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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묵향을 더듬다]
오직 진리만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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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섭  /  2018 년 6 월 [통권 제62호]  /     /  작성일20-07-15 15:22  /   조회5,907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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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의 심심미묘(甚深微妙)한 대법칙상 수도 여부를 막론하고 유형 무형초목(草木) 금수(禽獸) 할 것 없이 상주불멸은 사실이지만은 진여증지(眞如證知)를 얻어 자재신(自在身)이 되기 전에는 고(苦)의 연속이란 비참한 상주불멸이 되고 마는 것이다. 상주불멸인 기묘(奇妙) 현상에 불교가 꼭 필요한 것은 소이(所以)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동일한 상주불멸에 고락(苦樂) 자유 부자유의 천지현격(天地懸隔)한 엄연한 사실은 절대 도피 부득이다. 무한히 계속되며 천만년을 두고도 전혀 쉴 사이없는 이 삼계(三界)의 대고해(大苦海) 속에서 여사(如斯)1) 묘법(妙法)을 알고도 그만 이 고해를 벗어나지 못한다면은 이는 천추(千秋) 통한지사(痛恨之事)2)라기보다 절치부심(切齒腐心)3)할 일이며 이 묘법에 의하여 대고해를 벗어나 영원한 자유를 얻게 되면은 분신쇄골(粉身碎骨)4)하여도 그 은혜의 만분지일(萬分之一)도 보답치 못할 것이다.

 

과학의 대두(擡頭)는 이 묘법에 철석(鐵石)갓흔 기반을 주웠으니 의구(疑懼)와 주저(躊躇)는 단한 대고(大苦)의 입문(入門)이니 일대 용단으로 진심갈력(盡心竭力)할 것이다. 정신 육체상 생명이 차라리 이 일생에 한(限)하였다 만사가 이 일생으로써 절식(絶息)5)될 것이나 우주의 대법칙은 영원한 연을 피치 못하게 하니 일시(一時)의 함몰로 영원한 불행을 초래하지 말고 오즉 일체를 불고(不顧)6)하고 원한 자유의 무상대로(無上大路)로만 전진할 것이다.

 

그러나 노정을 잘못 잡으면 공연한 도로(徒勞)7)에 치게 되나니 오즉 직입(直入)경로인 불립문자 교외별전의 수선묘법(修禪妙法)으로 결사(決死) 성취할 것이다.

 

사. 대우주인

 

모든 신통력을 구비하고 광대한 지혜를 수료(修了)하여 시방세계 제국토에 어느 지방이고 현신 않음이 도다. (具足神通力 廣修智方便 十方諸國土無剎不現身 – 『법화경』)이것이 대자재력을 가진 우주인의 동이다. 육체상 은현(隱顯) 자재력과 정신적 무애(無碍) 통찰력을 구비하여 시방국토에 자유자재히 현한다는 말이다.

 

우주의 실체인 상주불멸하는 진여의 묘용(妙用)은 일체에 현현작용하여 일초(一草) 일(一木) 일진(一塵) 일토(一土) 내지 허공일월까지전체가 우주체 안임이 없스며 상주 안임이 없다. 그럼로 인간적으로 본다면은 인인개개(人人箇箇)가 전부 우주인이다. 그러나 일체가 동일한 우주체이나 자유 뷰자유는 상위(相違)하여 개개(箇箇) 본구(本具)의 자유능력을 발휘한 인간에 한하여 특히 대우주인라 호칭하는 것이다.

 

이 자재한 능력을 무심위(無心位)부터 시발(始發)하여 색심불이(色心不二) 법리(法理)의 실현으로 색자 심자재 법자재의 능력을 발휘케 되나 이것은 전연 부자유한 유심위(有心位)에 비(比)한 것이요 진여위(眞如位)의 자재에서 보면 비(比)도 못 되는 것이니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재는 오즉 진여 위에만 한(限)한다.

 

그럼으로 숙면중 명료불매(明了不昧)하는 무심위에서도 일대전환을 하여 심야중(深夜中) 천일(千日)이 동시 병출(竝出)한 것갓흔 경지가 개척되어야만 대자재인이라 할 수 있으며 대우주인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처음으로 우주의 실체인 진여를 파악케 되어 진여즉자기(眞如卽自己) 자기즉진여를 활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 심경(心境)은 상적조(常寂照)나 여정유리함보월(如淨瑠璃含寶月)8) 등으로 표현하나 이는 오즉 여인(如人)이 음수(飮水)에 냉난(冷暖)을 자지(自知)9)로 자증(自證) 자긍(自肯)할 뿐 외인(外人)이 규지(窺知)10)할 배 안이며 또한 필설(筆舌)로 형용할 바 안이다.

 

그 심경의 광대무변함은 시방허공도 해중일구(海中一漚)11) 격이다. 즉 광대무변한 시방허공이 대각중(大覺中)에 발생함은 대해에 일구(一漚)가 발기(發起)하과 갓다 하였다. (空生大覺中 如海一漚發 – 『능엄경』) 이 대각이라 함은 활연대오한 심경을 지칭함이니 즉 진여 자체를 말함이다.

 

이러한 신묘난사(神妙難思)한 경계를 필설로 개진함은 화호성구(畵虎成狗)12)도 못 될 것이니 당초부터 필설을 심장(深藏)13)하는 것이 가(可)할 것이나 이해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부득이한 소행이다. 백천 제불이 무한 세월로도 개진 못함을 팔만장경이 하등 소용없지만은 이는 지위소아제(只爲小兒啼)

 

즉 어린애 우름 달내기애 위한 일시방편에 불과한 것이다. 누누 설명은 도로혀 심심묘리(深深妙理)를 더럽히기만 하나  오즉 영원한 대자유 있음을 명시함이니 이심전심의 직입 법로(法路)를 밟어 일체인이 다 대우주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천 리 원행(遠行)도 최초 일보(一步)에 있는지라 설사 당각(當刻)14)에완성 못 되였드라도 일보(一步)의 시작에서 구경의 성과를 었게 되는 것이니 초열지인(初劣之人)15도 전부 대우주인이라 호칭하여도 불가함이 없을 것이다.

 

이리하여 석가의 광대 법리는 인간으로 하여금 이 현실을 떠나 극락으로 가라 천당으로 가라 등의 저속한 언론이 안이요 상주불멸하는 이 현실을 진정히 파악하여 이를 무한히 활용하는 데 있는 것이다. 이 법리는 일진(一塵) 일토(一土)도 도피할 수 없는 바이니 일체가 전부 상주불멸하는 이 진여 대법리 외에 존재치 못하는 까닭이다.

 

그리하여 심오한 이 법리에 의하여 개개가 전부 자기 본유 능력을 발휘케 함이 석가의 본회(本懷)16)이 며 불교의 원칙이다. 그런고로 일체법이 개시(皆是) 불법이라 고성(高聲) 제 창하는 바이다.

일체법불생 일체법불멸의 대원리로써 일체의 본체를 명백히 하였으니 영원한 이 대우주 법리를 발휘하여 일체 함령(含靈)이 다갓치 자유자재한 대우주인이 되기 바라는 것이 불교인의 대서원(大誓願)이다.


                                  여론(餘論)


가. 황금과 분토(糞土)

 

우주의 본체인 진여의 실상은 언어문자 등 일체의 수단 방법으로 파악할 수 없고 오즉 유심 무심을 초월한 진여증지(眞如證知)로만으로써 가능함을 누누히 명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유심위 내인 경험 언설이 가능한 피상현상인 에너지로써 대비함은 자가당착(自家撞着)이며 따라서 황금을 분토(糞土)17)와 대비 설명함과 동일하다고 비난할 것이다. 그러나 진여는 원래 만유일체의 근본이어서 유형 무형 할 것 없이 일호(一毫) 일진(一塵)도 진여의 발현  안임이 없음으로 아무리 피상적인 에너지라 하여도 진여의 발용(發用) 안임이 안이다.

 

그런 고로 무슨 사물에 있어서도 그 진상을 파악하면은 그 본체를 알 수 있어서 삼천년간 인류 합작은 금일에야 비로서 에너지의 진상을 파악하게 되고 에너지 역(亦) 진여의 발현임으로 그 원근(原根)은 진여와 상통치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증지(證知)가 안이면 파악할 수 없는 진여묘리를 일반이 이해할 수 있는 에너지보존으로써 소개함도 불가할 것은 추호도 없을 것이다.

 

요는 진여의 발현인 에너지의 진상을 파악하고 못 한 데 있나니만약 그 진상을 구명했다면 그 본체와 상통 안흘 수 없는 바 금일의 보존법칙을 삼천 년 전의 진여묘리와 혼연상합(混然相合)하니 이것이 보존법칙이 에너지의 진상을 파악한 증거가 될 것이다.

 

황금 분토로 보드라도 양자가 불생불멸인 보존법칙 내의 존재이어서 그 표현은 각이(各異)하나 상주불멸인 그 체성은 동일한 것이다. 그리하여 분토로써 황금을 충분 설명할 수 있으며 따라 황금으로써 분토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 일월(一月)이 보현일체수(普現一切水)(달 하나이 일체 물에 나타남)과 갓치 일성(一性)이 원통일체성(圓通一切性)(한 체성이 일체 체성에 통함)임으로 일법(一法)에 통합일체법(通合一切法)(한 법리가 일체 법리에 널리 합함)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여하한 피상적인 사물에 있어서든 간에 그 진상만 파악하였다면 일체 사리에 합할 것이며 그 실체인 근원에 상통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 일반에 널이 공인되여 하인(何人)이든 이해할 수 있는 피상적 시찰(視察)인 보존법칙으로써 우주의 본원인 심오한 차(此) 진여묘리를 소개하는 소이가 있는 것것이다.

 

나. 방편가설

 

불교는 자초지종 철두철미히 합리적 체계상에 조직되였다. 하지만은 팔만장경 내 불합리한 언설이 수다(數多)하다. 그러나 여기에 대하여 석가도 경전 내에 상세히 밝혔으니 즉 이는 합리적 근본 원리를 이해 못하는 자들을 위하여 부득이히 종종(種種) 언설 비유로 방편을 가설(假說)하여 합리 원칙에 도달하는교량(橋梁)을 가설(架設)한 것이다.

 

일례로써 본다면은 극락세계 같은 것이다. 진여법리로 보면은 우주 전부가 상주불멸이며 극락세계 안임이 없는데 극락세계를 별설(別說)할 것 없을 뿐만 안이라 이는 진여상주법리와 모순되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은 현금(現今) 생사 이대로의 극락세계 즉 상주불멸을 소개하면은 도저히 이해부득임으로 상주불멸의 실세계로써 극락 가설(假說)을 창안(創案)한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은 유심(진여)정토 자성(상주불멸)미타로 인도하는 것이니 “극락도량이 하처(何處)오? 현금 생사가 즉 시(是)니라”고 대서특필하여 그진의를 명백히 한 것이다. 그럼으로 진정한 실지에 도달하기 위한 허위의 방편을 설함이 절대로 과실(過失)되지 않는다고 석가는 상시 설명하였든 것이다.

 

이것은 자체의 허위를 엄폐하며 그 사칭성을 합리화하려는 일종의 술책이 아니라 당초 이해가 곤란할 때는 방편가설으로 제시하여 점점 이해가 깊혀 완전 이해에 도달하면은 그 가면을 벗고 당초 가설은 전부 그리로 인도하기 위한 방편가교임을 중요 경전중에 상세히 명시하였으니 술책이라고 봄은 천부당만부당한 것이다.

 

설사 방편가설임을 설파하지 않어도 진리를 파악하고 보면은 어떤 부문이 방편이엿난지 각각 자각케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편가설임을 석가 자신이 직접 명백히 한 바에야 일(一)도 논의할 필요가 없는 것이며 그 진의 파악에만 노력할 따름이다.

 

 다. 오즉 진리만을 위하여

 

이렇듯 위대한 진리의 보고(寶庫)인 불교이나 현금 교계 현상은 수모(誰某)를 막론하고 장시(長時) 태식(太息)18) 않을 수 없다. 진리의 도량인 사원은 일반 유객(遊客)의 관람처가 안이면은 소위 기복신자의 소신(速信) 소굴이 되여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영원의 진리를 구명하여 일체 함령을 개도(開導)하는 중대한 책무를 가진 불제자 즉 소위 승려의 현황은 한심하기 짝이 없어 안내인이 안이면 무당 대행으로 오직 호구(糊口)에만 급급할 뿐이니 우주의 광명인 불교의 전도(前途)19)는 오즉 흑암(黑暗)에 싸여 있을 따름이다.

 

그 이유인즉 진리를 위한 입교(入敎)는 희소하고 대다수가 막대한 재산을 배경으로 한 불교를  이용하여 각기 생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출가한 연고이다. 그러나 석가는 여사(如斯)한 도배(徒輩)에 관하여 엄중한 단안(斷案)을나렸다.

 

즉 “엇떠한 도적놈이 나의 의복을 빌녀 입고 나를 팔어서 만흔 죄만 짓느냐”(云何賊人假我衣服禆販如來造種種業 – 『능엄경』)수인(誰人)을 막론하고 불제자의 가면을 쓰고 부처를 팔어 생계를 일삼는 자는 전부 도적이라 규정한 것이다. 현 교계로 보와서 이 규정이 통용 안 될 자가 희유(希有)할 것이다.

 

만고의 진리인 불타가 상품화되였다면은 이보다 더 통분(痛忿)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으로 다소라도 양심이 있다면은 생계의 길이 없으면 차라리 살인 강도를 하였지 만고에 위대한 불타를 상품화하여 이를 파라먹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석가의 규정대로 말하면 부처를 파라먹고 사는 자는 도적이라 선언하였으니 사원은 적굴(賊窟)이요 불타는 도적의 앞잡이가 되는 것이니 이렇게 되며는 불교의 전도(前途)는 명약관화(明若觀火)이다. 원래 출가입산이란 오즉 진리만을 위한 생활이다.

 

그리하여 만승제왕(萬乘帝王)의 귀(貴)도 흔갓같이 던지고 사해팔방(四海八方)의 부(富)도 헌신짝 갖치 차버리난 것이다. 그리하여 수도과정에 있어는 위법망구(爲法忘俱)하여 수화(水火)를 불고(不顧)하고20) 오즉 수도에만 진심갈력(盡心竭力)하는 것이다.

 

여기에 있어서 추호라도 명예나 이양(利養)에 대한 생각이 염두에 오르게 되면은 불교의 대반역이 되는것이다. 그리하여 천만 번 죽는 한이 있드라도 명리(名利)의 염(念)은 바려야 하는 것이다. 세속인도 무슨 도이건 도를 성취하려면은 삼강대절(三綱大節)의 결심이 안이면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즉 국가를 위하여 죽는 충(忠), 부모를 위하여 죽는 효(孝), 부부를 위하여 죽는 절(節), 이것이 삼강대절이니 이해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생명으로써 진심갈력한다는 말이다. 보통 평범한 세속에서도 그러하거든 만세 공리(公理)로 자부하는 불교 내에서는 었떠하여 할 것인지 심경의 일우(一隅)에21) 양심이 추호라도 잔재(殘在)하다면 분연대기(忿然大起)22)할 것이다.

 

오즉 제왕의 부귀도 다 버리고 폐의파리(弊衣破履)23)의 행자로써 생명을 불고(不顧)하고 일심 수도하든 고래 유명인의 행적을 밟어얄 것이다. 근세만 하드라도 동아(東亞) 일대를 통합하여 대청제국을 건설한 순치(順治)황제도 일조(一朝)24) 분연(憤然)히 자각한 바 있어 천고의 위업을 결연히 바리고 야반도주 하여 금산사(金山寺)에 은신하여 부목 노릇을 하며 수도하지 않엇는가.

 

그리하여 술회하기를 "나는 본래 서방의 구도하는 일개 납승이었거늘 무슨 인연으로 제왕가에 타락하였든고."(我本西方一衲子 緣何流落帝王家) 무일푼의 구도자로써 천하 제왕이 된 것을 여지없는 타락으로 본 것이니 이렇한 심정에서만 대도(大道)는 가능한 것이니 일침일선(一針一線)25)을 위하여 생명을 걸고 싸우는 명리 납승과는 천양지별(天壤之別)이 있는 것이다.

 

우주의 대법이요 만세의 공리인 위대한 불교를 맛나 허망한 일시의 명리를 위하여 살인 강도보다 우심(尤甚)한26) 진리의 대반역이 되어서는 천추만대에 씨츨 수 없는 유한(遺恨)27)이 되고 말 것이다. 오즉일시의 허망에 끌이지 말 영원한 자유를 위하여 일체를 불고(不顧)하고 결사 노력할따름이다.

 

주)

1) 여사(如斯) : “이와 같은”

2) 천추(千秋) 통한지사(痛恨之事) : 오랜 세월을 두고 원통할 일.

3) 절치부심(切齒腐心) : 이를 갈고 마음을 썩임. 대단히 분하게 여기고 마음을 썩임.

4) 분신쇄골(粉身碎骨) : 뼈가 가루가 되고 몸이 부서짐. 힘을 다해 노력(努力)함.

5) 절식(絶息) : 숨이 끊어짐.

6) 불고(不顧) : 돌아보지 않음.

7) 도로(徒勞) : 헛수고.

8) 여정유리함보월(如淨瑠璃含寶月) : 깨끗한 유리 속에 달이 담겨 있는 것과 같음.

9) 여인(如人)이 음수(飮水)에 냉난(冷暖)을 자지(自知) : 사람이 물을 마셔보아야 찬지 더운지를

아는 것처럼.

10) 규지(窺知) : 엿보아 앎.

11) 해중일구(海中一漚) : 바닷속의 거품 하나.

12) 화호성구(畵虎成狗) : 호랑이를 그리려 했으나 개가 됨.

13) 심장(深藏) : 깊이 감추어 둠.

14) 당각(當刻) : 바로 그 시각에. 즉각.

15) 초열지인(初劣之人) : 처음이라 서툰 사람.

16) 본회(本懷) : 본래 품고 있는 생각.

17) 분토(糞土) : 썩은 흙.

18) 태식(太息) : 한숨.

19) 전도(前途) : 앞으로 나아갈 길.

20) 수화(水火)를 불고(不顧)하고 : “물불을 가리지 않고”

21) 심경의 일우(一隅)에 : “마음 한 켠에”

22) 분연대기(忿然大起) : 버럭 성을 내면서 벌떡 일어섬.

23) 폐의파리(弊衣破履) : 다 떨어진 옷과 해진 신발. 초라한 차림새.

24) 일조(一朝) : 하루 아침에

25) 일침일선(一針一線) : 바늘 하나와 실밥 한 올. 하찮고 사소한 것.

26) 우심(尤甚)한 : “더욱 깊은”

27) 유한(遺恨) : 살아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남은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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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섭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영상미디어의 불교 주제구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성철선사상연구원 연구원과 금강대학교 인문한국연구센터 교수를 지냈다. 현재는 동국대학교 외래강사. 대중문화를 통해 불교를 전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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