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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로 읽는 서유기 ]
천지만물의 생성과 손오공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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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구  /  2024 년 2 월 [통권 제130호]  /     /  작성일24-02-05 10:21  /   조회1,790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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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 해와 달, 꽃과 나무, 사람과 동물, 이 세상은 어떻게 생겨난 것이고 어떻게 존재하는 것일까? 우주 만물의 기원과 그 존재 양태가 어떠한지를 묻는 인류 보편의 질문이 있다. 세계의 종교와 신화는 각각의 세계관에 입각하여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자 한다. 『서유기』의 시작은 그러한 질문에 대한 불교적 답변에 해당한다. 그 첫 번째가 반고의 개벽신화로서 『서유기』에서 그것은 한 수의 시로 표현되어 있다.

 

반고의 개벽 신화 

 

“혼돈混沌이 둘로 나뉘기 전 하늘과 땅이 뒤섞여 있어, 오직 아득한 캄캄함 뿐 사람이 없었다. 반고가 그 어두운 껍질을 깨트리자, 맑은 기운은 올라가 하늘이 되고 탁한 기운은 아래로 내려가 땅이 되었다. 하늘이 덮어주고 땅이 받쳐주니 뭇 생명들이 진리와 한몸을 이루고[至仁], 만물을 있게 하니 모두 다양한 적절함을 갖추게[成善] 되었다. 천지만물이 생겨나는 변화와 환원의 행적을 알려면, 서천 여행을 통해 고난을 풀어나가는 『서유기』를 보아야 한다.”

 

사진 1. 돌원숭이의 탄생을 형상화한 조각. 

 

하늘과 땅과 만물의 기원을 밝히는 한 편의 창세시다. 이것을 ‘이야기 마당의 분위기를 잡는 시’, 즉 정장시定場詩라고 부른다. 청중이 잡담을 멈추고 이야기에 집중하도록 하고, 또 전체 이야기의 주제를 밝혀 대강의 밑그림을 갖고 공연의 청취에 임하도록 하는 기능을 갖는다.

 

『서유기』의 이 정장시가 노래하는 것은 반고의 개벽신화다. 이에 의하면 태초의 우주는 모든 것이 뒤섞인 혼돈의 상태로서 하나의 알과 같았다. 이 우주알(Cosmic Egg)에서 반고가 태어나 거인으로 자라난다. 이후 반고가 도끼를 들어 혼돈의 알을 깨뜨리는데, 그렇게 깨진 혼돈의 두 조각 중 가벼운 것은 위로 올라가 하늘이 되고, 무거운 것은 아래로 내려가 땅이 된다.

 

이것이 천지개벽天地開闢의 원래 뜻이다. 반고는 이후 오랜 세월을 홀로 살다가 죽게 된다. 이때 반고의 각 신체 부위와 작용은 해와 달과 별, 산과 강, 사람과 만물, 바람과 구름과 천둥이 된다. 이처럼 반고신화는 창세신화에 전형적으로 발견되는 난생의 모티프, 천지개벽의 모티프, 시체화생의 모티프를 고루 갖추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반고의 창세신화가 비교적 늦은 시기인 후한 이후 삼국시대에 처음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통일된 신화 체계에서라면 천지창조의 신화는 맨 앞에 나타나 여러 신화와 전설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반고신화는 전형적 창세신화임에도 훨씬 후대인 삼국시대에 나타난 것이다. 무슨 까닭일까? 

 

삼국시대의 직전 왕조인 후한은 불교가 본격적으로 수입된 시기이다. 그러니까 반고신화의 성립이 이 시기에 수입된 불교와 연관된 것은 아닐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에 속한다. 그러한 관점으로 고찰에 임한 다카키 토시오(高木敏雄, 1876〜1922)라는 학자가 있었다. 다카키는 인도의 신화와 반고신화의 유사성을 면밀하게 고찰한 끝에 반고신화가 인도의 브라흐만 개벽신화와 뿌루샤의 시체화생설을 수입한 결과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인도의 『마누법전』(BC. 200)에 브라흐만이 태초의 황금 계란을 깨고 위쪽의 알 껍질을 밀어 올려 하늘을 만들고 아래쪽의 알 껍질을 밟아 내려 땅을 만들었다는 신화가 보인다. 또 『리그베다』(BC. 1,500)에는 최초의 인간인 푸루샤의 신체가 해체되어 만물이 되었다는 시체화생신화가 보인다. 다카키는 반고신화가 이 두 신화를 수입하여 결합한 결과라고 본 것이다.

 

사진 2. 『화엄경』 「야마천궁게찬품도」.

 

그런데 『서유기』의 반고신화 인용은 화엄의 법신불사상과 법계연기사상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이에 의하면 반고와 우주법계의 만물은 하나가 곧 전체인 관계에 있다. 우주의 만유가 모두 인연으로 얽혀 한몸을 이루는 관계에 있다. 일즉일체一卽一切, 일체즉일一切卽一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원래 『서유기』는 무수한 신들과 부처와 보살들을 한 무대에 올려놓았다는 점, 그 서천 여행이 53 선지식을 탐방하는 선재동자의 순례기를 구조적으로 카피하고 있다는 점, 여행의 궤도가 화엄의 지위론을 따른다는 점 등에 있어서 상상의 큰 뿌리를 『화엄경』에 두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 첫 문단을 화엄의 법신불사상과 법계연기관의 피력으로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소강절의 천리수학

 

그러나 『화엄경』은 생각의 경계를 허물지 못한 중생들이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경전이다. 천태스님에 의하면 부처님은 성도 이후 최초 21일간 『화엄경』을 설하였는데 유감스럽게도 중생들은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다. 뛰어난 제자들마저 귀머거리 같고 벙어리 같았다고 했을 정도이니 다른 이들은 말할 나위조차 없다. 이에 부처님은 차원을 조절하여 12년간 아함부의 설법을 한다. 5시 교판론에서 정리하는 설법 초기의 상황이 이러하다. 그것이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난이도에 대한 천태스님의 판정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진 3. 천리수학의 창시자 소강절.

 

『서유기』의 설법자도 그것을 알았다. 그래서 법신론에 비해 논리적 이해가 가능한 12연기론을 반고신화와 평행으로 배치한다. 여기에 우주의 생멸을 밝히는 소강절邵康節의 천리수학이 차용된다. 소강절은 이렇게 말한다.

 

“우주는 인간 세상과 동일한 일정한 순환 주기를 갖는다. 우주의 1년을 원元(129,600년)이라고 한다. 하나의 원은 12회會로 나뉘며 이 세상의 12달에 해당한다. 이 12회를 자·축·인·묘의 12지로 표현할 수 있는데, 마지막 달인 해회亥會는 아무것도 없는 혼돈의 상태가 된다. 이 혼돈을 바탕으로 첫 번째 달[子會]에 하늘이 열리고, 두 번째 달[丑會]에 땅이 열리며, 세 번째 달[寅會]이 되면 인간과 여러 생물이 태어난다. 이 세 달이 우주의 봄이다. 그 뒤 사계절의 궤도를 따라 운행하다가 마지막에 우주 겨울의 끝인 해회亥會에 이르러 다시 혼돈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 혼돈이 다음의 우주가 시작되는 바탕이 된다.”

 

『서유기』에서 인용한 소강절의 천리수학이다. 이것을 이수理數라고 하는데 천지만물의 이치를 수학으로 밝힌다는 뜻이다. 소강절에 의하면 우주에는 이 세상의 연월일시와 같은 원회운세元會運世가 있고, 우주 1년[元]은 129,600년이라는 엄청난 시간의 길이를 갖는다. 그렇지만 우주는 영원한 것이 아니다. 우주 또한 생멸의 법칙이 작용하는 현장이라는 것이다. 소강절은 우주 12달의 마지막 달인 해회亥會의 혼돈을 바탕으로 우주의 생성이 시작된다고 보았다. 이후 자·축·인·순서로 새로운 시간이 흐르면서 우주의 춘하추동이 전개되고, 그에 따라 우주와 만물은 ‘생성→성장→수렴→소멸’의 궤도를 따라 운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서유기』가 우주순환에 대한 소강절의 수학적 담론인 원회운세 중에서 우주 1년과 12달에 대한 부분만을 가져왔다는 점이다. 12라는 숫자를 취해 불교의 12연기를 말하기 위해서이다. 또 『서유기』는 우주 12달의 순환을 말하는 소강절의 이론을 차용하면서 그 마지막 달인 해회亥會의 혼돈을 그 출발점으로 삼았다. 우주 1년의 출발점인 혼돈은 캄캄한 무분별의 상태라는 점에서 12연기의 출발인 무명에 배대된다. 무명에서 시작되는 12연기가 무명으로 돌아가 새로운 윤회를 시작한다는 것이 연기론의 시간적 해석(삼세양중인과)이다. 이것이 우주의 마지막 달인 해회의 혼돈에서 출발하여 생주이멸의 과정을 거친 뒤 다시 해회의 혼돈으로 돌아간다는 소강절의 우주생성론과 구조적 동일성을 갖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반고신화는 불생불멸의 본질을 강조하는 화엄의 법신사상, 혹은 법계연기를 제시하기 위해 인용된 것이고, 소강절의 천리수학은 차별적 존재의 순환적 생멸을 드러내는 12연기를 드러내기 위한 장치가 된다. 『서유기』는 이 둘을 평행으로 배치함으로써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도록 한다. 불생불멸적 본질의 측면에 입각한 연기론과 생멸적 현상의 측면에 입각한 연기론을 함께 배치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중도적 관점을 갖추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생성하고 이렇게 존재하는 우주에 원숭이 한 마리가 태어난다. 바로 손오공이다.

 

돌 원숭이의 탄생

 

“오래국傲來國이라는 나라에 화과산花果山이라는 산이 있었다. 그곳에 하나의 신비한 돌이 있었는데 하늘과 땅, 해와 달의 기운에 오래 감응한 결과 신령스럽게 통하는 의식이 생겨나 안에서 태아로 자라난다. 그러던 어느 날 돌이 깨지며 둥근 돌 알이 태어난다. 돌 알은 바람을 맞자 손발과 이목구비를 갖춘 돌 원숭이로 변한다. 돌 원숭이는 금방 기고 걷기를 배우고는 사방을 향해 절을 하였다. 그때 두 눈에서 황금빛이 쏟아져 나와 천궁을 비추었다. 천상의 옥황상제가 그 황금빛이 돌 원숭이의 눈빛임을 알고 고개를 끄덕인다. ‘지상의 만물은 하늘과 땅의 정화精華로 생겨난 것이므로 그럴 만도 하다’는 것이었다.”

 

이 돌 원숭이가 바로 손오공이다. 돌 원숭이의 탄생에는 반고신화가 비유하는 법신사상과 소강절의 천리수학이 암시하는 12연기의 관점이 함께 반영되어 있다. 돌이 깨지는 일, 돌 알이 이목구비를 갖춘 원숭이로 변화한다는 것은 반고신화의 재현이고 법신사상의 표현이다. 하늘과 땅, 해와 달의 기운에 오래 감응하여 의식이 생기고 태아로 자라나 돌 알로 탄생한다는 것은 12연기의 요약이다.

 

사진 4. 반고의 천지개벽. 

 

이 돌 원숭이는 오래국傲來國, 화과산花果山에서 태어난다. 오래국의 ‘오傲’는 ‘없을 무無’자와 발음이 유사하다. 그러므로 오래국은 무래국無來國, 즉 ‘온 곳이 없는 나라’가 된다. 뿌리가 없는 세상, 실체가 없는 국토라는 뜻이다. 옛 백과사전인 『광아廣雅』의 「석언釋言」 편을 보면 ‘오傲는 오敖와 같이 쓰며 허망하다는 뜻[妄也]’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오래국은 실체가 없는 국토, 환영과 같은 나라라는 뜻이 된다. 본질이라 할 것이 따로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오래국은 반야의 진공眞空을 표현하는 장치가 된다.

 

중국 출신으로서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오싱졘高行健은 그의 현대판 『서유기』라 할 『영혼의 산[靈山]』에서 구원을 약속하는 영혼의 산이 ‘오이진烏伊鎭’에 있다고 표현했다. 나는 그 오이진이 ‘그런[伊] 고장[鎭]은 없다[烏]’는 뜻으로서 『서유기』 오래국의 작명법을 차용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런데 손오공은 이 진공의 나라인 오래국의 화과산花果山, 즉 ‘꽃[花]과 열매[果]의 산’에서 태어났다. 오래국은 진공의 상징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진공의 오래국을 바탕으로 일어난 모양이 화과산이다. 오래국이라는 진공의 바탕에서 묘유妙有의 모양이 일어난 것이다. 꽃과 열매가 있으려면 어딘가에 뿌리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뿌리를 찾아보면 그것이 따로 있지 않다. 이렇게 하여 오래국과 화과산은 하나의 짝이 되어 진공묘유眞空妙有, 색공불이色空不二의 형상적 표현이 된다.

 

그런데 왜 ‘꽃의 산[花山]’이 아니고 ‘꽃과 열매의 산[花果山]’인가? 그것은 원인과 결과의 동시성을 드러내기 위한 명칭이다. 연기론에 의하면 법계의 모든 존재는 상대를 전제로 성립하는 상의적相依的 관계에 있다. 여기에 시간을 대입하면 선후관계[因果異時]가 되고 시간을 배제하면 동시관계[因果同時]가 된다. 원래 꽃과 열매 사이에는 시간적 선후관계가 성립한다. 그렇지만 대승에서는 원인과 결과를 동시관계로 본다. 꽃과 열매가 동시에 존재하는 연꽃을 불교의 상징으로 삼는 것도 그러한 이유다.

 

이러한 원리로 태어난 돌 원숭이는 우리의 마음을 상징한다. 돌 원숭이가 그런 것처럼 우리의 마음은 그 자체가 법신으로서 지상과 천상을 꿰뚫는 황금빛 눈빛을 갖추고 있다. 본래 부처이고 본래 깨달음인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부처를 구하는 서천 여행이 필요한 것일까? 

 

『서유기』에서는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면 황금빛이 사라지게 마련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몸을 가진 존재로서 몸을 봉양할 수밖에 없다. 그 사이 ‘나’와 ‘나의 것’에 대한 집착이 일어나 본래 깨달음을 가리게 된다. 그렇다고 몸을 버릴 수도 없다. 그 생멸적 현상인 몸을 버리고 불생불멸적 본질인 본래 마음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유기』의 여정은 현상과 본질의 불이성을 거듭 깨닫는 사건의 연속으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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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구
현재 동의대학교 중국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중앙도서관장을 맡고 있다. 교수로서 강의와 연구에 최대한 충실하고자 노력하는 한편 수행자로서의 본분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kkkang@de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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