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불교학의 성립과 전개]
철학자의 눈으로 불교를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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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태 / 2023 년 12 월 [통권 제128호] / / 작성일23-12-04 13:49 / 조회1,730회 / 댓글0건본문
근대한국의 불교학자들 36 | 심재룡
심재룡沈在龍(1943~2004)은 서울대 철학과에서 불교를 가르치면서 불교철학의 연구 방법론을 모색하고 많은 후학을 양성한 학자이다. 미국 하와이대에서 보조지눌로 박사학위를 하였고, 귀국 후에는 동양철학과 불교철학의 기반을 넓히는 데 주력했다. 그는 철학적 사유와 실천의 지향을 녹여낸 다수의 저작을 남겼는데, 『동양의 지혜와 선』(1990), 『부처님이 올 수 없는 땅』(1990), 『삶이여 번뇌의 바다여』(1994) 등이 있고, 영어책으로는 Korean Buddhism: Tradition and Transformation(1999)이 대표적이다.
인생을 결정지은 한 권의 책
1943년에 인천에서 태어났으며 유년기에 부친을 잃고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 남다른 재능으로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잠시 기자 생활을 하다가 언어분석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 하와이대 철학과로 유학을 떠났다. 하와이대 동서문화센터에서 장학금을 받아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했고, 석사 학위를 받은 뒤 『불교철학의 역사: 연속과 불연속』의 저자인 데이비드 J. 칼루파하나 교수와의 인연으로 전공을 불교철학으로 바꾸었다.
박사 논문으로 화엄의 교와 조계의 선 전통의 융합을 주제로 한 「한국 선불교의 철학적 기초- 지눌의 선교 통합」(1979)을 썼다. 지눌에 대한 논문을 쓰게 된 계기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훗날 자신의 인생을 결정지은 한 권의 책으로 박종홍의 『한국사상사(불교사상편)』를 들었는데, 철학도에게 식지 않는 열정과 영감을 주었다며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책 한 권이 인생을 의미 있게 결정지을 수 있을까? 나의 학문적 본령은 한국불교철학이다. 열암 박종홍 선생이 한국학의 바람이 불던 1960년대에 《한국사상》에 연재하셨던 글들을 나중에 모은 것이 『한국사상사(불교사상편)』(1972)이다. 당시 글을 접한 나는 젊은 철학도로서 문장에 반하고 그 뜻에 매료되었다. “한국의 불교는 선을 위주로 했지만 교종을 겸한 조계종이 전체적 주류를 형성해 왔고 그와 관련하여 지눌과 같은 창의적이며 총명하고 지혜로운 고승을 낳았다. 우리는 이 지눌의 사상을 탐구 천명함으로써 한국불교 사상이 어떤 점에서 특색을 발휘하고 있는지 밝혀질 것이라 기대한다.”는 문장에서 결국 학위논문까지 쓰게 되었다.”
귀국 후 그는 1980년에 서울대 철학과의 교수로 부임했고 25년간 재직했다. 1980년대만 해도 한국 철학계의 분위기는 서양철학이 중심이며 대세였다. 서울대 철학과의 경우도 박종홍이 「한국사상 연구에 관한 서론적인 구상」(1958)이라는 글을 시작으로 한국철학 연구의 길을 일찍부터 개척해 나갔지만, 유교를 비롯한 동양철학 관련 교수나 전공자는 소수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동양철학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가 시대의 화두로 떠올랐다. 심재룡도 한국에서 동양철학 연구의 여건이 충분히 갖추어지지 않았음을 인정하며 동양철학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그가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학자들과 함께 펴낸 책이 『한국에서 철학하는 자세들: 철학 연구 방법론의 한국적 모색』(1986)이었다. 여기에 실린 「동양철학을 하는 태도」에서 그는 서구문화에 완전히 경도되거나 독보적 동양문화를 주장하는 등의 상반된 입장을 선교사와 훈장에 빗대어 비판했다. 또한 문화의 역동적 변화와 시대의 흐름을 망각해서는 안 되며, 동양철학을 이상화하거나 대체 불가능한 어떤 특수한 것으로 대상화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세상 어디엔가 객체로서의 독특한 ‘동양적 사유 방식’이 있다는 편견을 깨뜨리는 것이야말로 동양철학을 학문으로 해방시키는 길이다.”라고 선언하며 동양을 탈각한 철학 자체의 길을 추구하고자 했다.
한편 불교학은 서양에서는 근대학문으로서 나름의 지분과 위상을 갖고 있었지만, 서울대 철학과에서는 새로운 분야였고 연구 방법론이나 교과에 대한 이해 및 인식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인도(산스크리트)와 중국(한문)을 오가는 불교의 광범위한 영역과 주제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철학적으로 이해하는 일이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심재룡은 연기와 공, 중도를 주장한 『중론』의 저자 나가르주나를 인간의 사유와 언어 구조를 설명하고 분석하는 사색가로 보고 그의 철학적 관심에 동참하여 함께 철학 하기를 촉구했는데, 이는 불교에 대한 철학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시도의 한 사례일 것이다.
한국불교의 특성을 논하다
심재룡은 「한국불교의 오늘과 내일: 한국불교학의 연구현황을 중심으로」(2000)라는 글에서 한국불교를 ‘과거부터 한국인들에게 있어 온 불교’와 ‘한국에서 수행하고 연구해 온 불교’로 구분하고, 한국학이라는 좀 더 넓은 외연 속에서 불교를 다루어야 한다고 보았다. 먼저 전통적인 불교 연구의 범주로 조선 후기의 강원 중심 교육과 강학을 들었고, 현대의 불교 연구는 역사학·철학·종교학 등 대학의 분과 학문 단위에서 이루어졌다고 하면서 다음의 세 시기로 나누었다. 제1기 계몽기(1945~1960), 제2기 해석 작업기(1961~1979), 제3기 다학문적·다문화적 접근기(1980~현재)가 그것이다.
먼저 계몽기는 한국불교 연구의 초창기에 해당하는데, 주로 일본에서 교육을 받은 학자가 다수였고, 김동화의 『불교학 개론』, 김잉석의 『화엄학 개론』 등 몇몇 개론서가 나왔다. 다음 해석 작업기는 불교학의 여러 분야가 새롭게 개척된 때로 대표적 학자로 『원효사상』의 저자 이기영을 들었다.
끝으로 다학문적·다문화적 접근기는 일본의 연구 방법론을 극복해 나가기 시작한 때로 보고 문화의 다양성과 여러 분야 학문을 아우르는 것을 특징으로 내세웠다. 이어 세계화 시대 한국 불교학의 과제로는 불교학자 수의 증가와 전공 다변화, 서구 학계 성과에 대한 관심 제고, 학제적 연구의 확산 등을 제기했다.
또한 그는 한국불교 전통의 역사적 연원을 거슬러 종조와 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학문적으로 진단했다. 먼저 “조계종단의 역사적 종조는 구산선문의 하나인 가지산문의 도의선사이고, 제도적 통합을 이룬 이는 고려 말의 태고보우이지만, 사상적 기초를 수립한 중흥조가 지눌이라는 사실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여, 도의, 보조, 태고를 각각 역사, 제도(법맥), 사상 면의 종조로 보았다.
다음으로 한국불교의 전통은 고려 시대에 기본 틀이 확립된 이후 조선을 거쳐 현재까지 연속적으로 이어져 왔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역사적·사상적으로 정혜쌍수, 돈오점수, 간화선법으로 요약되는 지눌의 수행체계와 선교 통합의 이론이 조선으로 계승됨으로써 현재 한국불교의 저변을 이루었다고 보았다. 지눌이 깨달음의 본질을 이론적으로 파악한 후 실천적 수행에 들어가 정진하는 돈오점수의 방법론을 정립한 것이 특히 중요하며, 이것이 한국 선의 수행관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음을 강조했다.
『지눌 연구: 보조선과 한국불교』(2004)는 결국 그의 유작이 되고 말았지만, 지눌과 한국 선에 대한 저자의 이해를 종합한 책이다. 여기서는 목우자牧牛子라는 자호에서 알 수 있듯이, 지눌은 깨달음의 길로 수행자를 이끈 종교적 성인聖人이고, 선과 화엄을 조화시키고 화두 참구의 방안을 제시하며 이론적으로 선 수행의 기초를 닦고 체계화한 철학자라고 평가했다. 나아가 지눌은 한국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차원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므로 거시적 관점에서 그의 위상을 제대로 밝혀야 한다고 향후 연구의 전망을 제시했다.
회통불교에 대한 비판적 입장
그런데 그는 한국불교의 특성으로 지목되어 온 회통불교(통불교)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통불교는 1930년 최남선이 주창한 이래 한국불교의 통시적 정체성을 가장 잘 집약한 용어로 알려져 왔다. 심재룡은 「한국불교는 회통적인가」(1985)라는 글에서 회통이라는 개념은 식민지 상황에서 민족주의적 요구로부터 나온 것이며, 학문적이기보다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가진다고 해석했다. 그는 하나의 개념으로 한국불교의 오랜 역사 전통을 하나로 묶을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일반화의 오류라고 보았고, 한국불교가 과연 회통적이었는지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그의 사후에 나온 『한국철학자료집: 불교편 1-3』(2005~2020)은 한국의 철학사상 관련 자료집 발간이 향후 연구 발전을 위한 절실한 과제라고 여긴 그가 생전에 서울대의 연구비 지원 과제로 신청한 사업의 결과물이다. 한국불교 주요 전적의 핵심 내용에 대한 번역, 저자 및 자료에 대한 해제로 되어 있으며, 제3권 조선 시대의 경우 함허기화부터 초의의순까지 총 28인의 저술을 대상으로 주요 내용을 역주하고 해설을 붙여 놓아 활용 가치가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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