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수淸水, 아귀를 위한 자비심 > 월간고경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월간 고경홈 > 월간고경 연재기사

월간고경

[작고 아름다운 불교의례 ]
청수淸水, 아귀를 위한 자비심


페이지 정보

구미래  /  2024 년 10 월 [통권 제138호]  /     /  작성일24-10-05 13:41  /   조회611회  /   댓글0건

본문

발우공양에서 청수淸水가 지닌 상징성은 매우 크다. 의식의 처음과 마지막을 관통하는 가운데, 불교에서 새기는 공양의 핵심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불교에서 발우공양의 청수는 천수주千手呪와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어, ‘천수물千手水’이라고도 부른다. 청수가 등장하는 장면을 중심으로 공양의 과정을 따라가 보자. 

 

물 한 방울에 팔만사천충

 

대중이 발우를 펴고 자리를 잡으면, 음식을 나누어주는 행익行益 소임이 청수·밥·국을 배분하게 된다. 가장 먼저 청수가 돌면 각자 두 손으로 청수발우를 들어서 받고, 뒤이어 밥과 국을 차례로 나눈다. 

그 뒤 청수는 공양을 시작하기 직전에, ‘먹는 일’과 관련해 출가 수행자들의 깊은 관상觀想의 대상이 된다. 두 손으로 감로인甘露印의 수인을 한 채 청수발우에 담긴 물을 응시하며 정식게淨食偈를 외우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진 1. 운문사 발우공양에서 청수를 돌리는 모습. 

 

오관일적수五觀一滴水  팔만사천충八萬四千蟲 

악불념차주若不念此呪  여식중생육如食衆生肉

 

한 방울의 물을 관해 보니 8만 4천의 생명이 있구나. 

만약 이 주문을 외우지 않는다면 중생의 살을 먹는 것과 같도다. 

옴 살바 나유타 발다나야 반다반다 사바하(3회)

 

자신이 공양할 밥상을 앞에 두고, 물 한 방울에서부터 모든 음식에 생명이 깃들어 있음을 새기는 게송이다. 부처님 당시 출가 수행자들이 녹수낭漉水囊을 지니고 다니며 물속의 작은 벌레를 걸러 생명을 보호했듯이, 맑은 청수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생물이 있음을 잊지 않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삶이 일상화된 노스님들은 물을 버릴 때도 미물이 놀라지 않게 조금씩 버렸고, 산길을 걸을 때면 지팡이로 땅을 두드려 벌레들이 밟히지 않고 피하도록 배려하였다. 

 

사진 2. 송광사 발우공양에 사용할 청수를 거르는 모습.

 

이와 관련해 순천 송광사 공양간에서는 끓인 물을 발우공양에 쓸 청수로 사용하는데, 청수 주전자에 물을 담을 때 면포로 거르며 붓는 전통이 있다. 이물질을 걸러내기 위함이겠지만, 주전자 입구에 면포를 두르고 조심스레 붓는 행자의 모습은 청수의 신성성을 말해주는 듯하다. 

 

정식게의 마지막에 진언을 외우는 것은 음식을 청정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그러나 ‘청정하게 만드는 것’의 참뜻은 진언의 신묘한 힘에 의지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음식에 생명이 깃들어 있고, 살아가는 일이 수많은 생명의 희생 위에 있음을 새기며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는 의미로 귀결된다. 일상의 공양 속에서 외우는 게송 하나하나마다 마음을 가다듬게 하는 깊은 뜻이 담겨 있으니, 출가자의 하루하루가 큰 힘을 가지는 이유이다.

 

청수를 반으로 나누기

 

청수가 본격적으로 조명되는 때는 공양을 마치면서부터이다. 대방 안팎의 공간은 청수를 중심으로 일관된 주제의 무대가 되어 독특한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먼저 그 과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공양을 마칠 때쯤 숭늉을 돌리면 발우에 조금씩 부어서 무 조각으로 깨끗이 닦아 마시고, 마지막으로 청수를 각 발우에 부어서 발우와 수저를 손으로 씻는다. 이어 대중의 청수를 모으기 위해 퇴수통退水桶이 돌면, 각자 발우 씻은 청수를 조심스럽게 붓게 된다. 퇴수통은 대방 천장에 붙여놓은 ‘천수다라니’ 아래 놓아두었다가 나중에 대방 밖 ‘퇴수구’에 부음으로써 그 쓰임새를 마친다. 

 

사진 3. 운문사 발우공양에서 청수로 발우를 씻는 모습.

 

이제 각각의 의미에 주목해 보자. 청수로 발우와 수저를 씻고 난 물은 퇴수통이 돌기 전까지 각자의 발우에 부어두는데, 스님들은 그 물을 바라보면서 ‘올바른 공양을 했는지’ 스스로 점검한다. 청수가 처음 받았을 때와 별 차이 없이 맑아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처음 청수를 나눌 때는 상판에서 하판으로 내려오지만, 마지막에 거둘 때는 하판에서 상판으로 올라간다. 어른 스님들이 아래에서 올라온 퇴수통을 보면서 찌꺼기가 있는지 살피기 위함이다. 퇴수에 문제가 있으면 지적이 따르고, 예전에는 다시 내려보내서 나눠 마시기도 하였다. 따라서 별다른 언급 없이 통과하면, 스님들은 안도의 기쁨과 함께 “우리가 수행자로서 올바르게 공양했구나!”라고 느꼈다 한다. 발우 씻은 물이 어떠한지 퇴수통을 점검하면서 수행자의 자세를 가다듬어 온 것이다. 

 

사진 4. 봉선사 발우공양에서 청수를 퇴수통에 거두는 모습.

 

이어 청수를 모은 퇴수통을 대방의 가운데 두고, 대중은 수인과 함께 절수게折水偈를 외운다. 발우 씻은 물[水]을 반으로 나눈다[折]는 뜻에서 ‘절수’라 하였다. 청수에 혹시 찌꺼기가 있을지 모르니, 윗부분은 퇴수통에 붓고 아랫부분은 남겨서 마신 데서 나온 말이다. 숭늉으로 발우를 닦아 그 물을 마시고, 손으로 발우를 씻은 청수조차 찌꺼기가 남아 있을까 염려하여 마시는 것이다. 어차피 버릴 물이라면 왜 이렇게 하는지 의문이 들게 마련인데, 그 의미는 절수게의 내용에 담겨 있다.

 

아차세발수我此洗鉢水  여천감로미如天甘露味 

시여아귀중施與餓鬼衆  개령득포만皆令得飽滿

 

내가 발우를 씻은 이 물은 천상의 감로수와 같도다.

아귀 중생에게 이를 베푸니 모두 배불러지게 하소서.

옴 마휴라세 사바하(3회) 

 

발우를 씻은 물은 ‘아귀餓鬼’에게 주기 위한 것이었다. 육도六道의 한 존재인 아귀는 지옥·아귀·축생의 삼악도三惡道를 대표하는 존재이자 구제의 대상을 상징한다. 감로탱甘露幀 도상에 묘사되어 있듯이 아귀는 극심한 기갈과 굶주림에 시달리지만, 목구멍이 바늘처럼 가늘어서 삼킬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다. 그들이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은 발우를 씻은 청수인데, 미세한 찌꺼기라도 있으면 불로 변해 목을 태운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귀에게 고통을 주지 않도록 발우 씻은 물은 늘 맑고 깨끗해야 한다. 

 

사진 5. 금산 보석사 감로탱에 표현된 아귀.

 

또한 사찰 대방의 천장 중앙에는 천수다라니를 붙여 놓았는데, 이 또한 아귀를 구하기 위함이다. 발우공양 때 퇴수통을 그 아래에 두어 천수천안千手千眼 관음보살의 가피에 의지해 청수를 감로수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노스님들은 “천장의 천수다라니가 물에 비추어져야 한다.”라고 하였다. 물이 탁하면 다라니가 비치지 않을 테니 청수가 맑아야 하는 이유가 거듭된다.

 

사진 6. 운문사 대방 천장에 붙여 놓은 천수다라니.

 

이처럼 아귀가 고통에서 벗어나 좋은 세계에 나기를 발원하며 감로인과 함께 진언을 외우고 물에는 다라니를 비추어, 신묘한 기운을 받은 청수가 감로수로 변환되는 것이다. 따라서 ‘천수물·천수발우·천수주전자’와 같이 청수와 관련된 용어에 모두 ‘천수’를 쓰기도 한다. 

 

자비심과 생태 사상의 아름다운 만남

 

그런데 발우공양의 청수를 ‘천수千手’와 연결한 것은 청규淸規에 없는 한국불교만의 풍습이다. 발우 씻은 물을 감로수로 변환시켜 아귀에게 베푸는 것이니, 감로수를 내리는 관음보살의 가피가 더하도록 구상한 셈이다. 이에 송광사·통도사·석남사·운문사 등 큰절의 대방 천장에 천수다라니를 붙여 두고, 통도사·송광사의 퇴수통에 각각 육자진언과 절수게 진언을 써놓아 일관된 의미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 7. 통도사 퇴수통에 쓰인 육자진언.

 

진관사에서 만난 휴일스님은, 1990년대 처음 출가했을 때 청수의 의미를 깨닫고 환희심이 컸다. 자신이 먹고 난 발우를 한 점의 찌꺼기도 남지 않게 깨끗이 씻고 닦을 뿐 아니라, 청수가 맑아야 하는 이유 또한 아귀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깨끗이 씻어 먹어야 아귀가 굶주림을 면한다.”라는 명제는 아귀를 위한 자비심이자, 한 점의 양념도 귀하게 새기고자 함이다. 따라서 스님들은 그 의미에 깊이 공감하면서 ‘아귀를 위한 청수’에 진심이 되었다고 한다.

 

어느 사찰이나 발우공양을 하는 대방 앞에는 자갈을 깔고 기와를 둘러 만든 작은 ‘퇴수구退水口’가 있다. 이곳에 발우 씻은 청수를 붓게 되는데, 아귀를 위한 것이니 스님들은 ‘아귀구餓鬼口’라고도 부른다. 운문사의 학인 스님들은 마당을 청소할 때마다 아귀구에 티끌이나 솔가지가 있으면 얼른 치우곤 하였다. 청수에 한 점의 찌꺼기도 없게 하듯이, 아귀를 위해 늘 청결하게 유지하는 일이 습관화되었다는 것이다.

 

사진 8. 송광사 대방 앞의 퇴수구.

 

발우공양은 게송을 외울 때를 제외하고 철저한 묵언默言 공양이다. 이러한 묵언의 규범 또한 아귀를 위한 배려심과 결합되어 있다. 아귀는 공양을 마친 스님들의 발우 씻은 물을 가장 좋아하니, 발우 소리를 내면 그 물이 먹고 싶어 아귀의 목구멍이 타들어 간다는 것이다. 학인 시절부터 이러한 가르침과 함께 발우공양을 하면서, 저절로 발우 씻은 물은 맑아지고 공양은 더없이 고요하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아귀에 대한 자비심은 사찰음식에도 영향을 미쳐 왔다. 발우공양에 내는 반찬과 국은 가능하면 기름이나 고춧가루가 적게 들어가도록 담백한 음식을 위주로 하여, 씻어 먹기 좋게 만드는 것이다. 또한 발우를 닦아 먹기 위해 사찰마다 무짠지·단무지를 담그는 전통이 이어졌으니, ‘아귀를 위한 청수’는 통합적 후원문화로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

 

사진 9. 석남사에서 청수를 퇴수구에 붓는 모습.

 

발우공양을 체험한 국내외 재가자들이 가장 인상적인 점으로 꼽는 것 또한 ‘청결 공양’이다. 한 점의 찌꺼기도 남기지 않고, 처음에 받은 물과 마지막에 발우 씻은 물이 별 차이 없이 맑기 때문이다. 음식을 남기지 않으니 물자가 절약되고, 별도의 설거지가 필요 없으니 환경이 오염되지 않아 최고의 친환경 식사법이라 감탄한다. 그뿐 아니라 아귀의 고통을 덜어 준다는 사실과 결합하면서, 자신의 행위에 대한 의미 또한 깊어지게 된다.

 

이처럼 발우 씻은 물을 점검하는 공양법은, ‘고통받는 아귀에 대한 자비심’과 ‘환경을 생각하는 생태 사상’의 아름다운 만남이라 할 수 있다. 한 사람이라도 이 뜻에 동참하지 않으면 청수는 금세 흐려지고 말아 대중 전체의 힘으로 가능한 결과이다. 대중이 단합하여 깨끗한 청수를 만들어 내는 것, 이는 온전하게 비우는 것이 인간계와 아귀계 모두에게 큰 힘을 발휘하는 일임을 말해 준다.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구미래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박사(불교민속 전공). 불교민속연구소 소장,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위원, 조계종 성보보존위원. 주요 저서로 『공양간의 수행자들: 사찰 후원의 문화사』, 『한국불교의 일생의례』, 『삼화사 수륙재』, 『한국인의 죽음과 사십구재』 등이 있다.

futurenine@hanmail.net
구미래님의 모든글 보기

많이 본 뉴스

추천 0 비추천 0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우) 03150 서울 종로구 삼봉로 81, 두산위브파빌리온 1232호

발행인 겸 편집인 : 벽해원택발행처: 성철사상연구원

편집자문위원 : 원해, 원행, 원영, 원소, 원천, 원당 스님 편집 : 성철사상연구원

편집부 : 02-2198-5100, 영업부 : 02-2198-5375FAX : 050-5116-5374

이메일 : whitelotus100@daum.net

Copyright © 2020 월간고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