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 저편 티베트 불교]
『바로도 퇴돌』의 출현지 부띠아 부스티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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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현 / 2024 년 9 월 [통권 제137호] / / 작성일24-09-05 10:44 / 조회1,375회 / 댓글0건본문
국내에 티베트학(Tibetanlogy)이 소개된 지 어언 30여 년이 지난 요즘은 『바르도 퇴돌(Bardo Thödol)』을 굳이 『티베트 사자의 서』라고 번역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이 단어의 인지도는 높아졌다. 어찌보면 성경에 버금가는 초베스트셀러 또는 초밀리언셀러 반열에 오르게 된 배경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나아가 비록 고국은 잃었지만 티베트 불교가 범세계적으로 세력을 넓혀나가 일종의 신드름을 일으킨 것에서 초래된 자연스러운 결과물의 한 면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티베트불교 사상 최대 사건의 하나인 『바르도 퇴돌』의 출현
아무튼 이 『바르도 퇴돌』이 천년의 어둠 속에서 세상에 출현한 지는 수백 년이 되었고, 영역英譯되는 계기를 만난 지 한 세기 정도밖에 안 되었다. 그런 것을 감안하면 그 상승세는 한마디로 비상飛翔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필자가 이번 달 원고를 쓰기 위해 구글을 뒤져보니 실로 막대한 자료와 이미지가 끝없이 튀어나왔다. 티베트어본과 한국어본을 제외하고라도 다양한 언어본(영어, 불어, 독어, 이탈리아어, 중국어, 일본어)으로 된 수백 수천 가지 버전이 무한대의 공간에 널려 있었다. 예를 들면 읽기 용도의 종이책은 이미 고전이 되어 가고 보기용과 듣기용의 상품성 짙은 것들도 넘쳐나고 있었다. 이는 필자가 티베트에 대한 정보를 구하기 정말 어려웠던 티베트학의 초창기를 돌아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였다.
이와 같은 현재 상황을 한두 마디로 요약할 수는 없다. 아무튼 이 문헌은 기존의 종교와 학문이 기피해 왔던 죽음 뒤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최초의 이질적인 정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종교의 장벽을 뛰어넘어 심리학, 유식학惟識學의 깊숙한 내부까지 들어가 그 누구도 가보지 못했던 죽음 너머 미지의 세계를 단계적으로 안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는 “인간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가?” 하는 대명제로 귀결되고 있기에 그간 모든 종교로부터 고의적으로 죽음에 대한 정보를 차단당해 왔던 현대인들의 갈증을 채워주기에 충분하였다.
부띠아 사원에서의 시절인연
요즘 필자가 자주 순유巡遊하고 다니는 강첸중가 기슭에는 이 『바르도 퇴돌』과 관련된 매우 흥미로운 곳이 있기에 오늘 발길을 옮겨보기로 한다. 바로 ‘부띠아 부스티(Bhutia Busty G.)’ 사원이다.
여기서 ‘부띠아’는 지명이고 정식 사원의 명칭은 ‘까르마 도르제 촐링(Karma Dorje Chyoling)’으로 옛 시킴 왕국 말기 때 세워진 조그만 까규 홍모파에 속한 곰빠이다. 인도 동북부 다르질링의 중심지 실리구리(Siliguri)의 중앙광장에서 찬드라 다스(CR Das Road) 길을 따라 약 1km쯤 내려가다가 왼쪽 비탈길로 올라가면 되는데, 약도에는 사원의 위치가 대부분 찍혀 있지만 위치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갔다가는 헛걸음하기 쉬운 곳이다.
이 자그만 곰빠에서 세계철학사상사의 한 획을 긋는 『바르도 퇴돌』이란 고문서가 시절인연에 따라 사바세계에 출현하게 되었다. 굳이 순서를 따져 보자면 두 번째 출현이었다. 물론 첫 번째는 구루 린뽀체의 신비한 비법을 전수받아 14세기에 태어난 ‘릭진 까르마 그링빠(Rigshdzin Karma Glingpa)’에 의한 발굴을 말한다. 그는 그 후 출현한 수많은 ‘테르텐(Terthön, 堀藏師)’의 원조격 인물로 북방 티베트 세르단강 기슭 감포다르산의 한 동굴에서 스승의 손때 묻은 유물과 두루마리 상태의 고문서를 발견하여 복사본 여러 권을 만들었다고 한다. 최근 학계에서 연구된 결과로는 부띠아에서 발견된 『바르도 퇴돌』도 그중의 한 부분으로 추정되고 있다는 것이다.
‘릭진’이란 이름을 사용하는 그의 후예들은 수백 년이 지난 후에 한 명씩 다시 세상으로 환생하여 스승으로부터 주어진 사명대로 그 경전들을 동굴 속에서 꺼내서 세상에 유포시키고 있다고 한다. 현재까지 이들이 찾아낸 경전들은 65권에 이르는데, 아직도 많은 경전들이 이처럼 시절인연을 기다리며 어둠 속에 묻혀 있다고도 전하고 있다.
원조 테르텐 릭진 까르마가 발굴한 필사본의 원제목은 『바르도 퇴돌 첸모』(주1)이었다. 이를 오롯이 번역하면 “사후세계의 중간상태에서 듣는 것만으로도 영원한 자유에 이르는 위대한 가르침”이 된다.
『바르도 퇴돌』의 비상飛翔
다시 두 번째 출현으로 돌아가 보자. 1919년 옥스퍼드대학의 불교학 교수 에반스 웬츠(Evans Wents)는 어떤 현몽現夢에 따라 이 부스띠 사원에 들러서 까규종파 홍모파의 젊은 승려에게 낡고 오래된 필사본 ‘경전묶음[經函]’을 얻게 되었다. 월계수나무 껍질로 만든 종이에 티베트어로 쓰인 가로 24.1㎝ 세로 8.4㎝로 된 고문서였다. 총 137매였는데, 그중 14장의 삽화도 들어 있었다. 발견 당시 150년 내지 200년 된 것으로 추정된 이 고문서는 의식용으로 오랫동안 많이 사용되어 매우 낡은 상태였었다고 한다.
노란 비단 보자기에 싸인 이 경궤 뭉치를 받아든 웬츠는 시킴의 갱톡으로 가서 티베트어와 산스크리트어에 능통한 라마카지 다와삼둡(Lama Kazi Dawa Samdup, 1868〜1922)의 제자로 입문하여 같이 작업에 착수하여 번역, 주석, 편집을 마치고 8년 만인 1927년에 드디어 『티베트 사자의 서(The Tibetan Book of Dead)』란 이름으로 옥스퍼드대학에서 출판하였다.
이 책은 발행되자마자 서구세계에서 엄청난 반응을 일으켰는데, 당시 현대 분석심리학의 거장 칼 융(Carl Gustav Jung)도 큰 영향을 받아서 『우나 살루스-대자유에 이르는 길』이란 해설서를 써서 이 책의 주가를 올리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는 초반과 재판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바르도 퇴돌』을 번역한 라마카지 다와삼둡과 에반스 웬츠에게 나 자신이 큰 빚을 졌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빚을 탕감하는 길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 경전에 담긴 거대한 사상과 주제들을 심리학자의 입장에서 해설하는 것이다. - 초판
『바르도 퇴돌』의 초판이 나온 이래 수년 동안 이 책은 언제나 내 손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는 이 책에서 새로운 생각과 발견을 위한 영감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근본적인 통찰력을 얻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중략) 이 문헌은 원시적인 야만인이나 신들의 세계가 아닌 인간존재를 향해 말을 걸어오는 지성적인 철학으로 그 속에는 ‘불교심리학의 핵심’이 담겨 있다. 이런 대목에서 이 책은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탁월한 문헌이 아닐 수 없다. - 재판
<각주>
(주1) 여기서 ‘바르도’는 ‘둘 사이’라는 뜻으로 ‘이승과 저승 사이’의 틈새를 의미하고, ‘퇴돌’은 ‘듣는 것만으로도’ 이란 뜻이고, ‘첸모’는 ‘위대한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제목을 오롯이 번역하면 “사후세계의 중간상태에서 듣는 것만으로도 영원한 자유에 이르는 위대한 가르침”이란 뜻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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