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禪, 禪과 시]
죽은 뒤에는 소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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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택 / 2024 년 10 월 [통권 제138호] / / 작성일24-10-05 13:10 / 조회1,120회 / 댓글0건본문
오늘은 친구들과 모처럼 팔공산 내원암 산행을 합니다. 동화사 북서쪽 주차장에 내리니 언덕을 밀고 대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멀리 팔공산 주 능선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팔공산 능선을 바라보면 언제나 가슴이 설렙니다. 내 청춘을 산에 묻은 건 아니지만, 저 능선에 청춘의 추억이 있기 때문이죠. 서봉, 비로봉, 동봉은 구름에 가리어지고, 염불봉과 병풍바위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1,000미터급 능선들은 바라만 보아도 기분이 웅장해집니다.
팔공산 내원암 가는 길
오늘 일기예보는 낮 최고 34℃, 오후 한때 소나기 예보입니다. 푹푹 찌는 듯 더운 날입니다. 겨우 내원암까지 가는 거지만, 마음만은 병풍바위에 붙어보는 듯합니다. 우리는 작은 언덕을 넘고 부도암을 지나 정토교를 건너갑니다.
이 길은 비구니 선원인 양진암과 내원암으로 가는 길입니다. 염불암 올라가는 길에는 사람이 더러 있어도 이 길에는 사람이 거의 없죠. 내원암 가는 길, 생각하면 추억이 있는 길입니다. 55년 전에 이 길을 타박타박 걸어서 내원암으로 올라가던 ‘나’를 생각합니다. 지금이야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지만, 옛날에는 그냥 좁은 흙길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친가와 외가를 합쳐 모두 41명이 출가한 집안이 있습니다. 일타(1929~1999) 스님의 집안입니다. 일타스님의 어머니 성호스님은 출가 후 1940년대 전반 팔공산 내원암에 살았습니다. 성호스님은 내원암에 살면서도 바가지, 작은 그릇, 단지 등 살림살이를 수시로 사다 날랐습니다. 한번은 끈이 헐거워져 덜그럭거리는 소달구지를 세우고 끈을 다시 묶다가 소가 갑자기 앞으로 나가는 바람에 발등이 바스러졌다고 합니다. 대구 동산병원에 입원한 어머니에게 문병 갔더니 자꾸 웃으며 이런 말을 하더랍니다.
“나는 발등을 다쳐 기절하는 바로 그 찰나에 닭 한 마리가 퍼덕퍼덕 날개를 치며 달아나는 걸 보았다. 3년 전에 부엌 안으로 닭 한 마리가 들어와서 왔다 갔다 하길래 닭을 쫓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부지깽이를 던졌는데, 그만 닭 다리에 정통으로 맞아 두 다리가 몽땅 부러져 황급히 밖으로 날아 나갔지.”
기절하는 순간, 닭이 달아나는 영상을 본 어머니는 직감적으로 그때의 닭이 죽어 지금의 저 소가 되어 악연을 갚는 것임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
“3년 전에 지어놓은 업을 이렇게 빨리 받았으니, 그전에 지은 죄업도 어지간히 갚아진 것이 아니겠니. 나는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주1)
성호스님은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고 업보를 받는다고 생각함으로써 마음의 평안을 얻었으니 진정 망상을 떠났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마음가짐 덕분인지 바스러진 발등도 일찍 낫고 평생 발이 아프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내원암 올라가는 길을 걷고 있노라면 성호스님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이야기가 있는 길을 걸으면 마치 이야기 속으로 걸어가는 것 같습니다. 오늘 정말 아름다운 길을 걷느라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기뻤습니다. 내원암 가는 길을 마치 책을 읽듯이 천천히 읽으며 올라갑니다.
무천비공우無穿鼻孔牛
소달구지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불가에서는 소가 자주 등장합니다. 물론 소를 통하여 깨달음을 얻은 사람도 있습니다. 동학사 강원의 강사로 이름을 떨치던 학승 경허(1846~1912) 스님은 여덟 살 때 절에 그냥 맡겨진 자기를 길러주신 노장 스님을 찾아가 뵈려고 1879년(33세) 먼 길을 떠났습니다. 천안 근처에서 콜레라가 창궐한 마을을 지나다가 모골이 송연해져 도망치면서, ‘차라리 바보가 되어 지낼지언정 문자에 매이지 않고 조사의 도를 닦으리라’(주2)고 다짐합니다. 동학사로 돌아온 경허스님은 12년간 담당하던 강의를 폐지하고 참선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동학사에 한 사미승이 있었는데, 사미승의 부친이 다년간 좌선하여 스스로 개오開悟한 곳이 있어 사람들이 그를 이 처사라고 불렀습니다. 그 사미승의 스승이 이 처사의 집에 들렀을 때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이 처사가 “중이 된 자는 필경 소가 되지요.”라고 하니, 사미승의 스승이 “중이 되어 심지心地를 밝히지 못하고 단지 신도의 시주만 받으면 반드시 소가 되어 그 시은을 갚게 마련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처사가 그 말을 듣고 꾸짖기를, “소위 사문으로서 이처럼 맞지 않은 대답을 한단 말이오?”라고 하였습니다. 사미승의 스승이 “나는 선지禪旨를 알지 못하니, 어떻게 대답해야 옳겠소?” 하니, 이 처사가 “어찌하여 소가 되어도 콧구멍을 뚫을 곳이 없다고 말하지 않소?”라고 하였습니다.(주3)
경허는 이 처사의 ‘무천비공우無穿鼻孔牛(콧구멍을 뚫지 않은 소)’라는 말을 전해 듣고 즉시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듬해 천장암에서 보림 후 다음과 같은 오도송을 남겼습니다.
홀연히 ‘고삐 뚫을 곳 없는 소’라는 말을 듣고
문득 삼천대천세계가 ‘나’라는 것을 알았네
유월 연암산 아랫길에
농부들은 한가로이 태평가를 부르네(주4)
이 게송의 키워드는 무비공無鼻孔입니다. 무비공이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대혜서』에 보면 “요즘 총림에서는 쓸개 빠진[無鼻孔] 패거리를 ‘묵조黙照’라고 부르는 수행이 바로 이것이다.”(주5)라는 표현에 무비공이 나옵니다.
경허스님은 승법 제자인 만공, 혜월 등 많은 제자에게 ‘무천비공’을 한 번도 설명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이 구절에 대해서 자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드물어졌습니다.
경허는 ‘무천비공’ 한마디에 바로 깨닫고, 망념이 단박에 사라졌습니다. 망념이 사라진 후에는 자신과 세계를 가로막는 경계가 사라지고 정신이 확대된 감각과 강한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오도송에 그 경계와 기쁨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오도송을 읊은 후 경허스님은 자신의 새로운 법명을 성우惺牛, 즉 깨달은 소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이후 경허는 천장암이라는 작은 암자에서 수월, 혜월, 만공 등 많은 제자를 길러냈습니다.
죽은 뒤에는 산 아래 아무개 집 소가 되리라
소와 관련된 심오하면서도 유머가 넘치는 선어禪語는 지금부터 1,200년 전, 30년 동안 산에서 내려오지 않고 수행한 남전(748~834)에게서 나왔습니다. 남전선사가 임종할 무렵 수좌와 나눈 대화입니다.
“화상께서는 돌아가신 뒤에 어디로 가십니까?”
“산 밑의 단월의 집에 가서 한 마리의 수고우水牯牛가 될 것이니라.”
“제가 화상을 따라가도 되겠습니까?”
“네가 나를 따라온다면 풀을 한 줄기 물어와야 하느니라.”(주6)
임종 전 한마디는 일생을 총결산하는 한마디입니다. “돌아가신 뒤에 어디로 가십니까.”라는 질문에 “아, 나는 저 산 아래 아무개 집 소가 되겠다.”라는 답변을 들으면 누구나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인간 너머의 세계를 향한 문을 여는 듯한 그 놀라움은 경계를 넘어서는 말이라 우리의 가슴을 울립니다.
남전은 설법할 때 종종 이류중행異類中行을 말했습니다. 이류異類란 사람이 아닌 종류를 말합니다. 남전은 고양이와 소를 예로 들어 말하곤 했습니다. 그 이류 가운데로 걸어간다는 것은 진흙을 뒤집어쓰고 물을 뒤집어쓰며 마소가 되어 사람에게 봉사하는 그 길이 이류중행입니다.
수좌가 “그러면 제가 큰스님 뒤를 따라가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으니까, 남전은 따뜻한 유머로 대답합니다.
“네가 온다면 그 뭐냐 꼴이라도 약간 좀 들고 오려무나.”
이 경쾌한 한마디는 이류중행이 괴로운 것이 아니라 유쾌한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남전은 왜 이류중행을 해야 하는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전이 말한 이류중행에는 죽어서 축생이 되어 사람에게 봉사한다는 의미 외에도 동물에게는 망상이 없으므로 이류중행을 하여 망상을 없애야 한다는 깊은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조사나 부처는 알지 못하지만, 고양이나 소는 안다’라고 하였느니라. 어찌하여 그러한가? 오히려 그들에게는 그렇게 많은 망상이 없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여여如如라 하여도 벌써 변했다’라고 하였으니, 반드시 이류異類 가운데서 행해야 하느니라.”(주7)
불도를 닦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부딪치는 어려움은 바로 생각이나 망념이 끊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선에서 깨닫는다는 건 망상에서 벗어나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망상을 벗어버림으로써 자신의 참다운 본성을 직접 대면하는 것입니다.
남전은 고양이나 소가 선사보다도 더 망상이 없는 존재라는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고양이나 소는 망상이 없으므로 기만적인 자아상 없이 자기 모습 그대로의 삶을 하나의 선물로 받아들이고 살아갑니다. 1,200년의 세월 저편에서 남전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망상만 없어져도 인생의 고민에서 해방된 기쁨, 어쩌면 깨달은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으니 반드시 이류중행을 해서 망상을 버려야 하네.”
<각주>
1) 일타, 『윤회와 인과응보 이야기』, 효림, 1997.
2) 『鏡虛集』, 「鏡虛和尙集卷之一(漢巖 筆寫本)」, 先師鏡虛和尙行狀, “此生寧爲痴呆漢。 不爲文字所拘繫。 叅尋祖道。”
3) 『鏡虛集』, 「鏡虛和尙集卷之一(漢巖 筆寫本)」, 先師鏡虛和尙行狀, “處士曰。 爲僧者。畢竟爲牛。 其師曰。 爲僧而未明心地。 但受信施。 則必爲牛而償其施恩。 處士呵曰。 所謂沙門而答話如是不諦當乎曰。 我不識禪旨。如何答之即是。 處士曰。 何不道爲牛則爲無穿鼻孔處。 其師默然而歸。”
4) 『鏡虛集』, 「鏡虛和尙集卷之一(漢巖 筆寫本)」, 先師鏡虛和尙行狀, “忽聞人於無鼻孔。 頓覺三千是我家。 六月燕岩山下路。 野人無事太平歌。”
5) 『大慧書』, 「答嚴敎授」, “近日叢林 無鼻孔輩 謂之黙照者.”
6) 『祖堂集』, 卷第十六 南泉和尚, “卻問 和尚百年後 向什摩處去 師云 向山下檀越家 作一頭水牯牛去 第一座云 某甲隨和尚去還許也無 師云 你若隨我 銜一莖草來.”
7) 『祖堂集』, 卷第十六 南泉和尚, “所以道 祖佛不知有 狸奴白牯卻知有 何以如此 他卻無如許多般情量 所以喚作如如 早是變也 直須向異類中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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