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선 이야기]
조동종 ① 글 읽는 선비나 농부 같은 가풍
페이지 정보
김진무 / 2023 년 12 월 [통권 제128호] / / 작성일23-12-04 15:23 / 조회3,671회 / 댓글0건본문
혜능의 『육조단경』으로부터 시작된 남종선南宗禪은 크게 세 가지 계통으로 전개되었다. 그 첫 번째는 하택신회荷澤神會의 하택계이고, 두 번째는 남악회양南嶽懷讓의 남악계이며, 세 번째는 청원행사靑原行思의 청원계이다. 하택계는 비록 하택신회에 의하여 혜능의 남종선을 중국 선종의 정맥으로 황권으로부터 인정을 받게 한 공로는 있지만, 후대에 뛰어난 후학이 나타나지 않아 그 전승이 단절되어 버렸다.
그러나 남악계에서는 마조도일馬祖道一-백장회해百丈懷海-황벽희운黃檗希運 등과 같은 뛰어난 선지식을 배출하였고, 이 계통에서 백장의 문하로부터 위산영우와 그의 제자인 앙산혜적이 위앙종潙仰宗을 세웠고, 황벽의 문하로부터 임제의현의 임제종臨濟宗이 출현하였다. 그리고 청원계에서는 석두희천石頭希遷-약산유엄藥山惟儼-운암담성雲巖曇晟의 문하에서 동산양개洞山良价-조산본적曹山本寂이 출현하여 조동종曹洞宗을 건립하게 된다.
한편 석두희천의 다른 제자인 천황도오天皇道悟로부터 용담숭신龍潭崇信-덕산선감德山宣鑒-설봉의존雪峯義存의 법계가 출현하였다. 설봉의존의 제자인 운문문언雲門文偃이 운문종雲門宗을 세웠고, 설봉의 다른 제자인 현사사비玄沙師備-나한계침羅漢桂琛 계열에서 나한계침의 제자인 법안문익法眼文益이 ‘오가’의 마지막인 법안종法眼宗을 창립하였다. 이러한 ‘오가’를 남종선을 계승한 조사선祖師禪이라 칭하고, 한편 남종선을 ‘전기 조사선’, 오가의 성립과 활동을 ‘분등선分燈禪’ 혹은 ‘후기 조사선’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앞에서 위앙종과 임제종의 선사상과 종풍 등을 논하였는데, 이제 세 번째로 출현한 조동종의 선사상과 종풍, 그리고 제접법을 고찰하고자 한다. 흔히 후대의 선가에서는 ‘임제장군臨濟將軍 조동사민曹洞士民’이라고 칭하는데, 이는 임제종과 조동종의 선풍을 비교하는 것이다. 임제종은 학인들의 제접에 있어서 장군의 풍모처럼 과격한 가풍을 보이지만, 조동종은 글을 읽는 선비나 정성스럽게 농사짓는 농부처럼 행한다는 의미이다. 그에 따라 『인천안목人天眼目』 권3에서 조동종을 “가풍이 세밀하고, 언행言行이 상응하며, 기연機緣에 따라 사물을 이롭게 하며, 언구言句에 따라 학인을 제접한다.”(주1)라고 평가한다. 이러한 조동종은 바로 동산양개(807~869)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으므로 먼저 양개의 생애와 그 선 사상을 살피도록 하겠다.
동산양개의 생애
양개의 생애는 그의 어록인 『서주동산양개선사어록瑞州洞山良价禪師語錄』에서 상세히 기술하고 있고, 또한 『경덕전등록』 권15, 『조당집祖堂集』 권6, 『송고승전』 권12 등 다양한 전등사서와 고승전高僧傳에 실려 있다. 따라서 그를 참고하여 양개의 생애를 논술하고자 한다.
양개선사는 당唐 헌종憲宗 원화元和 2년(807)에 태어났다. 양개의 출신지에 대해서는 『동산어록』과 『경덕전등록』에서는 양주揚州 회계會稽(현 강소성江蘇省 소주시蘇州市) 출신(주2)이라고 하지만, 『조당집』에서는 월주越州 제기諸曁(현 절강성浙江省 제기현諸曁縣) 출신(주3)이라고 하여 서로 다르게 기재하고 있다. 속성은 유兪 씨이고, 어려서 고향의 사찰에서 출가하였다고 한다. 『조당집』의 전기에 따르면, 출가한 이후에 그 절의 원주院主가 『심경心經』을 외우라고 하였는데 바로 외웠고, 다른 경전을 외우게 하려고 하자 “이미 외운 『심경』의 뜻도 아직 모르니 다른 경전을 배우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어느 부분을 모르겠는가를 질문하였고, 선사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가 없다는 구절을 모르겠습니다. 화상께서 설명해 주십시오.”라고 하자 원주는 오설산五洩山의 영묵靈黙에게 참배하게 하였고,(주4) 21세에 숭산嵩山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남전 참알參謁과 작가作家
이후 영묵의 권고에 따라 남전보원南泉普願을 참알하게 되었다. 『조당집』에서는 남전의 회상에서 다음과 같은 일화를 전기에서 싣고 있다.
(남전선사가 말하였다.) “오늘 귀종歸宗을 위하여 제齋를 지내는데, 귀종이 오겠는가?” 대중이 대답이 없자 양개가 나와서 예배하고, “선사께서 다시 물어주십시오.”라고 하자 남전선사가 바로 물었고, 양개는 “도반道伴이 있다면, 바로 올 것입니다.”라고 하자 남전 선사가 뛰어 내려가 등을 어루만지면서 “비록 후배이지만 조탁彫啄의 본분本分을 갖추고 있구나.”라고 하자 양개는 “양민을 억압하여 노비로 만들지 마십시오.”라고 하였다.(주5)
이 문답에서 남전이 양개에게 “조탁의 본분을 갖추고 있다.”라고 한 것은 ‘조탁동시彫啄同時’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이다. 병아리가 알에서 부화하려고 할 때 안에서 쪼는 것을 ‘조彫’라고 하고, 어미 닭이 밖에서 알을 쪼아주는 것을 ‘탁啄’이라고 하니, 남전의 말은 자신의 법을 전수하고자 하는 의도를 보였다고 하겠다. 그러나 양개는 이를 거절하고 있다. 이로부터 양개는 천하에 이름이 널리 퍼져 ‘작가作家’라고 칭하였다고 한다.(주6) 여기에서 작가는 감히 남전의 전법을 거절하고 스스로 법을 탐구한 일에 대한 영예로운 칭호라 하겠다. 이후 창조적인 글을 쓰는 이들을 ‘작가’라고 칭하게 된 연유라 하겠다.
『조당집』에서는 양개가 오도悟道하여 법을 펼치고 있을 때, 어떤 승려가 “선사는 남전 선사를 뵈었으면서 어째서 운암雲巖의 제사를 지냅니까?”라고 묻자 “나는 저 운암의 도덕을 중시한 것이 아니고, 또한 불법을 위한 것도 아니다. 다만 그가 나에게 설파說破해 주지 않았음을 중시한 것이다.”(주7)라고 답하는 구절이 보인다. 이로부터 남전의 법을 받지 않고 운암담성의 법을 계승했는가에 대한 해명을 엿볼 수 있다.
무정불성과 과수도영의 오도
『경덕전등록』의 전기에 따르면 양개는 이후 위산영우潙山靈祐를 참알하여 남양혜충南陽慧忠의 무정설법無情說法을 물었고, 영우와의 문답에서 계합契合하지 못하자 영우는 운암담성을 소개하여 주었다고 한다.(주8) 『동산양개선사어록』에는 양개가 운암담성을 찾아가 나눈 다음과 같은 문답을 싣고 있다.
“무정설법은 어떤 사람이 듣습니까?” 운암이 “무정無情이 들을 수 있다.” 양개가 “화상은 들으셨습니까?”라고 묻자 운암은 “내가 들었다면 그대는 나의 설법을 듣지 못하게 된다.”라고 하자 양개는 “제가 어째서 듣지 못합니까?”라고 하자 운암은 불자拂子를 세워 들고서 “들었는가?”라고 묻자 양개는 “듣지 못하였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운암은 “나의 설법도 너는 듣지 못하니 무정설법을 어찌 들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였다. 양개가 “무정설법이 어떤 경전에서 나왔습니까?”라고 묻자, 운암은 “어찌 보지 못했는가? 『미타경彌陀經』에서 ‘물새와 나무숲이 모두 염불念佛하고 염법念法한다.’라고 설하였다.”라고 하였다.(주9)
이러한 문답을 통하여 양개는 “또 신기하고, 신기하여라. 무정설법의 부사의不思議함이여! 만약 귀로써 들으려면 끝내 들리지 않으니 눈으로 소리를 들어야 바야흐로 알게 된다네.”(주10)라는 게송을 지었다. 그러나 이는 양개가 완전히 깨달은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이후 양개가 운암과 이별하려고 할 때 양개가 운암에게 “백 년 후, 홀연히 어떤 사람이 선사의 참모습을 찾는다면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운암은 조금 침묵한 후에 “다만 너에게 말하면 바로 이것이 그렇다.”라고 하였다.(주11) 그러나 이러한 문답에 양개는 완전히 계합을 하지 못하고 떠나가던 중에 물가를 지나다가 물속의 그림자를 보고서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고, 다음과 같은 득법게得法偈를 남겼다.
남을 통해서 찾지 말지니, 더욱 나와 멀어지리라.
나 이제 홀로 가나니, 가는 곳마다 그것을 만나리.
그것은 지금 바로 나이만, 나는 그것이 아니라네.
마땅히 이렇게 깨달아야 비로소 여여如如하게 계합契合하리.(주12)
양개가 물가를 지나다가 물속의 그림자를 본 것을 ‘과수도영過水睹影’이라고 하는데, 이는 조동종의 선사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이는 양개의 선사상을 논하면서 설명하고자 한다. 이렇게 양개는 운암담성의 법을 계승하였다.
『조당집』의 전기에서는 “당唐 대중大中 말년에, 신풍산新豊山에 머물며 선의 요지를 크게 홍포하였다.”(주13)라고 하였다. 또한 『동산양개선사어록』에서는 “그 후 예장豫章 고안高安의 동산洞山에서 번성하였다.”(주14)라고 하고, 『조당집』의 전기에는 “선사가 동산에 거주하니 오백의 대중이 모였다.”(주15)라고 하고 있다. 이로부터 양개는 신풍산에서 개당開堂을 한 이후에 동산洞山(현 강서성江西省 의풍현宜豊縣)으로 옮겼으며, 그 문하에 오백여 대중이 모였음을 알 수 있다.
입적과 우치재
『경덕전등록』의 전기에는 당 의종懿宗 함통咸通 10년(869)에 양개는 삭발하고 가사를 입고 종을 쳐서 입적入寂함을 대중에게 고하자 당시의 승려들은 크게 울며 그치지 않았다. 그러자 양개는 갑자기 눈을 뜨고 대중들에게 “무릇 출가자는 마음이 사물에 붙지 않아야 하니, 살면 수고롭고 죽으면 쉬는데, 어찌 슬픔이 있겠는가?”(주16)라고 하였다. 그리고 주사主事에게 우치재愚痴齌를 준비하게 하였다.
우치재란 세속의 정에 이끌려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를 위로하기 위한 ‘재齋’를 말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슬퍼하였다. 7일이 지나 재를 마치자 양개는 승려들에게, “승가僧家에 일이 없어야 하는데 대체로 떠날 때가 되면 이처럼 수선을 떤다.”(주17)라는 말을 마치고 드디어 방장실로 돌아가 8일째 되는 날 목욕을 마치고 단정히 앉아서 입적하니 수명은 63세이고 법랍은 42세이다. 시호諡號는 ‘오본선사悟本禪師’라고 했으며, 탑명塔銘은 ‘혜각慧覺’이라 하였다.(주18)
이러한 동산양개 선사의 일생으로부터 주체적으로 철저하게 법을 탐구하는 치밀함과 또한 입적에 있어서 세밀하게 대중을 헤아리는 자애로움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양개의 일생은 그의 선사상에도 상당히 깊게 삼투되어 있다고 하겠고, 이는 그의 제자인 조산본적에게도 이어져 조동종이 세운 독특한 가풍과 종풍에도 관련이 있다고 하겠다.
<각주>
1) [宋]智昭集, 『人天眼目』 卷3(大正藏48, 320c), “曹洞宗者, 家風細密, 言行相應, 隨機利物, 就語接人.”
2) [宋]贊寧, 『景德傳燈錄』 卷15(大正藏51, 321b), “筠州洞山良价禪師會稽人也.”
3) 靜, 筠編, 『祖堂集』 卷6(補遺編25, 415a), “越州諸暨縣人也.”
4) 앞의 책(補遺編25, 415b), “師曰: 不會無眼耳鼻舌身意. 請和尚為某甲說. 院主杜口無言. 從此法公不是尋常人也, 院主便領上五洩和尚處.”
5) 앞의 책(補遺編25, 415b-416a), “今日為歸宗設齋, 歸宗還來也無? 眾無對. 師出來禮拜云: 請師徵起. 南泉便問, 師對曰: 待有伴則來. 南泉䞞跳下來, 撫背云: 雖是後生, 敢有彫啄之分. 師曰: 莫壓良為賤.”
6) 앞의 책(補遺編25, 416a), “因此名播天下, 呼為作家也.”
7) 앞의 책. “問: 師見南泉因什摩為雲嵒設齋? 師曰: 我不重他雲嵒道德, 亦不為佛法. 只重他不為我說破.”
8) [宋]贊寧, 『景德傳燈錄』 卷15(大正藏51, 321c), “此去石室相連有雲巖道人. 若能撥草瞻風, 必為子之所重.”
9) [明]語風圓信, 郭凝之編集, 『瑞州洞山良价禪師語錄』(大正藏47, 519c), “無情說法, 甚麼人得聞? 雲巖云: 無情得聞. 師云: 和尚聞否? 雲巖云: 我若聞, 汝即不聞吾說法也. 師云: 某甲為甚麼不聞? 雲巖竪起拂子云: 還聞麼? 師云: 不聞. 雲巖云: 我說法, 汝尚不聞. 豈況無情說法乎? 師云: 無情說法, 該何典教? 雲巖云: 豈不見. 彌陀經云: 水鳥樹林悉皆念佛念法.”
10) 앞의 책(大正藏47, 520a), “也大奇也大奇, 無情解說不思議! 若將耳聽聲不現, 眼處聞聲方可知.”
11) 앞의 책, “臨行又問: 百年後, 忽有人問還邈得師真否, 如何祇對? 雲巖良久云: 祇這是.”
12) 앞의 책, “切忌從他覓, 迢迢與我疎. 我今獨自主, 處處得逢渠. 渠今正是我, 我今不是渠. 應須與麽會, 方始契如如.”
13) 靜, 筠編, 『祖堂集』 卷6(補遺編25, 416a), “唐大中末年, 住於新豊山, 大弘禪要.”
14) [明]語風圓信, 郭凝之編集, 『瑞州洞山良价禪師語錄』(大正藏47, 520b), “厥後盛化豫章高安之洞山.”
15) 靜, 筠編, 『祖堂集』 卷6(補遺編25, 426a), “師居洞山, 聚五百眾.”
16) [宋]贊寧, 『景德傳燈錄』卷15(大正藏51, 323b), “夫出家兒, 心不依物, 是眞修行, 何有悲戀?”
17) 앞의 책, “僧家勿事, 大率臨行之際, 喧動如斯.”
18) 앞의 책, “至八日浴訖端坐長往, 壽六十有三, 臘四十二. 勅諡悟本大師, 塔曰慧覺.”
저작권자(©) 월간 고경.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많이 본 뉴스
-
‘옛거울古鏡’, 본래면목 그대로
유난히 더웠던 여름도 지나가고 불면석佛面石 옆 단풍나무 잎새도 어느새 불그스레 물이 들어가는 계절입니다. 선선해진 바람을 맞으며 포행을 마치고 들어오니 책상 위에 2024년 10월호 『고경』(통권 …
원택스님 /
-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물병 속에 있다네
어렸을 때는 밤에 화장실 가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그 시절에 화장실은 집 안에서 가장 구석진 곳에 있었거든요. 무덤 옆으로 지나갈 때는 대낮이라도 무서웠습니다. 산속에 있는 무덤 옆으로야 좀체 지나…
서종택 /
-
한마음이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없다
둘은 하나로 말미암아 있음이니 하나마저도 지키지 말라.二由一有 一亦莫守 흔히들 둘은 버리고 하나를 취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두 가지 변견은 하나 때문에 나며 둘은 하나를 전…
성철스님 /
-
구루 린뽀체를 따라서 삼예사원으로
공땅라모를 넘어 설역고원雪域高原 강짼으로 현재 네팔과 티베트 땅을 가르는 고개 중에 ‘공땅라모(Gongtang Lamo, 孔唐拉姆)’라는 아주 높은 고개가 있다. ‘공땅’은 지명이니 ‘공땅…
김규현 /
-
법등을 활용하여 자등을 밝힌다
1. 『대승기신론』의 네 가지 믿음 [질문]스님, 제가 얼마 전 어느 스님의 법문을 녹취한 글을 읽다가 궁금한 점이 생겨 이렇게 여쭙니다. 그 스님께서 법문하신 내용 중에 일심一心, 이문二…
일행스님 /
※ 로그인 하시면 추천과 댓글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