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 저편 티베트 불교]
까르마-까규 종파의 본산 룸텍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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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현 / 2024 년 5 월 [통권 제133호] / / 작성일24-05-04 23:22 / 조회1,671회 / 댓글0건본문
룸텍사원은 옛 시킴왕국의 수도였던 갱톡(Gangtok)에서 서쪽으로 24km 떨어져 있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좁은 2차선 도로에다가 경사도가 급한 꼬부랑 산길이어서 예전에는 지프차로만 방문이 가능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시내버스로도 오갈 정도로 도로 사정이 좋아져서 이곳은 부쩍 가까워져 있었다. 10여년 만에 다시 찾은 룸텍은 소문대로 삼엄한 경계 하에 있어서 입구에서부터 여권을 제시하고 검문검색을 거친 다음에야 가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다시 룸텍사원으로…
룸텍의 공식 명칭은 ‘룸텍 다르마 차크라 센터(Rumtek Dharma Chakra Center)’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까르마-까규 종파의 해외 본산이다. 정문을 통과하니 광장이 펼쳐지고 그 한가운데 사원의 파란만장한 역사가 새겨져 있는 석비가 우뚝 서 있다. 발길을 멈추고 한동안 바라보고 있으려니 필자가 라싸에서 공부하던 옛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광장 건너편에 검은색과 황금색이 조화를 이룬 건물군들이 서 있는데, 앞쪽 건물이 법당이고 뒤쪽 건물들은 ‘까르마 스리 날란다 불교연구센터(K. Nalanda Shri Institute)’이다. 시킴지역 티베트 불교의 요람으로 현재 4백여 명의 학승들이 수학하고 있다.
이 센터는 1981년 11월 문을 열었는데, 인도 바라나시에 있는 삼푸라난다 산스크리트 대학의 부속학교이기도 한데 시킴뿐 아니라 인도, 부탄, 네팔 등지의 학승들에게 대문을 열어놓고 있다. 15살부터 입학이 가능하며 10학년제로 운영되고 산스크리트어와 티베트어 외에 영어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졸업생들이 전 세계에 티베트 불교를 알리는 포교사가 되길 바라서이다.
이러한 원력을 세웠던 제16대 까르마빠는 이곳을 발판 삼아 티베트 불교가 세계로 뻗어 나가기를 염원했기에 바로 연구소 맞은편에 그의 사리탑을 세우게 안배하여 지금도 항상 학승들의 독경소리를 듣고 계신다고 한다.
티베트 불교의 잠용潛龍, 까르마-까규(주1) 종파
현재 티베트 불교의 세계화 바람은 큰 장애는 없어 보이지만 그렇다고 탄탄대로만은 아니다. 바로 연로하신 제14대 달라이 라마 성하의 입적에 따른 후계 구도 문제 때문이다.
성하가 속한 겔룩종파(Gelukpa sect)는 과거 수백년 동안 법왕을 겸임하던 막강한 종파이다. 청나라를 등에 업은 겔룩종파는 당시 역시 원 명나라를 등에 없고 정권을 좌지우지하던 싸갸종파, 까르마 종파를 밀어내고 달라이 라마를 국왕으로 하는 신정神政 체제를 확립하여 지금까지 내려왔다. 그러나 성하의 ‘113세 입적설’(주2)에 따른 제15대 달라이 라마의 옹립 문제가 난타전으로 번지면 후계 구도는 복잡해질 수도 있고 티베트 불교의 위상도 흔들릴 수 있다.
법주를 기다리는 룸텍사원
현재 이 룸텍사원은 망명객 신분의 제17대 까르마빠 법주인 외겐 틴레 도르제(Ogyen Trinley Dorje, 1985~)의 흑모黑帽와 법좌法座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현 제17대 까르마빠는 티베트 불교 서열상 달라이 라마, 빤쩬 라마에 이어 3대 지도자로 성하의 유고시 티베트 불교를 짊어져야 할 막중한 인물이다. 왜냐면 2위인 빤 쩬라마가 중국의 영향력 아래 있기 때문이기에 더욱 그의 입지는 무척 애처로워 보인다.(주3)
사실 그가 목숨을 걸고 티베트 본토의 출푸사원에서 한겨울에 히말라야를 넘어올 때의 목적지는 사실 다람살라가 아니고 수세기 동안 종파 대대로 인도 대륙의 거점 사원으로 공을 들여온 룸텍사원이었다. 그러나 그는 망명 24년 동안 자신의 법좌가 마련되어 있는 자기 사원에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었다. 인도당국의 거부 때문이다. 물론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에 대한 ‘눈치 보기’도 작용하고 있지만 또 다른 일설에는 내부적으로는 겔룩종파의 견제 때문이라고도 전한다.(주4)
과거 시킴 왕국과 티베트는 오래전부터 깊은 연결고리가 맺어져 있어서 까규종파는 겔룩빠 대신 시킴왕국의 사실상 국교노릇을 해왔을 정도이다. 그 시작은 18세기 당시 시킴왕국의 4대 쇼갈 지룸드 왕이 성지순례를 떠나면서부터다. 그는 출푸사원에서 제13대 까르마빠를 만나서 큰 감화를 받고 이후 시킴에 티베트 불교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주5) 이후로 제9대 까르마빠 왕축 도르제 때 시킴의 국왕이 그의 명성을 듣고 시킴 방문을 요청했으나 여건이 되지 못했다. 그러자 자신을 대신할 고승 한 명을 보내 시킴 지역에 3개의 사원을 건립하였다. 물론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룸텍사원이었다.
3번째 연결고리로는 근대 중국의 티베트 침공으로 인해 1959년 제16대 까르마빠가 라싸를 탈출하여 룸텍에 도착했다. 그러나 당시 룸텍은 거의 폐허가 되었기에 시킴국왕은 땅과 금전을 보시해 사원을 다시 세우도록 하였다. 이에 출푸사원의 모습을 본따 4년간 공사 끝에 현재와 거의 같은 모습의 사원을 건립하였다.
중창불사를 끝낸 제16대 까르마빠는 1974년 세계 순방 포교에 나서서 미국, 캐나다, 유럽을 방문하고 로마로 가서 교황 요한 바오로 6세를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1980년에는 그리스, 영국, 미국, 그리고 서남아시아 등을 방문하여 관정의식과 설법을 하다가 1981년 11월 5일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갑자기 열반에(주6) 들었다. 그의 유해는 12월 20일 룸텍사원으로 공수되어 다비식을 치렀는데, 다비를 하고 난 재災 위에 그의 발자국 두 개가 티베트를 향하여 찍혀 있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공개된 유언장대로 그의 ‘뚤꾸’는 황소해 5월 8일(1992.7.26)에 동티베트 라톡에서 태어났고 제자들이 그곳으로 가서 그 아이를 찾아내어 여러 가지 시험을 거처 마침내 환생자로 확인하고는 7세의 나이로 대관식을 치렀다.(주7) 바로 제17대 까르마빠, 외겐 틴레 도르제이다. 처음 중국 정부는 그를 지지하여 마치 빤쩬 라마처럼 어용으로 만들 속셈이었으나 극적인 반전이 일어날 줄 어느 누가 알았으리?
새천년이 시작되는 1999년 12월 28일 밤 10시, 그와 최측근들은 출푸사원을 몰래 빠져나와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2000년 1월 5일 인도 다람살라에 도착하여(주8) 온 세상을 놀라게 했다.
<각주>
(주1) 티베트의 4대 종파의 하나인 까규빠는 <마하무드라(大手印)>와 <나로파의 6법>을 중심으로 가르침을 이어받는 전통을 지키고 있다. 이 전통은 인도의 틸로빠(988∼1069)-나로빠(1016∼1100)-마르빠(1012∼1097)-밀라레빠(1052∼1135)-감뽀빠(1079∼1153)에게 전승되었고, 다시 제1대 까르마빠인 뒤쑴켄파(1110∼1193)에게 전승되어, 현재의 17대 까르마빠인 오겐 틴레 도르제(1985~현재)에게로 이어지고 있다.
(주2) 우선 예견되는 상황은 적어도 2명 이상의 제15대 달라이라마가 탄생할 가능성이 있다.
(주3) 해외포교를 위해 그는 현재 도미니카 여권을 사용하여 미국에서 체류 중이라는데, 인도당국은 이를 트집 잡아 그의 <인도거류증>을 무효화시키겠다고 한다. 만약 인도 입국시에는 외국인처럼 도미니카인으로 인도비자를 취득해야만 한다는 보도를 내놓고 있다.
(주4) 현재 그의 상황은 우리들로 하여금 석연치 않은 느낌을 받게 만든다. 그는 무려 20년 동안 인도당국으로부터 난민의 자격을 인정받지 못하고 더구나 거처할 사원도 없이 규또(Gyuto Mon) 사원이란 겔룩빠 사원에서 얹혀 지내고 있다가 2002년에야 겨우 난민 자격을 부여받았지만 여전히 룸텍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처지이다.
(주5) 평민 복장을 한 이 순례자를 보는 순간 까르마빠는 극진히 대우했기에 지룸드왕은 결국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시킴으로 돌아가면 까규빠의 사원을 세우겠다고 약속한다. 이에 까르마빠는 허공에 곡식 낱알을 뿌리며 왕을 축복했는데 그 곡식들은 시킴으로 날아와 시킴 남중부의 작은 마을 라방라에서 6km 떨어진 라롱이라는 지역에 떨어졌고 이때 하늘에는 무지개가 떴다고 한다. 지룸드왕은 까르마빠와의 약속을 지켜 낱알이 떨어진 라롱 외에도 까규파 사원을 건립하였다.
(주6) 그는 임종 전에 어디에서 환생할 것인가를 밝힌 유언장을 제자 시투 린뽀체에게 주었기에 1992년 3월 19일, 주요 제자들-시투, 잠곤, 걀찹, 사마르-린뽀체가 참석한 가운데 유언장을 열고 해석하여 그의 환생을 찾아낼 것인가를 의논했다. 유언장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애마호, 깨달음은 언제나 환희이어라./법계에는 중생도 가장자리도 없어라./여기서 북쪽, 눈의 나라가 동쪽에는/성스러운 번개가 종종 번쩍이는 마을이 있네.(중략) 로라가로/땅을 위해 쓰인 해에(태어나며)/신비한 흰 소라 고동 소리 널리(퍼지며)(이분이) 까르마빠라네.”
(주7) 이 모든 과정을 클레멘스 감독은 ‘Living Buddha’라는 다큐 영화로 만들었는데, 이때 시나 보드쟈니(Sina Bodjani)는 ‘Sacreed Buddha (CD,1996)’라는 주제가를 만들어 불러서 영화의 감동을 배가시키고 명곡의 반열에 들게 하였다. 물론 필자의 애청곡이니 독자들에게 듣기를 권한다.
(주8) 시가쩨, 라쩨를 통과하여 얄룽짱뽀강을 건너 국경을 추위와 고산병으로 사투를 벌이며 뉼라(5400m) 토롱라 고개(Torung-la, 5415m)를 넘어 네팔에 도착하여 다시 인도로 향하였다. 토룽라라고 하는 고개는 바로 현재 ‘안나푸르나 서킷트’의 난코스인 그 유명한 고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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