‘무상계’를 수여하고, ‘반야법’을 설하기 위함임을 알 수 있으며, 이로 인하여 『단경』이 형성되었다는 ‘본연本緣’을 밝힌 것이라고 하겠다. 또한 『단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불법승佛法僧 삼보를 밝히고 있다.

 

선지식들아! 삼보에 귀의하라. 불佛이란 깨달음[覺]이요, 법法이란 바름[正]이며, 승僧이란 청정함[淨]이다. 자심自心으로 ‘깨달음’에 귀의하면 삿됨[邪]과 어리석음[迷]이 발생하지 않고 욕심이 적어 만족함을 알아 재색財色을 떠나니 이를 ‘양족존兩足尊’이라고 칭한다. ‘자심’으로 ‘바름[正]’에 귀의하면, 생각마다 삿됨이 없기 때문에 애착愛着이 없게 되니, 이를 ‘이욕존離欲尊’이라고 칭한다. ‘자심’으로 ‘청정함[淨]’에 귀의하면 모든 번뇌에 치달림[塵勞]과 망념妄念이 비록 자성自性에 있지만, ‘자성’은 물들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중중존衆中尊’이라고 한다.(주3)

 

여기에서 돈황본이나 종보본(주4) 모두 ‘불·법·승’의 ‘삼보’를 각각 ‘각覺·정正·정淨’으로 배대하여 설명하고, 이러한 삼보에 귀의하는 계를 “무상 삼귀의계無相三歸依戒”(주5)라고 칭함을 볼 수 있다. 또한 그를 “자성에 삼신불三身佛이 있음을 보라. 이 삼신불은 자성自性으로부터 생한 것이므로 밖에서 얻을 수 없다.”(주6)라고 하여 삼신불의 본체本體가 바로 ‘자성’임을 분명 히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단경』에서는 이를 강조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설한다.

 

만약 부처님에게 귀의歸依하라고 말한다면, 부처님이 어느 곳에 있는가? 만약 부처님을 보지 못한다면 귀의할 곳이 없는 것이다. 이미 귀의할 바가 없다면, 부처님에게 귀의하라는 말은 허망한 것이 되고 만다. 선지식들아! 각자 스스로 관찰하여 그릇된 생각을 하지 말라. 경전에서 말하는 것은 다만 스스로 부처님에게 귀의하라는 것이며, 다른 부처[他佛]에게 귀의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자성’에 귀의하지 못한다면, 어떤 것에도 귀의할 수가 없는 것이다.(주7)

돈황본 『단경』에서는 이와 같이 ‘불佛’을 ‘자성’으로 연결한 후에 전체적인 입장에서 다음과 같이 ‘무상계’의 수여授與로 귀결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선지식들아, 자성自性을 보고, 자정自淨하여 자수自修, 자작自作하라. ‘자성’이 법신法身이니, ‘자작’하여 불도佛道를 자성自成하라. 선지식아! 반드시 자체自體로서 무상계無相戒를 받아라.(주8)

이로부터 자성自性, 자정自淨, 자수自修, 자작自作, 자성自成, 자체自體 등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종보본에서도 “선지식들아! 이 일은 모름지기 자사自事로부터 일어나야 한다. 언제든지 염념을 자정自淨한 그 마음에서 자수自修, 자행自行하여 자기自己의 법신을 보며, 자심불自心佛을 보아 자도自度, 자계自戒하라.”(주9)라고 설한다.

 

 

사진 2.성철스님이 역주한 『돈황본육조단경』 (2015년, 장경각). 

 

따라서 『단경』에서는 무엇보다도 ‘자自’를 철저히 강조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는 바로 외부의 어떤 초월적 존재나 이치를 거부하고 일체를 ‘자自’로 귀결시키려는 입장이라고 하겠다. 종보본에서는 “삼귀계三歸戒라는 것은 ‘그 하나[其一]’에 귀의하는 것이다. 그 하나는 삼보三寶가 출현하는 근거이다.”(주10)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그 하나’는 ‘자성’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며, 또한 “무상계란 계戒가 반드시 정각正覺하게 한다.”(주11)라고 하여 무상계는 ‘정각’에 이르는 관건임을 설하고 있다.

이렇게 『단경』에서는 무엇보다도 ‘자성自性’과 연계시키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데, 이러한 입장을 다음과 같은 게송에서 정리하고 있다.

 

마음자리[心地]에 그릇됨이 없는 것은 자성계自性戒이고, 

마음자리에 산란함이 없는 것은 자성정自性定이며, 

마음자리에 어리석음이 없는 것은 자성혜自性慧이다.(주12) 

증가하는 것도 감소하는 것도 없어 금강金剛이라 하니, 

몸이 가고 마음이 오는 것은 본래 삼매三昧이로다.13)

 

이로부터 『단경』에서는 계정혜 삼학을 모두 ‘자성’과 연계하여 설하고 있는데, 돈황본에는 ‘계정혜’의 순서이지만, 종보본에는 ‘계혜정’의 순서이며, 뒤에 ‘금강’과 ‘삼매’의 두 구가 추가되어 있다. 당연히 이러한 ‘자성’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반야’를 통한 ‘돈오’의 사상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고 하겠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단경』에서는 불법승 삼보를 바로 ‘자 성’으로부터 현현한 것으로 파악하고, 그러한 자성을 반야성공般若性空으로 해석하여 이른바 ‘실상무상實相無相’의 ‘무상無相’으로 귀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삼보에 대한 귀의계는 당연히 ‘무상계’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와 같이 『단경』에서는 ‘반야’의 입장에서 ‘무상계’를 수여하고 있다. 그에 따라 ‘사홍서원四弘誓願’과 ‘참회懺悔’ 등의 행법에 있어서도 ‘반야’와 ‘돈오’의 입장에서 새로운 해석이 나타나는 것은 필연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이를 이어 다음에 그를 논하고자 한다.

 

 

주)

(주1) 敦煌本, 『壇經』(大正藏48, 337a)

(주2) 앞의 책. “慧能大師於大梵寺講堂中昇高座, 說摩訶般若波羅蜜法, 授無相戒. 其時座下僧尼道俗一萬餘人, 韶州刺史等據及諸官寮三十餘人, 儒士餘人, 同請大師說摩訶般若波羅蜜法. 刺史遂令門人僧法海集記, 流行後代與學道者, 承此宗旨, 遞相傳授, 有所於約, 以爲稟承, 說此壇經.”

(주3) 敦煌本, 『壇經』(大正藏48, 339c) “善知識! 歸衣三寶. 佛者, 覺也. 法者, 正也, 僧者, 淨也. 自心歸依覺, 邪迷不生, 少欲知足, 離財離色, 名兩足尊. 自心歸依正, 念念無邪故, 卽無愛著, 以無愛著, 名離欲尊. 自心歸依淨, 一切塵勞妄念, 雖在自性, 自性不染著, 名衆中尊.”

(주4) 宗寶本, 『壇經』(大正藏48, 354a) “更與善知識授無相三歸依戒. 善知識, 歸依覺, 兩足尊. 歸依正, 離欲尊. 歸依淨, 衆中尊. 從今日去, 稱覺爲師, 更不歸依邪魔外道. 以自性三寶常自證明, 勸善知識, 依自性三寶. 佛者, 覺也. 法者, 正也. 僧者, 淨也. 自心歸依覺, 邪迷不生, 少欲知足, 能離財色, 名兩足尊. 自心歸依正, 念念無邪見, 以無邪見故, 卽無人我貢高貪愛執著, 名離欲尊. 自心歸依淨, 一切塵勞愛欲境界, 自性皆不染著, 名衆中尊.”

(주5) 敦煌本, 『壇經』(大正藏48, 339c) “今旣懺悔已, 與善知識授無相三歸依戒.”, 宗寶本, 『壇經』(大正藏48, 354a) “今發四弘願了, 更與善知識授無相三歸依戒.”

(주6) 宗寶本, 『壇經』(大正藏48, 354b) “見自性有三身佛. 此三身佛, 從自性生, 不從外得.”, 敦煌本, 『壇經』(大正藏48, 339a) “見自法性有三身佛, 此三身佛從自性上生. 何名淸淨法身佛?”

(주7) 敦煌本, 『壇經』(大正藏48, 339c) “若言歸佛, 佛在何處? 若不見佛, 卽無所歸. 旣無所歸, 言却是妄. 善知識! 各自觀察, 莫錯用意. 經中只言自歸依佛, 不言歸他佛. 自性不歸, 無所依處.”, 宗寶本, 『壇經』(大正藏48, 354b) “若言歸依佛, 佛在何處? 若不見佛, 憑何所歸, 言却成妄. 善知識! 各自觀察, 莫錯用心. 經文分明言自歸依佛, 不言歸依他佛. 自佛不歸, 無所依處.”

(주8) 敦煌本, 『壇經』(大正藏48, 339a) “善知識, 見自姓自淨, 自修自作. 自姓法身, 自行佛行, 自作自成佛道. 善知識, 總須自體與受無相戒.”

(주9) 宗寶本, 『壇經』(大正藏48, 353c) “善知識! 此事須從自事中起. 於一切時, 念念自淨其心, 自修自行, 見自己法身, 見自心佛, 自度自戒.”

(주10) 宗寶本, 『壇經』(大正藏48, 346c) “三歸戒者, 歸其一也. 一也者, 三寶之所以出也.”

(주11) 앞의 책. “無相戒者, 戒其必正覺也.”

(주12) 敦煌本, 『壇經』(大正藏48, 342b) “心地無非是自性戒, 心地無亂是自性定, 心地無癡是自性惠.”

(주13) 宗寶本, 『壇經』(大正藏48, 358c) “心地無非自性戒, 心地無癡自性慧, 心地無亂自性定, 不增不減自金剛, 身去身來本三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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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무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중국 남경대학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부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원광대, 서울불교대학원대학, 동국대(경주)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중국불교거사들』, 『중국불교사상사』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 『조선불교통사』(공역), 『불교와 유학』, 『선학과 현학』, 『선과 노장』, 『분등선』, 『조사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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