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 저편 티베트 불교]
사바세계에 구현된 불국토 부탄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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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현 / 2024 년 2 월 [통권 제130호] / / 작성일24-02-05 11:23 / 조회2,001회 / 댓글0건본문
종교사적으로 보면 중세시대에는 봉건왕조가 특정 종교와 손을 잡고 우매한 민중을 다스렸던 통치방식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근현대에 이르러서는 일부 나라를 제외한 지구촌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대의민주적인 공화정치체제로 탈바꿈하였고, 종교 또한 정치에서 분리되어 나갔다.
지구촌 유일의 불교국가
물론 아직도 종교의 힘이 절대적인 일부 국가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유독 불교를 국교로 채택한 나라는 드물다. 과거에는 티베트의 위성왕국들(주1)과 동남아시아의 몇몇 나라들이 불교국가로 분류되었지만, 현대에는 부탄왕국(Bhutan)(주2)이 유일한 불교국가에 해당한다.
그런 면에서 부탄의 경우는 미래지향적 세계불교사의 관점에서 볼 때 전 세계 불교도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부탄왕국도 입헌군주제를 선택하였고, 헌법상 종교의 자유는 있다. 그러나 불교의 위치가 절대적이어서 국교와 다름이 없다는 사실은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부탄불교는 한국식 분류인 ‘소승과 대승’ 또는 ‘남방과 북방’에는 속하지 않고 ‘금강승金剛乘(Tantra-Yana)’이라 부른다. 더 세분하면 티베트 불교의 4대 종파(주3)의 까규에서 갈라져 나온 ‘둑빠-까규(Druk Pa-Kagyu)’라는 종파로 분류된다.
부탄왕국은 바로 이 둑빠-까규에 의해 통치되고 있다. 그 근거를 꼽아 보자면, 첫째, 국왕과 나란히 이원체제로 나랏일을 이끌어가는 국사國師격인 제켐뽀(Je Khempo)(주4)라는 직책을 이 종단에서 선출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종단의 비중은 어느 집단보다 막강하다.
둘째, 부탄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말이 둑율(Druk-Yul)인데, 이는 ‘화룡火龍(Thunder Dragon)의 땅’이란 뜻으로 국왕의 호칭(Druk-Gyalpo)과 행정수반인 총리의 호칭(Desi Druk)에도 들어 있다. 역시 둑빠-까규의 영향력이니 말하자면 온통 ‘화룡의 나라’인 것이다.
셋째, 부탄의 정부 청사를 쫑(Dzong)이라 부르는데, 마치 요새 같은 이 건물을 둑빠 승려들과 행정부, 사법부 관리들이 나누어 사용하고 있다.(주5) 그러므로 당연히 이 건물 안에서나 밖에서나 둑빠 승려의 비중은 어떤 집단보다 무거울 수밖에 없다.
그 외에도 부탄은 한반도 5분의 1 크기에 불과하지만 무려 3천여 개의 사원과 총인구 70여만 명 중 2만여 명이 승려라는 수치도 불교국가로서의 위상을 반영하고 있다.
깔라차크라에 의한 통치철학
얼마 전 부탄왕국의 법원은 14세기의 다리 도사, 탕동겔뽀(Thangtong Gyalpo)가 만든 다리의 쇠사슬을 훔친 44세 남성에게 징역 3년이란 중형을 이례적으로 선고했다. 부탄에서는 불상이나 초르텐 같은 불교유산을 훼손하는 경우는 1급 범죄에 해당한다. 이는 기타 문화유산, 기념물을 훼손이나 파괴, 도굴하는 등의 4급 범죄보다 형량이 더욱 무거움을 보여준다.
또한 불교신도로서 계율을 지키지 않는 것도 범법행위에 해당한다. 비유하자면 우리 불교에서는 바라이죄(주6)를 지은 이는 승려 자격을 잃는 것으로 끝나지만 부탄에서는 나라의 형법에 의해 처벌을 받는다. 이는 ‘지혜와 행위의 합일’을 강조하는 딴트라 불교의 요체가 왕국의 실정법의 근간이 되기 때문이다. 불교적 가치관은 불교도들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중요한 실천덕목이기에 만약 이를 어기면 국법에 의해 처벌을 받게 된다.
이런 부탄왕국의 법사상은 샴발라(Shambala)의 통치철학인 깔라차크라 딴트라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인다. 한문으로 번역하자면 『시륜경時輪經』으로 표기되지만, 범어로 풀이하면 ‘시간(Kala)+수레(chakra)+수행법(Tantra)’이 된다. 사족을 단다면 수레바퀴가 한 바퀴 도는 정해진 시간에 바퀴 또한 공간적으로 이동하기에 ‘시간의 흐름’에 ‘공간의 이동’을 결합함으로써 샴발라라는 ‘영원한 풍요와 행복의 골짜기’로 들어가려는 의미이다.
이런 샴발라의 이론적 배경을 바탕으로 우리가 부탄을 이야기할 때 들먹이게 되는 국민총행복지수(GNH)라는 개념이 만들어졌다. 존경받는 국왕과 승단과 깨끗한 행정부, 유구한 전통문화, 의료비와 교육비의 국가지원, 저렴한 물가, 울창한 숲, 금연과 살생 금지 정책, 공해 없는 자연환경 등을 기준으로 국민들의 행복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펴고 있는 불국토가 바로 부탄왕국이다.(주7)
깔라빠를 롤 모델로 하여 건설된 부탄의 수도 팀푸
아열대 산악지대인 해발 2,400m 지점에 자리 잡은 부탄의 수도 팀푸(Thimphu)는 온화한 기후에 적당히 높은 고도라 인간이 살기에는 이상적인 곳으로 알려져 있다. 더구나 사방이 울창한 원시림으로 둘러싸여 있고 일년 내내 만년설이 녹아내려 흐르는 계곡물로 인해 청량한 기운이 언제나 감돈다.
사진 8. <시륜경> 이미지
더구나 인구라야 10여만 명뿐밖에 안 되는 사람들이, 교통 표지등이 없는 방사선의 도로를 따라 나지막한 건물들 속에 삼삼오오 모여 살고 있었다.
특히 건물들이 인상적인데, 티베트식 같으면서도 부탄만의 특색이 잘 살아 있다. 이는 법률에 의해 6층 이하의 부탄식 건물만 허용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모든 건물들은 흰색의 벽에 검은 지붕을 기본 색조로 하여 대문이나 창문 주위에는 오색 문양의 목조 장식을 해 놓았다. 전체적으로 정결하고 단아하고, 무엇보다 영적인 분위기를 풍기기에 팀푸의 첫인상은 마치 샴발라의 수도 깔라빠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시륜경』에 의하면 샴발라의 수도 깔라빠(Kalapa)는 다음과 같이 묘사되고 있다.
깔라빠에는 역대 법왕이 거주하는 적분궁전積分宮殿이 무게중심을 이루고 있고, 그 주위로는 넓은 호수와 기화요초와 푸른 풀밭이 펼쳐져 있는 말라야(Malaya) 공원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공원 안에는 샴발라의 초대 법왕인 수칸드라(Sucandra, 月賢)가 설계한 거대한 원형 깔라차크라 만다라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곳에는 왕국을 수호하기 위한 초월적 에너지가 잠재되어 있는 비전의 주문(Mantra)과 인간의 마음과 우주를 연결하는 초월적인 상징물들이 들어 있다고 한다.
깔라차크라 만다라
만다라는 버전이 아주 많다. 그러나 티베트 불교 금강승의 주맥이 깔라차크라인 것같이 이 만다라는 티베트 불교에서 가장 중요시된다.
일반적으로 만다라의 기본도는 6겹의 둥근 원과 5겹의 사면체로 구성되는 3차원의 건축물로 표현되고 있다. 그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선 4개의 출입문을 통과하여 5층의 누각으로 차례대로 올라가야만 한다. 그러니까 만다라의 전체적 구도는 4개의 문을 가진 고대의 성곽도시 같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부연 설명하자면 여러 겹의 둥근 울타리 속에 역시 여러 겹의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건물들은 불보살이 사는 법당 또는 예배의 상징인 스투파 또는 우주의 중심인 수미산을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그린 일종의 조감도라고 보면 이해하기 편할 것이다.
<각주>
(주1) 부탄, 시킴, 무스탕, 라닥 등이 있었으나 현재는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다.
(주2) 대외적으로 알려진 ‘부탄’이라는 국명은 산스크리트어로 “티베트의 끝”이란 뜻인 ‘보따-안따’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고대 티베트를 가리키던 ‘보드’의 ‘끝’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주3) 4개종파는 겔룩빠, 사캬빠, 까규빠, 닝마빠로, 가장 그 역사가 오래된 종파가 구파란 뜻의 닝마빠(nyingma)라 하고 나머지 3개의 종파들은 모두 신파(sarma)라고 한다. 그중 특히 밀교수행을 주로 하는 까규빠는 둑빠, 까르마, 팍모둑빠, 지쿵 등 12개 분파로 갈라졌다.
(주4) 현재의 제켄뽀(트리구 지미 체드라)는 제40대로서, 제6대에 불과한 국왕보다 역사가 오래다.
(주5) 이는 티베트의 수도 라싸의 뽀따라(Potala)궁전같이 ‘홍궁과 백궁’으로 나누어 나라를 다스리는 전형적인 불교국가 체제를 답습하고 있다. 이는 종단이 중생들의 삶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주6) 『마하승기율摩訶僧祇律』에 근거를 둔 ‘바라이죄’를 범한 승려는 승단에서 추방되나 ‘승잔죄’는 가벼운 죄로 승단에 남을 수는 있다.
(주7) 스스로 절대왕권을 내려놓고 행복정책을 펼치고 있는 제5대 국왕인 ‘직메 케사르 왕축’은 국민의 전폭적인 존경을 받으면서 지금도 행복지수를 더욱 끌어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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