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삼국의 선 이야기 ]
고려 광종 대 법안종의 유입과 그 성격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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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룡 / 2024 년 11 월 [통권 제139호] / / 작성일24-11-04 16:44 / 조회150회 / 댓글0건본문
한국선 이야기 11
연수의 저술로는 『종경록』과 『만선동귀집』이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만 전체의 저술은 66종 197권에 이른다. 이 가운데 12종 119권이 전해지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종경록宗鏡錄』(100권), 『만선동귀집萬善同歸集』(6권), 『영명지각선사유심결永明智覺禪師唯心訣』(1권), 『심부주心賦註』(4권), 『수계垂誡』(1편), 『수보살계법병존受菩薩戒法竝存』(1권), 『정혜상자가定慧相資歌』(1편), 『경세문警世文』(1편), 『관심현추觀心玄樞』(1권), 『삼매계념불사三昧繫念佛事』(1권), 『삼시계념의범三時繫念儀範』(1권), 『자행록自行錄』(1권) 등이다.
영명연수의 저술과 『종경록』의 내용
광종이 연수의 가르침을 전해 듣고 제자의 예를 올렸다고 하는데, 광종이 연수의 영향을 받은 책으로 『종경록』이라 하는 학자도 있고, 『만선동귀집』이라는 학자도 있다. 이에 대한 분명한 전거가 확인되지는 않는다.
『종경록』은 연수가 영명사에 거주하였던 961년(광종 12)에서 973년(광종 24) 사이에 저술되었다. 『종경록』은 모두 100권으로 되어 있는데, 그 구성은 표종장標宗章·문답장問答章·인증장引證章으로 되어 있으며, 문답의 형식을 빌어 표방하고 있다. 전체의 종지에 대하여 연수는 자서自序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지금 조사와 부처님의 대의大意와 경과 논의 바른 종지[正宗]를 살피면서 번거로운 글은 깎아 버리고 요지만을 찾아서 가정으로 문답을 펴며 널리 인용하여 증명하였으니, 일심一心을 들어 ‘종宗’으로 삼고 만법을 비춤은 ‘거울[鏡]’과 같다. 옛 책의 깊은 뜻을 엮어서 잇고, 보장寶藏의 두렷한 언전言詮을 대강 추려서 이와 함께 드날리므로 그를 일컬어 ‘록錄’이라 하며, 나누어 백 권으로 한다.(주1)
위의 연수의 글을 통하여 알 수 있듯이, ‘종경록’이란 제목은 ‘일심一心’을 종지로 하고 만법을 비추는 일심의 작용이 거울과 같음을 빗대어 붙인 것이다. 연수는 법안종 선사로서 그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세계는 자내증의 경계로서 이는 언어나 문제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언어나 문자에는 깨달음의 세계를 지향하게 하는 힘이 있는데, 연수는 그것을 방편적인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종경록』의 구성을 살펴보면 이 글을 지은 연수의 의도를 알 수 있다. 연수는 ‘표종장’을 통해 종지를 드러내 알게 하고, 이어 ‘문답장’을 통해 그 종지에 대한 의문을 해소시키고 나서, 마지막으로 ‘인증장’을 통해 이러한 논의가 자신의 주관적인 견해가 아니라 조사와 부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연수가 『종경록』을 편찬한 의도는 한 마디로 ‘선의 심종心宗을 통해 다양한 교종의 사상을 조화시키고자 한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실제로 이 책에는 선을 기반으로 하면서, 천태·화엄·정토·율이 종합되어 있다.
그런데 박인석 박사는 “일반적으로 『종경록』의 편찬 의도를 선교일치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경우가 많은데, 연수가 『종경록』 2권에서 말한 ‘도를 추구하는 학인들에게 방편을 제공하기 위해서이다’라는 언급이 이보다 더 근원적이다.”(주2)라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종경록』의 편찬 의도에 대한 박인석의 견해를 정리해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주3)
첫째, 도를 추구하기 위한 학인들에게 방편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둘째, 간략함을 좋아하는 이들을 위해 여러 경론의 핵심적인 내용만을 뽑아서 제공하기 위함이다.
셋째, 총체적인 것을 붙잡으려고 하는 이들 가운데에는 개별적인 이치에 밝지 못한 경우가 많으므로, 그들에게 개별적인 이치를 제시해 주어 성性·상相에 두루 통하게 하기 위함이다.
넷째, 이미 사라진 전적이나 사라지지 않은 전적의 내용을 보존하기 위함이다.
연수가 『종경록』에서 논의하고 있는 대부분은 ‘질문-대답-인증’의 구조를 통하여 일심과 만법의 관계를 정립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연수의 글은 논리적이고 그래서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물론 이러한 점은 선사로서의 풍모라기보다는 학자로서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종경록』에는 특별한 논증의 과정 없이 곧장 일심을 통해 만법을 해석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런 글에서 선사다운 풍모가 드러난다.
『종경록』의 핵심 사상은 ‘일심一心’에 있다. 원효 또한 『대승기신론』의 ‘일심’을 통해 제교諸敎를 회통하였고, 지의 또한 ‘일심삼관一心三觀’을 통하여 남·북조 선종과 교종의 사상을 종합하였다. 그리고 종밀은 ‘공적영지空寂靈知’를 통하여 화엄종과 하택종의 사상을 회통하였다. 그렇다면 연수가 말하는 ‘일심’이 원효나 지의나 종밀과 다른 차별적 특징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생략하고 다만 “조사와 붓다의 종지인 일심의 내용과 성격을 법성종에서 제기하는 여래장으로 파악한 뒤, 연수는 만법을 일심으로 재해석하는 지난한 작업을 거치게 된다.”(주4)라는 박인석의 견해로 대신하고자 한다.
『만선동귀집』, 선정쌍수 이론을 체계화한 대표 저술
다음으로 『만선동귀집』은 ‘중선소귀衆善所歸 개종실상皆宗實相’을 표방하고 있는데, 선교 양가의 고질적인 병폐를 극복하기 위하여 저술한 책이다. 전체의 구성은 총 114개의 문답과 십의十義 즉 이사무애理事無礙·권실쌍행權實雙行·이제병진二諦竝進·성상융즉性相融卽·체용자재體用自在·공유상성空有相成·정조겸수正助兼修·동이일체同異一體·수성불이修性不二·인과무차因果無差 등이다. 연수는 이 책의 서두에서 이 책의 종지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대저 온갖 선법善法은 모두가 실상實相을 그 종지宗旨로 하여 돌아가는 것이다. 비유하면 허공이 일체를 두루 싸 용납하며 대지에서 온갖 만물이 발생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오직 이 같은 이치에 계합하면 그 나머지 만덕萬德은 저절로 갖추어진다. 그래서 진제眞際를 움직이지 않은 채 항상 만행을 일으키고 인연생멸법을 어기지 않은 채 항상 법계의 참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언제나 고요한 진리 속에 있으나 만 가지로 씀에 장애되지 않고, 차별이 치성한 속俗에 있어도 역시 조금도 진리를 어기지 않아서, 있고 없는 모든 상대적인 것이 가지런하고 평등하므로 ‘만법이 오직 마음’이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행하는 이들은 마땅히 육도六度와 만행萬行을 널리 구해 원만히 행할 것이요, 부디 어리석음만을 지키며 우두커니 앉아서 참된 수행의 길을 막아서는 안 된다.(주5)
이 책의 근본 종지는 돈오頓悟에 있으나 교敎와 정淨의 겸수를 주장하고 있다. 수행면에 있어서도 오직 일심一心을 증득하기 위한 것을 강조하지만 조도助道 방편으로써 만행을 겸하라고 주장한 것이 특징이다. 이 책은 특히 자심정토·자심미타의 입장에서 선과 염불을 함께 닦을 것을 권하고 있기 때문에 선정쌍수禪定雙修의 이론을 체계화한 대표적인 저술로 평가된다.
『유심결』은 그 제목에서 지눌의 『수심결』을 연상시키게 되는데, 그 내용은 일심一心의 본체를 실상實相과 대용大用을 들어 설명하고, 하반부는 심법을 공부하면서 집착으로 인해 생기는 120가지의 편견을 극복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고려 선불교에 끼친 연수의 영향
연수가 고려 선불교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그것은 연수의 영향으로 고려에 법안종이 유입되고서 구산선문의 활동이 침체하게 되었다는 사실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다. 또한 최초로 한국 선의 법통을 언급한 허균의 「청허당집 서문」 다음의 글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도봉영소道峰靈炤 국사가 중원에 들어가서 법안과 영명의 법을 전수하고서, 송나라 건륭 연간에 본국에 돌아와 현풍을 크게 떨치며 말법을 구제하였다. 그리하여 조사서래祖師西來의 뜻이 비로소 선양되는 가운데 동토에서 가사를 걸친 자들이 임제와 조동의 가풍을 이을 수 있게 되었으니, 선종에 공을 끼친 것이 어찌 적다고 하겠는가.
(도봉) 국사의 정법안장은 도장신범道藏神範에게 전해졌고, 그 뒤에 … 6세를 거쳐 보제나옹普濟懶翁에게 전해졌다. … 그(나옹)의 법을 전수한 자 중에 남봉수능南峰修能이 적사가 되는데, 정심등계正心登階가 실로 그 법을 이었으니, 그가 바로 벽송지엄碧松智嚴의 스승이다. 벽송은 부용영관芙蓉靈觀에게 전하였는데, 부용의 도를 얻은 자 중에는 오직 청허노사淸虛老師가 가장 걸출했다고 칭해진다.(주6)
여기에서 나옹법통설과 태고법통설의 시비를 가리고자 하는 의도는 없다. 또한 한국선의 법맥에 대한 허균의 안목에 대해서도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한 점은 『청허당집』이 만들어질 당시 휴정의 제자들이 허균에게 서문을 부탁했을 것이고, 이들 모두가 휴정의 법이 연수로부터 이어져 왔다고 여겼다는 사실이 위의 글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서긍의 『고려도경』이나 성철의 선사상에 미친 연수의 영향을 언급할 필요도 없이, 연수의 선사상은 한국 선불교에 깊이 침투하여 지금까지도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광종 사후 연수의 선사상을 크게 떨친 것은 한국선의 중흥조로 일컬어지는 보조지눌과 그의 제자 진각혜심이다. 지눌의 대표적인 저술인 『정혜결사문』과 『수심결』 및 『절요사기』 등에는 연수의 『종경록』과 『만선동귀집』 및 『유심결』의 내용이 많이 인용되고 있으며, 혜심의 『진각국사어록』에는 『종경록』에 대한 인용이 36회나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혜심은 1213년(강종 2) 수선사에서 남송의 심문담분心聞曇賁이 촬요한 『종경촬요』를 간행하였다. 이후 『종경록』과 『유심결』, 『주심부』 등의 연수의 저술이 분사대장도감 등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간행되었다. 이 또한 연수가 끼친 영향력의 지대함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지눌의 『정혜결사문』에는 연수의 『유심결』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다.
『유심결』에 이르기를, “혹은 자리를 사양하여 지극한 성인의 경지로 높이 미루며, 혹은 덕을 쌓아 삼아승지겁이 차기를 바라기도 하여, 전체가 앞에 나타난 것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묘한 깨달음만 바라니 어떻게 본래 구족했음을 깨닫겠는가! 이에 공이 이루어지기만을 기다리다 원만하고 항상한 데 들어가지 못하고서 마침내 윤회에 떨어진 것은 다만 성품의 덕에 어두워 참된 종지를 분별하지 못하여 깨달음을 버리고 번뇌를 따르며 근본을 버리고 지말로 나아가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주7)
이와 같이 한국 선불교에 끼친 연수의 영향은 지대하다. 그럼에도 연수가 끼친 영향력은 공功의 측면과 더불어 과過의 측면 또한 적지 않다. 그 공은 선사상의 핵심을 잘 드러내었다는 점이고, 그 과는 마조와 임제로 이어지는 활발발한 선풍禪風을 약화시켰다는 점이다.
<각주>
(주1) [宋]延壽 集, 『宗鏡錄』 序(大正藏 卷48, 417上), “今詳祖佛大意 經論正宗 削去繁文 唯搜要旨 假申問答 廣引證明. 擧一心爲宗 照萬法如鏡. 編聯古製之深義 撮略寶藏之圓詮 同此顯揚 稱之曰錄 分爲百卷.”
(주2) 박인석, 『영명연수 『종경록』의 ‘일심’사상 연구』, (재)은정불교문화진흥원(2014), 362쪽.
(주3) 위의 책, 363쪽.
(주4) 위의 책, 366쪽.
(주5) [宋]延壽 述, 『萬善同歸集』 卷上(大正藏 卷48, 958上), “夫衆善所歸 皆宗實相. 如空包納 似地發生. 是以但契一如 自含衆德. 然不動眞際 萬行常興 不壞緣生 法界恒現. 寂不閡用 俗不違眞 有無齊觀 一際平等 是以萬法惟心. 應須廣行諸度 不可守愚空坐以滯眞修.”
(주6) 허단보, 『청허당집』 서문, 『한국불교전서』 7책, 659下.
(주7) 지눌, 『권수정혜결사문』, 『한국불교전서』 4책, 703中. “唯心訣云. 「或讓位高推於極聖 或積德望滿於三祇 不知全體現前 猶希妙悟 豈覺從來具足. 仍待功成 不入圓常 終成輪轉 祇爲昧於性德 罔辯眞宗 捨覺徇塵 棄本就末.」 此之是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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