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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살리는 사찰음식]
햇살을 솜틀하여 만든 알토란 사찰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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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  2024 년 11 월 [통권 제139호]  /     /  작성일24-11-04 19:03  /   조회492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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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동이 들어 있는 달이고 겨울의 문턱에 들어섰다고 하지만 11월의 풍광은 아직 가을의 끝자락입니다. 이제 우리는 야무지게 월동 준비를 해야 합니다. 풀과 나무는 성장을 멈추고 모든 것을 다 털어 냅니다. 마치 욕심껏 내달리는 우리에게 비울수록 평화로워짐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는 것처럼 풀과 나무는 한치의 미련도 없이 툴툴 털어 내 버립니다. 그래야만 또 싱그럽고 무성한 잎을 자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 1. 배추두부전골.

 

동물들이 겨울잠을 자고, 나무가 수분을 모두 내뿜어 앙상한 가지로 남아 있는 이유는 잠시 자신을 내려놓는 시간을 갖기 위함입니다. 세상 속에서 하염없이 욕심을 부리다가도 가을의 정취를 느끼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내달리지만 말고 쉼이 필요하다는 걸 자연은 몸소 우리에게 가르침을 선사합니다. 

 

동네잔치 치계미雉鷄米

 

우리 조상님들은 입동이 지나면 김장 담그기를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월동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농산물을 모두 거두어 저장했고 겨우내 먹을 양식을 준비하였습니다. 농번기를 지나고 수확의 기쁨을 나누고자 치계미雉鷄米라고 하는 마을 잔치를 벌였습니다. 치계미는 입동 이후 마을 어른들을 위한 선물과 푸짐한 음식을 장만하여 1년 농사의 갈무리를 함께 했던 전통 풍속입니다. 여름과 가을엔 들에서 살고, 가을의 끝자락에서 겨울을 나기까지는 집안에서 여러 가지 살림살이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였습니다. 그냥 내버려 두기 아까운 가을볕에 갖가지 채소를 말리고, 겨우내 먹을 수 있는 저장음식을 장만합니다.

 

사진 2. 연장아찌.

 

사찰에서는 겨울 안거에 들어가기 전에 김장을 담그고, 여러 종류의 장아찌를 담가서 저장해 두었기 때문에 지금도 김치와 장아찌는 사찰음식의 대명사처럼 인기가 많습니다. 발효의 기술도 중요하지만, 발효 환경이 산중에 있는 사찰만큼 완벽한 곳도 없습니다. 사찰음식을 자연이 차려 준 밥상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도 자연을 거스르기보다는 상생하는 삶을 살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슬기로운 음식생활, 제로웨이스트

 

그동안 제가 소개했던 사찰음식에서 ‘채수菜水’라는 단어가 요리법에 자주 등장했습니다. 채수는 김치에 사용될 때는 감칠맛을 더하고 국물이 쉽게 상하지 않게 도와줍니다. 또 채수가 국이나 찌개에 사용될 경우는 맛을 내는 조미료의 역할을 해 줍니다. 물론 우리나라 전통 방식은 맹물을 그대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육수와 채수의 기법은 음식문화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새롭게 만들어진 요리법에 해당합니다.

 

사진 3. 연근 유자무침.

 

우리나라 사찰음식은 선종의 영향으로 육류와 생선뿐만 아니라 오신채(파, 마늘, 부추, 달래, 흥거)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육수라고 하지 않고 채수라고 하였습니다. 채수를 내는 방법에서도 식재료를 하나도 버리지 않고 지혜롭게 사용했던 스님들의 검소함이 엿보입니다. 과일 껍질도 버리지 않고 말려서 채수를 낼 때 사용하거나 식초를 만들어 사용하였고, 부각을 만들거나 장아찌를 만들어서 저장해 두었다가 먹을 수 있게 가을걷이에 부지런하게 움직였습니다. 특히 끝물 농산물을 활용하여 다양한 저장 음식을 만들었고 제철 식재료의 어우러짐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먹는 방법이 최고의 건강 비결이었고 수행식이었습니다. 

 

가을볕 솜틀하기

 

가을 햇살이 아까워서 무엇이라도 내다 말리며 솜틀해 보지만 신기하게도 가을볕 솜틀 법은 무겁지가 않습니다. 눈부신 가을볕에 말리는 뿌리채소는 가을을 삼킨 영양가 높은 월동음식이 되어 줍니다. 우선 버섯을 비롯하여 배껍질, 사과껍질, 우엉껍질, 연근껍질 그리고 감껍질, 호박껍질 등을 가을볕에 말려서 사용해 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늦가을까지 밭에 남아 있는 작물에 눈길을 주고 갈무리를 잘해서 건강한 밥상을 만들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사진 4. 고구마 메밀범벅.

 

이번 호에는 늦가을의 대표 음식 알토란을 활용하여 ‘토란 들깨탕’을 만들고, 달고 시원한 무를 활용하여 제주도 대표 음식 중에 하나인 ‘빙떡’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토란들깨탕

 

【 재료 】

토란 8개, 두부 1모, 삶은 토란대 50g, 건표고버섯 3개, 채수 600ml, 

통들깨 2T, 국간장, 소금, 식용유, 들기름.

 

사진 5. 알토란.

 

【 만드는 법 】

1. 알토란은 깨끗이 씻어 끓는 물에 소금 1T를 넣고 10분 정도 데쳐서 찬물에 담가 껍질을 까 주세요.

2. 두부는 먹기 좋게 자르고, 소금을 뿌려 물기를 뺀 뒤 팬에 기름을 두르고 노릇하게 구워주세요.

3. 표고버섯은 물에 불려 물기를 짠 뒤 얇게 썰어 주고 삶은 토란대와 함께 국간장으로 밑간을 해서 준비해 둡니다.

4. 다시마, 건표고버섯, 말린 무껍질, 말린 배껍질, 참죽나무순을 넣어 만든 채수를 준비합니다.

5. 냄비에 들기름을 두르고 토란, 토란대, 표고버섯을 넣고 볶아 줍니다.

6. 살짝 볶다가 채수와 표고버섯 우린 물을 부어 한소끔 끓여 줍니다.

7. 통들깨에 채수를 넣고 갈아서 냄비에 부어 줍니다.

8. 끓기 시작하면 국간장으로 간을 하고 불을 끕니다. 

 

TIP.

- 건표고버섯 우린 물은 버리지 말고 채수로 사용하면 좋습니다.

- 과일이나 뿌리채소의 껍질은 볕에 말려 두었다 사용하며 좋습니다.

- 토란은 피부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 있으니 장갑을 끼고 다듬으시면 좋습니다.

- 봄에 말려서 사용하는 참죽나무순은 사찰음식의 채수에 빠지지 않는 식재료입니다. 부드러운 어린순은 나물이나 장아찌로 먹고, 새순이 자라서 단단해지면 말려서 채수를 만들 때 사용합니다.  

 

빙떡

 

【 재료 】

무 600g, 메밀가루 80g, 통밀가루 20g, 통깨, 

들기름, 소금, 식용유, 다시마, 간장, 물.

 

사진 6. 빙떡.

 

【 만드는 법 】

1. 무는 굵게 채 썰어 준비해 주세요.

2. 냄비에 물 2T와 다시마 한쪽을 넣고 끓이다가 채 썬 무를 설게 익혀 주세요.

3. 설익은 무를 체에 받쳐 물기를 제거하고 들기름, 소금, 통깨를 넣어 섞어 주세요.

4. 메밀가루에 간장, 들기름, 물을 넣어 멍울이 생기지 않게 반죽해 줍니다.

5. 팬에 기름을 두르고 얇게 전병을 부칩니다.

6. 완성된 전병 위에 양념된 무를 올리고 돌돌 말아 주세요.

7. 양념간장을 만들어 곁들여 드시면 좋습니다. 

 

TIP.

- 빙떡은 제주 향토음식으로 사찰음식에서 비롯된 담백한 음식입니다.

- 우리나라 메밀의 주 생산지는 제주도입니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메밀은 우리 조상들의 소중한 식량이 되었으며, 메밀을 활용한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 가을무는 배처럼 달고 맛있으며 영양소가 산삼보다 탁월하다고 합니다.

- 무를 수확하면서 무청을 말려 두었다가 시래기를 만듭니다.

- 무청 시래기는 겨울 동안거에서 용맹정진하는 스님들께 보양음식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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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궁중음식문화재단 지정 한식예술장인 제28호 사찰음식 찬품장에 선정되었다. 경기대학교에서 국문학과 교육학을 전공하였고,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음식과 명상을 연구하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38호 궁중음식연구원 과정을 이수하였으며, 사찰음식전문지도사, 한국임업진흥원, 한식진흥원 교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식물기반음식과 발효음식을 연구하는 살림음식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논문으로 「사찰음식의 지혜」가 있다. 현재 대학에서 한식전공 학생들에게 한국전통식문화와 전통음식을 강의하고 있다.
natureswa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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