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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큰스님 추모 기사]
가야산을 사랑하고 해인사를 아끼신 큰스님을 회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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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제스님  /  1997 년 9 월 [통권 제7호]  /     /  작성일20-05-06 08:36  /   조회7,577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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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년도가 저물어 가던 때라고 기억된다. 어느덧 스무 해 전의 일이다. 아침 일찍 종무회의를 마치고 방으로 가고 있는데 급보가 날아왔다. ‘박정희 대통령이 방문’한다는 것이다. 전날 구마고속도로 개통식에 참석하고 귀경길에 가족들과 함께 비공식적으로 해인사에 들른다는 것이다. 당시 주지이셨던 현경스님이 건강이 좋지 않아 종무소 일을 맡아 하고 있던 때인지라 이러한 큰일은 몹시 긴장을 하게 하였다.

 

 


 

 

청와대에서 나온 비서 및 경호원, 경찰국 경찰서에서 나온 경관 및 호위원들, 관계 공무원들로 때 아닌 법석이 난 것이다. 부산한 경호원들의 사전 준비가 이어지고 다시 대책회의를 하고 하여 나름대로 준비를 하였다.

 

당시는 오늘과 달라서 대통령의 권위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막강한 때였다. 그리고 박 전대통령은 불교를 이해하고 여러 면에서 불교를 도와준다는 좋은 감정 때문에 산중 대중스님들은 친절히 맞기로 결론하였다.

 

방장으로 계시던 은사 성철스님께도 이 소식을 말씀드렸고, 박 전대통령을 만나실 것인가를 여쭈었다. 스님께서는 관광차 비공식적으로 오는 대통령을 만날 일이 없다 하시고 백련암으로 산행을 간다고 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박 대통령은 잘살기 운동으로 경제발전을 주도하면서 물질적으로는 나아졌으나 그에 걸맞은 정신적인 지주를 찾고 있다. 아산 현충사를 성역으로 가꾸고 이순신 장군을 추모하는 일이 바로 그런 뜻이다. 우리 사명스님의 나라 사랑한 일이 결코 이순신 장군에 못지않다. 사명스님이 계시다 열반하신 홍제암을 참배하도록 하는 것이 나를 만나는 것보다 훨씬 나은 일이다.” 

 

그리고는 시자를 데리고 산행을 가셨다. 스님은 너무도 박 대통령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우리도 잘살아 보자’는 기치를 세우고 ‘새마을’ 운동을 주도하였으며, 공업국가 건설의 청사진을 들고 ‘수출입국’의 슬로건을 걸고 산업발전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의 정책과 업적을 대다수 국민들은 쌍수로 환영하고 있었다. 마침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이어 구마고속도로를 준공한 때였다. 무엇보다도 국가관이 투철하고 국가의 장래와 국민의 복지를 위한 비전을 가진 소신 있는 분으로 은사스님께서도 칭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시기였으므로 스님께서는 홍제암 참배 안내를 지시하신 것이다.

 

홍제암(弘濟庵)은 사명스님께서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나라의 위기를 구하고 일본까지 가서 국가 이익을 챙기셨으며, 선조 임금이 내리신 영의정의 직책을 3일 동안 받들고는 가야산으로 돌아와 만년에 거처하신 곳이다. 홍제암이라는 암자의 이름도 임금이 사명스님께 하사하신 홍제존자라는 호를 그대로 쓴 것이며, 지금도 영을 모시고 예배하는 곳이다.

 

일주문까지 마중을 나가 해인사를 방문해 주신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는 인사를 하고 정중히 맞았다. 박 전대통령은 당시 20여 년 만의 방문이라는 말을 하면서 감격해 하였다. 일주문을 지나 해탈문으로 들어서면서 길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보고는 “이런 성지에 쓰레기를 버리는 무례한이 있는가” 하면서 직접 그 꽁초를 주워 아랫사람에게 주었다. 성지를 아끼는 그분의 정성을 읽을 수 있었다. 대적광전 참배와 장경각 참배를 하면서 선인들의 호국 정신을 감격해 하던 그분의 모습은 나라를 중흥하겠다는 신념에 북을 돋운 것 같았다.

 

참배를 마치고 관음전 큰 방에 자리를 마련하고 당시 해인사의 어려운 여건들을 설명하고 도움을 청하면서 작설차를 권하였다. 경호원들의 만류를 개의치 아니하고 차를 마시면서 흐뭇해하던 일은 그가 얼마나 서민적이었는가를 느끼게 하였다. 휘호를 남겨 달라는 청에는 청와대에 가서 써 보내겠다는 약속을 하였고, 그 후 휘호를 받으러 청와대에 직접 갔던 일과 그 ‘海印道場’이라는 휘호를 들고 해인사 중흥을 시도했던 일들은 이제 추억이 되었다.

 

큰 마당에서 유일하게 도굴되지 않은 신라 석탑이라는 설명과 함께 석탑을 안내하고는 이어 은사스님이 말씀하신 홍제암 참배를 권유하였다. 수백 미터 떨어진 암자라 하여 경호원들이 완강히 반대하였으나, 박 전대통령은 사명스님이 열반하신 곳이라는 데 놀라면서 참배할 것을 동의하였다. 은사스님의 예측이 맞은 것이다.

 

당시 홍제암은 건물이 낡고 기와가 파손되어서 부분 공사를 하고 있었다. 감회 깊게 설명을 들은 박 전대통령은 이러한 성역을 천년이 가도록 훌륭히 보수를 해야지 부분 공사만 해서 되겠는가 하고 홍제암 중창 공사를 약속해 주었으며, 그리하여 홍제암이 오늘의 모습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그 후 그분은 돌아가실 때까지 홍제암 중창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변이 없었더라면 해인사 중흥에도 큰 힘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모든 것이 달라지고 그때에 비하면 경제적으로 훨씬 나아진 지금이다. 돌이켜보면 박 전대통령의 비전 있는 정치 신념이 오늘의 발전을 가져온 밑거름이며, 그것을 훤히 읽고 계신 은사스님의 선견지명에 다시 한 번 감탄의 마음을 금할 수 없는 것이다.

 

산고수려한 가야산 그 산록에 자리한 해인사. 천년의 고풍을 자랑하고 우뚝 서 있는 해인사는 우리들 마음의 고향이요, 정신의 지주인 것이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문 안쪽으로 걸려 있는 주련이 있다.
“歷千劫而不古 亙萬歲而長今.”
‘천겁의 긴 세월이 지나도 옛 되지 않고, 만세를 뻗쳐 항상 지금이다’라는 이 글은 시공을 초월하여 언제나 자리해 온 해인사를 말해 주는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신라 말기의 혼란한 시기에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승속을 위령하여 세운 ‘묘길상탑’, 몽고의 침략으로 위태로운 국운을 부처님의 원력으로 극복한 호국의 국보 ‘팔만대장경판’, 그 법보를 이곳 가야산에 모신 이조 초기의 국가 안위를 이룩해 낸 무학대사의 숨은 공덕, 임란의 성자 홍제존자 사명대사의 나라 사랑하신 마음, 이 모두가 나라가 어려울 때면 해인사가 구국의 보루로 자리 지켜 온 산 기록이 아닌가 한다.

 

먹을 것을 걱정하던 가난에서 오늘의 여유를 창조하는 데 앞장섰던 박 전대통령이 스님을 인연하여 사명스님을 만나 만년에 보인 그의 신심은 또 한 번의 나라 구원에 해인사가 역을 한 것이다.
평생을 가야산을 지키고 정치에는 관심을 두지 않으신 은사스님, 대통령이 와도 만나지 않았고 청와대에서 정책자문위원으로 추대하고 초청하여도 한 번도 나가지 않으셨던 스님의 고고한 자리 지킴은, 대통령이라면 찾아가기를 정신없이 하는 오늘의 종교지도자들에게 크나큰 교훈을 준 것이며, 자신보다 중생과 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자기를 희생하여 민족을 구하는 길을 보인 것이다.

 

서양 문물에 우리 것을 빼앗기고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는 작금의 지도자들, 대권을 잡으려는 정치 지도자들은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자만에 빠져 나라를 혼란으로 몰고 가면서도 어디 하나 책임질 줄 모르고 명리에만 눈이 어두워 있다. 이럴 때일수록 고고한 소신과 철학을 가진 그때의 지도자를 기리게 되는 것이며, 그분들의 주인 정신은 오는 세대가 바라는 민족자존인 것이다.

 

오늘도 가야산에는 천년을 하루같이 이어져 온 민족의 정기가 서려 있고 다시 찾아올 구국의 위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토록 가야산을 사랑하고 해인사를 아끼던 은사스님, 세연이 다하여 가신 지 4주기를 맞는 지금, 산천이 변한다는 십 년을 두 번이나 지나면서 그날의 감회를 잊을 수 없어 그때를 회상해 보는 것이다.
해인사를 사랑하고 스님을 기리는 모든 불자님들께 고마움을 드리면서……

 

        정축년 가을에
        가의 천제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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