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톺아보는 불상의 미학]
『법화경』과 과거불사상
페이지 정보
고혜련 / 2024 년 2 월 [통권 제130호] / / 작성일24-02-05 10:17 / 조회2,507회 / 댓글0건본문
지난 호에서 미륵불감 천개에 표현된 과거칠불 도상과 미륵신앙을 살펴보았다. 과거칠불사상은 죽은 자들의 정토왕생을 위하여 불상을 조상할 때, 그들의 악업이 깨끗이 소멸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즉 중생은 과거불사상을 인식하고 그들에게 예배해야만 한다. 또한 과거불이란 명칭은 부처는 오직 석가모니뿐만 아니라 세존 이전에도 깨달음에 이른 수천 불이 존재한다는 명제를 제시한다. 이는 또한 석가모니 과거세에 존재한 보살수행의 인연 때문에 현세에 성불할 수 있는 연기성불설을 확립한다. 즉 불교의 시공간에서 석가모니의 성불은 일회적 현상이 아닌 것이다.
윈강 17굴 명창 서벽 이불병좌불감(사진 1)을 보자. 두 개의 이불병좌불감 안에 각각 앉아 있는 석가모니불과 다보불의 수인, 복식 그리고 천개에 표현된 과거칠불까지 매우 흡사한 쌍둥이 불감 구조이다. 마치 두 개의 불감이 또 하나의 이불병좌도상을 표현하는 착시를 일으킨다.
지난 호에서 살펴본 윈강 11굴 명창 석가모니불감(사진 2)을 다시 보자. 불감 좌우에 각각 다보탑이 자리하고, 탑 안에 이불병좌도상이다. 불감 하단의 명문에 근거하여 불상 조상의 공덕으로 죽은 자들의 악업이 깨끗이 소멸되고 미륵이 하생할 때 용화삼회에 참석할 수 있기를 기원하고 있다.
그렇다면 윈강 17굴 명창 서쪽의 이불병좌도상(사진 1)과 다보탑 속의 이불병좌도상은 석가모니불감 천개의 과거칠불도상과 어떠한 연관 관계가 있을까?
이불병좌불감과 과거칠불도상
이불병좌도상의 문헌적 근거는 『법화경』 「견보탑품」이다.(주1)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강설하자 땅에서 다보탑이 솟아오르고 다보불이 그 옛날 석가모니불과 함께 수행할 때 서원한 것이 중생들 앞에서 실현되었다. 또한 다보불의 현신은 석가모니의 『법화경』 강설임을 증명하고 있다. 곧 세존의 분신불이 가득 모이자 석가모니는 공중으로 올라가 오른손으로 다보탑을 열고 다보불이 내어준 자리에 앉아 곧바로 선정에 든다. 그 사이 땅 아래 보살들이 영산회상에 모이고, 땅속에서 천만 억 보살들이 솟아올라 석가모니와 다보불에게 예배를 올린다.
이때 미륵보살이 놀라 세존께, 이들이 모두 어디에서 왔습니까? 묻는다. 세존은 성불 이후에 교화한 이들이라고 대답하고, 실제로 백천만겁 나유타겁(주2) 이전에 이미 성불하셨다고 하였다.
『법화경』의 석가모니는 이미 백천만겁 이전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anuttara-samyak-sambodhi, 최상의 지혜, 깨달음)를 이루고 삼계를 초월한 지존이다. 또한, 석가모니의 『법화경』 강설은 다보불이 그것을 듣기 위해 매번 나타나겠다는 서원을 세울 정도이니 그 설법을 누구도 따라 할수 없으며 다른 경전을 설하는 것보다 어렵다.
윈강 17굴 명창 동벽 이불병좌불감(사진 3)을 보자. 석가모니와 다보불이 함께 앉아 있는 이불병좌불감의 천개에 과거칠불이 선정불로 표현되어 있다.
이불병좌불감 하단의 명문을 보자. 비구니 혜정이 중병에 걸렸는데, 489년 미륵과 석가모니 다보불을 조상하며 자신의 건강과 현세의 평화로운 삶을 기원하였다. 그녀의 불상 조성 공덕이 7대 조상과 부모, 스승과 중생에 이르기를 원하였다.
이와 같은 이불병좌불감과 불감천개의 과거칠불도상은 윈강 11굴 서벽, 윈강 13굴 동벽, 윈강 14굴 서벽, 윈강 16굴 명창 동쪽면, 윈강 18굴 남벽 동·서쪽면, 윈강19굴 남벽·서벽, 윈강 39굴 남벽 동·서쪽면 등에서 볼 수 있다. 이러한 윈강석굴 불감들은 5세기 중엽부터 6세기 초까지 『법화경』 「견보탑품」과 과거칠불사상의 유행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그렇다면 이불병좌불감 천개의 과거칠불도상의 의미는 무엇일까? 『불설관보현보살행법경』을 보자.
수행자가 21일 밤낮으로 『법화경』을 독송하고, 관불수행을 하면 모든 부처와 보살이 언급한 『법화경』을 잃지 않는 다라니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이때 수행자는 선정[夢] 속에서 과거칠불을 볼 수 있다. 오직 석가모니만 『법화경』을 설법할 수 있고, 다른 세존들은 대승경전을 칭찬할 뿐이다.(주3)
따라서 수행자는 대승경전인 『법화경』을 독송하고 경전의 내용을 수행하며, 육근 참회하면 과거칠불을 관觀할 수 있다. 육근은 눈, 귀, 코, 혀, 몸[身], 의意(지각능력)를 통한 인지능력을 말한다. 이때 수행자가 자신의 악업을 참회하면 석가모니불, 다보불, 시방분신제불이 나타나는 삼매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삼매를 얻어야 선정[夢] 속에서 보현보살을 경험할 수 있다.
『법화경』과 보현행 수행자
안서 유림 25굴 서벽 벽화의 보현보살도(사진 4)를 보자. 둔황 막고굴 동쪽에 위치한 유림 25굴은 당 중기의 벽화이다. 유림석굴은 당(618∼907)부터 청(후금 건국 1616∼1636, 청 초대황제 숭덕제~1912)까지 지속적으로 개착되었다. 각 시대별로 특징을 보여주는 41개의 석굴이 현존한다.
벽화를 보면, 보현보살은 여섯 어금니를 가진 흰 코끼리를 타고 있다. 그의 권속이 따르고 연화좌 아래 곤륜노가 오른손의 지팡이로 코끼리의 걸음을 인도하고 왼팔을 앞으로 향하며 걸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보현행 수행자들이 모두 보현보살을 관불觀佛할 수 있을까? 보현행 수행자가 번뇌가 있고, 오욕을 끊지 않았지만 육근을 청정히 하고 대승경전을 수지하여 외우고 오직 한마음으로 참회하면 7일 만에 보현보살을 보게 된다. 그러나 무거운 업이 있는 자는 49일이 지나야 볼 수 있고, 더 무거운 업을 소유한 자는 일생이 걸리며 이생二生, 삼생三生이 걸릴 수도 있다.(주4)
「보현보살권발품」을 보면 석가모니가 입멸한 뒤 『법화경』을 수호하며 보현행을 실천하는 이들에게 보현보살이 여섯 어금니를 가진 흰 코끼리를 타고 대보살들과 함께 나타날 것이라 하였다.(주5)
도쿄박물관 소장 미륵내영도를 다시 보자(『고경』 제121호 사진 4 참조).
내영도 오른쪽 하단의 수마기두 승려는 『법화경』을 수지 독송하고, 그 뜻을 이해하고 남에게 권하여 가르치며, 경전의 가르침 그대로 보현행을 행하는 승려이다. 그는 착한 덕을 심을 수행자이기 때문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신다. 그가 임종할 때 천불千佛이 손을 내밀어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미륵보살이 상주하는 도솔천에 태어나게 된다.
안서 유림 25굴 북벽 벽화(사진 5)를 보자. 평상 위에 앉은 승려는 불경을 독송하고 있고, 머리 두건인 복두幞頭를 쓰고 붉은 관복을 입은 남자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승려가 통독하는 불경을 주의 깊게 듣고 있다.
두 번째 북벽 벽화(사진 6)는 복두를 쓰고 붉은 관복을 입은 남자가 책상 위에서 사경하고 있다. 오른쪽 상단을 보면 동일인이 합장을 하고 무릎을 꿇은채 구름을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이는 한 작품 안에 시공간의 흐름과 이야기 전개를 파악할 수 있는 연속적 서사(Narrative) 표현이다. 둔황 막고굴 변상도의 특징이다.
유림 25굴 벽화는 수행자가 대승경전을 수지, 독송, 사경하는 과정이 표현되었으며, 수행공덕으로 정토왕생을 하고 있다. 여기에 염불, 관불삼매를 더하면 법화삼매 수행법이다. 이러한 수행법은 남악대사 혜사(514∼577)와 그의 제자 천태지의(『고경』 제122호 사진 1 참조)가 실천하고 널리 가르쳐 현재에 이른다. 법화삼매 수행법은 다음 호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고자 한다.
나주 철전리 마애불과 그로부터 1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애칠불상을 보자.(사진 7) 마애불은 고려시대 불상이며, 높이가 5.38m 거불이다. 하나의 돌에 불신과 광배를 조각하였다. 오른손 수인은 여원인이고 왼손이 시무외인으로 일반적인 통인 수인과 반대의 모습이다. 통견법의는 양어깨를 덮고 가슴의 U자 주름이 하반신까지 흐르고 두 발은 신체에 비해서 작게 조상되었다.
마애칠불상(사진 8)은 약 1미터 높이의 원추형 바위 표면에 현재 좌상 2구와 입상 4구가 부조되었다. 유감스럽게 서쪽면의 불상 2구가 훼손되어 형체를 알 수가 없지만 이불병좌도상이라 추측할 수 있다. 동쪽면 불입상 4구는 통견을 착용하고 수인은 시무외인과 여원인으로 추정된다. 북쪽면 불좌상은 결가부좌를 하고 오른손 수인은 항마촉지인이다. 북서쪽 불좌상은 두 손을 가슴에 모은 수인이며, 설법인으로 추정된다. 선진 연구에 의하면, 철전리 마애불과 칠불상의 조성 주체가 궁예(재위 901∼918)이며, 912년부터 918년 사이에 조성되었다고 본다.
이상에서 살펴본 이불병좌불감의 천개에 표현된 과거칠불도상은 『법화경』을 수지하고 대승경전을 실천하는 수행자가 선정에 들어 과거칠불을 보면 자신의 악업을 참회하여야 그다음 수행단계에서 석가모니불과 다보불, 시방제불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나주 철전리 미륵불과 마애칠불상이 함께 있는 이유를 설명하며, 궁예가 자신의 악업을 참회하는 방편으로 불상을 조성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각주>
(주1) T262/32b16-34b22.
(주2) 나유타那由他=10의 28제곱이다. 『대방광불화엄경』 권45, T279/237b14.
(주3) 『불설관보현보살행법경』, T277/390c15-19.
(주4) T277/389c17-26.
(주5) T277/390c15-19.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많이 본 뉴스
-
‘옛거울古鏡’, 본래면목 그대로
유난히 더웠던 여름도 지나가고 불면석佛面石 옆 단풍나무 잎새도 어느새 불그스레 물이 들어가는 계절입니다. 선선해진 바람을 맞으며 포행을 마치고 들어오니 책상 위에 2024년 10월호 『고경』(통권 …
원택스님 /
-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물병 속에 있다네
어렸을 때는 밤에 화장실 가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그 시절에 화장실은 집 안에서 가장 구석진 곳에 있었거든요. 무덤 옆으로 지나갈 때는 대낮이라도 무서웠습니다. 산속에 있는 무덤 옆으로야 좀체 지나…
서종택 /
-
한마음이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없다
둘은 하나로 말미암아 있음이니 하나마저도 지키지 말라.二由一有 一亦莫守 흔히들 둘은 버리고 하나를 취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두 가지 변견은 하나 때문에 나며 둘은 하나를 전…
성철스님 /
-
구루 린뽀체를 따라서 삼예사원으로
공땅라모를 넘어 설역고원雪域高原 강짼으로 현재 네팔과 티베트 땅을 가르는 고개 중에 ‘공땅라모(Gongtang Lamo, 孔唐拉姆)’라는 아주 높은 고개가 있다. ‘공땅’은 지명이니 ‘공땅…
김규현 /
-
법등을 활용하여 자등을 밝힌다
1. 『대승기신론』의 네 가지 믿음 [질문]스님, 제가 얼마 전 어느 스님의 법문을 녹취한 글을 읽다가 궁금한 점이 생겨 이렇게 여쭙니다. 그 스님께서 법문하신 내용 중에 일심一心, 이문二…
일행스님 /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