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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와 사상]
붓다의 출가와 집 나간 양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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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  2024 년 2 월 [통권 제130호]  /     /  작성일24-02-05 14:14  /   조회551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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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종교학자의 불교 이야기 2


지난 호에서 부처님의 탄생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번에는 부처님의 출가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아시겠지만 부처님은 탄생 당시 싯다르타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목적을 이룬 이’라는 뜻입니다. 그 외에 고타마, 샤카무니(샤캬족의 성자)등의 이름도 있습니다. 물론 성불하신 다음에는 붓다, 부처라는 타이틀이 붙습니다. 깨친 분, 성불하신 분이라는 뜻이지요.

 

아시타 선인의 예언

 

싯다르타가 탄생했을 때, 히말리야 산 아래 살던 아시타라는 선인이 그 소식을 듣고 아기 싯다르타를 찾아왔습니다. 아기를 살펴본 아시타는 아기에게서 32가지 중요한 성인의 상相과 82가지 부차적인 상을 발견하고 기뻐했습니다. 그리고는 아기에 대해 중대한 예언을 했습니다. 이 아기가 장차 커서 성 밖을 나가지 않고 계속해서 세속적인 삶을 살게 되면 세상을 통일하는 위대한 왕이 될 것이고, 만일 인생사의 비참한 현실이나 출가수행자의 평온한 모습을 보게 되면 출가하여 위대한 종교계의 스승, 부처님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진 1. 싯다르타 태자를 안고 출가를 예언하는 아시타 선인. 2~3세기, 파키스탄 페샤와르 박물관.

 

아버지 정반왕은 물론 아들이 위대한 왕이 되기를 바라서 왕자가 성 밖에 나가지 않고 궁중에서 호화로운 삶을 살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계절 따라 세 개의 궁도 짓고 거기에 수많은 무희舞姬들을 두고, 16세인가 19세에는 아름다운 여인 야쇼다라를 배필로 정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싯다르타 왕자는 이런 삶에 완전히 만족하지 못하고 인생의 궁극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그러다가 30세쯤 바깥세상을 알아보고 싶어 부왕에게 성 밖 출입을 허락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부왕은 내키지 않았으나 다 큰아들의 소원을 그대로 묵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나가도록 허락하기 전에 일단 성 밖에서 왕자의 마음을 심란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깨끗이 치우게 하고 나서 나가도록 했습니다. 

 

마부가 부리는 마차를 타고 동서남북 각각의 문을 통해 밖에 나가 보는 것을 사문유관四門遊觀이라고 합니다. 왕의 명령으로 성 밖을 깨끗이 치우기는 했지만 신[淨居天, deva]들이 왕자가 이제 삶의 실상을 알아야 할 때라 판단하고, 처음에는 늙은 노인으로, 두 번째는 병든 사람으로, 세 번째는 죽은 사람으로, 네 번째는 출가수행자(Śramaņa)로 나타났습니다. 

 

사진 2. 성도 후 카필라성을 방문했을 때 야소다라 비와 아들 라훌라와 상봉하는 붓다. 1∼3세기, Asian Art Museum of San Francisco.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싯다르타는 크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를 수행한 마부는 그에게 사람이란 누구나 이렇게 나서 늙고 병들고 결국 죽게 된다고, 그리고 출가수행자는 이처럼 생로병사라는 인생의 기본 문제에 해답을 찾아 집을 나선 사람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싯다르타는 결국 자기도 출가수행자와 마찬가지로 삶의 근본 문제에 대해 스스로 해답을 찾기 위해 출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30세 나이에 받은 충격

 

이 이야기에서 몇 가지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첫째, 그때나 지금이나 아버지들은 일반적으로 아들이 진리를 찾는 구도자가 되기보다는 세속적인 권력을 휘두르며 살게 되는 것을 더욱 선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만약 싯다르타가 부모의 욕망에 따라 궁에만 안주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세속적인 권력과 부는 누렸을지 모르지만, 부처님도 불교도 없었을 것입니다.

 

둘째, 더욱 중요한 질문은 싯다르타가 왜 이렇게 큰 충격을 받았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그것이 혹시 마차에 충격 흡수장치가 없었기 때문이었을까요? 통설에 의하면 그가 이런 것을 생전 처음 보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30세나 되는 젊은이가 늙음, 병듦, 죽음이라는 삶의 기본적인 사실에 대해 완전 무지했다고 상상하기는 힘듭니다. 생모가 죽었다는 것도 들어서 알았을 것이고, 아버지가 늙어 가는 것도 보았을 것이고, 자기를 즐겁게 하던 무희들 중 춤추다 갑자기 쓰러지는 것도 다 보았을 것입니다.

 

사진 3. 사문유관四門遊觀 중 아픈 사람을 만나는 싯다르타 태자. 간다라(2~3세기), 파키스탄 페샤와르박물관. 사진 유근자.

 

그러면 왜 이렇게 충격을 받았을까요? 30세라는 나이가 문제라 봅니다. 어렸을 때는 이런 것을 보아도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시이불견視而不見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이가 들면서 이런 문제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나의 문제라는 것을 직감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영어로 ‘real’ 하지 않다가 ‘real’ 하게 되었으니 ‘realize’ 했다는 뜻입니다. 

 

정신분석자 칼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에 의하면 사람이 대략 30대 초반이 되면 인생사에서 ‘참 나는 누구인가’ 골똘히 생각하는 ‘개인화 과정(individuation process)’을 시작하게 된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여러 가지 가면(persona)을 쓰고 살았다면 지금부터 참 나는 누구인가를 물어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삶에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문제를 비로소 나 자신의 문제로 보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캐나다 정신과 의사이면서 영성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모리스 리차드 벅(Richard Maurice Bucke, 1837~1902)이라는 사람은 사람이 살다가 어느 단계에 이르면 사물을 새롭게 보는 특수 의식을 갖게 되는데, 그는 이를 ‘우주 의식(cosmic consciousness)’라고 했습니다. 그는 어느 날 밤 마차를 타고 가다가 스스로 이런 의식을 경험하고 역사적인 인물들과 자기 주위 사람을 조사한 다음, 개인적으로 다소 차이는 있지만, 이런 의식이 보통 30세 전후에서 생긴다고 했습니다. 

 

30세에 세례를 받으면서 하늘이 열리고 위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은 예수님, 30세에 이립而立했다는 공자님, 루터, 웨슬레 모두 30세경에 특별한 종교적 체험을 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싯다르타도 30세에 접어들면서 이렇게 형이상학적 눈뜸을 경험한 것이 아닌가 짐작해 봅니다. 이른바 ‘특수 인식능력의 활성화’가 이루어진 것이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집을 떠남

 

셋째, 싯다르타 왕자가 집을 떠났다는 사실입니다. 종교사적으로 보면 위대한 정신적 거인들은 모두 일단 집을 떠납니다.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의 저자 조셉 캠벨에 의하면 정신적 영웅들의 이야기들을 모아보면 monomyth라는 하나의 원형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대략 네 가지 단계를 거친다고 합니다. 1) 일단 집을 떠나고, 2)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다가 결국은 문턱을 넘고, 3) 목적한 바를 성취하고, 4)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주1)

 

집을 떠난다는 것은 지리적으로 거리를 두는 것 이상입니다. 지금껏 당연시하던 가치관, 당연시하던 세계관, 당연시하던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새로운 시각을 찾아 나선다는 뜻입니다. 싯다르타 왕자의 경우, 왕자의 지위, 왕이 될 수 있는 자리 등을 비롯하여 이른바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속세의 가치를 뒤로 했다는 뜻입니다.

 

사진 4. 싯다르타 태자의 위대한 출가(The Great Departure). 간다라(2~3세기), 로리안 탕가이Loriyan Tangai 출토, 콜카타 인도박물관. 사진 유근자.

 

집을 떠난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익히 아는 『십우도十牛圖』에서도 나옵니다. 소로 상징되는 참 나를 찾아 나서는 동자의 첫 행동은 집을 나서는 것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참 나를 찾고 결국은 입전수수入廛垂手, 도움의 손길을 가지고 저자거리로 되돌아가는 과정을 밟습니다.(주2)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그리고 이슬람에서 모두 자기들의 조상으로 모시는 아브라함은 익숙한 자기의 고향 우르(Ur)를 멀리하고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믿음 하나를 붙들고 발을 내딛습니다. 그리스도교에 의하면 예수님도 ‘하늘 궁전을 버리고’ 이 땅에 오셨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우리나라 동학의 창시자 수운 최제우도 득도하기 전 집을 나가 주유천하周遊天下했다고 합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지금의 『성경』에 포함되지 않은 『도마복음』 104절에 보면 양 백 마리를 가진 목자가 양 한 마리를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그 목자는 아흔아홉 마리 양을 놓아두고 그 한 마리를 찾아 나서서 마침내 찾았습니다.(주3) 그리고는 그 양에게 말합니다. “나는 아흔아홉 마리 양보다 너를 더 귀히 여긴다.” 『성경』 4복음서에 보면 이 길 잃은 양은 불쌍한 양, 죄 많은 양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도마복음』에서는 이 양이 다른 아흔아홉 마리 양과 함께 인습적이고 통속적인 삶에 만족한 채 어영부영 살아가기를 거부하고 뭔가 의미 있는 것을 찾아 무리를 떠난 용기 있는 양으로 묘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갈매기의 꿈』에서 갈매기의 가능성을 탐구하기 위해 무리를 떠난 조나단 리빙스턴과 같습니다.

 

사진 5. 십우도의 마지막 장면 입전수수入廛垂手. 송광사 승보전 벽화.

 

나가면서

 

부처님의 출가 이야기는 부처님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의 출가 과정에서 배울 점은 어느 한 가지 주어진 환경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보고 경험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면 새로운 눈뜸이나 깨침은 불가능합니다. 집을 나선다는 것은 지금껏 떠받들고 있던 고정관념, 선입견, 단견, 신앙체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눈을 돌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각주>

(주1) 조지프 캠벨 지음, 이윤기 옮김,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민음사, 1018) 참조.

(주2) 『심우도』에 대해서는 오강남, 성소은 공저, 『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판미동, 2020) 참고.

(주3) 『도마복음』의 해설로는 오강남, 『살아 계신 예수의 비밀을 말씀』 (김영사, 202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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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서울대학교 종교학 석사,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교 종교학과에서 ‘화엄 법계연기에 대한 연구’로 Ph.D. 학위취득.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종교학 명예교수. 저서로는 『불교 이웃 종교로 읽다』,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 『도덕경』, 『장자』, 『세계종교 둘러보기』, 『진짜 종교는 무엇이 다른가』『종교란 무엇인가』, 『예수는 없다』, 『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 『살아계신 예수의 비밀의 말씀』, 『오강남의 생각』 등. 번역서로는 『살아계신 붓다, 살아계신 예수』, 『예수의 기도』, 『예언자』 등.
soft10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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