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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탁소리]
백련암에 피는 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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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  2024 년 9 월 [통권 제137호]  /     /  작성일24-09-05 12:36  /   조회1,662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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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옹당 성철 종정예하께서는 말년 10여 년 사이에 당신이 머무시는 좌선실 앞 얼마 되지 않은 터에 꽃밭을 만들어 작약과 모란 등을 심게 하시고, 나중에는 붉은색의 모란보다는 흰색의 모란꽃을 좋아하시어 큰절에 있는 당신의 처소인 퇴설당 앞 꽃밭에 10여 그루를 심게 하여 모란이 피는 계절이 되면 유독 즐거워하셨던 기억입니다.

 

꽃밭을 만드신 큰스님의 뜻은 어디에?

 

그러면서도 “무궁화 꽃을 보았으면 좋겠다.”라는 말씀을 더러 하시곤 하셨습니다. 주변에 물으니, 무궁화 꽃은 아름답기는 하지만 꽃이 크고 무성하여 벌들이 많이 날아들어 집 가까이에는 심지 않는 게 좋다는 의견들이었습니다. “종정예하의 방 가까이에서 멀리 떨어져서 심거나 혹시 산책하시며 걷는 길에서도 좀 멀리 떨어진 곳에 심으면 멀리서나마 감상하실 수 있지 않을까요? 백련암 무, 배추, 상추 등을 심어 먹는 밭두둑에 심어드립시다.”라는 데로 의견이 모아져 백련암 밭뙈기 두둑에 몇 그루 심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무궁화는 부드러운 붉은 색깔에 안은 붉게 물들어 있는 아사달계 단심 무궁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서 꽃이 피면 꽤 아름다웠습니다.

 

사진 1. 수령 5백 살이 넘는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주변에서 나온 자연석 바윗돌로 축대를 쌓고 화승그룹 현승훈 회장 도움으로 철쭉과 영산홍을 심어 꽃밭을 만들었다. 사진: 박우현.

 

1980년대 후반쯤에는 당신께서 직접 나서서 “저기 저 큰 느티나무가 서 있는 주변을 정리하여 철쭉꽃과 영산홍 등 봄꽃을 심어서 봄이 되면 백련암에 생기가 돌도록 가꾸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셔서 나무 전문가이시기도 한 화승그룹 현승훈 회장님께 말씀을 전해 올리게 되었습니다. 현 회장님께서는 정원사를 직접 보내셔서 둘러보게 하고 500여 년 된 느티나무 주위에서 시작하여 30여 미터에 이르는 백련암 일주문까지, 주변에 있는 큰 자연석 돌들로 축대를 쌓아가며 철쭉과 영산홍 등 봄꽃나무들을 사이사이에 심어 보름여에 걸쳐서 꽃밭을 완성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매일 나오셔서 나무 심는 것을 둘러보셨으니, 꽃밭 조성 감독을 하신 셈이 됩니다.

 

꽤 넓은 지역을 큰 돌로 축대를 쌓고 사이사이 꽃을 심어놓으니 생각지 않게 백련암 입구가 장엄하게 바뀌었습니다. 첫해 철쭉을 비롯한 봄꽃들이 형형색색 아름다운 모습으로 피어나니 신비롭기까지 하였습니다. 큰스님 생전에는 별생각 없이 지내다가 열반에 드신 10여 년이 지난 뒤에 문도들과 신도들이 의논하여 매년 5월 둘째 주 토요일을 ‘초발심을 찾아가는 철쭉제’라 명명하고 큰스님의 가르침을 기념하는 날로 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큰스님께서 태어나신 고향은 경남 선청군 단성면 묵실인데, 대나무가 꽤나 울창했던 동네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백련암 적광전 앞 해가 잘 드는 큰 바윗돌 주변 50여 평쯤 되는 곳에 지금도 대나무밭이 있습니다만 말년에 갑자기 5백여 년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넓은 꽃밭을 만드신 뜻이 어디에 있으셨는지 생전에 한 번도 여쭙지 못하고 지나가 버린 세월이 아쉽고 아쉽습니다.

 

사진 2. 40여 년 만에 정원 전문가의 손길로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이건만 왠지 허전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사진: 일거스님.

 

그렇게 조성된 꽃밭이 이제 40년이 지나도록 자랐으니 키 작은 나무들은 클 대로 크고 가지는 옆으로 뻗을 대로 뻗어서 꽃잎이 얼마나 무성해졌는지 봄이 되면 정말 볼만한 풍경으로 변신을 합니다. 그때 백련암을 다녀가시는 모든 분들이 “이 깊은 산골에서 예기치 않게 아름다운 봄꽃을 만나게 되니 너무너무 기쁘다.”고 흥겨워하니 저 또한 마음이 흐뭇하기만 합니다. 그러니 저희들은 후대에 백련암을 찾는 봄의 순례자들에게 이렇게 큰 기쁨을 전하는 배려를 남기신 큰스님께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멧돼지 공격에 초토화된 사리탑 잔디밭 

 

세월은 흘러 1993년 11월 4일에 퇴옹당 성철 종정예하께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해인총림에서는 2년여 앞서 열반에 드신 자운 대율사님의 전례에 따라 7일장으로 하기로 하고 영결식을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빈소도 채 만들기 전에 문상객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처음엔 근처에 와 있던 등산객들이 문상을 하겠다며 몰려들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인근 지역 불자님들이 밀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전국에서 비구, 비구니 스님들이 찾아와 지극히 애도하고 큰스님을 위해 정성을 다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전해왔습니다.

 

사진 3. 사리탑전에서 옮겨심은 무궁화를 배경으로 서신 원택스님. 사진: 서재영.

 

마침내 출상 당일의 날이 밝았습니다. 아침이 되자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큰스님의 마지막 길을 애도하는 신도들이 새벽부터 밀려들기 시작했습니다. 11월 10일 오전 11시, 해인사 구광루 앞마당에서 영결식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섯 번 치는 범종의 메아리가 어찌나 길게 가슴을 저미는지 솟아오르는 슬픔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길고도 짧고, 짧고도 긴 영결식”이 두 시간 만에 끝나고, 성철 종정예하께서는 58년간 지켜 온 사문의 생애를 마치고 산문을 떠나 해인사 다비장에 준비된 장엄한 연꽃 봉우리 연화대에 영롱한 사리 100여 과를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큰스님의 다비식에 참석한 수많은 사부대중과 그 후에 거행된 사리친견법회를 다녀가신 무수한 대중들을 보며, “나는 산승山僧이니 종정이 되었어도 해인사를 떠나지 않겠다.”는 법어를 해인사 대중에게 전하고 그 말씀을 지키신 철처한 은둔형 산승이신데, 종교를 떠나 어떻게 그 수많은 대중들로부터 단기간에 큰 존엄을 받으셨는지 신기하고 신기할 뿐입니다.

 

사진 4. 아사달계 단심 분홍색 무궁화.

 

은사를 떠나보낸 슬픔과 아쉬움을 가슴에 묻고 당장 눈앞에 큰스님을 추모하는 사리탑을 어떻게 조성할 것인가가 가장 큰 일로 다가왔습니다. 문도들은 우선 황수영 전 동국대 총장님과 김동현 문화재연구소장님을 모시고 큰스님 사리탑을 어떻게 모셨으면 좋을지 자문을 구했습니다. 

 

“스님, 성철스님사리탑은 온 국민이 주시하고 있는데, 상좌스님들이 신중하게 생각하셔서 우리 시대를 제대로 나타낼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선 문도스님들의 뜻이 어떠한지를 확실히 밝혀 주셔야 우리의 역할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하신 말씀에 저희 문도들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우리 시대를 잘 표현하는 조형언어로써 성철스님사리탑을 조성해야 한다는 말씀은 지당하십니다. 모쪼록 지도편달을 부탁드립니다.”

 

큰스님 사립탑 불사를 위한 첫걸음을 이렇게 떼고 여러 논의 끝에 불교계 초유로 ‘성철 대종사 사리탑 설계 현상 공모전’을 하게 되었고, 30여 점의 응모작 가운데 우수작 3편, 가작 2편을 내게 되었습니다. 당선작이 없어 고심을 하던 차에 사진작가 주명덕 선생의 도움으로 최재은 작가를 만나 오늘의 사리탑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부도를 모시는 바닥은 화강암으로 마감을 하고 사리탑을 에워싼 주변 경사면은 잔디밭으로 조성하였습니다. 잔디밭은 4각형 3단 기단 위에 두 개의 반구와 원구로 조성된 사리탑 뒤로 마치 큰 병풍을 펼친 듯, 초록색 풍광이 사리탑의 존재를 더욱 빛나게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사리탑 불사를 마치고 나니 주위에서 많은 칭찬도 듣고 또 많은 비난도 받게 되었습니다.

 

사진 5. 아사달계 단심 흰 무궁화(좌). 사진 6. 사리탑 뒤 주변으로 융단처럼 깔린 잔디를 관리하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사진: 박우현(우).

 

백련암으로 옮겨온 무궁화와 위로의 꽃 능소화

 

이런 상반된 평가 속에서 세월이 흐르니 초록색 융단처럼 아름답던 잔디밭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잔디밭 주위가 습하여 눅눅하니 그 밑에 지렁이가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니 멧돼지들이 몰려와 주둥이로 땅을 헤집어 파대니 잔디밭이 온전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람을 타고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각종 산골 식물들의 씨앗이 자리를 잡으니, 고운 잔디밭이 잡초의 잡탕밭이 되어서 파란 잔디밭을 배경으로 돋보이던 정갈한 사리탑의 이미지가 무너지기 시작하여 처음의 우아하던 모습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 대처법으로 잔디와 잡풀을 그대로 둔 채, 성철 종정예하께서 말년에 “무궁화꽃, 무궁화꽃” 하시던 말씀을 떠올리고 4년 전에 흰색 단심 무궁화 몇 백 그루를 잔디밭 주변에 심게 되었습니다.

 

사진 7. 고심원 앞 큰 두꺼비바위를 뒤덮은 능소화. 사진: 일거스님.

 

그러나 주변의 여론이 사리탑 좌우 터에 무궁화를 심어놓으니 “고요하고 잔잔했던 분위기가 사라지고 어수선해진 거친 모습이다.”라는 평가가 내려졌습니다. 멧돼지를 피해 비용을 들여 무궁화를 심었지만 오히려 산돼지들이 휘저어 놓은 것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인정하고 할 수 없이 100여 그루가 넘는 개량무궁화를 뽑아다 백련암 뜰 여기저기에 옮겨 심게 되는 걸로 위안을 삼았습니다.

 

그런데 올 6월경에 백련암에 들어서니 성철 종정예하께서 40여 년 전에 심어놓아 5월 백련암 철쭉제를 가능하게 했던, 가지가 무성했던 철쭉과 영산홍이 간데온데없이 사라지고 바위틈 사이에 겨우 몸통을 박고 서 있는 짧게 전지된 모습을 보고 기절할 뻔했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그렇게 집단으로 어울려 제멋대로 커서는 모양도 나지 않고 하니 이번에 크게 한 번 전지를 해주고 매년 가꾸어 가면 몇 년 안에 더 멋진 철쭉동산이 될 것이라는 정원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그렇게 정리하였으니 너무 낙심하지 마시라는 설명이 돌아왔습니다. 소납은 나름대로 자연스럽게 자란 무성한 가지와 꽃을 보며 ‘무궁화와 철쭉이 백련암의 사격寺格을 대변하고 있다’라고 내심 자부를 하고 있었는데, 나무와 꽃도 보는 사람, 관리하는 사람의 눈높이에 따라 풍광이 달라 보인다는 뼈아픈 경험을 다시금 하고 있습니다. 

 

사진 8. 8월의 따가운 햇살 받은 능소화를 배경으로.

 

그나마 20여 년 전에 큰 두꺼비바위 아래에 심은 능소화가 그사이 바위 밑동에서부터 머리끝까지 무성하게 뻗어 올라 올해는 능소화 꽃무더기를 아름답게 피워내고 있다는 점에 마음의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철쭉과 영산홍도 올해 사람의 정성과 손길을 받았으니 내년에는 좀 더 정갈하게 무성한 꽃을 피워내길 바라며 이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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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택스님
본지 발행인
196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백련암에서 성철스님과 첫 만남을 갖고, 1972년 출가했다.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도서출판 장경각 대표, 부산 고심정사 주지로 있다. 1998년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 1999년 제10회 대한민국 환경문화상 환경조형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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