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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다도 ] 차와의 인연은 사람으로 하여금 황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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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룡  /  2021 년 1 월 [통권 제93호]  /     /  작성일21-01-13 16:29  /   조회734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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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은 수준 높고 귀한 글들로 수록된 최고의 잡지로 알려져 있다. 필자가 원고 요청을 받고는 한편으로는 대단히 영광스러운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혹여 잡지의 격을 떨어트리는 우를 범하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 타고난 말재주, 글재주를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평생을 자연과학에 바탕을 둔 공부를 해왔을 뿐, 차에 대해서도 아직 잘 모르는데 어찌 도를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것도 업보인 것, 보잘 것은 없지만 차와의 인연을 시작으로 그간의 경험들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한다. 이렇게 가다가 운 좋게 힘을 얻어 기운이 생기면 우리 조상들의 차 생활까지 넌지시 엿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불교와의 결연結緣 

 

차와의 인연을 말하기 전에 먼저 불교와의 인연을 이야기 하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과학과 종교’나 ‘신념을 기르자’는 글을 배우며 신념을 가지기 위해서는 종교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종교를 찾아야 할지 모르고 있다가, 경북대학교 농과대학 농화학과에 입학하였는데 마침 개교 기념 축제의 하나로 ‘종교에의 초대’라는 대강연회가 있었다. 기독교, 천주교, 불교계의 최고의 석학 세 분이 각각 한 시간씩 강연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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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1969년 대불련 해인사 수련교재. 

 

필자는 그 강연을 듣고 나오면서 불교를 택하기로 하였다. 세 종교의 목표는 모두 영원한 행복을 얻는 데 있었다. 그러나 그 영원한 행복을 전지전능한 절대자인 하나님의 구원이나 은총을 받아서 얻을 것인지, 아니면 영원한 생명 속에 무한의 능력이 있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 얻을 것인지에 대한 동력의 차이가 있었다. 필자는 주체적인 나 자신으로부터 ‘영원한 행복’을 얻는 데에서 매력을 느꼈다.

 

거울에 한 자 높이의 먼지가 쌓여있어 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거울이 없다고 할 것인가 내가 없다고 할 것인가? 먼지를 닦으면 나의 참모습을 볼 수 있으니 당연히 먼지를 닦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강연이 있은 지 2-3주 후에 ‘경북대 불교학생회’ 모임이 있다는 동아리방을 찾아가서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경북지부 법회가 대구 반월당 보현사에서 열린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여름 수련회가 해인사에서 열린다는 얘기를 듣고 수련회가 무엇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 채 참석했다(사진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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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1969년 대불련 해인사 수련일정표. 

 

당시 해인사 방장 성철 스님께서 하루 2시간씩 7일간 법문을 하셨다.(주 1) 방장 스님의 지극히 논리적이고 아주 과학적인 말씀에 과학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던 필자가 의문을 제기하려고 해도 반론의 여지를 찾기 어려웠다. 3,000배(주 2)가 백미였고, 수계(주 3)는 나의 나침판이었으며, 용맹정진(주 4)은 일에 대한 자신감을 주었다. 그때부터 누구를 보아도 불교 얘기를 하고 싶었다. 우선 집안 식구부터 시작하여 친구들, 여러 사람에게 불교를 소개하였다. 그런데 조금 지나니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정말 미미한 것이구나 하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되었고, 자제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 (주 5)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지금은 해인사 수련대회의 기분이 어디론가 다 도망가고 없다.

 

차와의 만남

 

그 후로는 방학 때마다 수련회에 다녔고, 4학년 때 다솔사의 수련(주 6)은 필자의 차와의 첫 인연이었다(사진 3·4). 당시 효당 최범술 스님께서는 『반야심경』을 바탕으로 한국의 차도를 강의하셨다.(주 7) 그리고 마지막 날 난생 처음 한 잔의 차를 맛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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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1972년 대불련 지구별 수련 합동교재. 

 

 

1969년 농수산부 농특사업의 일환으로 전남 지역에 차밭이 조성되기 시작하였는데, 특히 보성군의 다원면적은 1973년에는 580ha까지 증가되었다.(주 8) 그러나 저질 가짜 홍차 사건(주 9)과 커피의 폭발적인 소비 확대는 농민의 소득증대의 하나로 녹차 재배를 권장하였으나 소비가 되지 않아, 전남도는 대책을 세워 농수산부 장관에게 건의하게 되었다. 1983년 장관은 산하 기관인 농어촌개발공사 식품연구소에 ‘국산차의 품질개선에 관한 연구’를 하라고 지시하였다. 그 과제가 필자가 봉직하던 농산식품과에 배당되었으나, 아무도 그 연구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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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1972년 대불련 영남지구(다솔사) 수련 참가자 명단. 

 

  

수련회 때 한국의 차도를 공부하고 한 잔의 차를 맛본 인연으로 필자가 그 연구를 맡았고, 그것이 박사학위 논문의 기초가 될 줄은 이때에는 알지 못했다.

 

전국 차 산업 투어

 

우선 전국에서 생산되는 차를 모두 구입하여 농산식품과 직원 7명은 매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차 한 잔으로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니 직원 모두 훌륭한 관능검사 요원이 되어 있었다. 과제 책임자인 필자와 조수 둘은 차 잎이 생산되는 시기에 맞춰 차와 관련이 있는 전국의 거의 모든 분을 찾아뵙고, 지금은 차 관련 명인 등 여러 분야에서 최고가 되신 여러분들과 국산차의 제조 방법과 문제점 등을 공부하였다. 

 

화엄사에서 수령 스님과 함께 밤새도록 차를 비비고 덖고 하여 창호지를 펴서 구들에 말린 햇차를 새벽예불이 끝나고 돌솥에 물을 끓여 자루가 긴 물바가지[杓子]로 물을 떠 ‘차우림 그릇’[茶罐]에 넣고 차를 우려 시음하였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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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 일지암에서 뵌 석용운(주 10) 스님의 대학노트 3권을 합본한 노트에는 국내외 차 관련 자료들이 가득하였다. 그 자리에 앉아 차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6시간이 지났는데도 끝나지 않아 저녁 공양 후 3시간 동안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화개에서는 화개제다 홍소술(2007년 5월4일 죽로차 분야 식품명인 30호), 쌍계제다 김동곤(2006년 2월15일 우전차 분야 식품명인 28호) 등을 뵈올 수 있었고, 보성에서는 대한다업 장영섭, 보성다업 최연호, 보성작설원 서찬식, 당시 가루차를 생산하던 대천식품 등을 방문하여 차에 관한 여러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특히 광주에서는 전남대 김동연 교수(金銅淵, 1928-1991. 식품공학과), 그리고 한국제다 서양원 서양원(1931-2012. 2008년 8월5일 황차 말차 분야 식품명인 34호, 지금은 아들 서민수 식품명인 54호) 사장이 70년대 후반 커피가 대중화됨에 따라 찻잎의 수매가 외면 받는 틈에 50여 재배 농가와 10년간의 수매 계약을 하였다는 얘기는 지금도 회자하고 있다. 또한 조태연 부부(주 11)는 1962년 차를 찾아 부산에서 전 재산을 털어 아무 연고도 없는 화개로 이사 와 어렵게 차를 만들고, 허가를 내고, 주위의 질투로 허가가 취소되고 하는 등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선차(주 12)를 제다하여 우리나라 녹차 제조의 선두 역할을 했다. 이 부부의 열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茶, 어떻게 읽어야 할까?

 

‘茶’는 ‘다’ 혹은 ‘차’로 읽는다. 필자의 첫 번째 차 스승이신 효당 스님께서는 현대에 와서 사전류를 만들며 한자를 한글로 표시하며 중국 한자를 진서眞書로 한글을 언문諺文이라 하며 한글을 홀대하는 양반들의 사대주의 풍토가 ‘茶’를 ‘차’가 아닌 ‘다’로 표기하여 고착시킨 것으로 보셨다. 따라서 우리 전통 차 문화의 우수성을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차사茶事에 관련되는 ‘茶’는 ‘차’로 발음하기를 권장하셨다.(주 13) ‘차’든 ‘다’든 ‘道’로 향하는 데는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따라서 독자에 따라 어색하지 않게 읽으시라는 뜻으로 본고의 제목을 ‘한국의 茶道’라 했다.

 

돌아보니 차와의 인연이 내 삶의 많은 것들을 이루고 있어 새삼스럽다. 다사다난하고 또 지극히 신이神異로웠던 나의 삶! 차와의 인연이 나로 하여금 황홀하게 한다. 여러분들의 삶 역시 그리 되실 것이니 단언컨대 ‘차와의 인연은 사람으로 하여금 황홀하게 한다’(사진 5) 할 것이다.

 

 

 

주) - 

1.1969년 7월24일부터 8월2일까지 10일간 수련회 중 입제식, 해제식, 오리엔테이션 3일을 제외하고 오전 7시에서 9시까지 2시간씩 7일간 법문하신 내용이 『성철스님 법어집-영원한 자유』라는 제목으로 장경각에서 출판됐으며 ‘불교의 현대적 고찰’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2. 삼천배의 기운은 30년 정도 유지됐다. 그 후 2번 더 했으나 효과가 처음과 같지 않았다. 보통 2천에서 2천5백배 사이에 무의식의 상태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것을 경험하지 못하면 효과가 적을 뿐만 아니라 몸도 상하게 된다. 

3. 不殺生(慈悲), 不偸盜(福德), 不邪淫(淸淨), 不妄語(眞實), 不飮酒(智慧)의 다섯 가지 계율을 받음. 

4. 저녁 9시부터 새벽 3시까지 50분 좌선 후 10분 행선行禪을 거듭하였다.

5. ‘처음 발심하던 때가 깨달음을 이룬 때’이다.

6.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10년차 동계 지구별 연합수련대회 제4지구(영남) 수련회가 1972년 12월31일부터 1973년 1월5일까지 진주 다솔사에서 열렸다.

7.보련각에서 1973년 출판된 효당 최범술(1904-1979) 스님의 『한국의 茶道』는 당시 강의 내용이 주축이 된 것이다.

8. 보성다원은 1941년 일본인이 조성했다. 녹차 농특사업은 ‘보성지역의 차는 재배차’라는 말을 퍼지게 한 실마리가 됐다. 

9. 1970-1971년 폭발적인 홍차 소비에 공급이 부족하여 고춧잎에 색소를 섞는 등 가짜 홍차가 범람한 사건.

10. 釋龍雲. 2012년 10월 9일 초의 차, 초의 병차 분야 식품명인 47호.

11. 趙泰衍(1919-1996)과 金福順(1916-1992)은 부부로 우리 녹차 제조의 기틀을 닦았다.

12. 仙茶. 조태연 부부가 1962년부터 생산된 차의 상품명이었으나 후에 지리산 죽로차, 지리산 작설차로 개명되었다.

13. 오상룡 지음, 『차도학』, 국립 상주대출판부, 2005, p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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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룡
계간 《차생활》 편집인. (사)설가차문화연구원 이사장, (사)생명축산연구협회 협회장, (사)아시아-태평양 지구생명 환경개선협회 협회장, (사)한국茶명상협회 이사·감사. 현 경북대 농업생명과학대학 명예교수. 『차도학』(국립 상주대 출판부, 2005) 이외 저 역서 다수. 「차의 품질평가」 등 논문 및 연구보고서 100여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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