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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의 자취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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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통도사 백련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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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2-03-08 10:52 조회2,6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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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일주문. 불지종가(佛之宗家) 국지대찰(國之大刹) 현판이 한 눈에 들어온다.

성철스님은 1937년 3월 부산 범어사에서 비구계를 받아지닌(受持) 이후 그해 동안거와 1938년 동안거를 통도사 백련암에서 보냈다. 통도사 일주문, 영축산 통도사(靈鷲山 通度寺)라고 쓴 현판 좌우의 불지종가(佛之宗家) 국지대찰(國之大刹)이라는 주련이 통도사의 사격을 일러준다. ‘영축산 통도사’라는 이름은 이 절의 뒷산이 부처님이 설법하신 인도의 영축산과 그 형국이 비슷하고 승려가 되려는 사람은 모두 이 절의 금강계단(金剛戒壇)에서 수계(受戒)를 했으며 모든 진리를 회통하여 일체중생을 제도한다(通度)는 의미에서 통도사라고 했다고 풀이한다.
‘불지종가’는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했으므로, ‘국지대찰’은 나라의 으뜸가는 절이므로 부쳐진 이름이라고 한다. ‘영축산 통도사’ 현판은 근대 서화가 해강(海崗) 김규진(金圭鎭, 1868~1933), 주련의 글씨는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 조선 고종의 아버지)의 필적이다. 靈鷲山을 일반인이나 산악인들은 ‘영취산’이라고 발음하나 절에서는 ‘영축산’이라고 한다.
통도사는 서기 646년, 신라 선덕여왕15년에 신라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했다. 계율을 그 근본사상으로 하고 있다. 자장스님은 나라에서 재상을 맡으라고 여러 번 불렀으나 나가지 않았다. 왕이 칙명을 내려 “나오지 않으면 목을 베겠다”고 했다. 자장은 이 말을 듣고 “내 차라리 하루를 계율을 지키다 죽을망정 계율을 어기고 백년을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吾寧一日持戒而死 不願百年破戒而生)”고 했다. 창건주 자장스님의 정신에서 드러나듯 통도사는 불교신앙의 첫째 요건인 계율을 받아 지니고 불퇴전의 믿음을 지닐 수 있는 요건인 계율을 창사(創寺) 정신으로 삼았다.
고색창연(古色蒼然)한 통도사 일주문을 마주하고 서서 성철스님이 이 절에 발걸음을 한 심사(心思)를 필자 나름대로 헤아려 보았다.
비구계 수지 후 백련암서 두 차례 동안거 결제
계율 온전히 지니기에 평생 한 치 흐트러짐 없어
자장율사 정신 계승하듯 종정된 후 ‘지계청정’ 유시
당신의 행적은 이른바 삼보찰(三寶刹)인 통도ㆍ해인ㆍ송광사에 이른다. 통도사는 불보찰이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셨기에 그렇게 불린다. 큰법당에 부처님 형상을 모시지 않은 것도 이런 연유다. 성철스님은 출가수행의 길에서 삼보찰을 두루 다녔다. 통도사에 머무른 뜻은 불보찰이기에, 또한 계율정신이 오롯한 절이기에 출가수행자로서 당연히 찾아야 할 곳이었다. 당신의 일생동안 계율을 온전히 지니기에 한 치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종정이 된 후 종도(宗徒)들에게 이른 유시(諭示)도 지계청정(持戒淸淨, 계율을 청정히 지킴)이었다. 더러 공부를 이루고 나면 계율지킴은 마음대로 해도 된다 하여 계율에 어긋난, 막행막식(莫行莫食, 언행이 계율에 어긋나고 금지된 음식을 마음대로 먹는 행위)을 해도 좋다는 생각을 갖는 수행인이 있다. 성철스님은 이를 절대 용납하지 않았고 당신 스스로도 그 본을 일생토록 보였다.
성철스님이 통도사 백련암에 머무르던 시절, 통도사는 1900년 경허스님이 직접 통도사로 와서 선풍(禪風)을 크게 떨치던 때였다. 큰절 보광전에 선원이 개설됐고 구하(九河, 1872~1965) 경봉(鏡峰, 1892~1982), 월하(月下, 1915~2003) 스님 등이 통도사 선원에서 선지(禪旨)를 드높였다. 1928년에는 경봉스님이 극락암에 호국선원을 개원했다.
백련암의 백련선원은 1935년 개원했다. 개원당시 이석봉스님을 비롯한 대중 16명이 정진했으며 1942년까지 이어진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백련암은 지금도 선원을 운영하지 않고 있다. 일주문 앞 주차장에서 왼쪽으로 난 찻길을 따라 취운암을 지나 약1킬로미터(m)도 못가 길이 세 갈래로 갈린다. 서운암과 극락암 길의 중간 길로 접어들어 1킬로미터 정도 가면 백련암이다. 통도사 산내 암자로 가는 길은 포장이 잘 된 도로다. 백련암 역시 길이 좋다. 게다가 암자에 이르기까지의 양쪽에 우거진 숲은 울창하여 그윽함을 자아낸다.
경내에 들어서면 우선 눈에 띄는 커다란 나무가 있다. 몇 백 년이 됐는지 헤아리기 어려운 은행나무다. 이 암자는 고려 공민왕 23년(서기 1374)에 처음 지었다. 그 후 300여년이 지나 조선 인조12년(서기1634)에 중건됐다. 지금의 건물은 중건 당시의 것이라 단정 짓기 어렵다. 법당 건물은 다른 암자와 같이 암(庵)이라 하지 않고 백련사(白蓮舍)라 하고 있다. 이는 부처님 당시의 죽림정사나 기원정사를 연상케 한다.
‘백련사’라는 현판이 걸린 본당 건물이 옛날 선방이라고 이 절 어른인 원산스님(圓山, 조계종 초대 교육원장)이 일러준다. 지금 스님이 쓰고 있는 방이 당시 선방의 지대방이라 한다. 경봉스님이 큰절 주지 일 때(1935년)엔 백련사 선방에 연간 쌀 200가마를 보냈단다.
원산스님은 “백련사 선방은 살림에 여유가 있었다”고 한다. 큰절에서 대중들 식량을 보내주었기에 그러하기도 했지만 백련암 대중 스님들이 선원(당시 염불당) 개원이전에도 돈이 생기면 아끼고 모아서 인근의 논을 샀다고 한다. 좋은 논은 못 샀지만 자잘한 논, 수확이 좋지 않은 논들을 샀다고.
원산스님은 “당시 스님들은 염불회를 결성하여 신도들에게 염불을 권장하고 신행활동을 이끌었다”고 하다. 경봉스님도 ‘만일염불회’를 만들었고 상좌인 자신도 지금 백련암에 ‘만인동참 만일염불회’를 만들었다고 한다. 만일이면 1년이 365일이라 햇수로 28년이 더 걸리는 세월이다. ‘만일염불회’는 이름이 ‘만일(萬日)’이지 그 내용은 불자가 평생 염불수행을 하라는 뜻이라 하겠다.
백련암 큰법당 오른쪽엔 명월선원(明月禪院)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원산스님은 “내 얼굴이 둥글둥글하니 선방을 하겠다는 내게 은사 경봉스님이 친히 써 준 글”이라고 한다. 원산스님은 은사인 경봉스님이 ‘만인동참 만일염불회’를 한 뜻을 이어받아 자시도 이 염불회를 결성했다고 한다.
스님은 ‘대중이 많이 모이면 옛날처럼 선방을 운영할 포부도 잊지 않고 있다”면서 요즘은 강원이나 선방을 막론하고 수행자수가 줄어 걱정이라고 한다. 점점 출가수행자가 줄어드는 추세라 자못 걱정스럽지가 않단다. 불교의 정법이 출가수행자의 숫자에 구애되려나마는 출가인이 적어진다는 일은 앞으로도 많은 생각을 가져야 할 사안임에 틀림없다.
백련암의 은행나무를 보면서 많은 세월의 온갖 풍상에도 의연한 그 모습에서 출가수행인으로서의 성철스님의 수행정신을 새삼 헤아린다.
   
백련암 마당의 은행나무.
   
백련암 전경.
   
예전 선방이였던 백련암 본당. 현판은 ‘白蓮舍’로 되어 있다.
 

되새기는 성철스님 법어 - 천지는 한 뿌리

교도소에서 살아가는 거룩한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술집에서 웃음 파는 엄숙한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밤하늘에 반짝이는 수없는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꽃밭에서 활짝 웃는 아름다운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구름 되어 둥둥 떠 있는 변화무쌍한 부처님들, 바위 되어 우뚝 서 있는 한가로운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물속에서 헤엄치는 귀여운 부처님들, 허공을 훨훨 나는 활발한 부처님들, 교회에서 찬송하는 경건한 부처님들, 법당에서 염불하는 청수한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 넓고 넓은 들판에서 흙을 파는 부처님들, 우렁찬 공장에서 땀 흘리는 부처님들, 자욱한 먼지 속을 오고가는 부처님들, 고요한 교실에서 공부하는 부처님들, 오늘은 당신네의 생신이니 축하합니다.천지는 한 뿌리요 만물은 한 몸이라, 일체가 부처님이요 부처님이 일체이니 모두가 평등하여 낱낱이 장엄합니다. 이러한 부처님의 세계는 모든 고뇌를 초월하여 지극한 행복을 누리며 곳곳이 불가사의한 해탈도량이니 신기하고도 신기합니다. 입은 옷은 각각 달라 천차만별이지만 변함없는 부처님의 모습은 한결같습니다. 자비의 미소를 항상 머금고 천둥보다 더 큰 소리로 끊임없이 설법하시며 우주에 꽉 차 계시는 모든 부처님들, 나날이 좋을시고 당신네의 생신이니 영원에서 영원이 다하도록 서로 존경하며 서로 축하합니다.- 1986년 부처님오신날 법어
이진두 논설위원 · 사진 김형주 기자 
[불교신문 2717호/ 5월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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