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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의 장인을 찾아서]
세월 머금은 고목, 목탁울림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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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리  /  2023 년 12 월 [통권 제128호]  /     /  작성일23-12-04 15:04  /   조회653회  /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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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촌 김덕주

 

고요한 사찰에서 청아하게 들려오는 목탁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염불소리는 가장 아름다운 불교의 노래요 삼매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목탁木鐸은 두드림의 소리와 공명이 조화를 이루면서 고요한 사찰의 적막을 일깨워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도 하고, 불안과 초조함으로 휩싸인 인간 마음의 긴장을 풀어주기도 한다.

 

사진 1. 사찰의 목탁.

 

나무를 둥글게 깎아 속을 비게 하여 울리는 소리를 내는 목탁은 불경을 읽거나 염불할 때, 신도들을 모이게 할 때 두드리는 신성한 불구이고, 세상 사람들을 깨우쳐 인도引導하는 데 비유하여 ‘경세警世의 목탁’이라고도 한다. 큰 목탁은 포단蒲團 위에 놓고서 치고, 작은 목탁은 직접 들고서 친다.

 

목탁을 치는 횟수나 방법에 따라 그 알림의 내용도 달라진다. 공양을 알릴 때는 한 번을 길게 치되 처음은 소리를 크게 하여 차차 작게 줄인다. 일을 하거나 논·밭의 일을 하기 위한 운력을 할 때는 두 번을 길게 친다. 입선入禪의 시간을 알릴 때는 세 번을 길게 친다. 새벽 예불 전에 도량을 청정하게 하기 위하여 행하는 도량석道場釋 때도 목탁소리로 세상을 일깨우며, 불보살의 명호를 외우면서 기도할 때도 사용된다. 그리고 범패梵唄 의식 때는 가락에 맞추어서 치게 되어 일종의 악기 역할을 맡기도 한다. 목탁은 단순히 한 가지 음만을 가지고 있은 것처럼 보여도 시간과 때에 맞게 격식을 갖추어 다루어야 하며, 강약, 장단, 횟수에 따라 말이 아닌 목성木聲으로 다양한 의미를 전달한다.

 

사진 2. 목탁을 설명하는 김덕주 장인.

 

단순해 보이는 생김과는 달리 목탁 만드는 과정은 실제 여러 공정과 시간, 손길을 필요로 한다. 이에 45년간 목탁 만드는 일에 일평생을 보낸 전통목탁 대한명인인 참선공예(경상북도 영천시) 김덕주 장인을 만나보았다.

 

좋은 목탁은 좋은 나무에서 시작된다

 

참선공예 작업장 마당에는 이런저런 나무들이 종류별로 산처럼 쌓여 있다. 보기 좋게 목탁의 형태를 갖춘 나무 더미, 아직 형태를 잡지 않은 덩어리 나무 더미, 커다란 찜 기계에 들어가 몇날 며칠 찌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나무 더미, 같은 나무에 났어도 목탁이 되지 못한 나무 더미 등 나무 본연에서부터 목탁으로 완성되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장마냥 각 과정의 나무들이 과정별로 그룹을 이루고 있다.

 

그 나무더미 사이에서 나무향이 잔뜩 배인 김덕주 장인이 환하게 웃으며 등장하는데, “나무가 많아 어수선하지요.” 하며 첫마디부터 나무 이야기로 시작한다. 우리가 사찰에서 가장 친근하게 들어온 목탁 소리, 그 목탁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목탁에 사용되는 나무로 좋은 것은 살구나무라고 한다. 연노랑빛 살구 열매는 비타민과 유기산이 풍부하여 예로부터 중앙아시아 지역 장수촌의 필수 식량으로 쓰였다는데, 나무는 단단하고 목탁으로 소리도 좋아 선호하지만 수가 줄어들어서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단단하고 고급스러운 대추나무 또한 목탁의 재료로 매우 좋지만 역시나 구하기 쉽지 않아 귀하다고 한다. 

 

사진 3. 살구나무 고목.

 

예전에는 천연의 나무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으나 수매가 좋은 농업 과실수를 심으면서 기존 목탁의 좋은 소재가 되었던 나무들은 아쉽게도 거의 사라지게 된 것이다. 어느 정도 나무 굵기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대략 백년 이상 수령의 나무를 필요로 하지만 갈수록 고목들은 확장공사나 다른 이유로 빠르게 사라져 좋은 목재 구하는 데 애를 많이 태우게 된다고 한다. 막상 좋은 나무가 있다고 하여 찾아가 보면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은데 상태를 확인하면 속이 비어 있거나 썩어 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살구나무가 좋은데 이제는 만나기가 어려워요. 살구나무와 가장 가까운 재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산벚나무죠. 하지만 산벚나무라고 해서 다 같지는 않지요. 지역과 토질, 나무가 어떤 상황에서 성장했는지에 따라서 더 무르기도 하고 단단하기도 합니다. 사람이 체질이 각기 다르듯이 나무들도 그래요. 연수가 오래되어도 더디게 자라는 나무가 있고 빠르게 자라는 나무가 있지요. 나무는 속이 꽉 차 있는 게 좋고, 곧게 쭉 뻗어오른 나무보다는 힘들게 자라서 굽이가 있는 나무가 좋아요. 환경에 고생 많이 한 나무가 재질이 단단하고 목탁으로 오래 두드렸을 때 잘 안 깨집니다.”

 


 

곧은 나무가 반듯하니 제작도 사용도 좋을 것 같다는 예상을 빗나갔다. 곧은 나무는 결이 좋아서 오히려 금이 죽죽 잘 간다 하고, 굽은 나무는 힘든 세월을 견디며 스스로 내공이 생긴 것인지 오히려 단단하고 오래간다고 한다.

 

자개 조각 일을 배우던 어린 소년은 우연히 이웃해 있던 목탁공방에서 들려온 청아한 목탁소리에 이끌려 바로 목탁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1970년대 후반 목탁 권위자였던 박영종 장인 밑에서 10년을 배우고 이후로 자신만의 독자적인 목탁의 길을 걸었다. 국내에 목탁 만드는 장인은 손에 꼽을 만큼 적다. 국가에서도 김덕주 참선공예 대표의 공로를 인정해 2015년 ‘숙련기술 전수자’로 선정했다. 15년 이상 산업현장 종사자로서 최고의 숙련기술과 그 기술을 전수할 시설과 장비를 갖추고 전수 대상자를 양성하고 있기에 가능한 선정이었다.

 


 

대학에서 목공예를 전공하고 그 뒤를 잇고 있는 아들 김영길씨도 전수대상자로 함께 선정되었다. 목탁을 만드는 방법은 따로 특별한 공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체득하는 방법으로 전수받아야 하기에 처음에는 어려움을 많이 겪었지만 지금은 그러한 경험들이 쌓여 가면서 노하우가 생겨 더 좋은 점이 많은 것 같다고 한다. 어찌 생각하면 사라져 가는 직업군일지도 모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더 애정이 가고 특별한 마음과 자부심이 든다고 한다.

 

사진 8. 완벽한 소리가 아니면 폐기된다.

 

속을 잘 비워야 좋은 울림소리가 된다

 

목탁의 생명은 소리이다. 산나무를 벌목해서 하나의 목탁으로 탄생되기까지는 대략 2년의 시간이 소요되는데, 시간의 대부분은 목탁이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한 기다림의 시간이다. 물론 만드는 과정에서 소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목탁의 속을 어느 정도로 잘 비워내는가가 관건이다. 소리도 예민하게 만들어내야 하고 나무에 손상도 없어야 한다. 속을 잘 비워야 좋은 울림소리가 된다. 소리를 맞추는 공정에서 공명 공간의 세밀한 차이, 만드는 시기의 온습도, 건조 등의 영향을 받으면서 최종적으로 목탁으로 태어날지 아니면 폐기될지가 결정된다고 한다.

 

사진 9. 김덕주 장인의 목탁.

 

만들어진 목탁의 소리는 나무의 재질, 목탁의 크기, 그리고 두드리는 정도에 따라서 모두 다르게 표현된다. 계절에 따라 여름소리 다르고 겨울소리가 다르다. 또 듣는 사람의 선호하는 소리 취향에 따라서도 어떤 이는 맑은 소리가, 어떤 이는 묵직한 소리가 더 좋게 들리기도 한단다. 김덕주 장인이 생각하는 목탁의 좋은 소리는 은은하면서 부드러워야 한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면서 깊고 묵직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여야 한다. 쨍쨍하면서 귀에 거슬리는 소리는 좋지 않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목탁이 소리가 좋지 않으면 폐기하는 것이 그의 철칙이다. 김 장인이 생각하는 좋은 소리의 기준이 있겠지만 또 고객이 원하는 좋아하는 소리는 따로 있다고 한다. 

 

“목탁소리는 지역에 따라 용도에 따라 사람에 따라 각자 원하는 소리가 다른데, 전라도 지방은 대체적으로 맑고 청아한 음을 선호하고, 서울 경기 지방은 굵고 넓게 퍼지는 부드러운 소리를 좋아합니다. 세 번이고 네 번이고 마음에 맞는 소리를 찾아가는 것도 일종의 과정이 아닌가 싶어요. 아무리 정성스럽게 만든 목탁이라도 소리가 맞지 않으면 결국 모두 불에 태워 버리지요.”

 

사진 10. 어형목탁.

 

어렵게 마련한 나무를 정성스럽게 찌고 말리고, 형태를 갖추고, 세밀한 작업을 거쳐도 마지막에 제 소리를 구현하지 못하면 불타는 아궁이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좋고 나쁜 목탁 소리를 분별하는 것은 수십 년 작업을 통해 본인만 알 수 있을 정도의 아주 미세한 차이이지만,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과감하게 불속으로 떠나보낸다. 도공의 도자기는 불속에서 탄생하여 미완성이라 판단되면 산산이 깨져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는데, 목탁이 미완성이면 불속으로 들어가 재가 되어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 완벽한 것에 도전하는 이들은 그만큼 자신이 쏟아 부은 노력과 헌신의 시간쯤은 냉정하게 도려내는 결단력을 지니는 공통점을 가진다. 그래서 한 분야의 최고 장인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사진 11. 백양사에 전시된 김덕주 장인의 목탁.

 

김덕주 장인이 만드는 목탁의 크기는 크기도 다양하다. 직경 15cm 목탁이 가장 일반적이고, 직경 8cm 미니 목탁 크기에서부터 성인 남성 3인이 겨우 힘을 합쳐야 들 수 있는 무게의 직경 1m에 달하는 거대목탁까지 제작한다. 특히 창작성이 돋보이는 ‘어형목탁’은 상당히 유려하다. 물고기가 바로 바다로 헤엄쳐 나갈 기세로 역동적이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절대 눈을 감지 않는 물고기처럼 항상 깨어 있는 마음으로 수행하라는 무언의 경책을 담는다고 한다. 부리부리한 물고기 눈과 김 장인의 눈망울이 어딘지 모르게 닮은 구석이 있다. 늘상 깨어 있는 마음으로 나무와 목탁을 다루고 평생을 목탁소리의 울림을 바라보았기에 만들어진 눈빛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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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리
중현中玄 김세리金世理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초빙교수. 한국차문화산업연구소 소장, 다산숲 자문위원. 성균예절차문화연구소, 중국 복건성 안계차 전문학교 고문. 대한민국 각 분야의 전통문화에 대한 애정 어린 연구 중. 저서로 『동아시아차문화연대기-차의 시간을 걷다』, 『영화,차를 말하다 』『길 위의 우리 철학』, 『공감생활예절』 등이 있다.
sinbi-1010@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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