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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 대장경 편찬 교육에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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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상  /  2021 년 2 월 [통권 제94호]  /     /  작성일21-02-05 11:35  /   조회818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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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일본의 불교학자들 2-다카쿠스 준지로高楠順次郎 

 

근대 일본불교학의 성과 중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전 세계 불교학자들이 텍스트로 삼고 있는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의 등장일 것이다. 이것은 인도철학, 범어학의 선구자 다카쿠스 준지로(高楠順次郎, 1866-1945, 사진 1)의 역작이다. 사실 역사적으로 볼 때, 대장경의 탄생은 불교의 발전, 정치적 요구, 시대적 당위 등이 결합하여 이루어진다. 근대 일본도 예외적인 시대가 아니었다. 어쩌면 시대적 역경이 위대한 사람을 만들고, 그 사람이 불굴의 작업을 해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1868년 일본의 메이지 혁명은 속죄양을 요구했다. 폐불훼석廢佛毁釋이 그것이다. 유명무실했던 왕을 근대국가의 구심점으로 삼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었다. 왕권확립을 위한 신도 국교화는 다음의 단계였다. 문화적으로 토착화된 신불神佛의 공존을 분리시키고, 불교를 신도에 복속시킨 것이다. 일본역사 속에서 처음으로 전 불교계가 횡적인 연대를 위한 제종동덕회맹諸宗同德會盟을 개최했다. 4년간에 걸쳐 국가권력과의 관계회복을 위한 ‘왕법불법불리지론王法佛法不離之論’을 필두로 8가지의 의제를 제시했다. 그 가운데는 고답적인 불교를 철폐하고, 학교를 세우거나 인재를 양성하자는 발전안도 당연히 들어 있었다.

 


사진 1. 다카쿠스 준지로. 무사시노대학 제공. 

 

  이를 위한 하나의 돌파구는 인재의 해외 유학이었다. 탈아입구脫亞入歐의 사회풍조를 따라 서양을 배우기 위한 열풍이 불기도 했다. 세력이 가장 큰 정토진종은 1872년에 구미의 종교시찰을 위해 승려들을 파견하였다. 이어 1876년에는 본격적으로 유학생을 파견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등 서구국가였다. 유럽에서는 19세기 중반부터 팔리어, 산스크리트어 등을 중심을 한 불교학자들이 배출되기 시작했다. 일본 또한 19세기 후반에는 인도, 스리랑카 등 현지에도 건너갔다. 서양은 이미 동양학에 대한 체계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막스 뮐러, 실벵 레비, 올덴 버그, 도이센 등은 일본인들에 큰 영향을 준 서양학자들이다. 

 

  최초의 유학생은 동본원사의 난조 분유南條文雄와 카사하라 켄주笠原研壽다. 난조는 영국에서 영어를 배운 후, 뮐러의 문하에서 공부하며, 그와 함께 영역과 해설을 가한 『대명삼장성교목록大明三藏聖敎目錄』 등 다수의 범문 경전들을 간행했다. 귀국 후에는 동경제국대학 문학부의 강사가 되어 범어를 가르쳤다. 그는 일본 최초의 문학박사가 되었다. 그의 뒤를 다카쿠스가 이었다. 

 

  그 또한 1890년 영국으로 건너가 공부하며,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에서 서양학자들을 만나고 뮐러의 지도를 받았다. 귀국 후 다카쿠스는 1899년 도쿄제국대학 박언博言학과의 교수가 되고, 1901년 범어학 강좌를 담당했다. 도쿄대 인도철학의 효시는 1879년 하라 탄잔原担山의 ‘불서강의’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화한和漢문학과의 강사로서 『대승기신론』을 교재로 사용하였다. 이후 서양철학 및 동양철학과가 개설되고 인도철학은 지나(중국)철학과 함께 정규과목으로 독립한다. 다카쿠스는 범어학 강좌를 기반으로 1906년 인도철학종교사 교과목을 개설하여 독자적인 인도철학 강좌를 시작했다. 인도철학종교사는 그의 제자인 기무라 타이켄木村泰賢, 우이 하쿠주宇井伯寿 등으로 이어진다. 그 외에도 다카쿠스의 문하에서 오다 토쿠노織田得能, 츠지 나오시로辻直四郎 등 많은 인도불교학자, 언어학자들이 양산되었다. 

 


사진 2. 대정신수대장경. 

 

  다카쿠스는 일본의 인도철학, 범어학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그의 저술은 『팔리어 불교문학강본』, 『팔리어 불교문학서 목록』, 『인도철학종교사』 등 수십 권에 이른다. 『인도육파철학』은 당시 인도철학 분야 최고의 저술로 인정받았다. 그는 1921년 제자들과 더불어 『세계성전전집』 속에 리그 베다, 우파니샤드의 일본어 번역본을 출판했다. 무엇보다도 불후의 업적은 『대정장』(사진 2)의 편찬이다. 와타나베 카이쿄쿠渡辺海旭 등과 함께 1924년 아함부 상권을 간행하기 시작하여 1934년에 마침내 정장正藏, 속장續藏, 도상圖像, 목록을 합쳐 100권을 완결했다. 이어서 『국역 남전대장경』 전 65권을 1935년부터 시작하여 1941년에 완간했다. 동시대의 철학자 이노우에 테츠지로井上哲次郎는 그를 ‘다카쿠스 삼장三藏’으로 불러야 한다고 말했다. 

 

  근대 일본불교학의 백미는 『대정장』이다. 그 탄생은 다카쿠스의 학문적 열정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대학에서 팔리어의 니카야와 한역의 아함경을 연구할 서적을 구입하기가 어려움을 느꼈다. 와타나베와 함께 무작정 1923년 대장경 간행을 발표했다. 예산이나 예산 출처 등의 계획도 없었다. 10년 동안 비용마련에 분주하게 움직였다. 자신도 금주 금연을 단행했다. 그는 언제나 빚쟁이처럼 쫓겨 다녔다. 

 

  주지하다시피 6세기 『중경목록』의 발간, 8세기 『개원석교록』 등 경록이 편찬되고, 10세기에 이르러 본격적인 대장경 편찬, 간행이 이루어진다. 중국에서는 촉판 이후 다양한 대장경이 간행되고, 한반도의 고려판, 거란족의 거란판, 명장明藏 만력판, 청조의 용장판으로 계승되었다. 일본에서도 17세기 천해판(영관사판), 철안판(황벽판)이 간행되었다. 이들은 목판본이다. 근대에 이르러 금속활자로 첫 인쇄된 대장경은 『대일본교정대장경』이다. 활자나 책자가 소형이어서 『축쇄대장경』으로도 부른다. 1881-1885년에 걸쳐 출판되었지만, 발행부수가 적었으며 신뢰성에도 문제가 있었다. 이에 다카쿠스와 와타나베가 도감都監이 되어 착수하게 된 것이다. 

 

  먼저 엄밀하고도 다양한 자료를 섭렵하기로 했다. 돈황, 구지, 고창 등 실크로드 상의 서역에서 발견된 문헌, 중국의 6조, 당송의 필사본, 서구 소장본 등의 교합을 했다. 그리고 고려, 송, 원, 명판 대장경과의 교합, 정창원 등 일본 내에 소장된 사경본 등과의 교합을 행했다. 편찬으로는 공정엄명公正嚴明한 학술적 기반 아래 배치했다. 정장 55권은 인도문헌의 한역과 중국 찬술 문헌이다. 총 2,276부 9,041권, 본문 56,021쪽에 달한다. 『개원석교록』의 1,076부 5.048권에 비하면 약 두 배 정도에 해당한다. 속장 30권은 일본 찬술관계문헌으로 고일부古逸部, 의사부疑似部로써 777부, 본문 24,400쪽이다. 도상圖像 12권, 총목록 3권, 도합 100권의 총서를 발간한 것이다. 

 

  범어, 팔리어의 경명과 인명 등을 각주에 넣었으며, 각 쪽을 3단으로, 한 쪽당 1,500자로 했다. 휴대하기도 편리하고, 저렴한 가격으로 보급하기로 했다. 관동대지진 때 지형紙型이 타버려 경영의 책임을 다카쿠스가 지기로 했다. 편집 겸 발행은 다카쿠스가, 발행소는 일체경간행회로 해서 간행했다. 그는 만년까지 막대한 부채를 짊어졌다. 그럼에도 『국역 남전대장경』 간행을 또 시작했다. 한역 경전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낀 것이다. 인간적인 면의 불타의 모습이 『남전대장경』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고 보았다. 『대장정』의 편찬 때도 그랬지만 그의 많은 제자들과 팔리어 학자들이 참여했다. 율부律部 5권, 경부經部인 장부·중부·상응부·증지부·소부의 5니카야 39권, 논부論部와 기타 26권으로 총 70권이다. 

 

  이 대장경 외에도 근대 일본에서는 1902-1905년에 걸쳐 마에다 에운前田慧雲이 중심이 되어 간행한 『일본교정대장경[卍正藏]』이 있다. 일본식 읽기의 구독점, 가에리텐返り点을 넣었다. 이어 1905-1912년에 걸쳐 『대일본속장경[卍續藏]』이 간행되었다. 중국 찬술의 전적이 집대성되어 있다. 특히 장소류章疏類나 선적禪籍 등 중국불교 연구에 필수적인 전적이 수록되어 있다. 그 외에도 『대일본불교전서』(1912-1922), 『일본대장경』(1917-1922), 『국역대장경』(1917-1928), 『국문동방불교총서』(1925-1933), 『국역일체경』(1928-1936), 『소화신찬국역대장경』(1928-1932) 등이 편찬되었다. 여기에도 다카쿠스는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근대 일본의 불교학은 대장경 편찬 외에도 불교사전류, 전서, 총서, 종전宗典 편찬이 봇물을 이루었다. 『정토종전서』, 『진종전서』, 『진종대계』, 『국역선종총서』, 『국역밀교』, 『국역선학대성』, 『진종총서』, 『조동종전서』, 『진언종전서』, 『신편진종대계』 등이 20세기 전반기에 이루어졌다. 현재까지 불교성전류는 20여 종에 이른다. 지금도 전서나 총서의 사업은 지속되고 있다. 고대와 중세에 성립된 일본불교의 종파는 에도시대에 본말사제도나 단가제도에 의해 정체성을 수립하고 전통적인 교육체계를 세웠으며, 근대에 이르러 이를 보증하는 종파의 경전을 체계화함으로써 종학을 확립하게 된다. 

 


사진 3. 무사시노 여자학원 전경(1929). 

 

  또한 근대에는 각종 불교사전이 편찬된다. 대표적인 것만도 『불교자전』, 『일본불교인명사전』, 『불교사전』, 『모치즈키望月 불교대사전』, 『불교사림』, 『불교대사전』 등 일반 불교사전이 20세기 초반부터 출판되어 20세기에 걸쳐 20여 종에 달한다. 종파별로도 『정토종사전』, 『밀교사림』, 『진종대사전』을 필두로 20세기에는 10여 편이 출판된다. 현재도 다양한 불교사전류가 시중에 나오고 있다. 이것은 대장경류, 전서나 종전류, 사전류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판본이나 간행물, 내용의 비교, 분류는 물론, 출처가 명확해졌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다양한 전적이 출판되고, 불교연구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본 근대불교학의 성과는 당대의 중국, 한국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다카쿠스가 활동했던 시기는 이처럼 불교연구의 도구서적들이 봇물처럼 쏟아지던 불교학의 황금기였던 것이다. 또한 그는 인도불교학과 대장경 부흥만이 아니라 계몽과 교육에도 열을 쏟았다. 잡지 『중앙공론』의 전신인 『반성회잡지』(1897)를 발간했다. 중앙상업학교(1902), 무사시노武蔵野 여자학원(1924, 현재 무사시노대학, 사진 3), 룸비니 유치원(1933) 등을 설립했다. 그는 인격을 세 가지로 보았다. 보통 인격은 자신만을 책임지는 것, 초월 인격은 자신이 활동하는 사회의 책임만큼은 모두 함께 지니고 가는 보살의 인격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절대인격은 우주 전체, 인류는 물론 금수까지 책임을 진다는 부처의 인격을 말한다. 지정의 삼방면의 교육을 신구의 삼업 전체적으로 보아 부처로까지 탈바꿈시키는 것을 교육의 궁극으로 본 것이다. 

 

  다카쿠스과 같은 불교인들을 포함한 일본 근대의 많은 지식인들이 국가주의에 경도되어 제국의 확장에도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업적 중 어느 부분은 인류의 마지막 희망인 불교 내지는 불교학의 발전, 나아가 인류의 진보에 큰 역할을 한 것을 보면 진흙 속에서도 진주는 빛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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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상
원불교 교무. 법명 익선. 일본 교토 불교대학 석사, 문학박사. 한국불교학회 부회장, 일본불교문화학회 회장,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조교수. 저서로 『아시아불교 전통의 계승과 전환』(공저), 『불교대학국제학술연구총서: 佛敎と社會』(공저) 등이 있다. 논문으로는 「일본불교의 내셔널리즘의 기원과 역사, 그리고 그 교훈」 등이 있다. 현재 일본불교의 역사와 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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