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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읽는 삼국유사]
괴력난신의 이면 들여다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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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연  /  2019 년 8 월 [통권 제76호]  /     /  작성일20-05-29 10:30  /   조회6,775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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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연 | 자유기고가

 

괴력난신이라는 안경으로 『삼국유사』를 들여다볼 때 앞서의 「기이편紀異篇」이 한 나라의 왕조나 왕공귀족 등 주로 상층부의 신이함을 재료로 삼았다면 이후는 글의 성격으로나 서술 대상으로 다른 모습들을 보인다. 먼저 글의 성격으로 볼 때 왕력과 기이편이 역사적 성격이 두드러진다면 「홍법편」부터는 불교사 및 불교문화사적 성격이 강하다. 이것은 『삼국사기』 등과 확연히 다른 『삼국유사』의 특징이고, 아마도 이것이 오늘까지 『삼국유사』에 대한 평가가 다양하게 갈리는 이유이기도 한 것 같다. 

 

「신주편」에 등장하는 세 명의 밀법승

 

 신기함의 측면에서 눈길이 가는 것은 「신주편神呪篇」이다. 「신주편」은 총 3편이 수록된 짧은 분량이다. 여기서 신주神呪란 다라니로서 지혜와 삼매를 뜻하고, 진언眞言의 의미를 가진다. 진언은 붓다의 가르침의 정요精要로서 신비적 힘을 가진 것으로 믿어지는 주문이다. 밀교密敎에서는 이 진언과 다라니를 지송함으로써 마음을 통일하고 궁극의 경지에 도달하여 부처가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삼국유사』 전반에 등장하고 있는 괴력난신이 소재나 제재로서의 의미가 크다면 이 「신주편」의 그것은 어쩌면 본질적인 차원으로 접근해야 할 것 같다.

 

선덕왕善德王이 병이 들어 오래되었는데, 흥륜사興輪寺 중 법척法惕의 치료가 효험이 없어 밀본密本이 초청되었다. 이에 밀본이 『약사경藥師經』을 읽자 권축卷軸이 다하려 할 때 육환장六環杖이 침실에 날아 들어가 늙은 여우 한 마리와 법척을 뜰 밖으로 내던지니 왕의 병은 이내 나았고, 밀본의 정수리에는 오색신광五色神光이 발하여 보는 사람을 놀라게 했다. 

 

 


 

 

 「신주편」의 첫 번째 이야기 ‘밀본최사密本摧邪’이다. 뒤이어 승상 김양도가 어려서 갑자기 입이 붙고 몸이 굳어져 말도 못하고 수족도 움직이지 못했는데 무당이 와도 법류사의 중이 와도 귀신에게 희롱만 당하는 와중에 밀본 법사를 청하려 하자 그 이름만 듣고도 귀신들이 얼굴빛이 변했고 사방에서 대력신이 나타나 모든 귀신을 잡아가 버리니 밀본이 도착하여 경을 펴기도 전에 양도의 병이 다 나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두 번째로 등장하는 인물은 혜통惠通이다. 「신주편」이 전하는 혜통의 밀교적 행법은 매우 단편적인 것들이지만, 『다라니집경陀羅尼集經』의 밀교적 행의行義에 통하는 바가 있다. 일찍이 혜통은 당나라로 가 무외無畏 삼장으로부터 배우려 하였으나 삼장이 끝내 법을 전해 주지 않자, 마당에 서서 머리에 화분火盆을 이니, 우레 소리가 나면서 머리가 파열하고 이에 삼장은 신주를 외어 상처를 아물게 해 주고는 인결印訣을 전해 주었다고 하였다.

 

 혜통의 호號가 ‘왕화상王和尙’이 된 것도 그 때 머리에 생긴 왕王 자에 의한 것이라 하는데, 이 설화에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화분火盆’의 등장이다. 제물을 불에 태워 천신에 바치는 호마법護摩法은 인도 베다Veda시대부터 행해진 중요한 의례의 하나였다. 이것이 밀교에도 채택되어 여러 경전에 설해져 있으며, 『다라니집경』에 이르러는 그 형식이 거의 완비되었다고 한다. 즉 『다라니집경』에는 “도량 중에 단을 만든 다음 화로火爐를 안치하고 향화香華·백개자白介子 등에 송주誦呪하여 태운다.” “향로를 손에 들고 작법作法한다.”는 등의 말이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혜통의 설화 속에 등장하는 화분은 경전의 화로와 통하는 것일 듯. 더구나 혜통이 무외 삼장에게 수학하는 과정 중에 그것이 등장하고 있음은 그가 당시에 삼장으로부터 철저한 호마법을 익혔던 것(주1)으로 해석해볼 수 있다.

 

 또한 당나라 공주가 병이 나서 고종이 삼장에게 치료를 청하자 삼장은 대신 혜통을 천거하는데, 혜통은 다른 곳에 거처하면서 흰 콩 한 말을 은그릇에 넣고 주문을 외니 그 콩이 흰 갑옷 입은 신병神兵이 되어 병마를 쫓으려 하였으나 이기지 못했다. 다시 검은 콩 한 말을 금그릇에 넣고 주문을 외우니 검은 갑옷 입은 신병으로 변해 흰 갑옷 신병과 힘을 합해 병마를 쫓으니 마침내 교룡이 달아나고 공주의 병이 나았다는 설화가 이어진다. 이러한 주술呪術은 그 다음의 설화에서도 나타난다. 

 

효소왕이 즉위하여 정공鄭公과 함께 혜통을 도모코자 혜통이 있던 왕망사王望寺에 갑병甲兵을 보냈다. 혜통은 집 위에 올라가 사기병을 들고 그 머리에 붉은 붓을 그으면서 갑병들에게 이르기를, “너의 머리를 보라.” 하니 그들의 머리에도 모두 붉은 획이 그어져 있었다. 그때 혜통이 다시 “이제 내가 병목을 끊어 버리면 너희들 머리는 어떻게 되겠느냐?”고 하니 병사들은 놀라 달아나 버렸다.

 

 세 번째로 등장하는 인물은 명랑明朗 법사이다. 명랑은 선덕왕 원년(632)에 당나라에 들어갔다가 선덕왕 4년(635)에 귀국하였다고 한다. 한편, 『삼국유사』 권2 ‘문호왕 법민’조에는 문무왕 대에 신라로 돌아왔다고 하여 그의 귀국 연대에 대한 이견이 있기도 하다. 명랑은 우리나라 최초의 밀교종파인 신인종神印宗을 개창한 초조初祖로 알려져 있다. 신인종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세워졌으며, 그것은 문두루비법文豆婁秘法으로 적이나 병 같은 재앙을 물리치는 밀교 계통의 불교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문두루란 산스크리트 무드라Mudra의 음을 딴 것으로 한자로는 신인神印이라 한다.

 

 당나라의 침공을 맞아 명랑은 낭산 남쪽 신유림에 사천왕사를 세우고 주문을 외울 단을 만들어주면 적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하였다. 드디어 당나라 군 50만이 서해를 건너니, 명랑은 계획대로 문두루법을 사용하여 큰 바람과 거센 물결을 일으켜 당나라 수군의 배를 모두 침몰시켰다. 당나라는 다음해에 5만 수군을 다시 파견하였으나 이번에도 명랑은 문두루법으로 이들을 막아냈다.

 

 문두루법은 어떤 행법이었을까? 문두루법의 전거가 되는 『불설관정경佛說灌頂經(佛說灌頂伏魔封印大神呪經)』에서는 그것이 풍랑을 다스리는 법이라고 국한된 것은 아니었지만, 여하간 명랑은 풍랑을 일으키는 데 사용했다. 명랑은 사천왕사에서 문두루법을 행할 때 유가종의 승려 12명을 불러 함께했다고 한다. 『불설관정경』에 의하면 지름 77푼의 둥근 나무 기둥에 오방신의 이름을 새겨놓고 주문을 외우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 사천왕사에는 둥근 구멍이 뚫린 12개의 초석으로 이루어진 방형 건물지가 금당 좌우로 남아 있다. 그 뚫린 구멍의 지름이 20㎝를 웃도는 크기들이라 만약 문두루법에 필요한 원형 기둥을 여기에 꽂는다면 적당하다고 한다. 그래서 『삼국유사』에서 언급한 바 주문을 외울 때 사용한 단석의 터로 추정되고 있다.

 

 이와 같이 「신주편」에는 3명이 밀법승이 등장하여 당시 신라 사회 밀교의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 초기에 해당하는 이때의 밀법은 주로 악신잡귀의 구축驅逐을 통한 치병治病·제액除厄 및 호국의 사례로 등장한다. 3편 모두 공통으로 병을 고쳤고 주술을 통해 액난을 물리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보여주는 신이함은 구름을 탄다든지, 꿈으로 현신하는 등과 같이 다른 편에서 나타나는 것들과는 맥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밀교 주술로서의 괴력난신

 

 첫 번째 설화에서 밀본 법사는 경전을 읽음으로써 병사病邪를 퇴치하고 있다. 『약사경藥師經』이 치병주술治病呪術에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주술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사용되지만 대표적인 것은 주구呪句의 사용이다. 불교의 대승경전에 수많은 진언·다라니가 설해져 있음은 이 때문이다. 더 나아가 경전 전체가 다라니라는 신앙까지 발생하는데, 이런 경전 다라니의 활용이 밀본에 의해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설화에서 혜통 법사는 호마법 수행으로 인결印訣을 전해 받는다. 호마법은 일종의 정화법으로 우리가 천수경에서 항상 외우는 사방찬도 동서남북 사방을 정화시키는 법이다. 이렇게 대지가 정화되어 삿된 기운이 제거되면 그 장소의 에너지 수준이 고양되고 영력이 높아지는 것이다. 

 세 번째 설화에서 명랑 법사는 문두루비법으로 외적을 물리쳐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한다. 문두루란 무드라Mudra로 수인手印을 맺어 그 위력을 행사하는 밀법이다.

 

 이렇듯 여기에 등장하는 각각의 수법은 모두 경전을 근거로 고도의 수행력을 바탕으로 행할 수 있는 높은 경지의 행법인 것이다.

 밀교는 7세기에 대승불교의 화엄華嚴사상, 중관中觀·유가행파瑜伽行派 사상 등을 기축으로 하여 성립하였다. 보통 밀교는 미신적인 주술 체계로서, 성력(性力, sakti)을 숭배하는 타락된 불교로 인식되고 있으나, 그것은 힌두교의 탄트라tantra 신앙과 결합되어 말기에 나타난 좌도밀교左道密敎를 가리킬 따름이다. 정통 밀교사상은 개체와 전체의 신비적 합일合一을 목표로 하며, 그 통찰을 전신적全身的으로 파악하는 실천과 의례의 체계를 갖는다.(주2)

 

 유사遺事라는 특성상 『삼국유사』의 「신주편」은 다만 일화로서 밀법의 신비로움을 표면화하는 데 그치고 있지만 이렇듯 여기서의 신이함은 범인凡人의 한계를 뛰어넘는 높은 수행력과 정신력, 그리고 경전의 뒷받침을 담보로 하여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주)

(주1) 신라의 밀교전래와 전개양상(무관, 석림논총)

(주2) 네이버 지식백과(두산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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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연
오세연
대학 졸업 이후로 줄곧 불교출판계에서 일해 왔으며, 현재 나라연 기획사를 운영하고 있다. 2012년 남인도 법회에서 달라이라마를 친견한 후 티베트불교를 공부하고 있으며, 닝마파의 수행법인 『보현밀의총집전행』을 공동으로 번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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