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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도 냉면사리도, 일종의 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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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웅연  /  2018 년 4 월 [통권 제60호]  /     /  작성일20-05-29 12:28  /   조회6,81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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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경허의 선택

 

평균수명은 높아지고 평생직장은 사라지고 연금제도는 다양해졌다. 더 오래 살게 되니 더 많은 돈이 필요해진 노인들의 고뇌와 경쟁은 갈수록 격화될 것 같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란 말도 세상에 폭넓게 나돈다.

 


 

 

장수(長壽)가 성공의 징표로 올라선 시대다. 목숨의 길이에 대한 욕망이 인생의 깊이에 대한 고민을 압도하고 있다. 나를 괴롭히거나 내가 마뜩지 않은 저놈보다 하루라도 더 살겠다는 신념으로, 오늘의 수모와 불행을 견딘다. 약도 꼬박꼬박 챙겨먹고, 있어 보이는 놈에겐 부지런히 약을 치고, 없어 보이는 놈에겐 있어 보이는 놈에게서 얻은 앙심을 끌어모아 약을 올린다.

 

하지만 제아무리 100살을 산들, 삶은 기어이 끝난다. 내가 나를 기억할 수 없고 내가 나를 알아줄 수 없는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결국 그토록 물고 빨던 ‘나’는, ‘저놈’이 된다. 남을 미워할 시간에, 좋아하는 술 담배나 계속 하기로 했다.

 

경허성우(鏡虛惺牛)가 문득 시를 썼다.

= 일개 개인이 4차 산업혁명을 구현할 수 있는 때가, 혼자서 술 마시는 밤이다.

“세상이 옳은가? 청산이 옳은가?

봄볕이 없는 곳엔 꽃이 피지 않는구나.”

(世與靑山何者是 春光無處不開花)

= 악마가 멀리 있지 않다. 봄볕도 안 주면서 말로만 힘내라고 하는 놈들이다.

 

봄볕이 들면 어디든 생기가 든다. 따스해지고 살만해진다. 인생이 피고 웃음꽃도 핀다. 볕 드는 그곳이 집이든 절이든 상관없다. 세속이든 탈속이든 사람이 들면 그 엉덩이만큼 자연(自然)이 줄어드는 법이다. 숨어사는 인간들은 대개 숨기는 것이 있다.

반면 봄볕은 세상에도 청산에도 널려 있다. 혈연을 따라가지 않고 인성을 타박하지 않는다. 집도 절도 없는 이들에게도 예외가 없다. ‘비춰준다’는 생각도 거래도 없이, 온몸이 ‘비춤’이 되어 비춘다. 3월엔 개학을 하고 4월엔 선거를 한다. 봄볕이 사라지면 당장에 죽어버리거나 잔뜩 움츠러들어 제 몫이나 챙길 것들이.

 

또 하루가 간다.

죄는 쌓인다.

 

또 하루가 온다.

벌 받으면 된다.

 

#7. 법정의 좋은 말씀

 

‘고집멸도(苦集滅道)’ 사성제(四聖諦)는 붓다가 깨달은 네 가지 거룩한 진리를 일컫는다. 고통[苦]은 집착[集]에서 생겨나므로, 집착만 버리면 해탈한다는[滅] … 매우 단순한 도식이다. 도(道)는 고통을 멸망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여덟 가지의 방법 그러니까 팔정도(八正道)가 있는데, 한마디로 정리하면 마음 비우고 바라보고 말하고 일하며 분수에 맞게 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깨달음은 체념(諦念)이다. ‘방하착(放下着)’이라고 했다. 무엇을 생각하든 당장에 그 생각 놓아버리면 그 순간이 행복이란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 만큼이 증오이고, 내가 용서하지 못한 만큼이 전쟁이라고 불교는 가르친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내 마음이 곧 현실이기에 가능한 논리다. 지금과는 다른 현실로 빠르게 옮겨가려면 타인을 해쳐야 하거나 마약을 해야 한다.

 

‘체념’이란 단어가 얼핏 평범해 보여도 사실 그 푸근한 어감 안엔 우주의 비밀이 숨어 있다. 그래서 ‘포기하면 편하다’는 시쳇말이 경건한 법문으로 들릴 때가 있다. ‘사성제’의 ‘諦’를 어쩌다 ’제‘로 발음하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가장 위대한 마음은 언제 어디서든 평범할 줄 아는 마음이겠고, 평범하게 살아도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겠다.

 

베스트셀러 『무소유』의 작가로 유명한 법정(法頂, 1932~2010)에게 중년 신사가 다가왔다.

 

= 법호(法號)조차 따로 짓지 않은 이에게 명함 돌리기 좋아하는 이가 찾아왔다.

“스님의 책을 샀다”며 표지에 서명(書名)과 함께 “좋은 말씀 한번 적어 달라”고 졸랐다.

= 팬인데요, 웃겨주세요.

“그냥 책에 적힌 대로 살면 되지 않겠느냐”며 거절했지만 남자는 막무가내였다.

= 책 한 권 산 건데, 사람을 산 줄 안다.

결국 법정은 그에게서 펜을 넘겨받았다. 큼지막한 글씨로 이렇게 썼다. ‘좋은 말씀’

= 스님 체면에 주먹감자를 먹일 순 없는 노릇.

“마음 비우고 살라”는 말을 들었다고 마음 비워지지 않는다.

“걸림 없이 살 줄 알라”는 말을 들었다고 신호등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착하게 살라”는 말을 들었다고 남들이 착해지지는 않는다.

 

이렇게 언어는 무능하다. 책 속의 삶은, 책일 뿐이다. 책에서 가르친 대로 살다가 잘못되어도, 책은 책임져주지 않는다. 물론 덕담을 들으면 위안이 되고 힘이 생긴다. 그러나 귀는 밥을 먹지 못한다.

 

말들의 모략과 행패에 가슴 앓으며 오늘도 살아간다. 그래서 ‘좋은 말씀’을 들으러 산으로 올라간다. 사실 다리가 더 튼튼해져 있다. 넘어져야만 일어설 수 있고 할퀴어져야만 아무는 것이다. ‘좋은 말씀’이 되어서 산을 내려온다.

 

눈 뜨면,

개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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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웅연
집필노동자.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 조사선(祖師禪)에 관한 수업을 몇 개 들으며 불교와 인연을 맺었다. 2002년부터 불교계에서 일하고 있다. ‘불교신문 장영섭 기자’가 그다. 본명과 필명으로 『길 위의 절(2009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선문답』, 『불행하라 오로지 달마처럼』, 『눈부시지만, 가짜』, 『공부하지 마라-선사들의 공부법』, 『떠나면 그만인데』, 『그냥, 살라』 등의 책을 냈다. 최근작은 『불교에 관한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물음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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