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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법문 해설]
삼론종의 교판과 중도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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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  2019 년 7 월 [통권 제75호]  /     /  작성일20-05-22 08:32  /   조회4,962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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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 성균관대 초빙교수

 


삼론종은 『중론』을 비롯해 중관학파의 논서를 사상적 토대로 하고 있어 반야의 공空 사상을 핵심으로 삼고 있다. 이런 이유로 교학적 내용에 초점을 맞출 때는 ‘중관종中觀宗’, ‘공종空宗’, ‘무득정관종無得正觀宗’ 등으로도 불리기 한다. 이 학파의 주된 사상적 내용이 중관사상임을 알 수 있는 이름들이다.

 

삼론종의 사상적 근간

 

삼론종 사상을 체계화한 길장은 『중관론소』에서 “중도가 비록 무궁하나, 간략히 세 가지로 밝힌다. 즉 일체를 망라하기 때문에 이 게송에 근거하여 세 가지 중도를 변별해서 총체적으로 부처님의 일체 가르침을 편다.”고 했다. 중론의 이치가 난해하고 방대하지만 그 핵심은 공가중空假中이라는 삼제三諦에 모두 포괄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삼제에 의지해 중도의 의미를 바로 이해하면 부처님의 핵심 가르침을 요달할 수 있다는 것이 길장의 설명이다.

 

불법은 방대한 경론으로 펼쳐져 있지만 그 방대한 문헌의 핵심은 중도로 포섭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삼론종 사상은 『중론』을 근본으로 함으로 길장은 ‘중’을 벗어나면 불교사상은 성립될 수 없다고 보았다. 불교의 모든 교설은 ‘중’이라는 근본 원리로부터 파생되었으며, ‘중’에 의해 모두 통섭된다는 것이다. 물론 불교사상의 핵심이 중도라는 것은 삼론종뿐만 아니라 용수보살의 공사상을 계승하여 사상적 체계를 세운 모든 대승 종파의 공통된 특징이기도 하다.

 

이처럼 삼론종은 대승불교의 근간인 중도를 핵심으로 삼고 있지만 성철 스님은 삼론종의 사상은 한계도 있다고 평가한다. 즉 삼론종 사상은 화엄종이나 천태종과 달리 ‘쌍차쌍조雙遮雙照하고 원융무애圓融無碍한 측면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비록 삼론종에서 중中을 핵심으로 삼고 있지만 삼론종의 중도사상은 여전히 공견空見에 편중된 측면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삼론종은 중관사상을 근거로 하고 있지만 『중론』의 현지를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종파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독자적인 교판敎判을 확립하고 교판에 따라 불교사상을 체계화하는 것이다. 삼론종 역시 불교사상을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 구분하는 독자적 교판이 있고, 그런 교판에 따른 교리체계가 있다. 삼론종의 교판은 이장삼륜二藏三輪이며, 교리는 파사현정破邪顯正으로 요약된다. 먼저 교판에 해당하는 이장삼륜에서 이장二藏이란 불교의 모든 가르침을 성문장聲聞藏과 보살장菩薩藏으로 구분하는 것을 말한다.

 

성문장이란 소승의 여러 경론을 의미하고, 보살장은 대승불교의 제반 경론을 의미한다. 천태교판이나 화엄교판은 설법시기와 교설의 내용까지 세밀하게 분석하여 체계를 세웠다. 하지만 삼론종은 중국 학파불교의 초기에 해당하는 종파이기 때문인지 불교의 여러 경론을 소승과 대승으로만 구분 짓고 있다. 삼론종은 대승사상에 방점을 두고 있음으로 이렇게 단출하게 불교사상을 구분하는 것은 대승에 초점을 두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보살장으로 분류한 대승경론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중관사상이다. 따라서 성문장과 보살장이라는 구분은 전체 불교사상을 중론사상의 등장 이전과 이후로 대별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장으로 구분된 경론은 다시 삼륜三輪이라는 세부적 분류로 나눠진다. 『화엄경』은 근본법륜根本法輪으로, 『법화경』은 섭말귀본법륜攝末歸本法輪으로, 화엄에서 법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소승의 문헌은 지말법륜枝末法輪으로 분류한 것이 삼륜설이다. 『화엄경』과 『법화경』은 각각 명칭을 붙여 독립항목으로 분류하고 있지만 그 외의 모든 경론은 지말법륜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는 『화엄경』과 『법화경』을 가장 비중 있게 평가하고 나머지 경전들은 지말법륜, 즉 기타경전 정도로 평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장삼륜과 파사현정

 

삼론종의 기본교리는 파사현정破邪顯正으로 압축된다. 파사破邪란 ‘삿됨을 깨뜨리는 것’으로써 외도와 소승부파 등에서 주장하는 잘못된 인식과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왜곡하는 실체론 같은 교설을 깨뜨리는 것이다. 파사를 통해 망념을 완전히 끊고 완전한 진리를 체득하는 것이 파사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현정顯正이란 존재의 실상에 대한 걸림 없는 안목, 즉 중도실상을 바르게 체득하는 것이다. 중도실상을 깨닫는 것은 나[아我]와 대상[법法]에 대한 실체론적 망정을 깨뜨리고, 그 무엇도 얻을 것이 없다는 무소득無所得의 이치, 참다운 공의 이치[진공眞空]를 깨닫는 것이다.

 

따라서 현정이란 나[아我]와 나의 것[아소我所]이라는 존재에 대한 실체론적 인식을 혁파하고 그 어떤 것도 실체로서 존재하지 않으며, 그렇기에 얻을 바가 없다는 이치를 체득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무소득의 경지에 대해서는 『반야심경』에 잘 나타나 있다. 즉 “얻을 바[무소득無所得]가 없기 때문에 마음에 걸림이 없고[심무가애心無罫碍], 마음에 걸림이 없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으며[무유공포無有恐怖], 뒤바뀐 헛된 망상에서 멀리 벗어나[원리전도몽상遠離顚倒夢想] 구경에는 열반에 이른다.”는 가르침이다. 삿된 망상을 깨뜨리는 파사가 그대로 바른 진리를 드러내는 현정이라는 것이 파사현정이다.

 

파사현정의 기치 아래 제시되는 삼론종의 교리는 이제론二諦論이다. 통상적으로 법상종이나 성실종 등에서는 진리를 세속제世俗諦와 제일의제第一議諦로 나누는데 이를 이경이제설이라 한다. 세속제는 세간의 도리를 설하는 것으로 중생에게 진실이 되는 것이고, 제일의제란 출세간의 진리를 설하는 것으로 성현에게 진리가 되는 것이다. 세속제는 말과 글에 기반해 있어 언설에 제약되는 현상세계의 진리인 반면 제일의제는 말과 언설을 초월해 있는 출세간의 진리를 말한다.

 

삼론종이 등장할 당시 학승들은 성실론 등의 영향을 받아 부처님은 이제에 의하여 설법했으며, 모든 경전은 이제를 벗어나지 않으며, 이제를 밝히면 모든 경전의 요지를 체득하게 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삼론종에서도 이제설을 중요하게 인식했지만 이제를 바라보는 관점은 달랐다. 이제설에 대한 당시의 관점은 세속제와 진제와 같이 진리에 대한 구분이었다. 하지만 삼론종에서는 ‘이제는 가르침[이제시교二諦是敎]’이라고 보았다. 이제는 중생을 바르게 깨닫도록 하는 가르침이자 방편이지 그 자체가 실체적 진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길장은 이제설에 대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라고 비유했다. 이제를 건립한 것은 존재의 공성을 체득하도록 하는 언교言敎, 즉 진리로 인도하는 말씀과 가르침이지 이제 그 자체가 낙처落處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삼론종의 이제설을 언교이제言敎二諦라고 부른다.

 

용수보살은 『중론』에서 중도를 설명하는 논리로 앞서 설명한 이제二諦와 함께 제시한 것이 팔불중도八不中道이다. 중생들은 제법에 대해 생멸生滅・단상斷常・일이一異・거래去來라는 여덟 가지 미혹된 견해를 일으킴으로써 번뇌의 불길에 사로잡혀 산다. 팔불은 그와 같은 여덟 가지 중생의 변견邊見을 하나하나 부정하여 내면에서 타오르는 번뇌의 불길, 미혹의 떼를 씻어내는 가르침이다. 따라서 팔불중도는 불생불멸不生不滅, 불상부단不常不斷, 불일불이不一不異, 불래불거不來不去라는 여덟 가지 부정으로 압축된다.

 

팔불중도와 삼중중도

 

생멸과 단상 등 모든 변견을 부정하고 존재의 실상인 중도를 바르게 드러내는 것이 팔불중도의 핵심적 내용이다. 팔불은 여덟 가지로 대변되는 모든 변견을 철저히 부정하는 것이므로 모든 변견을 극복한 중도가 되며, 중도는 팔불로 대변되는 변견의 부정과정을 통해 달성된다. 그래서 길장은 “팔불八不은 바로 중도이고 불성[중도불성中道佛性]”이라고 했다. 팔불이 곧 중도이고, 중도는 곧 불성이므로 길장은 팔불은 “모든 부처님의 중심이고[제불지중심諸佛之中心], 모든 성인들의 수행처[중성지행처衆聖之行處]”라며 그 의미를 높이 평가했다. 이와 같은 팔불중도에 의거해 확립된 삼론종의 중도설이 삼종중도설三種中道說이다. 삼론종에서는 중도를 총괄하여 세제중도世諦中道, 진제중도眞諦中道, 이제합명중도二諦合明中道로 설명한다. 이제합명중도란 속제와 진제라는 두 가지 진리, 즉 ‘이제二諦를 종합하여 중도의 뜻을 밝힌다.’는 의미다.

 

생멸이 있다는 것은 중생들이 가진 이분법적 인식이 초래한 변견이다. 그런 변견을 씻어내는 것이 세제중도로써 ‘남도 없고 소멸도 없다’는 의미를 담은 불생불멸不生不滅이다. 하지만 불생불멸을 고집하고 집착하면 그것은 또 다른 변견이자 번뇌가 된다. 그래서 진제중도에서는 ‘나지 않음도 아니고, 멸하지 아님도 아니다’라는 의미를 담은 비불생비불멸非不生非不滅를 설하여 부정을 다시 부정한다. 그리고 세 번째는 진제와 속제를 종합하여 함께 밝히는 이제합명중도설이다. 삼론종의 독창적 사상인 이제합명중도의 내용은 ‘생멸도 아니고, 생멸 아님도 아니다’라는 의미에서 비생멸비불생멸非生滅非不生滅을 말한다. 이와 같은 삼종중도설은 어떤 대상이나 분별심에 인식이 고착화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지양止揚해 나가는 과정을 제시하고 있다. 결국 삼종중도설은 그 무엇에도 마음이 고착되거나 변견에 빠지지 않도록 하여 무주심無住心을 얻도록 하는데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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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영
성균관대 초빙교수.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선의 생태철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연구교수, 조계종 불학연구소 선임연구원, 불교신문 논설위원,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 <불교평론> 편집위원 등을 거쳐 현재 성철사상연구원 연학실장으로 있다. 저서로 『선의 생태철학』 등이 있으며 포교 사이트 www.buruna.org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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