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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살리는 사찰음식]
천금을 주고 먹는 채소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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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  2024 년 6 월 [통권 제134호]  /     /  작성일24-06-05 10:01  /   조회1,885회  /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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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음식은 더하기 음식이 아니라 빼기 음식입니다. 세간에서의 음식은 여러 가지 재료와 양념을 더하는 데 비법이 있다지만 사찰음식은 빼는 데 비법이 숨어 있습니다. 조리 시간도 아주 짧습니다. 전통 장만 있으면 모든 음식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제철 식재료만을 사용해서 음식을 만들고 매우 친환경적인 식문화입니다. 일상에서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습관을 배울 수 있고 저절로 마음이 선해집니다. 음식의 맛만을 쫓지 않고 생명존중을 실천합니다. 

 

사진 1. 진관사의 빛다움.

 

무엇보다 모두가 아주 평등한 공양을 합니다. 위와 아래의 구분이 없고 천하고 귀함이 없습니다. 부처님의 밥상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고 존귀한 존재입니다. 사찰음식은 한 그릇의 우주이고 그 우주 안에 함께 해 준 만인의 노고를 읽어냅니다. 지상에서 가장 청빈하고 소박한 식사가 바로 사찰음식입니다. 그리고 가장 바람직한 식사법이 발우공양이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진관사의 식탁

 

얼마 전 서울 은평구 진관사에서 점심공양을 했습니다. 총무스님께서 진관사에 대해 안내해 주셨고 진관사가 원형 탁자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각 탁자는 신분의 높낮이를 감안하지만 원형 테이블에서는 모두가 평등하고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식탁 위에 회전 테이블을 놓아 음식이 본인 앞에 올 때 적당히 덜어서 식사를 합니다. 절대 음식을 쫓아가거나 내달리지 않습니다. 이는 발우공양의 예법과 비슷합니다. 발우공양을 할 때도 음식이 내 앞에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수행에 방해가 되지 않을 만큼만 덜어서 먹습니다. 불가에서 전해지는 식사법은 형식도 중요하지만 마음가짐 또한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먹기 위한 행위에만 집착하지 않습니다.

 

사진 2. 진관사의 평등공양.

 

진관사 공양간은 아주 정갈하고 질서정연합니다. 식탁 위에 차림새 역시 아주 단정하고 효율적입니다. 회전 테이블 위의 음식은 제철 재료를 활용한 봄의 향연이었고 음식을 그릇으로 옮기는 젓가락은 오른손잡이 기준으로 왼편에 놓고 각자 사용합니다. 음식이 담긴 그릇마다 집게를 놓거나 젓가락을 꼽아 두지 않습니다. 오롯이 반찬만 정갈하게 놓여 있고 각자의 반찬 젓가락을 활용해 음식을 나눕니다. 또한 반찬에 닿은 젓가락은 절대 입으로 가지 않게 합니다. 행여 반찬 젓가락이 입에 닿았을 때는 바로 젓가락을 바꾸거나 씻어서 다시 사용합니다. 정말 위생적이고 정갈한 식사법입니다.

 

지혜로운 식사법

 

불가의 식사법과 가장 상반된 것이 뷔페식이라 생각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쫓아 욕심을 내서 음식을 취하고 입맛에 맞지 않으면 남겨서 버리기 일쑤입니다. 수십 가지의 음식 앞에 입에 맞는 음식을 찾아 기웃거리면서 음식을 사냥하듯 전투적인 모습입니다. 그리고 식탐을 내고, 편식하기 일쑤입니다. 과식하고, 결국 몸을 망가트리는 최악의 식사법이 됩니다. 물론 수많은 음식 앞에서도 철저히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절제할 줄 아는 사람도 있지만, 뷔페식은 예측할 수 없는 음식의 양으로 인해 결국 남는 음식은 모두 쓰레기가 되고 맙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의 움직임 속에서 위생적인 식사를 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사진 3. 회전 테이블.

 

중국집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회전식 테이블을 사찰의 공양간에서 접하고 나서 저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과연 우리 가정에서 효율적인 식사를 하고 있는지, 내 몸에 밴 라이프 스타일이 효율적인 생활방식인지를 스스로 점검하게 되었습니다. 반찬을 덜어서 보시기에 놓고 먹다가 남은 반찬은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생각하게 됩니다. 늘상 있는 일이지만 나의 방식이 지혜롭지 못하다는 생각과 함께 아주 옛날에 고수했던 식사예절이 과연 지금의 삶의 패턴과 어울리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옛것을 알고 새로움을 구축하는 일은 언제나 재미있고 흥미로운 일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옛 법은 지침서에 불과합니다. 지침서는 회사에서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각종 지침을 규정하고 이를 명시한 문서를 말합니다. 지침서는 별도의 정해진 서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작성 목적에 따라 항목을 달리 구성할 수 있습니다. 업무 실시의 방법, 관리, 계획 등에 필요한 각종 지침을 규정하는 데 사용되는 것이 바로 지침서입니다. 우리가 지금 상황에 맞게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기존의 틀을 깨는 일은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러한 모든 과정은 지금을 살 줄 알아야 만날 수 있고, 자기 자신을 바로 볼 줄 알아야 생기는 힘입니다. 

 

딱! 지금 이 순간

 

진관사에서의 하루는 길었지만 짧았습니다. 특히 대중생활 속에서 흐트러짐 없이 질서정연한 스님들의 뒷모습만 보아도 환희심이 넘쳤고, 차담 시간에 마주했던 눈빛은 따스했습니다. 명상의 숲에서 마주한 나의 모습은 평화로웠고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는 도량 한가운데서 모여 사방으로 잔잔히 퍼져 나갔습니다. 순간! 완연해진 봄을 느끼며 여름으로 향할 채비를 하던 저의 마음은 여름으로 미리 가 있지도 않았고 가을, 겨울로 나아가지도 않았습니다. 고즈넉한 진관사의 도량에서 ‘딱! 지금 이 순간’을 제대로 맛볼 수 있었습니다.

 

마음의 정원 진관사에서 마음 밭을 제대로 일궜고 희망이 가득한 씨앗을 든든히 심어 놓고 온 기분이었습니다. 일주문을 나서면서 왜 ‘마음의 정원 진관사’라고 했는지 금새 알아차린 기분이 들었습니다. 마음의 정원에 꽃이 밟히고 풀이 무성해지는 순간이 찾아오면 언제나 기대어 쉴 수 있는 편한 도반이 곁에 있음을 알아차린 것도 큰 보람입니다.

 

사진 4. 빨갛게 물든 앵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곳곳에 주말농장이 보입니다. 어느덧 쑥쑥 자란 채소들이 눈에 들어오고 상추 대궁이 제법 올라왔습니다. 감자밭을 바라보니 줄기와 잎이 풍성해져 있습니다. 줄기 끝에 꽃망울이 맺힌 걸 보니 감자가 여물기 시작했나 봅니다. 함박꽃 향기가 연해지자 장미꽃 향기가 진해집니다. 이팝나무꽃이 지고 산딸나무꽃이 피어납니다. 금낭화의 분홍빛 복주머니가 시들해지고 탐스러운 수국이 눈부십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열매들이 살 오르고 익어가는 계절입니다. 나무에 달린 열매도 알차게 여물어 가고, 땅속에 뿌리도 살이 오르기 시작하는 6월입니다. 오이밭에 첫물을 따는 시기이고, 빨갛게 익은 앵두가 아침 햇살에 눈 부신 계절입니다.

 

망종과 하지 사이

 

6월은 24절기 중에 망종과 하지가 들어 있는 달입니다. 햇보리로 밥을 지어 고추장 올린 상추쌈을 입이 터지게 먹어 줘야 무더위에 맞설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습니다. 격앙가擊壤歌가 절로 나오는 풍요로운 이 계절에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무엇을 먹으며 살아야 할까요? 옛말에“보리는 익어서 먹게 되고, 볏모는 자라서 심게 되니 망종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바쁜 철이라는 의미입니다. 6월을 사는 동안 결실의 계절인 시월 못지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언젠가 산골 깊숙이 사는 스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들판에 황금보리가 익어가고 뻐꾹새 노랫소리가 구슬퍼질 무렵이면 산나물 채취하러 오는 사하촌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해지기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스님들이 움직일 차례라고 하셨습니다. 수행자의 입장에서 마을 사람들과 경쟁하듯 산나물을 채취하고 싶지는 않아서 그들의 발걸음이 뜸해지는 시기부터 움직인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사진 5. 풍요로운 절기 망종.

 

이 시기부터 산나물은 억세지고 약이 오를 대로 올랐지만 스님들은 산나물을 법제하는 법을 잘 알고 계셨기에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소금이나 간장에 삭힌 다음 푹 삶거나 유념揉捻을 합니다. 다시 건조해서 약성을 빼고 부드럽게 만들어서 된장으로 덖거나 간장으로 조립니다. 

 

식재료가 넘쳐나는 시기이니 지금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음식을 만들 사람은 드뭅니다. 그래도 산사에 살고 계시는 스님 중에는 옛날 방식 그대로 전통을 고수하며 사는 분들을 종종 만납니다. 사찰음식을 연구하고 있는 제 입장에서 그런 분을 만날 때마다 저의 질문은 호기심으로 가득하고 두 눈은 반짝입니다. 

 

이번 달에 소개할 지구를 살리는 사찰음식은 상추 고갱이 요리와 매실에 빠진 자소엽(차조기)입니다. 어느덧 상추 고갱이가 얼굴을 내밀면 상추불뚝이물김치와 상추불뚝이전이 맛있는 시절입니다. 먼저 6월이 제철인 매실과 자소엽의 궁합을 소개한 다음 상추 고갱이 요리를 자세히 알려 드리겠습니다.

 

매실에 살이 차오르고 향기가 짙어지면 자소엽 잎사귀도 활짝 폅니다. 제호탕에 사용되는 오매는 풋매실을 사용하지만 그 외에는 잘 익은 매실을 사용합니다. 들깻잎의 사촌 격인 자소엽은 천연방부제 역할을 하며 매실 절임에 시너지를 더합니다. 계피의 알싸한 맛을 지닌 깻잎이라 하여 계임桂荏이라고도 부르는데 중국의 의서인 『명의별록』에서는 “나쁜 기운을 내리고, 뱃속의 차가운 기운을 제거한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사진 6. 장아찌용 매실.

 

자소엽에는 비타민K의 함량이 풍부하여 염증을 없애는 작용도 뛰어나서 국민 소화제로 불리는 매실과는 환상의 궁합을 자랑하니 매실청이나 매실장아찌를 만들 때 자소엽을 꼭 넣어 주시면 좋습니다. 여름철에 수확한 어린잎과 꽃대를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서 말린 후, 따뜻한 물에 녹차 우리듯 우려내면 향과 맛 그리고 아름다운 색이 뛰어난 자소엽차가 완성됩니다. 자소엽차는 물의 온도에 따라 차 색이 달라지는데 15도 정도의 물에서는 보라색이 되고, 그 이상의 온도에서는 파란색이나 노란색으로 변합니다. 색감의 변화를 감상하면서 건강한 차를 즐길 수 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상추 고갱이를 활용한 요리를 소개합니다. 

 

상추불뚝물김치 

 

기록에 보니 해인사의 상추 불뚝 김치는 고려부터 전해오는 역사의 맛입니다. 고갱이가 돋은 끝물 상추를 경상도에서는 상추불뚝이라고 하는데 수隋나라에서 천금을 내고 가져간 채소라고 하여 천금채千金菜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상추의 방언은 고어古語 그대로 ‘부루[夫老]’라고 하고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다른 채소에 비해 영양성분이 풍부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상추는 열을 내려주는 냉각수 역할을 해 주는 채소로 여름철에는 잎채소에 영양성분이 많고 열관리에 도움을 주니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사진 7. 상추불뚝김치 재료.

 

재료

쫑상추 600g, 배 1/2개, 밀가루 1T, 감자 3개, 소금, 청·홍고추 1개씩, 채수.

 

만드는 법

1. 감자를 갈아서 밀가루를 넣고 묽은 죽을 쑤고 식혀 주세요.

2. 쫑상추는 깨끗이 씻고 밑둥을 십자로 갈라 소금에 절여 줍니다(30분).

3. 절여진 쫑상추는 서너 번 헹구어서 물기를 빼주세요.

4. 청홍고추를 어슷하게 썰고 배는 곱게 갈아 줍니다.

5. 식혀 놓은 죽에 배즙을 섞어 베 보자기를 이용해 걸러 주세요.

6. 베 보자기에 남은 찌꺼기에 채수를 부어 깨끗이 걸러 줍니다.

7. 국물에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쫑상추를 넣고 섞어 주세요.

8. 청홍고추를 넣고 김치통에 담아 하루 익힌 뒤 냉장 보관하세요.

 

TIP.

- 채수를 대신해서 감초물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 여름철에 감자풀을 사용하면 김치가 오래 갑니다.

- 상추김치는 조금씩 자주 담가 먹는 게 좋습니다. 

 

상추불뚝전  

 

재료

쫑상추, 통밀가루, 채수(표고버섯, 다시마, 무 등), 고추장, 된장, 포도씨유.

 

사진 8. 사찰음식체험관 성화스님이 만든 상추불뚝전.

 

만드는 법

1. 채수 만들어 식혀 둡니다.

2. 상추대궁을 칼등으로 두드리고 물로 씻어 물기를 뺍니다.

3. 채수에 고추장과 된장을 2:1로 넣고 간을 맞춰 줍니다.

4. 통밀가루에 간이 된 채수를 넣고 묽게 반죽해 주세요.

5. 팬에 기름을 두르고 상추를 먼저 올리고 반죽을 위로 부어 주세요.

6. 상추 위에 반죽은 가볍게 올려 주고 노릇하게 구워 줍니다.

7. 반죽을 너무 두껍게 하면 상추의 향을 느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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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궁중음식문화재단 지정 한식예술장인 제28호 사찰음식 찬품장에 선정되었다. 경기대학교에서 국문학과 교육학을 전공하였고,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음식과 명상을 연구하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38호 궁중음식연구원 과정을 이수하였으며, 사찰음식전문지도사, 한국임업진흥원, 한식진흥원 교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식물기반음식과 발효음식을 연구하는 살림음식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논문으로 「사찰음식의 지혜」가 있다. 현재 대학에서 한식전공 학생들에게 한국전통식문화와 전통음식을 강의하고 있다.
natureswa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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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령님의 댓글

한혜령 작성일

스님들께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질 때부터 움직이신다니 또다른 삶의 수행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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