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희양산 봉암사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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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2-03-08 11:16 조회2,91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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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봉암사 결사 60주년법회.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대중들이 참여해 결사정신을 되새겼다. 불교신문 자료사진 |
1947년 동안거부터 시작한 ‘봉암사 결사’는 불교 조계종단 나아가 현대 한국불교사에 획기적인 일로 ‘신화’로 불리기까지 한다. 성철스님은 왜 ‘봉암사 결사’를 했는지, 결사장소가 왜 봉암사였는지, 어떻게 결사를 수행했는지 즉 어떻게 살았는지, 봉암사 결사가 그 이후 불교계에 어떤 영향과 교훈을 주고 있는지 되짚어보는 것 또한 큰 의미를 갖는다.
“봉암사에 들어간 것은 정해년(丁亥年) 내 나이 그 때 36세 때입니다. 봉암사에 들어가게 된 근본동기는, 죽은 청담스님 하고 자운스님 하고 또 죽은 우봉스님 하고 그리고 내 하고 넷인데, 우리가 어떻게 근본방침을 세웠느냐 하면 전체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임시적인 이익관계를 떠나서 오직 부처님 법대로만 한번 살아보자. 무엇이든지 잘못된 것은 고치고 해서 ‘부처님 법대로만’ 살아보자. 이것인 원(願)이었습니다. 즉 근본목표다 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처소는 어디로 정하나? 물색한 결과 봉암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들어갈 때는 우봉스님이 살림 맡고, 보문스님 하고 자운스님 하고 내하고 이렇게 넷이 들어갔습니다. 청담스님은 해인사에서 가야총림(伽倻叢林)한다고 처음 시작할 때에는 못 들어오고. 서로 약속은 했었지만…” 성철스님이 생전에 해인사에 있으면서 한 말이다.
봉암사 태고선원 입구 묘유문. 김형주 기자 |
청담스님과 성철스님은 이미 대승사 시절 함께 살면서 공동수행체 즉 총림에 대한 구상을 서로 나눴었다. 그러나 청담스님은 1946년 10월께 가야총림이 출범하자 해인사에 갔다. 성철스님과 청담스님은 함께 해인사 가야총림에서 평소 가졌던 뜻을 펴려했으나 여건이 마땅치가 않아 성철스님은 해인사를 떠나 양산 통도사 내원암에서 하안거(1947년)를 지내고 그해 동안거를 봉암사에서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우봉 보문 자운스님 뒤이어 향곡 월산 종수 …
그 후에도 여러 명 동참 특히 묘엄스님 등
비구니 스님들도 참여해
“그 뒤로 향곡, 월산, 종수(宗秀), 젊은 사람으로는 도우, 보경(寶鏡), 법전(法傳), 성수(性壽), 혜암(慧菴), 의현(義玄)이는 그때 나이 열서너 댓 살 되었을까? 이렇게 해서 그 멤버가 한 20명 되었습니다.” 성철스님은 후속 참가자를 이렇게 회상했다.
봉암사 결사에는 그 후 여러 명이 참여했다. 특히 묘엄스님 등 비구니도 참여하여 봉암사 백련암에 머물면서 청담스님 성철스님의 지도를 받았다. 비구니의 참여는 결사를 주도한 성철스님과 청담스님의 배려에 의한 것이었다.
성철스님 친필 공주규약(위)과 봉암사 결사 대중 명단 |
다시 성철스님의 회고를 보자.
“처음에 들어가서 첫 대중공사를 뭣을 했느냐 하면 … 법당정리부터 먼저 하자 이렇게 되었습니다. … 칠성탱화 산신탱화 신장탱화 할 것 없이 전부 싹싹 밀어내버리고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만 모셨습니다. … 그 다음에는 불공인데, 불공이란 것은 자기가 뭣이든 성심껏 하는 것이지 중간에서 스님네가 축원해 주고 목탁치고 하는 것은 본시 없는 것입니다.
이제 법당은 어느 정도 정리되는데 가사니 장삼이니 바릿대니 이런 것이 또 틀렸단 말입니다. 부처님 법에 바릿대는 와철(瓦鐵)입니다. 쇠로 하든지 질그릇으로 하지 목(木)발우는 금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쓰고 있습니다.
가사 장삼을 보면 비단으로 못하게 했는데 그 당시에 보면 전부 다 비단입니다. 색깔도 벌겋게 해서. 순수한 색이 아니고 괴색(壞色, 청색 황색 적색의 3종 색을 섞어 만든 색)을 해야 되는 것이니 당시엔 그런 것도 비법(非法)입니다.
그래서 비단가사, 장삼 그리고 목 바릿대 이것을 싹 모아 가지고 탕탕 부수고 칼로 싹싹 기리고(자르고) 해서는 마당에 갖다놓고 내 손으로 불 싹 다 질렀습니다. 육환장도 새로 만들고 요새는 안하지만 스님은 언제든지 육환장 짚게 되었으니까. 삿갓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침에는 죽을 먹었습니다. 공양은 사시(巳時)밖에 없으니까. 오후에는 약석(藥石)이라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는 율(律)에 보아서는 저녁공양은 없는데 청규(淸規)에는 약석이라고. 약이라 해서 참선하는데 너무 기운이 없어도 안되므로 바릿대 펴지 말고 조금씩 먹도록 되어 있습니다.
6ㆍ25전쟁으로 중단…2007년 60주년 법회 통해
‘결사 정신’ 되새겨 오늘의 ‘자성과 쇄신’으로 새롭게 이어져
포살(布薩)도 처음으로 거기서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 제도를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나무를 하는데 식구수대로 지게를 스무 남 개 만들었습니다. 그래놓고 나무를 하는데 하루 석 짐씩 했습니다. 석 짐씩 하니 좀 고된 모양입니다. 고되니깐 몇 이가 도망 가 버렸습니다.”
그 뿐만 아니다. 108배를 처음 실시하고 신도가 스님에게 3배 예배하는 법도 이때 처음 한 것이다. 수행차원에서 1000배의 절을 하고 공양은 모든 스님이 평등하게 했다. 천도재 때는 <금강경> <반야심경>을 독송하고 신중단에는 반야심경 독경으로, 운력은 모든 대중이 능엄주를 암송케 했다.
일상생활은 공주규약(共住規約)에 의해 철저하게 수행했다. 공주규약은 성철스님이 작성하고 대중들이 지키겠다는 다짐아래 시행되었다.
총 18개항의 공주규약은 지금 보면 한문으로 된 것이어서 이해하기 쉽지 않다.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1. 삼엄한 부처님 계율과 숭고한 부처님 가르침을 부지런히 닦아 구경각을 하루속히 성취한다.
2. 어떠한 사상과 제도를 막론하고 부처님 가르침 이외의 각자 의견은 절대 배제한다.
3. 일상생활은 자주자치의 기치아래 물 긷기, 나무하기, 밭 갈기, 바느질, 탁발 등 어떠한 고역도 마다않는다.
4. 소작인이 내는 것과 신도의 시주에 의한 생계유지는 단연 청산한다.
5. 신도의 불전 헌공은 재례 지낼 때의 현품과 지극정성으로 하는 절(拜)에 그친다.
6. 대소변 때와 운력 그리고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장삼을 입는다.
7. 바깥출입 때는 반드시 삿갓 쓰고 석장(錫杖) 짚고 여럿이 함께 간다.
8. 가사는 마(麻)나 면(綿)에 한하고 괴색이어야 한다.
9. 바루는 질그릇 이외의 것은 금한다.
10. 매일 1회 능엄주를 왼다.
11. 매일 2시간이상 노동한다.
12. 보름마다 포살을 시행한다.
13. 불전헌공은 오시(午時, 오전11~오후1시) 이후는 안되며 아침식사는 죽으로 한다.
14. 좌차(앉는 차례)는 비구계를 받은 순서로 한다.
15. 방안에서는 면벽좌선하고 잡담은 엄금한다.
16. 정한시각 이외에는 눕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17. 각자 쓸 물자는 스스로 마련한다.
18. 이외 것은 청규와 율에 정한 바에 따른다.
이 사항을 거부하는 자는 함께 사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봉암사 결사’는 3년도 채 못 되어 1950년 6.25 한국전쟁으로 그치게 되었다.
지난 2007년 조계종단은 봉암사에서 결사 60주년을 기념하는 큰법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종도들은 당시의 결사정신을 되새기고 깊이 참회하고 앞으로의 수행 자세를 다시 한번 곧추세웠다. 오늘의 ‘자성과 쇄신’을 이끌어 낸 봉암사 결사 정신은 앞으로도 계속 새롭게 이어져야 할 것이며 보다 더 깊고 다각적인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되새기는 성철스님 법어
자기의 본래 모습이 부처님이다물음 :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믿는 자는 융성하고 그렇지 않으면 망한다고 하여 절대적인 창조주가 화복(禍福)을 정한다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업(業)에 따라서 착한 일을 하면 행복하게 되고 악한 일을 하면 불행하게 된다고 하는 데 이해가 어렵습니다.
답 : 예수교에서 주장하는 것은 모든 것을 만든 이도 하나님이고 따라서 구원도 그에게 매달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누가 만든 사람이 따로 없고 누가 따로 구원해주지 않습니다. 순전히 자아(自我)본위입니다. 예수교는 철두철미 남을 의지하는 것이니 두 관점이 정반대입니다. 요즘의 과학적 증명에 의하면 남이 만들어 주었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말했듯이 예수교에서도 자체 전환을 하고 있습니다.
불교에서 본시 주장하는 것은 우주 이대로가 상주불멸(常住不滅)이고 인간 이대로가 절대자라는 것입니다. 현실 이대로가 절대이며, 또 사람이나 짐승 할 것 없이 모두가 다 하나님 아닌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결국 사람사람이 모두 금덩어리 아님이 없는 데 자기가 착각해서 금덩어리를 똥덩이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중생(衆生)이라는 말은 이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눈을 감고 있기 때문에 금덩어리인줄 모르는 것이니 수행을 하여 본래 눈을 뜨고 보면 본시 금덩어리인줄 확실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온 세계가 모두 진금(眞金)이고 모두가 부처님 세계이고 무한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교에서는 ‘구원’한다고 합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준다는 식입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구원이 아닙니다. 자기개발이고 자기복기(復歸)입니다. 자기의 본래 모습이 부처님인줄을 알라는 것입니다.
선종(禪宗)의 조사스님네들이 항상 하는 말이 그렇고 또 내가 항상 하는 말이 이것입니다. 석가도 믿지 말고 달마도 믿지 말고 지금 말하는 성철이도 믿지 말라. 오직 자기를 바로 보고 자기 능력을 바로 발휘시키라. 이것이 불교의 근본입니다.
- 1968년 8월 대불련 수련법회 |
[불교신문 2766호/ 11월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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