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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탁소리]
설날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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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14 년 2 월 [통권 제10호]  /     /  작성일20-05-29 14:16  /   조회7,415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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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의 명절은 음력을 기준으로 합니다. 한때 나라에서 음력설을 없애고 양력설을 쇠자고 무던히도 노력하더니만 지금도 설 명절은 살아남아 귀향 차표를 구하려고 밤을 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해인사 큰절만 해도 설 전날 선원이나 강원의 밤 9시 취침 규칙은 깨지고 자정 가깝게 성불도 놀이와 윷놀이를 시끌벅적하게 하면서 대중스님들이 한 마음이 되어 한 해를 보내고 한 해를 맞는 시간을 갖습니다. 선원에는 놀이에 따른 상품도 많아 큰스님들의 글씨나 전집 책 등등이 푸짐하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큰절의 떠들썩한 모습과는 달리 큰스님을 모시고 사는 백련암은 일체의 놀이도 없이 조용하기만 해서 저녁 9시에 잠자리에 들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다 설날 새벽 3시에 일어나면 예불을 마치고 나서 부처님께 세알 3배의 예배를 올리고 그 자리에서 대중 모두가 큰스님께 세배 3배를 드리는 예를 갖춥니다. 그러니 큰스님께서 직접 3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법당에서 형식적으로 새해 큰스님께 3배를 드리는 세배인 셈입니다. 그리고는 큰스님을 뵈러 백련암으로 올라오시는 큰절 어른스님들과 소임스님들 맞이에 눈코 뜰새 없이 바빠집니다.

 


차담을 나누고 있는 성철 스님과 대중스님들 

 

백련암에 자동차 길이 뚫린 것이 1990년 이후이니 그 전에는 세배 때마다 어느 스님이시든지 걸어 올라와야 했습니다. 큰절 대중스님들이 새벽 3시에 일어나 평소처럼 예불을 마치고 부처님께 세알 3배를 드린 후에 백련암으로 오시면 새벽 4시 30분쯤 됩니다. 그러면 큰스님께서 좌선실로 나오셔서 세배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제가 출가하여 행자로 살 때에는 오신 스님들의 법명이며 직책 등 누가 누군지 아무것도 모를 수밖에 없으니 멀리 바라보는 세배 풍습이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대중 세배가 끝나고 큰스님께서 덕담을 하시고 나면 그새 준비한 떡국과 다과들을 큰절 스님들께 대접합니다. 큰스님께서는 무염식의 공양을 하시는지라 떡국을 드시는 대중스님들의 모습을 보시며 그저 흐뭇해 하셨습니다.

 

그렇게 세배의 풍습에 익숙해 갈 무렵, 문제는 역시 날씨였습니다. 혹독하게 추운 날이나 밤새 눈이 30cm 이상 쌓이는 날이라도 되면 큰절에서 1km가 넘는 가파른 산길을 올라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숲길에 눈썹이라도 얼었는가 싶은 모습을 한 스님도 계시고, 눈 쌓인 길을 올라오시느라 지쳐 숨차하시는 스님을 맞이하자면 졸짜인 제가 공연히 죄송스러워 몸 둘 바를 몰라 했던 기억입니다.

 

올라오신 스님들이 떡국과 차담을 드시는 동안 큰스님께서 궁금하신 일이 있으면 수좌스님에게나 주지스님에게나 강주스님에게 물어보시기도 하고 또 “다른 대중들은 나한테 할 말 없나?”하시며 대중스님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려 하시는 모습을 보이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는 사이 5시쯤 되면 모두들 일어나셔서 큰절로 내려가시면 분주했던 백련암 새해맞이는 끝이 나고 찾아오는 이 없는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저희들은 아침 8시에 대적광전에서 열리는 산중 전체 세배행사에 참석하여 삼세의 부처님들께 3배를 올린 다음, 산중 대덕 큰스님께 3배를 올리고 다음으로 비구니, 사미, 사미니, 행자, 신도님들이 비구스님들에게 3배를 올리고, 다음으로 사미, 사미니, 행자, 신도님들이 비구니스님들에게 3배를 올리고, 다음으로 사미, 사미니에게 행자와 신도님들이 3배를 올리는 것을 끝으로 산중 설날의 세배행사가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관음전에서 주지스님 이하 3직스님들이 산중의 비구니, 사미니스님들에게 다과를 대접하고 세뱃돈을 나누어 줍니다. 다음으로는 비구니스님들이 큰스님들이 계시는 원당암, 홍제암, 용탑선원, 희랑대, 지족암 등으로 인사를 다니는데 백련암은 길도 멀고 큰스님께서 계시기 때문인지 ‘겁나서’올라오지 않았습니다.

 

설날 점심을 먹고 나면 비구니 암자인 삼선암, 약수암, 국일암에 있는 5~6살의 꼬마동자들이 몇 분의 비구니스님들과 함께 큰스님께 세배 인사를 드리러 올라옵니다. 그러면 큰스님께서는 볼을 꼬집기도 하고 울리기도 하시다가 사탕도 주고 과자도 주고 세뱃돈도 주시면서 한참동안 천진불이 되시곤 하셨습니다.

 

그렇던 백련암도 큰스님께서 열반하신 후 1994년 설날부터는 세시풍토가 바뀌게 되었습니다. 큰스님 계실 때는 그림자도 비치지 못하던 산중 비구니스님들이 꼬마스님들을 데리고 백련암

으로 모두 올라오는 것입니다. 백련암이 산중 동쪽 해발 750m의 제일 높은 곳에 있으니 비구니스님들이 도착하면 11시쯤이 됩니다. 바로 점심시간이니 “떡국을 끓여 주세요. 과일도 주세요.”하며 난데없는 잔치판 아닌 잔치판이 벌어집니다. 큰스님 떠나신 자리가 설날 비구니스님의 해방구가 잠시나마 되는 시간이기도 하고 한편으로 올라와 준 비구니스님들에게 고맙기도 하다는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세뱃돈이 문제였습니다. 몇 년은 천 원짜리를 준비했었는데, 어느 해에는 “원택 스님! 내년부터는 낙엽색을 부탁드립니다.”는 비구니스님의 말에 “무슨 말씀인가?”하고 의아해하다 그 말뜻을 깨닫고는 다음해부터는 세뱃돈으로 오천 원짜리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세월이 지나니 “원택 스님! 내년부터는 배추색을 부탁드립니다. 다른 암자 큰스님들께서는 다 배추색을 주시는데 백련암은 아직도 낙엽입니다.”하여 “내가 작은 스님이라서 그렇다.”하면서 크게 웃고는 다음해부터는 세뱃돈으로 만 원짜리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올해는 걱정입니다. 그래도 매년 새 돈으로 빳빳하게 세뱃돈을 비구니스님들에게 드릴 수 있었는데 해인사 농협이나 우체국에서 신권을 구하기기가 힘들다고 원주가 귀띔을 해줍니다. 어떻게라도 새 돈을 준비하여 추운 날 큰스님께 세배를 드리는 마음으로 올라오는 비구니스님들에게 정성을 보여야겠습니다.

 

산중의 세시풍습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지만 좌복 위에 앉아 절을 받는 스님들이 바뀌었으니 세월의 흐름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설 명절을 잘 지내시고 올 한해 펼쳐질 각자의 꿈과 염원을 청마(靑馬)의 기상처럼 더 높고 크게 떨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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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본지 발행인
196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백련암에서 성철스님과 첫 만남을 갖고, 1972년 출가했다.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도서출판 장경각 대표, 부산 고심정사 주지로 있다. 1998년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 1999년 제10회 대한민국 환경문화상 환경조형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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