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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 티모시 리차드의 『대승기신론』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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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란  /  2020 년 7 월 [통권 제87호]  /     /  작성일20-07-20 15:24  /   조회42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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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 중국7 / 티모시 리차드의 『대승기신론』 번역

 

김제란 / 고려대 초빙굣  

 

중국 근대에서 전통불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서학, 즉 서양 학문의 충격을 소화하거나 대응해내야만 하였다. 그 때문에 전통 불교는 『대승기신론』을 중심으로 깨달음을 중시하는 종교성을 강조하는가, 서양 학문에 대응할 수 있는 철학적 논리 체계에 비중을 두는가에 따라 크게 양분되었고, 그 대표적인 유파가 태허의 ‘중국불교’와 구양경무의 ‘유식불교’를 중심으로 하는 일군의 학자들이었다.


불교와 서양 학문의 만남

 

여기에 유학, 도가 사상 등 다른 전통 사상과 결합하여 ‘새로운 불교(=신불교)’를 형성하는 또다른 길이 더해져서 전통 불교는 결국 세 가지 갈래길에 직면하게 되었던 것이다. 근대 시기 불교 내부에서 이같은 세 가지 다른 성격의 유파가 생성된 근본 원인은 서양 학문과의 만남에 있었다. 중국 근대에서 불교는 동서 문화의 계합점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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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모시 리차드

 

중국 근대시기 불교가 서양 학문과 만난 또 하나의 예로서 티모시 리차드(Timothy Richard, 중국명 李提摩太, 1845-1919, 사진1)의 『대승기신론』 영어 번역본을 들 수 있다. 『대승기신론』 자체가 대승불교에서 가장 핵심적인 논서인데다가 근대 불교에서 여러 유파가 나뉘어지는 논점을 제기하고 있기 때문에, 이 번역은 특히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티모시 리차드는 영국 침례교 선교사로서 1870년부터 1916년까지 중국에 체류하였고, 청말 사상계와 정치에 깊이 관련하였던 인물이다. 1844년 리차드가 남경을 방문하였을 때, 지난 호에 언급한 양문회(楊文會, 1837-1911)를 만나고 그에게서 『대승기신론』을 손에 넣었다. 리차드는 이 책을 읽고 흥미를 느끼고 번역할 결심을 하게 되었다. 번역이 어려웠기 때문에 양문회에게 협력을 구하였고, 일찍부터 『대승기신론』을 서양에 소개하려고 생각하고 있던 양문회는 절호의 기회로 보고 이에 기꺼이 협력하였다. 그 결과 1894년 『대승기신론』이 영어로 번역되고 그 영역본이 상해에서 출판되었다. 이 『대승기신론』 번역을 통해 불교와 서양 학문, 불교와 기독교가 만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리차드의 기본 전제는 중국을 기독교화하는 것이 중국의 근대화와 개혁에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었다. 그는 1885년에 선교 보고차 영국에 잠시 돌아가게 되었을 때, 그곳에서 중국의 ‘국가적 개종’을 주장하였다. 중국을 기독교 국가로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므로, 모든 선교 단체와 힘을 합하여 중국을 국가적으로 개종시키는 노력을 경주하자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그는 이같은 목적이 교육과 전도의 방법을 통해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 때의 교육은 당연히 서양 학문이고, 전도는 기독교 전도로 문서로 전도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보았다. 이같은 생각을 가진 리차드의 번역에 서양 학문, 특히 기독교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나리라는 점은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리차드의 번역 의도는 서양인들에게 불교 신앙을 전파하려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불교도들에게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는 가능성으로 이용하려던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은 그의 『대승기신론』 영역본 서론에 숨김없이 나타난다. “대승의 신앙이란 불교가 아니라, 우리의 신God과 구세주救世主를 말하는 기독교와 동일한 교의로서, 복음Gaspel의 아시아적 양태이다.”라고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도, 불교도 절대자의 초월적이면서도 내재적인 양태가 포함되어 있지만, 동양은 내재적인 양태를 강조하는 한편 서양은 초월적인 것을 강조할 뿐이다.”라고 하여, 서양 기독교와 동양 불교의 차이가 본질적인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였다. 단지 서양 기독교는 신의 초월성을 강조하는 반면, 대승 불교는 신(=진여)의 내재성을 강조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본 것이다. 이는 중국 근대에 불교와 서양 학문이 만나 형성한, 최초의 기독교· 대승불교 일원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일심· 진여와 ‘참된 모델True Model’ 또는 ‘신God’

 

리차드는 ‘중생심(衆生心, 중생의 마음)’을 ‘모든 생물들의 영혼(the Soul of all living beings)’, 또는 ‘우주의 영원한 영혼(the Eternal Soul of the universe)’이라고 번역하였다. 더욱이 후대의 번역본과 달리 리차드는 중생심의 ‘심心’을 ‘Mind’와  ‘Soul’을 구분하지 않고 혼용해서 번역하고 있다. 서양 전통에서 ‘Soul’은 육체의 죽음 이후에도 불멸하고 분화되지 않는 실체로서의 영혼 개념으로 받아들여지며, 특히 사후의 삶에 대한 믿음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는 기독교에서 사후에 신의 심판이 가능한 철학적 전제이기도 하다. ‘우주의 영원한 영혼’에서 ‘영원하다’는 것은 모든 생명있는 존재들의 영생을 주장하는 종교적 근거를 부여한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대승기신론』에서 이 세계의 본체, 법체가 중생심이라는 내용은 기독교에서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 즉 피조물이 영혼을 가지고 있고, 그 영혼의 구원에 따라 영원한 생명을 가질 수 있다는 교리로 해석할 여지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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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모시의 영역본에 첨부되어 있는 <대승기신론> 인쇄본

 

‘진여眞如’는 ‘참된 모델True Model’이라고 번역하였는데, 모든 만물은 참된 모델에 따라 창조되었다는 의미로서 플라톤의 ‘이데아Idea’와 완전히 동일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는 현상계를 초월해 존재하는 참된 세계로서, 진정한 설계도, 다른 표현으로 하면 ‘참된 모델’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플라톤 철학의 이데아가 서양 중세 기독교의 신神 개념을 합리화하는 개념으로 활용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리차드가 진여를 참된 모델이라고 번역한 것이 기독교적 해석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는 후대의 번역본에서 진여를 ‘그대로Suchness’나 ‘참된 그대로True Thusness’로 보는 것과는 큰 차이가 나는 해석이다.    

 

‘심진여문’과 ‘심생멸문’에 대한 독특한 영역英譯

 

리차드는 심진여문을 ‘영원하고 초월적인 영혼the eternal transcendent Soul’이라고, 심생멸문은 ‘일시적이고 내재하는 영혼the temporary immanent Soul’이라고 번역하였다. 또 다른 곳에서는 심진여문을 ‘원형의 참되고 영원한 형태the Archetype’s True Eternal Form’, 심생멸문을 ‘원형의 삶에서의 일시적 형태the Archetype’s temporary form in life’라고 번역하기도 하였다. 리차드는 여기에서 진여를 ‘원형Archetype’으로 파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원형, ‘아키타이프’는 일반적으로 원형原型이나 원형(元型, 인간의 정신 내부에 존재하는 조상이 경험한 것의 흔적), 인간 정신 내부에 존재하는 가장 완벽하고 전형적인 예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앞에서 진여를 ‘참된 모델True Model’이라고 번역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우주의 모든 다른 형태들은 영혼의 진정한 차이들이 전혀 아니고, 한 가지 진정한 힘one real power의 다른 표현들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참된 핵심True Essence’, ‘참된 같음True Likeness, 또는 ’참된 실체True Reality, 또는 ‘모델Model’이라고 부른다. 이 원형(아키타이프 Archetype)의 본성은 파괴될 수 없는 실체reality이다. 왜냐하면 만물은 진정으로 그 의미가 지적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참되기 때문이고, 모든 형태들은 한 참된 모델의 다양한 표현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보통의 영어와 보통의 사고를 넘어선 것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을 참된 모델True Model이라고 부른다.”(『대승기신론』 T32)  

 

  현상계의 다양한 형태들 너머에 있는, 그래서 그 형태들을 꿰뚫어보아야 알아볼 수 있는 ‘한 가지 진정한 힘one real power’이 바로 리차드가 생각하는 ‘진여’의 의미이고, 기독교의 ‘신God’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 그의 번역에서 나타난 참된 핵심, 참된 실체, 원형, 참된 모델 등의 다양한 용어들은 분명히 기독교에서 말하는 조물주, 즉 신의 구체적 표현이다. 그러나 진여에 대해 ‘변화하지 않고 파괴되지 않는 사물들의 진정한 핵심’이라고 한 표현은 전형적인 대승불교의 진여관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번역에는 대승불교의 진여관과 기독교의 신관이 서로 융합된 채로 표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리차드는 ‘여래의 평등법신[法身]’을 ‘참된 모델(=여래)의 화신의 자연적인 상태(the natural state of the Incarnate True Model’라고 번역하였다. 여기에서 ‘화신(化神, 인간의 몸으로 나타나다 incarnate)’은 기독교 신의 화신, 또는 성육하신 하느님이라고 부를 때 주로 사용하는 용어이다. 여기에서 ‘여래의 평등법신’은 기독교 신의 ‘화신’과 쉽게 만나는 지점이 된다. 현상계에서 여래(진여)가 신체로 나타난다는 사실은 기독교에서 신이 육화하여 이 세상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예차럼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쉽게 대승불교와 기독교가 다르지 않다는 일원론의 결론으로 나아가게 되었음직하다. 

 

리차드 번역의 의미

 

서양 제국주의가 침탈하던 혼돈의 시기에 리차드는 『대승기신론』 번역을 통하여 서양과 동양의 우호적 만남을 꾀하였던 듯하다. 긍정적으로 볼 때, 그의 번역은 동양 불교와 서양 기독교의 대등한 만남이었고, 뛰어난 서양이 우매한 동양을 계몽해야 한다고 보았던 당시 대다수 선교사들의 사고방식과 비해 볼 때 매우 선진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번역이 불교를 기독교적으로 해석하고 있기는 하였지만, 이러한 번역은 중국 근대불교가 서양 학문을 흡수하였던 한 측면이라고도 볼 수 있다. 

 

물론 대승불교와 기독교를 하나로 파악하고 불교를 기독교적으로 접근한 점에 대해 중국 근대불교 쪽에서 거센 비판이 나왔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양문회는 리차드가 자신의 해석에 따르지 않고 기독교적인 해석을 하고 있는 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우리는 그의 번역을 통해 불교와 기독교의 근본적인 차이 및 유사성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 최초의 『대승기신론』 번역이 서양이 대승불교를, 동양이 서양의 기독교를 더 깊이 이해하는 디딤돌 역할을 하였을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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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란
철학박사. 현재 고려대 강의교수 및 조계종 불학연구소 전문연구원. 고려대 철학과, 지곡서당 한문연수과정 수료,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연구교수 역임. 『웅십력 철학사상연구』, 『신유식론』 등 다수의 저서 및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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