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 저편 티베트 불교]
최고의 성지 따시딩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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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현 / 2024 년 8 월 [통권 제136호] / / 작성일24-08-05 10:28 / 조회1,351회 / 댓글0건본문
히말라야산맥 동부에 솟아 있는 강첸중가Kangchen-Junga(8,586m)는 8천m급 고봉들이 5개나 무리 지은 설산군으로 그 남쪽 기슭으로는 예로부터 시킴과 부탄왕국이 터전을 잡고 수준 높은 불교왕국으로서 번영을 누려왔다. 이 지역을 최근에는 ‘다-시-부’로 약칭하고 있지만, 티베트어로는 ‘바율 데모종Beyul Dremojong’(주1)에 해당된다.
이상향 바율 데모종
티베트 불교대장경 『텐규르』 속에 들어있는 여러 문헌들에 의하면, 샴발라의 무대는 4곳(주2)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 두 번째가 바로 ‘바율 데모종’인데, ‘쌀의 숨겨진 골짜기’라는 어원을 가진 이곳에는 신비한 쌀이 등장하는 설화(주3)가 오래전부터 구전口傳되어 내려오고 있다.
물론 숨겨진 비경을 처음 발견하고 여러 가지 신비한 전설을 연출하게 만든 인물이 바로 구루 린뽀체Guru Rinpoche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바율의 역사는 14세기 릭진 고뎀Rigdzin Gödem(1337~1408)이라는 닝마빠Ningmapa의 한 수행승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숨겨진 고문헌이나 밀교의 의식도구 같은 진귀한 유물을 찾아다니는 테르퇸, 즉 굴장사掘藏師였는데, 시절인연(구루 린뽀체의 안배)에 따라 기후가 온화하고 산물은 풍요롭고, 경치는 아름다우며 무엇보다 신비로운 골짜기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그곳에 정착하여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대신 독수리 편에 고향으로 편지를 보내 그곳으로 찾아오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리하여 여러 명의 도전자가 그곳을 찾아 길을 떠났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는지 ‘이상향 샴발라’(주4)는 믿거나 말거나 한 전설로 굳어져 버렸다.
그렇게 오랫동안 시간의 수레바퀴가 돌아가자 비록 외부 세계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골짜기 안에 이미 정착한 사람들은 온화한 기후와 풍부한 수량 덕분으로 풍요로운 삶을 이어 나갔다. 그리하여 인구가 많이 늘어나 어떤 사회적 규범과 규제가 필요한 시기가 되었을 때, 역시 구루 린뽀체의 안배에 따라 3명의(주5) 수행승들이 비젼秘傳의 기록을 더듬어 그 골짜기를 찾아 들어오게 되었다. 그들은 겔룩빠의 등쌀에 밀려 새로운 수행처를 찾아다니던 닝마빠의 수행자들이었다. 그들은 각각 다른 방향으로 들어와서 우연히 만나 비전의 『깔라차크라 딴트라Kalachakra-Tantra, 時輪經』(주6)의 통치철학이 구현되는 이상적인 불국토를 만들려는 원대한 꿈을 실현하기로 의기투합하여 우선 지도자가 될 만한 인물을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1641년 마침내 푼촉 남걀Phuntsog-Namgyal이란 큰 재목을 찾아내어 육솜Yuksom이란 길지를 도읍지로 정하고 노브르강에서 즉위식을 치렀다. 바로 시킴왕국의 초걀Chogyal 왕조의 시작이었다.
최고의 성지 따시딩
티베트권역에서는 ‘따시Tashi’란 단어가 들어간 곳이 여러 곳 있는데 대체로 유명한 불교성지이다. 인도 서북부의 라닥Ladak의 ‘따시종’이 그렇고, 동북부의 이 ‘따시딩’(주7)이 그렇다.
따시딩은 갱톡 서남부터미널에서 하루 한 번, 새벽에 출발하는 합승 지프를 타고 하루 종일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벽지이다. 비포장 꼬부랑 고개를 수없이 넘어야 하고, 깊은 계곡을 수없이 건너야 하는 힘든 여정이다. 하지만 막상 목적지에 도착하면 감탄의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로 그야말로 아름답고 신비스런 곳이다.
사진 5. 딴트라 문헌인 『비말라쁘라바Vimalaprabha』 이미지 본. 샴발라왕국의 25명의 2번째 국왕인 뿐다리까Pundarika가 지은 딴트라 해설서.
우선 바깥세상은 한겨울이지만 따시딩은 천년고목 숲속에 기화요초가 피어 있는 온화하고 평화로운 곳이고 사람들도 여유로워 보였다.
따시딩 사원, 즉 라캉Lakhang의 정식 명칭은 ‘드라카르 따시딩Drakkar Tashiding’인데, 초기 정착자들이 닝마빠의 수행자들이어서 그런지 현재도 닝마빠 종파에 속해있다. 라캉 주위에는 아름드리 히말라야 소나무가 즐비한데, 그 사이로 수많은 초르텐塔들이 자리 잡고 있어서 어떤 영성靈性적인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이 크고 작은 많은 사리탑의 주인공은 이상향 ‘바율 데모종’의 전설에 이끌려 어쩌다 운 좋게 살아서 흘러 들어온 닝마빠 수행자들이다. 특히 이곳을 발견하여 1337년 라캉의 기초를 닦은(주8) 릭진 고뎀의 초르텐이 상징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고, 근세의 고승으로 꼽히는 켄쩨 최키Khyentse Chökyi의 탑은 후에 그의 손제자孫弟子들에 의해 금박을 입혀 황금색으로 만들어 이채를 띠고 있다.
유서 깊은 4개의 수행동굴
물론 따시딩 라캉도 시킴 제일의 성지로 꼽지만 그 외에도 많은 참배객들이 몰리는 곳이 있다. 바로 사원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퍼져 있는 4개의 수행동굴(주9)들이다. 그 이유는 구루 린뽀체가 실제로 오랜 선정禪定에 들었다고 하는 전설 때문이다.
티베트 불교에서 연화생蓮華生, 빠드마삼바바Padmashambhaha의 인기는 본존불 붓다를 능가한다. 그런 현상을 대변하듯 티베트권 불교에서는 석가모니불은 보기 어렵지만 구루 린뽀체의 어마무시한 크기의 소상은 도처에 즐비하다. 힌두교 나라로 변한 시킴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9세기 때 실존했던 구루 린뽀체는 실존 인물이라기보다 마치 신처럼 경배되고 있어서 본존불 붓다를 넘어 힌두교의 그 많은 신들 중에서도 인기 짱인 쉬바Lord Shiva를 능가할 정도로 비중이 무겁다.
그러니까 종합해 보자면 그가 9세기에 처음 따시딩에 발길을 들여놓았을 때 한눈에 천하의 명당임을 알아보았으나 시절인연을 기다리기 위해서 이곳을 봉인封印하고는 숙세의 인연 있는 ‘테르텐’이 나타나 봉인을 풀도록 안배하였다는 이야기로 축약된다. 마치 『티베트 사자의 서』의 출현과 같은 류類로 비유되는 대목이다.
<각주>
(주1) 두 번째가 강첸중가 남쪽 산기슭에 있다는 바율 데모종(Bayul Demojong) 설은 ‘쌀의 숨겨진 골짜기’라는 뜻을 가진 곳으로 현재의 시킴괴 부탄을 아우르는 곳으로 비정되고 있다.
(주2) 켐바룽, 바율데모종, 페마코, 창데모종 등이다.
(주3) 옛날 어느 목부가 양떼를 몰고 풀이 우거진 곳을 찾아다니며 방목을 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저녁 때 집으로 돌아오려고 양떼의 숫자를 세어보니 몇 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양떼의 발자국을 따라 어떤 낯선 골짜기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뜻밖에도 그곳에는 넓고 아름다운 골짜기가 펼쳐져 있었고, 그 안에는 7, 8 가구 정도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주4) 달라이 라마 성하는 1985년 보드가야의 깔라차크라 입문식에서 “샴발라는 특별한 수행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들의 업業Karma에 의해서 그곳에 갈 수는 있지만,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찾을 수 있는 물리적 장소는 아니고 인간계의 정토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공덕과 실제 업장을 쌓지 않으면 실제로 거기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주5) 3명의 이름은 꺼톡릭씬, 느가닥, 랏쑨 첸뽀라고 하는데, 이들은 오래전 파드마삼바바에 의해 예언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따시딩의 창건 설화에도 이들은 관련이 있다고 전해진다. 그들은 칸첸중가 꼭대기에서 밝은 빛이 반사되어 현재의 따시딩 수도원이 세워진 장소 근처에 반사되는 특이한 현상과 향긋한 향내음을 맡기도 또한 하늘의 음악도 들었다고 한다.
(주6) 우리가 알고 있는 딴트라불교의 소의경전이 『깔라차크라-딴트라Kalachakra-Tantra』인데, 이 속에는 신비한 ‘샴발라왕국’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다. 이에 의하면 샤캬모니 붓다 재세시 직접 샴발라의 수찬드라Suchandra왕의 요청으로 이 경전을 설하였다고 한다.
(주7) 따시딩의 어원적語源的 의미는 ‘The devoted central glory’이지만, 의역을 해 보면 ‘헌신적인 최고의 영광’ 정도로 풀이된다.
(주8) 우리나라 도처에 의상과 원효 등의 견강부회적인 창건 설화가 있는 것처럼 이 따시딩도 구루 린포체에 의한 창건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그가 처음 따시딩에 왔을 때 “화살을 공중으로 쏘고 화살이 떨어진 지점에서 명상을 했으며 결국 그 장소는 따시딩 사원이 되었다.”는 식이다.
(주9) 사원 조금 못 미처서 왼쪽으로 오솔길을 따라가면 체추Tsechu 동굴과 시트로Shitro 동굴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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