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명청 선어록]
전집류 선문헌 크게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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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귀 / 2020 년 1 월 [통권 제81호] / / 작성일20-06-13 17:00 / 조회7,032회 / 댓글0건본문
김호귀 |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선어록의 의미
선어록禪語錄은 선의 어록 또는 선종의 어록이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선종은 중국불교에서 보리달마로부터 연유하는 선의 종파를 가리킨다. 보리달마 이후로 전승되고 전개되며 계승되어 온 선종에 대한 문헌을 통칭 선어록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경우에 보다 넓은 의미로는 선록禪錄 · 선전禪典 · 선적禪籍 · 선서禪書 · 선문헌禪文獻 · 선집禪集 등으로 불리는데 선과 관련된 일반적인 전적을 가리킨다. 여기에는 선의 교의를 기록한 선리禪理 · 사상류思想類 · 순수어록류純粹語錄類 · 전등사서류傳燈史書類 · 청규류淸規類 · 공안집류公案集類 · 수필류隨筆類 · 선계류禪戒類 · 작법류作法類 그리고 기타 잡류雜類 등이 모두 포함된다. 그러나 보다 좁은 의미로는 선자가 법어로 보여준 말씀에 대한 기록의 경우를 가리킨다.
여기에서 후자의 경우 선어록은 선자가 평소에 하는 설법을 그 제자 혹은 제삼자가 기록한 것을 가리킨다. 그 때문에 저술의 경우처럼 한정된 목적 내지 의도가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런 만큼 불특정의 많은 사람들 내지 직접 법문을 듣는 사람들을 상대로 하여 교화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깔려 있다. 적어도 법문을 하는 선자 자신의 의도는 물론이고, 그밖에 선자 자신의 의도가 아닐지라도 법문을 기록한 당사자는 스승의 말씀을 오랫동안 남겨서 두고두고 가르침으로 삼으려는 의도가 개입되어 있다. 또한 수많은 종파 내지 문중이 형성되는 당 · 송의 시대부터 각자의 종파 내지 문중에서 그들 선지식에 대한 권위를 드러내려는 의도가 아울러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선어록은 광의의 의미와 협의의 의미를 두루 가리키는 경우가 보편적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광의의 의미로서 선어록을 취급하고자 한다.
어록의 내용에는 선자의 법어를 상세하게 기록한 것을 광록廣錄이라 하며, 중요한 부분만 발췌하여 기록한 것을 어요語要라 한다. 그리고 개인의 법어를 모은 것을 별집別集이라 하며, 여러 선자의 법어를 모은 것을 통집通集이라고 한다. 이런 점에서 어록이라고 말할 경우에는 선림에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선종 이외의 조사어록도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송 이후에는 유교와 도교에서도 이것을 따라서 사용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어록의 내용도 또한 점차 시게詩偈 및 문소文疏 등을 포괄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주1)
순수 어록
협의의 어록이란 흔히 조사의 설법, 제자들과 직접 주고받은 법거량法擧量의 형식, 유훈으로 남겨둔 법어, 법어를 제자가 수시로 듣고 수시로 기록한 것 등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서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붓을 들고 저술한 것과는 달리 반드시 조사의 설법을 듣고 기록한 것으로서 그 제자들에게는 일종의 성전聖典과도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 간혹 제자가 기록한 것에 대하여 조사 자신이 직접 서문을 기록하는 경우도 있는 것을 보면 생전에 이루어진 것도 있고, 또한 사후에 이루어진 것도 있다. 따라서 어록의 성격상 당사자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그것을 기록한 제자에 따라서 약간의 수정 내지는 보완도 충분히 인정되어 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그 성격을 살펴보면 법어法語 및 수시로 행해지는 제자들과의 문답상량問答商量 등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전체 내용의 요약적인 성격이 강하여 어록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울러 어록의 당사자에 대한 생애가 수반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 전해지고 있는 어록의 대부분은 특별히 어록 당사자의 일대기를 붙이고 있는 경우가 대단히 드물기 때문에 어록이 어록으로서 충분히 이해되기 위해서는 어록의 당사자에 대한 법맥法脈과 종파宗派 내지는 당시의 사회여건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지 않으면 안 된다.(주2)
전등사서
중국 선종의 연원을 형성하고 있는 보리달마 이후 2백여 년이 되는 8세기 무렵부터는 중국문화 내지 사상의 배태된 정통의 문제가 불거졌다. 그것이 소위 대감혜능을 조사로 하는 남종과 대통신수를 조사로 하는 전등의식의 출현이었다. 그 초기에는 <능가불인법지楞伽佛人法志> ·<전법보기傳法寶紀> ·<능가사자기楞伽師資記> 등의 소위 북종을 정통으로 간주하는 전등사서였다.
그러나 8세기 중반에 남북의 정통문제가 일단락된 이후 8세기 후반부터는 남종을 정통으로 하는 <단경壇經> ·<조계대사전曹溪大師傳>을 비롯한 <보림전寶林傳>과 <조당집祖堂集> 등으로 계승되는 소위 남종을 정통으로 간주하는 전등사서가 주류를 형성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특히 송대에는 임제종을 비롯하여 법안종과 운문종 등에서 자파를 중심으로 하는 전등사서가 널리 출현하면서 고승전류와는 다른 일군의 선종문헌을 형성하였다. 이들 전등사서류에는 단순히 행장만이 아니라 그 법어가 함께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선어록의 종합적인 면모가 드러나 있다. 따라서 전등사서는 대부분 개인보다는 통시적인 수많은 선자에 대한 기록으로서 보편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선어록의 출현
당대 말기 마조도일과 석두희천의 계통에서 선풍이 크게 전개되었다. 소위 호남의 석두종에 대해서는 진금포眞金鋪라 하였고, 강서의 홍주종에 대해서는 잡화포雜貨鋪라 불렀던 것도 그 결과였다. 그들에게 선의 사상과 수행법과 전법교화를 전승한 주요 수단은 대개 선어록이 담당하고 있었다. 선어록은 선자의 언행록인 까닭에 문하의 수행자들에 대한 훈계 곧 시중示衆과 상당上堂 및 행장行狀 등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 중심은 다른 선자와 주고받은 법거량法擧量 및 제자와 주고받은 선문답禪問答 등에 대한 기록이었다. 이 경우에 문답은 소위 선문답의 모습으로 이미 당대 초기부터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었다. 좌선과 염불 등 집단적인 수행에서 학인은 조실을 방문하여 자신의 경지를 드러내 보이는데 그 때 스승은 갖가지 질문을 통하여 납자의 경지를 확인하고 점검을 하였다. 그 내용은 <능가사자기>에 수록되어 있는 지사문의指事問義와 같은 방식을 통하여 주로 이루어졌다. 지사문의는 스승이 제자에게 구체적으로 사물을 가리켜 그 뜻이 무엇인지를 물으면 그에 대하여 제자가 답변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마조도일에 의하여 대기大機·대용大用의 조사선풍이 확립됨으로써 문답의 성격은 일변하였다. 마조의 선풍에서는 일상생활 그 자체가 선의 행위 아님이 없었기 때문에 선의 경지를 작용으로 나타내는 것이 중시되어 일상의 모든 측면에서 사용하는 보통의 언어 그대로 문답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것을 그대로 기록 혹은 그런 입장에서 편찬된 것이 선어록이었다. 때문에 선어록 자체가 선의 깨침이 구체적인 측면과 인격을 통하여 표현되지 않으면 안 되는 사상의 표명이기도 하였다.
당대에는 대단히 많은 어록이 편집되었는데 그러한 것들에 의하여 후대에 어록이 새롭게 편집된 예도 많다. 이와 같이 어록이 성행한 배경으로는 선자들이 서로 자유롭게 교류하여 문답상량이 대단히 성행한 까닭이었다. 당시는 수행자가 깨침을 목표삼아 각 지역의 선자들을 탐방하면서 수행을 쌓아갔기 때문에 편참遍參이라는 수행의 형태가 확립되어 있었다.
대체로 현존하는 당나라 시대의 선적은 대부분이 오대五代·송초宋初 무렵에 편집된 것이다. 이미 어록이라는 용어가 <송고승전>에서 처음 나타나고 있듯이 그러한 것들이 특별히 어록으로 정리된 것은 소위 기관機關과 게송偈頌의 영역을 벗어나 새롭게 그 특색이 반성되고 의식되었음을 의미한다. 소위 일종의 고전화古典化이기도 하다. 마치 <조당집>(952) · <종경록>(981) · <송고승전>(988) · <경덕전등록>(1004) 등의 편집이 서로 연속하여 출현하던 무렵이다. 여기에서 선어록의 내용을 구성하고 있는 기관機關과 이치理致는 단순한 기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궁극에는 제삼자에 의해서 염롱拈弄되고 평창評唱되는 데에 생명이 유지된다. 여기에서 기관은 스승이 납자의 근기에 따라서 가르침을 제시하는 갖가지 수완 내지 방편을 말한다. 또 이치는 스승이 경론의 도리를 제시하여 납자를 교화하는 수단을 말한다. 따라서 생생한 언어는 입으로부터 귀로 전달되는 가운데 점차 이것을 전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가미된다.(주3)
원·명·청의 선어록
이와 같은 유형으로서 송대에는 순수어록을 비롯하여 전등사서류와 공안집류 등의 방면에서 수많은 선어록이 출현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원·명·청대에까지도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갔다. 그러나 송대와는 달리 원·명·청대에는 독립된 전등사서 및 순수어록의 출현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전등류와 수필류와 순수어록류가 종합적으로 수록된 전집류全集類 내지 통집류通集類를 비롯한 문집류의 성격을 지닌 선문헌 등이 크게 증가한다.
따라서 가흥대장경嘉興大藏經의 경우에 원대 3종 · 명대 34종 · 청대 180종, 건륭장경乾隆藏經의 경우에 명대 4종 · 청대 5종, 만속장경卍續藏經의 경우에 원대 19종 · 명대 10종 · 청대 7종 등이 수록되어 있다.(주4) 이들 원·명·청대의 선어록은 오늘날 한국불교에서는 거의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중국 선종의 시대적 추이를 따라가며 우선 원대의 선어록부터 출발하여 명대와 청대에 이르기까지 주목해볼 만한 수십 가지 문헌을 선별하여 그 내용과 구성을 통하여 일별해보고자 한다. 그래서 그 동안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원·명·청대 선어록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장르와 특징과 성격에 대한 이해를 도모해보고자 한다.
주)
(주1) 김종진, <한국불교시가의 동아시아적 맥락과 근대성>. 서울:소명출판사. 2015. pp.20-21.
(주2) 이와 같은 의미에서 선어록은 후막진염候莫陳琰의 <돈오진종금강반야수행달피안법문요결頓悟眞宗金剛般若修行達彼岸法門要決>과 하택신회荷澤神會의 <남양화상문답잡징의南陽和尙問答雜徵義> 등을 그 선구로 언급할 수가 있다.
(주3) 김호귀, 『선의 어록』, 서울 : 민족사, 2014, pp.92~93.
(주4) 김종진, 위의 책,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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