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종교와 불교의 미래]
부처님의 입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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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 2024 년 6 월 [통권 제134호] / / 작성일24-06-05 11:03 / 조회1,759회 / 댓글0건본문
비교종교학자의 불교 이야기 6
부처님은 성불 후 45년여간 사람들을 가르치며 지내시다가 80세가 되었습니다. 그때 부처님은 바이샬리 지역에서 가르침을 펴고 있었는데, 석달 후면 자신이 열반에 들 것이라 예고했습니다.
부처님의 경우
제자들을 불러 불·법·승 어느 것이든 의심이 들거나 불확실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라고 세 번씩이나 말했습니다. 물어보는 이가 없자, 자기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법을 등불로 삼고 스스로를 등불로 삼으라. 법에 의지하고 스스로에게 의지하라.”고 일렀습니다. 이른바 법등명法燈明, 자등명自燈明, 법귀의法歸依, 자귀의自歸依입니다.
부처님은 가까운 곳에서 금세공을 하는 춘다Cunda라는 사람이 주는 음식을 받아먹고 심한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경전에 나오는 그 음식의 이름은 문자적으로 ‘돼지고기’였습니다. 그러나 돼지가 밟고 지나간 밭에서 나는 채소나 버섯 종류일 것이라 풀이하기도 합니다. 초기 불교에서는 채식을 주로 했지만 걸식할 때는 무엇이나 주는 대로 받아먹는 것을 원칙으로 했기 때문에 돼지고기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통증을 느끼면서 쿠시나가라Kuśinagara로 옮겨갔습니다.
가까운 강에서 목욕을 한 후 쿠시나가라 성 밖에 이르러 두 그루의 큰 나무, 이른바 ‘사라쌍수’ 사이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머리를 북쪽으로 두고 오른쪽 옆으로 누웠습니다. 갑자기 그 나무에 꽃이 피고 꽃잎이 부처님 위로 떨어졌습니다. 하늘에서는 아름다운 음악과 노래 소리가 들렸습니다.(저도 그 나무 밑에 누워본 적이 있습니다.)
제자 아난다는 몹시 슬퍼 잠시 자리를 떠나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부처님은 아난다를 불러 “모든 것은 변하고 후폐할 수밖에 없느니라. 아난다야, 무엇이건 어찌 없어지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위로했습니다. 그리고 아난다를 향해 “너는 스승의 가르침이 끝났구나, 이제 우리에게는 스승이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난다야,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고 설명한 것, 진리와 계율이 내가 가고 난 뒤에는 바로 너희의 스승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것은 덧없다. 게을리하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여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부처님은 이 말을 남기고 성불할 때 들었던 선정禪定과 같은 선정에 들었다가 고요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 순간 큰 지진이 나고 엄청난 천둥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른바 ‘대열반mahāparinirvāņa’에 드신 것입니다.
제자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습니다. 아직도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제자들은 슬퍼하며 통곡했습니다. 깨달음에 이른 제자들은 “만사는 덧없는 것”이라 하며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부처님의 입멸 다음 날 아난다는 주위 성읍에 사는 사람들에게 기별을 전했습니다. 사람들은 모여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하며 꽃다발과 향을 바쳤습니다. 7일째 되는 날 화장을 하고 그 재(사리)를 열 나라에 나누었습니다. 이들은 그것을 봉안하기 위해 봉분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수투파’라 하고 중국, 한국에서는 이를 줄여 탑塔이라 합니다.
예수님의 경우
부처님의 죽음을 보면서 자연히 다른 종교 창시자들은 어떻게 생을 마감했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모세, 소크라테스, 공자님, 무함마드 등의 마지막 날을 이야기하고 싶지만 지면 관계상 예수님의 마지막 날에 일어난 중요한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주1)
예수님은 30세 정도에서 공생애를 시작하고 3년 정도 가르치다가 30대 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죽기 얼마 전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북쪽에 있는 가이사랴 빌립보라는 곳으로 가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자기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제자들이 침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혹은 선지자 중 하나라 하더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되물었습니다. 베드로가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런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자기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많은 고난을 받고 결국은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결코 그럴 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스도(메시야)는 왕으로서 권세와 영광으로 등장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해 최고의 욕을 합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이어서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가장 중요한 말을 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
그러고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그때가 유월절이라 예루살렘에는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보고 “호산나! 복되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이라고 하며 환호했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으로 들어가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었”습니다. 이어서 ‘최후의 만찬’ 저녁이 되었습니다. 손수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고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면서 그것이 그의 살과 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가 떠나더라도 보혜사 성령이 와서 제자들과 함께 하리라고 위로했습니다.
만찬이 끝나고 모두 감람산 겟세마네 동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남겨두고 홀로 가까운 곳으로 가서 유명한 기도를 합니다. 누구가 듣고 전했는지 모르지만, “나의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어서 제자 유다의 안내를 받고 찾아온 큰 무리가 예수님을 체포해 갑니다. 유대 대제사장 앞에서 심문을 받고 결국 로마 총독 빌라도 앞으로 끌려갔습니다. 여기서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합니다. “진리가 무엇이냐?” 예수님은 이 질문에 답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빌라도는 명절 때마다 죄수 한 명을 사면하는 관례에 따라 예수님을 풀어주려고 하고 밖에 모인 군중들을 향해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했지만 예수님 입성 때 환호하던 군중들이 돌변하여 큰 소리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습니다. 빌라도는 결국 사형선고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 골고다 언덕으로 끌려가 십자가에 달리게 되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일곱 가지 말을 했다고 하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말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였습니다.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운명할 때 해가 빛을 잃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로 찢어져 둘이 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때가 금요일이었는데, 해가 지기 전 부자 아리마데 요셉이 빌라도의 허락을 받고 예수님의 시체를 내려 세마포에 싸고 임시로 자기를 위해 준비해 둔 동굴 형식의 무덤으로 옮겼습니다.
‘제3일’ 일요일 아침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이 예수님을 정식으로 장사지내기 위해 무덤에 가보니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이 옆으로 비켜지고 무덤이 비어있었다고 합니다. 이른바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복음서에는 없지만 『사도행전』에 의하면 예수님은 부활 후 40일이 지나 제자들이 보는 데서 하늘로 올려졌다고 합니다. 그때 흰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이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상반된 태도
부처님과 예수님의 마지막 날을 살펴보면서 죽음에 대한 상반된 태도를 엿보게 됩니다. 부처님은 “모든 것은 변하고 후폐할 수밖에 없느니라.”고 하면서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반면, 예수님의 경우 해석은 다를 수 있지만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하기도 하고,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절규 비슷한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주2) 물론 80세를 사신 분과 30세 초반에 죽음을 맞게 되는 분이 죽음에 대한 태도가 다를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의 제자들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죽음에 대해 보인 태도도 극명한 대조를 보입니다. 부처님의 제자들 중 깨달음에 이른 이들은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알고 그대로 받아들인 반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을 통해 죽음을 극복한 것으로 믿었습니다.
더욱 대조적인 것은 키사 고타미라는 여인이 죽은 갓난아기 아들을 옆에 끼고 부처님을 찾아와 구해 달라고 했습니다. 부처님은 동네로 가서 죽은 사람이 없는 집으로부터 겨자씨를 구해 오라고 했습니다. 여인이 동네로 가서 겨자씨를 구하면서 죽은 사람이 없는 집이 없다는 것을 발견한 후, 죽음의 실상을 보여준 부처님의 자비를 깨닫고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예루살렘 가까이 베다니라는 곳에 살던 마르다와 마리아 두 자매의 오빠 나사로가 죽었을 때 이 자매는 예수님께 자기들 오빠를 살려 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시며’ 무덤으로 가서 죽은 지 3일이 된 나사로를 향해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고 하여 나사로를 부활시켰다고 합니다.
결어
물론 불교도 윤회를 믿고 기독교도 죽은 자의 부활을 믿기에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현세의 육체적 죽음에 대해서는 다 같이 덤덤할 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각주>
(주1) 몇몇 현자들의 죽음에 관해서는 고미숙 지음, 『현자들의 죽음』(EBS Books, 2023) 참고할 수 있습니다.
(주2) 이 말은 시편(22:1)에 나오는 말로 전체 문맥을 보면 하느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나타내는 말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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