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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탁소리]
해인사 산문폐쇄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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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20 년 5 월 [통권 제85호]  /     /  작성일20-06-01 16:20  /   조회19,555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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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 스님 | 발행인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민족공동체추진본부(민추본) 본부장으로 2019년 3월부터 비상근으로 근무하기에 매주 월·화요일 출근하기로 직원들과 의논이 되었습니다. 2월 중순경, 민추본 출근을 마치고 2-3일 서울 장경각 사무실에 머물다 부산 고심정사로 내려왔습니다. 부산도 코로나바이러스로 거리와 골목에는 인적이 드물었습니다. 2월 21일 아침 해인사 백련암으로 출발하려는데 해인사 교무국장 소임을 보는 상좌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아침 종무회의에서 코로나 전염방지를 위해 해인사 산문폐쇄 결정을 내렸습니다. 오늘 지금부터 누구도 해인사 산문 밖을 나갈 수 없고, 들어올 수 없습니다. 방장 큰스님 허락을 받아 주지 스님께서 산문폐쇄 선언을 하셨습니다. 산문폐쇄 결정이 거두어질 때까지는 출입이 끊겼으니 해인사에 당분간 오시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장엄등을 단 해인사 전경


해인사에 출가하여 49여 년 사는 동안 1980년대 몇 번 산문폐쇄 한다고 대중들이 웅성거린 적은 있었지만, 하루 이상을 넘긴 적은 없었던 기억입니다. 산문 폐쇄한다는 일이 보통 큰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자연재해 때문도 아니고, 전쟁 때문도 아니고,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 균으로 기약 없는 산문폐쇄를 단행한다는 현실에 어리둥절하기만 했습니다. 다음 날부터 YTN 방송에 “조계종 해인사가 종교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산문 폐쇄했다.”는 자막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조선TV가 매주 목요일 저녁 10시부터 거의 자정까지 ‘미스터 트롯’ 선발경연대회를 방영하고 있었습니다. 작년 대만세계태권도 대회에서 1등을 했다는 ‘나태주’라는 분이 공중돌기, 3단 차기 등의 태권도 묘기를 보였습니다. 흡사 날아다니듯이 노래하는 그의 모습에 매료되어 이 프로그램을 끝까지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 1만5천명이 넘는 참가자들 중에서 101명이 살아남았고, 그중에서 20명이 선발되었습니다. 12명 마스터들의 ‘올 하트’를 받은 팀의 젊은 아이돌 출신은 “그동안 ‘망돌이’라고, ‘망한 아이돌’이라고 천대받고 살아왔습니다. 오늘 이렇게 무대에 서서 마음껏 노래를 부를 수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며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에 마음이 찡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임영웅의 ‘뽕다발’, 박영탁의 ‘4형제’, 김호중의 ‘패밀리가 떴다’, 나태주의 ‘사랑과 정열’, 장민호의 ‘트롯신사단’ 등 5팀으로 나누어져 본선 3차 기부금팀미션으로 마지박 경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금광명경>을 독송하고 있는 해인사 스님들

 

3등이었던 ‘뽕다발’팀이 임영웅의 분투로 일등이 되어 4명 모두 준결승에 진출하고, 나머지 팀에서 10명이 뽑혀 14명의 준결승 팀이 구성되고, 거기서 다시 7명이 뽑혀 대망의 결승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일대일 대결로만 진행되었더라면 출연자 본인들이나 시청자들도 쉽게 지쳐 버렸을지 모릅니다. 4-6명, 3-4명, 2명짝으로 팀을 꾸려 한 달가량 아니면 몇주일로 스스로 프로그램을 짜고 실력을 연마해 대결하는 진행과정 자체가 이 프로의 성공 요인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3월14일 저녁 7시 조선TV 뉴스가 끝나고 ‘미스터 트롯’의 성적 발표가 한 시간가량 진행되었습니다. 1위의 왕관을 쓴 이는 임영웅, 2위 박영탁, 3위 이찬원, 4위 김호중, 5위 정동원(14세), 6위 장민호, 7위 김희재 씨가 선정 발표되었습니다. 실력은 있지만 제대로 발휘해볼 기회가 없어 무명의 설움을 처절하게 겪었던 20여 명의 실력자를 제대로 발굴하여 세상의 빛을 보게 한 ‘미스터 트롯’의 광풍은 ‘인재개발의 큰 활력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해인사 산문폐쇄가 3월15일부터 해제가 된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해인사 경비소를 지나오니, 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고, 까마귀 한 마리 우는 소리도 없는 적막감이, 마음을 더욱 허허롭게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훌륭한 의료진들의 헌신과 자원봉사자들의 희생으로 코로나바이러스가 잘 수습되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어느 선진국 못지않은 우수한 전 국민 의료보험시스템을 우리나라가 갖추었다는 사실이 인정된 만큼, 그동안 애써주신 역대의 많은 관계자분들께 “감사하다.”라는 말씀을 올려야겠습니다.  

 

오랜만에 백련암을 올라와 이곳저곳을 살펴보면서 49년 전 출가하였던 백련암과 지금의 백련암의 모습이 너무나 달라졌음에 스스로 놀랐습니다. 이제야 때늦은 백목련이 꽃송이를 피우려 하고(사진 3), 늦게 핀 진달래가 온산을 화사하게 물들이고 있습니다. 며칠을 머물다 해인사 대웅전에 들러 삼배 드리고 나와 주위를 살펴보니, 대웅전 앞마당의 화사한 장엄등莊嚴燈이 시야에 들어왔습니다(사진 1). 4월11일 「불기 2564(2020)년 제60회 해인사 고려대장경의 날 정대불사」 행사가 거행되었습니다. 10-11시까지 대적광전에서 고유제가 진행됐고, 13-14시까지 ‘호국 『금광명경』 합송회’가 대중 일동이 참여한 가운데 봉행됐습니다(사진 2). 외적을 물리치기 위해 열렸다고 『삼국유사』에 나오는 ‘호국 『금광명경』 합송회’가 11일 오늘 “코로나바이러스를 퇴치하여 세계평화를 이루기 위해” 해인사에서 재현되니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목련이 피고 있는 백련암. 4월 12일 촬영


 이어 모조 팔만대장경판을 장경각에서 이운해 구광루 앞마당에 새겨진 해인도상海印圖上을 도는 정대요잡법회頂戴繞匝法會가 진행됐습니다. 14시30분부터 15시까지 4부 행사로 보경당 앞 특별제단에서, 팔만대장경 장경판전 공덕주 13분을 모신 위패단에 다례헌정 행사를 치르고, 법회는 장엄하게 회향되었습니다. 해인사 방장 원각 큰스님, 총무원장 원행 큰스님, 현응 주지 스님 등이 “이 공덕으로 하루빨리 코로나 병마가 다스려지고 나라와 국민이 편안하고 세계가 평화롭게 되기를!” 간곡히 염원하였습니다. 해인사는 6월6일 ‘한국전쟁 70주년 추모음악제’를 개최하고, 6월7일에는 ‘해원과 상생을 위한 해인사 수륙대전 10만 등燈 장엄 불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동참을 바랍니다. 모든 국민들과 불자님들께서 봄 산에 피어나는 초록 잔치의 아름다움을 가슴에 담고 더욱 활기찬 시절을 맞이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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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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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백련암에서 성철스님과 첫 만남을 갖고, 1972년 출가했다.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도서출판 장경각 대표, 부산 고심정사 주지로 있다. 1998년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 1999년 제10회 대한민국 환경문화상 환경조형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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